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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고사5 - 구시가지에서 대성당을 구경하고 남쪽 알폰소 거리에서 점심 식사를!
2026년 5월 16일 스페인의 고도 사라고사에서 알히페리아 궁전에 갔더니 오전은
예약 마감이 되었기로.... 오후 4시 표를 사고는 북쪽으로 걸어서 에브르
강변에 도착해 산티아고 다리 Punte de Santiago 남쪽에 웅장한 성당이 보입니다.
기둥의 성모 대성당 (필라르 성당) 은 성모 마리아께 봉헌된 최초의 성당으로 예수의
제자 대야고보가 스페인에서 복음을 전파하고 있을때 성모 마리아가
나타나 벽옥 기둥을 주면서 그녀를 기리기 위해 교회를 지으라고 지시했다고 합니다.
대성당을 나와 조각품이 멋진 광장을 구경하고 라 론하 라고 부르는 미술관을 보고 나와 페드라
다리 Puente de Piedra 남쪽에 라 세오 성당 (산 살바도르, 사라고사 대주교청) 을 봅니다.
1173년 어머니 페이로넬라 여왕이 사망하면서 바르셀로나와 아라곤 왕으로 친정을 시작한 알리폰소 2세는
1174년 1월 16세 나이에 레온- 카스티야 왕국의 전 국왕 알폰소 7세의 딸이자 현 국왕 알폰소 8세의
고모 산차와 결혼했고 무슬림에 대해 발렌시아를 포위 공격해서 타이파로 부터 공물을 2배 더 받기로 합니다.
한편 1176년 남프랑스 프로방스 일대의 패권을 놓고 분쟁을 벌였던 툴루즈 백작 레몽 5세와 타라스코
평화협약을 체결했으니, 툴루즈 백작은 3만 리브르 은화를 받는 대가로 프로방스에 대한 주권을
포기했고, 신성로마 황제 프리드리히 1세에 대항하는 교황 알렉산데르 3세와 구엘프파를 지지합니다.
라 리오하 공략에 성공한 카스티야 국왕 알폰소 8세는 신성로마제국 프리드리히 1세 바르바로사
와 손잡고 아라곤 왕국을 도모하려고 하니, 아라곤 2세는 1190년 카스티야 왕국의 적국인
나바라 왕국에 레온 왕국, 포르투갈 왕국과 사신을 교환해 반 카스티야 동맹을 결성하려 합니다.
1192년 제3차 십자군 원정에서 돌아온 잉글랜드 국왕 겸 아키텐 공작 리처드 1세는 알리폰소 2세에
맞서 툴루즈 백작 라몽 5세와 동맹을 맺으니 알리폰소 2세는 아들 알리폰소를 레몽 5세의 이전
동맹이었던 포르칼키에의 기욤 6세의 딸인 가르센다 데 사르단과 결혼시키는 것으로 맞대응 합니다.
1195년 7월 19일 알라르코스 전투에서 카스티야 왕국군이 야쿱 알 만수르의 무와히드 왕조군에 참패했고
1196년 알리폰소 2세가 프로방스의 페르피냥에서 사망하니 장남 페로 2세가 아라곤 국왕이 되었습니다.
카탈루냐 해안을 끊임없이 침략하는 무슬림들을 응징하기로 하니 1212년 카스티야 왕국- 아라곤 왕국-
포르투갈 왕국- 레온 왕국- 나바라 왕국- 성전 기사단 연합군이 무와히드 왕조의 칼리파
무함마드 앗 나시르의 군대와 맞붙은 나바스 데 톨로사 전투에 참전해 기독교 세력의 완승에 기여합니다.
1206년 프로방스의 몽펠리에 주민들이 아라곤 왕국의 통치에 반기를 들자 군대를 이끌고 가서 진압했고,
1213년 시몽 4세 드 몽포르가 이단인 카타리파를 보호하는 툴루즈 백국을 응징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툴루즈로 쳐들어가서 레몽 6세를 몰아내니 페로 2세는 시몽과의 대결을 피할수 없다고 판단합니다.
아라곤-랑그도크 연합군은 강한 전투력과 일사불란한 움직임을 보이는 십자군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지니,
페로 2세는 전사했고, 시몽은 2개 대열에게 적 추격을 맡긴뒤 자신은 포위된 뮈레로 이동해 성을
공격하고 있던 툴루즈 민병대를 섬멸하니 아라곤 왕국은 프랑스 랑그도크 일대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합니다.
