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강왕은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로 유명한 경문왕의 아들이다. 헌강왕 이래로 정강왕, 진성왕, 효공왕까지 모두 4명이 경문왕의 아들, 딸이라는 것도 이채롭다. 적어도 헌강왕 대까지는 삼국통일 이후 융성했던 신라의 국운이 느껴진다. 어느 날 헌강왕이 신하들과 함께 월상루에 올라 내려다보니 즐비한 민가에서 노랫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헌강왕이 시중 민공에게 물었다. "내가 듣기로 백성들이 짚이 아닌 기와로 지붕을 이고, 나무가 아닌 숯으로 밥을 짓는다고 하는데 과연 맞는 말인가?" 이에 시중 민공이 그렇다고 대답하는 내용이 《삼국사기》에 실려 있다. 헌강왕이 재위 11년 만에 승하하자 정강왕이 즉위했다. 정강왕은 헌강왕의 손아래 동생이다. 정강왕은 헌강왕의 치세를 이어갈 틈도 없이 재위 1년 만에 여동생인 진성여왕에게 왕위를 넘겨주고 세상을 떠났다.
헌강왕릉과 정강왕릉은 도로에서 소나무 숲을 따라 들어가면 금방 만날 수 있다. 소나무들이 굵지는 않지만 빽빽하게 들어서서 울창한 느낌이 든다. 구불구불 펼쳐지는 소나무의 향연이 제법 입체적이다. 헌강왕릉과 정강왕릉은 대릉원이나 노동동, 노서동 고분군처럼 크지 않고 단순하면서도 수수하다. 헌강왕릉은 원형 봉토분으로 흙이 흘러내리지 않도록 무덤에 돌아가면서 4단으로 돌을 쌓았다. 정강왕릉 역시 비슷한 모습을 보이는데, 신라 왕릉 가운데 좀 특별한 경우라고 한다. 헌강왕릉과 정강왕릉은 남산으로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는 오후 3~4시쯤 방문하는 것이 좋다. 하루의 마지막 햇살이 소나무 숲에 퍼지며 장관을 이루기 때문이다. 헌강왕릉은 사적 제187호, 정강왕릉은 사적 제186호로 지정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