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나의 세계는 거대한 두 장벽이 마주 보는 좁고 긴 복도 같은 공간이었다. 한쪽은 금단의 구역이었던 미군 기지 '캠프 하야리아'의 높은 담이었고, 다른 한쪽은 배움의 터전인 '성지국민학교'의 담장이었다
그 두 담장 사이, 지금은 '봄봄 돈가스'가 들어선 자리에는 어머니가 옷 수선을 하시던 작은 판자집이 있었다. 넉넉하지 못한 형편이었지만, 그 좁은 곳에서 우리 아홉 식구는 서로의 온기에 기대어 복작거리며 삶을 지탱했다.
중학교 1, 2학년 시절, 나는 성지의 담벼락에 기대어 앉아 하루를 보냈다. 법보다 주먹이 가깝고, 책보다는 동전 던지는 '짤짤이' 소리가 더 익숙했던 그곳에서 나는 동네 형들과 어울리며 세상의 거친 논리를 익혔다. 담장 너머 하야리아 부대에서 흘러나온 이국적인 냄새와 소음은 우리를 들뜨게 했고, 공부는 그 높은 담벼락을 넘지 못하는 지루한 이야기일 뿐이었다.
그 시절, 세련된 커피집이 들어선 옆 골목에는 단짝 친구 '톰'이 살았고, 화려한 뚜레쥬르 자리에는 연탄을 팔던 인자한 할아버지가 계셨다. 할아버지는 어린 '붙들이'에게 천자문을 가르쳐주시며, 거친 골목 안에서도 사람다운 도리를 일깨워주셨던 마을의 구심점이셨다.
인생의 전환점은 예고 없이 찾아왔다. 중학교 3학년, 두 담장 사이에서 허비했던 시간들이 두려움으로 다가왔을 때, 나는 짤짤이 판 대신 도서관 책상 앞에 앉았다. 남들보다 늦었다는 조바심에 지독하게 매달렸고, 영어 단어를 외우며 내 마음속 '포기'라는 담장을 허물어갔다.
만화방에 앉아 있다가 들었던 중학교 합격 소식, 그리고 '소 발에 쥐 잡기'처럼 운 좋게 붙었던 고등학교 입시까지. 돌이켜보면 그 모든 행운은 이 동네가 내게 준 마지막 선물 같았다. 새싹로 92번 길을 따라 올라가며 마주했던 수줍던 첫사랑의 집과, 비가 오면 부전천을 따라 돼지가 떠내려가던 진풍경은 가난했기에 더 생생했던 청소년기의 조각들이다
이제 하야리아 부대의 높은 담장은 허물어지고 그 자리에 부산시민공원이 들어섰다
부산 시민공원 남문 1게이트 근처, 이제는 이웃 동네에 단 서너 채의 집만이 남았다. 빨강, 파랑, 노랑의 강렬한 삼원색이 어우러진 그 풍경은 역설적이게도 참으로 아름답지만, 곧 철거라는 이름 앞에 사라질 운명이다.
맑은 물 대신 콘크리트로 덮여버린 부전천처럼, 옛 기억이 다시 복원될 길은 보이지 않는다
고단했던 시절의 아픈 기억들이 땅 아래 깊이 묻혀 다시는 나타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내 삶을 만든 그 시절의 방황조차 소중한 역사였음을 고백하고 싶다.
비록 공간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겠지만, 내 마음속에 새겨진 그날의 치열했던 색채만큼은 결코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담장은 허물라고 있는 것이고, 길은 언제든 새로 낼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준 나의 옛 동네, 범전동에게 작별을 고한다.
옛 동네
성지초등학교 정문
새싹로 92번 길 1
새싹로 92번 길 2
새싹로 92번 길 3
새싹로 92번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