이런저런 아라곤 왕국에 대한 옛날일을 생각하며 걷다가 마침 점심 때도 되었고 해서 조금 더
걸으니 멋진 레스토랑이 보이는데..... 여긴 비싼 것 같아서 조금 아래쪽으로 가기로 합니다.
조금 걸어내려 갔는데 여긴 구시가지를 벗어난 완전한 신시가지이니 아라곤왕의 이름을 딴 알폰소
라고 하는 거리로 높고 멋진 빌딩들이 늘어섰으며 사람들의 옷차림도 한껐 세련되어 보입니다.
이 도시는 축구팀 레알 사라고사가 있는데 한때 강팀이었다가 강등되기도 하는 수모를 겪었지만 몇시즌
째 전반기까지 20위를 하다가도.... 후반기에 생존 본능을 보이는 무서운 모습을 보인다고 합니다.
가다가 중간에서 왼쪽으로 난 도로로 들어서서 조금 걸으니 식당들이 많이 보이는데, 그 중에
멋진 장식을 한 집이 보이니..... 바로 우리가 찼고 있던 레스토랑 "엘 튜보 El Tubo" 입니다.
참치가 들어간 샐러드를 비롯 몇가지 요리에다가 생맥주를 시켜서 한잔 들이키니
오늘 하도 오래 걸어서...... 녹초가 되었던 몸과 마음이 다 풀리는 것 같습니다.
그러고는 식당을 나와 알히페리아궁전으록 가야 하는지라 버스 정류소 San Vicente De Paul No27 을
찾아가 32번 BUS 를 타면 서남쪽 Conde De Aranda No62 (No 41) 정류소에 내려 궁전으로 갑니다.
그런데 아직 궁전에 입장 시간인 6시 까지는 시간이 좀 남았기로 버스를 타기 보다는 구글 지도를 보고
종이에 손으로 그려온 수제 지도를 들고 걷는데..... 남쪽으로 걷다가 큰 도로를 만나 우회전을 합니다.
C. de los Cereros 도로를 따라 걸어서 궁전 가까이 거진 다 와서 생각하니 오늘 보려고 했던 곳
중에 몇곳을 미처 보지 못하고 왔다는 생각이 드는데... 그렇다고 되돌아 가기도 애매합니다?
13세기 후반 아라곤 왕국은 지중해로 진출해 시칠리아 왕국을 얻는등 해상 제국으로 변모
했으니 새로 얻은 바르셀로나가 아라곤을 포함한 카탈루냐 지방의 중심지로 성정합니다.
스페인에는 그리스인과 페니키아(레바논) 인이 식민시를 건설해 내륙의 원주민과 대치했는데 카르타고가
점령했고, 이후 로마 치하에서 라틴화 되었으며 5세기에 게르만민족 대이동으로 서로마는 멸망하고
게르만 서고트왕국이 세워졌으며 720년 시리아의 이슬람 사라센인이 침공해 우마이야 왕조가 세워집니다.
기독교 아라곤 왕국은 무려 200년간의 전쟁 끝에 이슬람국 사라고사를 함락해 새 수도로 삼았으니
1318년 교황 요한 22세에 의해 독자적인 대주교구로 승격되었며 1360년부터 성 살바도르
대성당의 외벽은 벽돌과 도자판으로 둘러졌고 세비야의 장인들로 무데하르 풍의 장식이 더해졌습니다.
1410년에는 교황 베네딕토 13세가 사라고사를 방문했으며 1485년 9월, 이단심문관인 페드로
데 아르부에스가 사라고사의 산 살바도르 대성당에서 기도하던 중 암살되었으니.... 이는
아라곤 지역의 푸에로 (자치 법령) 에 대한 반발로 콘베르소 (개종자) 귀족 가문이 주도했습니다.
그후 반유대인 폭동이 벌어져 9명이 처형되고, 2명이 자결하고 13명이 화형되었으니.....
1492년 페르난도 5세의 유대인 추방령으로 사라고사의 유대인 공동체는 거의 소멸
했고, 1609년에는 기독교로 개종한 무슬림 및 유대인까지 모리스코 추방령으로 축출됩니다.
