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첨[阿諂]”, ‘남의 마음에 들려고 비위를 맞추면서 알랑거림.’, “아부[阿附]”, ‘남의 마음에 들려고 비위를 맞추면서 알랑거림’
이렇게 설명해 놓으면 둘 다 같은 뜻입니다. 그런데 또 책에 따라서는 다르게 설명도 합니다.
[아첨은 남의 환심을 사거나 잘 보이려고 알랑거림이라고 사전에 설명되어 있다. 환심은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마음이다.
아부는 남의 비위를 맞추어 알랑거림을 말한다. 비위는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성미나 기분이라고 정의돼 있다. 아부와 아첨은 어떻게 다른가?
아부가 최악이라는 논리는 다음과 같다. 아부는 없는 사실을 적시해 상대방의 기분을 돋우는 것이기 때문에 일종의 범죄행위로 본다. 다분히 의도적이고 조작적이라고 주장한다. 반면에, 아첨은 상대방이 하는 일과 말은 무조건 훌륭하다고 치켜세우는 것이라고 본다. 그 아래에 상대방의 귀여움을 받으려고 하는 가장 강도가 약한 ‘아양’이 있다고 덧붙인다.
반대의 의견도 있다. 아첨이 아부보다 더 악하다는 주장이다. 아부는 다른 사람의 호의나 사랑을 얻으려는 의도로 남을 칭찬하거나 추켜세우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첨은 다른 사람의 결정이나 행동에 영향을 끼치기 위해 상대방을 남몰래 칭찬하거나 추켜세우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의미에서 아부보다 부정직한 의도가 더 강하다는 측면이 있다고 본다.
한자의 뜻풀이로 차이를 설명하기도 한다. 아부(阿附)는 ‘언덕에 기댄다’는 의미로 비빌 언덕을 만든다는 뜻이라고 한다. 의지할 곳이 만든다는 의미로 보고 칭찬의 의미가 강한 것으로 해석한다. 반면에 아첨(阿諂)은 ‘함정 함’자가 포함되어 있음을 강조한다. 객관성이 없는 내용으로 상대 비위를 맞춰 듣는 이의 판단을 흐리게 한다는 것이다. 상대방이 자칫하면 함정에 빠질 수 있다는 뜻이라고 주장한다. 그렇기 때문에 아부가 아니라 아첨은 자신 스스로 함정에 빠질 수도 있다. 즉, 감당하기 힘든 리스크를 맞닥뜨릴 수 있다.〕다음카페, 대구황금성당의 글 중에서
사실, 아첨과 아부를 분명하게 구별하기는 쉽지 않을 겁니다. 아첨을 하는 사람들이나 아부를 하는 사람들이 그걸 구별할 줄 알고 하겠습니까? 또 그걸 알면서도 아첨과 아부에 흐뭇해 할 사람은 없을 겁니다.
<‘이재명 대표를 아버지처럼 모시자.’
‘이재명 대표를 임금님처럼 모시자.’
둘 중 어느 쪽이 더 부적절한 표현이고, 더 심한 아부가 될까. ‘군사부일체(임금과 스승과 아버지는 하나)’이니 거기서 거기일까, 아니면 그럼에도 차이가 있을까.
엄밀한 유교적 잣대로 보면 전자(前者)가 아닐까 싶다. 유교 경전인 ‘예기’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실려 있다.
“아버지의 잘못을 감추는 것은 괜찮지만 들춰내고 지적해서는 안 된다. 설령 지적을 하더라도 아버지의 낯빛이 바뀌지 않을 정도의 선까지만 부드럽게 하는 것이 자식의 도리다(유은무범·有隱無犯). 반면 왕의 잘못은 왕이 싫은 표정을 짓건 말건 굽히지 말고 직언(直言)해야 한다. 왕의 허물을 못 본 척해서는 안 된다(유범무은·有犯無隱).”
요컨대 아버지는 직언이 허용되지 않는 존재, 왕은 허용되는 것을 넘어 의무적으로 그렇게 해야 하는 대상이라는 이야기다. 여기에는 전근대적인 왕정 체제조차도 맹목적인 복종과 아부가 아닌, 다양한 의견과 자유로운 비판 위에서만 지속될 수 있다는 함의도 담겨 있다. 하물며 민주국가의 민주적 정당이라면 더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의 더불어민주당은 어떨까. “민주당의 아버지는 이재명”이라는 강민구 최고위원의 발언은 민주당이 나가고 있는 방향이나 전체적인 당내 분위기와는 무관한 돌출적인 것으로 치부할 수 있을까.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 강 위원의 발언은 민주당 안에 이미 존재하는 흐름의 연장선 위에 있는 것으로 보는 것이 옳다.
