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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시오입(開示悟入)
법문을 개시하여 불교의 깊은 이치를 깨닫게 한다는 뜻으로, 부처가 이 세상에 출현한 근본적인 목적 4가지 일을 말한다.
開 : 열 개
示 : 보일 시
悟 : 깨달을 오
入 : 들 입
석가모니 부처님이 이 세상에 출현한 근본적인 목적 4가지를 제자 사리불(舍利弗)에게 설명한 내용으로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 방편품(方便品)에 나온다.
개(開)는 즉 개제(開除)로서 중생이 미망(迷妄)을 깨뜨리고 제법(諸法)의 실상(實相)을 보게 되는 것이다.
시(示)는 즉 현시(顯示)로서 모든 번뇌가 사라지고 지혜가 생겨 우주의 만덕(萬德)이 밝히 드러나 보이는 것이다.
오(悟)는 즉 각오로서 우주의 본체事理 그대로가 현상이며, 현상 그대로가 본체임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입(入)은 즉 증입(證入)으로서 진리인 그대로의 본체에 증입하게 되는 것을 가리킨다.
즉, 중생들을 열반의 길로 인도 한다는 뜻으로 개(開)는 불법을 펼치신 것이고. 시(示)라는 것은 보여준다는 뜻으로 묘법의 공덕을 실증(實證)하여 중생들에게 보여주신 것이고. 오(悟)는 깨닫다는 뜻이고, 입(入)이라고 하는 것은 들어간다는 뜻으로, 중생들로 하여금 완전히 묘법(妙法)을 체득하게 하여 깨달음의 세계로 들게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부처님께서는 중생들에게 불법을 열어 보이시고, 법을 통해 진리를 보게 하시고, 중생들에게 진리를 깨닫게 하시고, 그 진리의 세계로 들어가게 하기 위하여 이 땅에 오신 것이다. 이것을 개시오입(開示悟入)이라고 한다.
이처럼 부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뜻은 중생들로 하여금 고통의 윤회에서 벗어나 영원한 행복의 길로 인도하기 위한 것이다.
우리는 이런 뜻을 확실히 알고 철저히 믿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확실히 믿는 마음이라야 선업(善業)을 지을 수 있는 것이고 선한 마음이라야만 참 나를 볼 수 있는 것이고, 참 나를 볼 수 있어야만 저 피안(彼岸)의 세계에 이를 수 있는 것이다.
잘못 믿으면 사도로 가는 수가 있다, 사도(邪道)라고 하는 것은 헛된 것이고 망상이고 허망한 것이어서 진리를 구할 수 없고, 사도를 믿는 자는 결국에는 천길 나락으로 떨어지게 된다. 그러므로 반드시 정도(定度)를 가야 한다. 그래야 진리를 구하고 견성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천태종(天台宗)에서는 이 개시오입을 교(敎), 행(行), 인(人), 리(理)로 해석하여 부처의 지견(知見; 깨닫는 것)에 이르는 정도(正道)를 보여주는 중요한 법문(法文)이라고 말한다. 또 법화문구(法華文句) 권4에서는 개시오입을 4지(知), 4문(門), 4위(位), 관심(觀心)의 4류(類)로 분류 해석하기도 한다.
인간에게는 누구에게나 불성(佛性)이 있다. 이 불성은 삼인불성(三因佛性)이라고 하여 정인불성(正因佛性), 요인불성(了因佛性), 연인불성(緣因佛性)의 3가지로 나누어진다.
정인불성(正因佛性)이란 우리가 태어나면서부터 밝게 갖추고 있는 성질로 부성(父性)이나 모성(母性) 등과 같이 교(敎)나 도(道)의 가르침을 전혀 모르더라도 아무런 조건 없이 자식을 위해 자신을 기꺼이 희생하는 것과 같은 우리 인간의 본성을 말한다.