사라고사의 위상도 카스티야와 아라곤 왕국이 동군연합을 이룬후 카를로스 1세(카를 5세) 가 1518년에
대관식을 거행한후 후대 군주들은 푸에에 선서만 하는 것으로 축약되고 방문하지 않았으며, 1548년
사라고사의 인구는 이슬람 시기와 비슷한 2만 5천이었는데... 1564년의 역병으로 1만 가량이 사망합니다.
1591년 푸에로 제한에 반발한 민중 봉기가 있었으며 16-17세기 산 살바도르 성당은 다성음악의 중심지
로..... 한편 서기 40년 1월에 아직 살아있던 성모 마리아가 당시 사라고사 인근 에브로 강변에서
전도하던 성 야고보 앞에 나타났다는 전승을 기반으로 사라고사 구도심에 기둥의 성모 성당이 건축됩니다.
로마네스크 양식의 성당은 1431년 화재로 불탄후 산 살바도르대성당과 유사한 무데하르 및 고딕 양식으로
재건되었으며 1681년 기둥의 성모 대성당은 카를로스 2세의 지시로 바로크 양식으로 대대적으로 중건
되어 1686년에 완공될 때는 대성당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고, 기존의 산 살바도르 대성당과 경쟁하게 됩니다.
18세기 초 카를로스 2세 사후 스페인 왕위 계승전쟁시 사라고사는 카를 대공을 지지했고 1706년
6월에 그를 왕으로 선포했는데..... 7월에 사라고사에 당도한 카를 대공은 부르봉 왕조를
지지하는 아라곤 도시들을 공격했으나 1707년 4월 알만사 전투에서 패하며 전세가
역전되었고, 5월 26일 오를레앙 공작 필리프 2세가 이끄는 프랑스 군대가 사라고사를 점령합니다.
아라곤 왕국의 법률 및 자치권이 폐지되었고, 카스티야 법률이 적용되었는데 그러던 1710년
7월, 합스부르크- 영국 연합군이 알메나르 전투에서 부르봉 왕조 군대를 격파했으며
8월의 사라고사 전투후 카를 대공이 다시 도시를 접수했고... 9월에는 마드리드에 입성합니다.
하지만 12월 프랑스군의 반격이 성공하며 합스부르크군 및 영국군은 철수했고 스페인 보르본 왕조가
성립되었으며 ,1766년 4월 빵 등 물가 상승으로 사라고사에서 식량 폭동이 벌어져 8명이 사망하고
3백여명이 부상을 입자 진압후 17명이 처형되었고, 수십여명이 알하페리아의 지하 감옥에서 처형됩니다.
이베리아반도 전쟁 기간 사라고사는 나폴레옹에 대한 저항의 상징이 되었는데, 1808년 6월, 베르디에
장군이 이끄는 1만명 프랑스 제국군은 사라고사를 포위하고는..... 대대적으로 포격을 가한후
시내로 진격하자 주민들은 장군 호세 데 팔라폭스의 지휘하에 바리케이드를 설치하고 결사 항전합니다.
결국 7월에 바일렌 전투의 결과가 전해지자 프랑스군은 남은 탄약을 소비하는 포격을 벌인후
철수했고 프랑스 군과 스페인 수비대는 3천여명씩 전사했는데 가을, 대대적으로
반격에 나선 프랑스군은 후퇴하는 스페인 군을 쫓아서 12월에 사라고사를 재차 포위합니다.
장 란이 이끄는 4만 5천명 프랑스 군대는 사라고사를 맹렬히 공격해 남쪽 성벽을 돌파했으니 호세 데
팔라폭스와 주민들은 저번 처럼 미로 같은 구도심에 바리케이드를 세워 저항했고, 장 란은
각 구역마다 포위 섬멸하며 나아갔는데, 역병까지 퍼지며 2월 3만 2천의 수비대 중 8천 5백
명만 전투가능 상태가 되자 결국 2월 20일 도시는 항복했고 포위중 3만 이상의 민간인이 사망합니다.
나폴레옹 전쟁후 인구 3만의 중소 도시로 침체되었던 사라고사는 1861년 바르셀로나,
1863년 마드리드와의 철도가 놓이며 다시 발전해 1880년대에 9만 인구를 넘깁니다.
