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기행Ⅰ
-돌 문화
시골의 남녀공학 중학 동기생, 56년 동안 지기지우들 20여 명은 함께 제주 여행을 떠났다. 다들 일흔 고개를 넘은 세월의 고비가 흰머리와 이마의 주름진 삶의 훈장이 이를 말해주고 있다. 다들 동심에 젖은 듯 설레는 마음으로 제주 땅을 밟았다. 멀리 한라산이 숨바꼭질하듯 구름에 숨었다가 나타나고, 넓은 초원에는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는 말들이 무척이나 평화로워 보이며 마음이 넉넉해졌다.
제주도의 삼다(三多) 중 하나가 돌이다. 돌 문화 공원을 탐방했다. ‘무슨 돌 문화가 있으랴’ 하며 가볍게 여기며 들어갔다. 제주도에 돌이 많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으나 돌의 형상이 천태만상을 이루고 있음에 한껏 놀랐다, 화산이 분출하여 공기가 빠져나가면서 구멍이 숭숭한 현무암과 화산암의 굳은 모양이 석회암의 동굴에서 보듯 종유석과 석순의 자태를 이루고 있었다.
그 모양들이 예술 작품처럼 빛을 비추어 음영의 모습까지 깃들어 오묘한 형상을 이루어 감탄사를 자아내게 했다. 마치 철탑을 쌓아놓은 듯하기도 하고 어떤 동물 형상의 조형물을 상징하는 듯했다. 돌도 이렇게 아름다움을 나타내는 쓸모 있을 줄이야 싶었다. 그런 생각이 중첩되면서 “집 짓는 이가 내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네.”의 경전 말씀이 떠올랐다.
어느 한 곳에 다다르니 낯익은 돌들이 즐비하게 놓여 있었다. 절구를 비롯하여 맷돌들이 눈에 뜨였다. 맷돌의 크기가 엄청나게 컸다. 저렇게 큰 돌을 어떻게 돌렸을까? 나는 어렸을 때 아낙네들이 두부를 만들기 위해 콩을 맷돌에 가는 모습을 보았다. 저렇게 큰 맷돌은 아마도 말을 이용하여 사용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제주도는 밭의 경계나 집의 울타리가 구멍이 숭숭한 거무튀튀한 돌로 되어 있다. 그런 돌이 예술 작품의 형상으로 마음을 끌다니 경이로웠다. 예술 작품으로 미적 가치를 드러내며 뭇사람을 부르고 있었다. 그곳 남단 서귀포에 약천사라는 사찰이 있다. 그 사찰은 목조 건물이 아니고 돌로 된 웅장한 건물이다. 남쪽에서 한반도의 평화를 기원하며 사찰이 건립되었다고 하며 멋진 예술 작품이었다.
철학자 플라톤은 그것이 그곳에 존재하는 이유는 자기의 구실을 다하기 위해서란다. 보잘것없는 것들도 구실을 다하는데, 하물며 사람이야 당연히 필요한 존재이리라. 남과 다름이 거룩하며 재능이 제각기 다름이 또한 거룩한 존재이다. 하찮게 여긴 돌을 보면서 나를 돌아보며 성찰하는 기회가 되었다. <다음은 사려니 숲속을 걸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