최고위의 다른 멤버들만 봐도 그렇다. 정청래 최고위원은 최고위원이 되기 전인 2021년 12월 ‘인간 이재명’이라는 책에 대한 독후감이라며 “한 장 한 장 책장을 넘기면서 인간 이재명과 심리적 일체감을 느끼며 아니 흐느끼며 읽었다”는 글을 올린 적이 있다.
최고위원이 된 뒤인 올 2월에는 “당의 시대정신이자 상징”이라며 이 대표를 축구 스타 손흥민에 비유하기도 했다. 정 의원이 최고위원이라는 당의 요직과 ‘국회 내 상원’이라는 법제사법위원회의 위원장을 동시에 꿰찰 수 있었던 것은 이런 배경에서 봐야 쉽게 이해가 될 것 같다.
‘명심(明心)’과 ‘개딸’의 지지를 얻고 단독 입후보 끝에 사실상 추대된 박찬대 원내대표(당연직 최고위원)도 부쩍 피치를 올리는 중이다. “대표가 너무 착하다. 나보다 더 착하다. 이 대표가 너무 반대를 많이 해서 설득하는 데 시간이 걸렸다.” 민주당 당무위가 당 대표의 사퇴 시한을 ‘대선 1년 전’으로 규정한 당헌의 예외 조항을 둘지 여부를 논의한 지난달 12일 회의가 길어진 이유를 설명하며 박 원내대표가 한 말이다.
당헌 개정은 대선 직전까지 ‘이재명 일극체제’를 유지할 수 있게 하고 2026년 지방선거의 공천권을 행사할 수 있는 길까지 열어주는 내용이다. 민주당의 오랜 전통인 ‘대권-당권 분리 원칙’을 허무는 중요 현안을 설명하는 와중에도 틈을 놓치지 않고 아부성 발언을 잊지 않는 게 놀랍다.
다가오는 8·18 전당대회에서 선출될 최고위원직 5자리의 면면도 지금보다 못할 것 같지 않다. 가장 먼저 출마 의사를 밝힌 강선우 의원은 “이재명을 지키는 일이 민주당을 지키는 일”이라며 ‘호위무사’를 자처하고 나섰다. 그러면서 “어대명(어차피 대표는 이재명)이 아니라 당대명(당연히 대표는 이재명)”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이 대표의 연임을 ‘대세론’을 넘어 누구도 의견을 개진하거나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당위(當爲)’로 격상시킨 것이다. 추가로 출마 의사를 밝혔거나 밝힐 예정인 10여 명도 ‘친명’ 일색으로, 벌써부터 낯 뜨거운 ‘명심 마케팅’만 난무하는 중이다.
민주당이 이렇게 된 데는 이 대표에게 조금이라도 해가 된다고 보이거나 비판적인 의견을 내는 당내 인사들에 대해 ‘벌떼’처럼 달려들어 집단항의를 하고 ‘문자폭탄’을 날려대는 개딸의 존재가 큰 영향을 끼쳤다. 그런데도 이 대표와 지도부는 여기에 브레이크를 걸기는커녕 개딸의 입김을 점점 더 키우고 있다.
최고위원 선출 본투표에서 권리당원의 비율을 올리는 것으로 부족했던지 예비경선까지 권리당원이 좌우할 수 있게 하는 길을 텄다. 이렇게 되면 개딸은 갈수록 폭주하고 이 대표에 대한 ‘직언’이나 ‘비판’은 더욱더 질식될 것이다.
비판 너머의 존재인 ‘아버지 이재명’에게 개딸은 박수를 보낼지 모르지만, 다수 국민이 참아 줄지는 의문이다.>동아일보. 천광암 논설주간
출처 : 동아일보. 오피니언 [천광암 칼럼], ‘아버지’ 이재명과 ‘당대명’
데시데리위스 에라스뮈스는 자신의 저서 『우신예찬』에서 아첨을 칭찬했다고 합니다.
아첨은 "의기소침한 영혼을 일으키고, 슬픈 사람을 위로하고, 냉담한 사람을 깨우고, 둔감한 사람을 분발하고, 병든 사람을 격려하고, 완고한 사람을 제지하고, 연인을 하나로 모아 단결하게 유지"하기 때문이다.(Regier, Willis Goth. In Praise of Flattery (Lincoln: University of Nebraska Press, 2007).
이러니 아첨보다 더 좋은 말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래서 더민당 사람들이 앞 다투어 이재명 대표에게 아첨을 하는가 봅니다.
時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