1898년, 미국과의 전쟁에서 패배한 스페인은 사탕수수의 산지인 쿠바와 푸에르토리코를
잃자 사탕수수대신 사탕무로 설탕을 만들기 시작하였는데.... 이로인해 사라고사에서
설탕 산업이 성장했으미 1900년 10만이던 인구는 1930년대 들어 20만에 근접하게 됩니다.
그무렵 사라고사는 좌파계열 노동조합의 세력이 강했는데 그러던 1936년 7월 19일, 스페인 내전이
발발하자 미겔 카바야네스 장군이 이끄는 반란군이 봉기했으니.... 노조는 민병대를
조직하려고 했으나 주지사가 제때 무기를 내주지 않아 불발되었고 사라고사는 국민파에 넘어갑니다.
이후 공화파 지도부와 좌익 계열 주민들은 아라곤의 공화파 거점인 동남쪽의 카스페로 피난했으며 1937년,
공화파는 사라고사를 탈환하기 위해 공세를 개시했지만 실패했으며..... 그 과정에서 도시는
몇차례 폭격을 받았고 3개의 폭탄이 기둥의 성모 마리아 성당에 착탄했으나 기적적으로 불발탄이었답니다.
스페인 내전 초반기 사라고사는 세비야와 함께 국민파 수중에 들어간 양대 주요 도시였고, 공화파
핵심 거점인 바르셀로나를 견제할 거점이었기에..... 국민파는 탄약 보급을 위해 여러
무기공장이 세워지는 등 군수 산업이 발달했다. 내전 후인 1940년 9월에는 군사학교가 세워집니다.
2차 대전 후 국민파 프랑코장군의 스페인은 국제 사회에서 고립되었고 그러던 1953년 9월 마드리드 협정으로
프랑코 정권과 미국과의 관계 정상화가 이루어진후 사라고사에는 미국-스페인 합동 군사 기지가 세워졌고
1964년 프랑코는 사라고사를 산업 발전의 역점도시로 선포해 집중 투자하니 이로써 도시는 빠르게 발전합니다.
아라곤 지역의 이촌 향도가 심해지며 인구는 1960년 무렵의 30만명에서 1990년 무렵에는 60만명
으로 늘었으니..... 1979년 7월 사라고사의 최고급 호텔인 코로나 데
아라곤에서 발생한 화재로 프란시스코 프랑코 가족을 포함 최소 80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있었습니다.
1982년 사라고사 근교에 제너럴 모터스 자동차 공장이 세워졌으며..... 1987년 12월에는
바스크 분리주의자 단체인 ETA 가 사라고사의 병영에 폭탄 테러를
가하여 아동 5명을 포함해 11명이 사망했고, 이후 25만명이 참여한 규탄 시위가 열렸습니다.
1990년대 부터 사라고사에는 루마니아인 및 모로코인을 비롯해 외국인 이민자가 늘어 인구의 3% 를
이루게 되었으며, 2001년 산 살바도르 성당, 산 파블로 성당, 알하페리아는 아라곤의 무데하르
건축이라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고 2008 사라고사 엑스포를 개최하며 대외적으로 알려지게 됩니다.
사라고사는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 사이 운데에 있으니 찾아가기 쉬운 위치로 마드리드나 바르셀로나
에서 렌페 열차 타고 2시간 정도면 되며 열차표 값이 이동 거리에 비해 비싼 편이지만
사라고사 시내 숙박비는 마드리드나 바르셀로나에 비해 저렴하고 따로 성수기 비수기를 타지 않습니다.
바르셀로나 여행 일정에서 1박 2일에서 2박 3일 정도 사라고사를 집어넣는 것도 좋은 옵션이니
시내에 지하철은 없지만 시가지 서쪽에 그렇게 멀지 않은 곳에 간선 철도역인
사라고사- 델리시아스 (Zaragoza-Delicias) 역이 있어서 도보로 관광하기는 어렵지 않습니다.
사라고사의 주요 산업은 광업과 제조업으로 오펠 공장을 비롯한 국내외 철도 차량을 생산하는 CAF
, 가전제품을 생산하는 발라이 (Balay), 문구류 SAICA 와 토라스파펠 (Torraspapel) 의 공장이
위치해 있는데 이런저런 사라고사 도시 생각을 하며 걷다 보니 저만치 알히페리아 궁전이 보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