나를 버리고 남의 기쁨을 자기의 기쁨으로 삼으며, 남의 괴로움을 자기의 괴로움으로 삼는 이러한 귀중한 성품은 누구에게나 태어날 때부터 갖추고 있는 것으로 단지 그러한 본성을 발휘하느냐 않느냐의 문제인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본성(本性)은 그대로 내버려두면 좀처럼 발달하지 않으므로 본성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우고 수양하여 우리의 불성을 가꾸어나가야 한다. 이것을 요인불성(了因佛性)이라고 한다.
이처럼 일상의 배움과 근행과 기도 속에서 우리의 불성을 꾸준히 키워 나감으로서 비로소 성불의 인연이 점점 가까워지는 것이다. 그러나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우기만 해서는 불성이 충분히 발휘되지 않는다.
우리가 학교에서 이론을 배우고 난 후에 실습을 하는 것과 같이 실제로 행해봐야 완전한 자기의 것으로 할 수 있다. 인연에 의해 실제로 행해보고 그리하여 그것을 완전히 파악하여 알게 되는 것 그것을 연인불성(緣因佛性)이라고 한다.
종합하면 정인(正因)이란 태어나면서 부터 갖추고 있는 것이고, 요인(了因)은 배움으로서 그 불성이 발휘된다는 것이며, 연인(緣因)은 일상생활의 실행을 통해서 자기의 것으로 해 나간다는 것이므로 이 3가지는 각각 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 단지 편의상 3가지로 나눈 것일 뿐 그 근본은 하나이다.
그러므로 우리 중생에게는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는 성질이 있으므로 부처님께서는 일대사 인연으로 이 세상에 출현하시어 우리도 성불할 수 있음을 개시오입(開示悟入)하신 것이다.
먼저 부처님의 지견을 연다(開)는 뜻은 우리에게도 본래 부처가 될 수 있는 불성(正因)이 있음을 알게 하는 것이다.
둘째 부처님의 지견을 보여준다(示)는 뜻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우면 이렇게 된다는 것을 보여주시는 것이다. 달리 표현하자면 지금까지 조그만 자기에 얽매여 탐낸다든가 미워한다든가 하는 그러한 삼독(三毒)의 마음을 버리게 해서 부처님의 가르침의 존귀함을 알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부처님의 지혜로서 세상을 보는 법을 가르쳐주시어 우리의 불성(了因)을 가꾸어나가도록 하시는 것이다. 그러나 배우기만 해서는 의미가 없다. 깨달아야 한다.
그래서 셋째로 부처님의 지견을 깨닫게(悟)한다는 것이다. 깨닫게 한다는 뜻은 노력하기를 권하는 것이다. 부처님의 구원이라는 것도 구원받겠다는 진심이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신앙심을 일으켜서 발분(發奮)하여 노력해야만 우리의 불성(緣因)이 발휘된다는 것을 알려주시는 것이다.
깨달았으면 이번엔 마지막으로 부처님의 길로 들어서게 하는 것이다. 우리를 인도해서 성불이란 단번에 되는 것이 아니니 불퇴전의 보살행을 쌓아서 마침내 성불할 때까지 꾸준히 노력하도록 가르치시는 것이다.
우리가 본래 가지고 있는 불성(佛性)을 알고, 배우고, 깨닫고 그리고 수양하도록 함으로서 성불의 길로 들어서게 격려하는 것 바로 이것이 부처님의 일대사인연이고 개시오입의 목적인 것이다.
법화경 방편품제이(法華經方便品第二)에 있는 광개삼현일(廣開三顯一)의 글이며 그 경문(經文)은 다음과 같다.
所以者何 諸佛世尊 唯以一大事因緣故 出現於世.
소이자하 제불세존 유이일대사인연고 출현어세.
어찌하여 그러한고? 모든 부처님께서 오직 일대사인연으로 하여 세상에 출현 하시느니라.
舍利弗 云何名 諸佛世尊 唯以一大事因緣故 出現於世.
사리불 운하명 제불세존 유이일대사인연고 출현어세.
사리불아, 어찌하여 모든 부처님 세존이 오직 일대사 인연으로 하여 세상에 출현하신다 하는고.
불지견(佛知見)
諸佛世尊 欲令衆生 開佛知見 使得淸淨故 出現於世.
제불세존 욕령중생 개불지견 사득청정고 출현어세.
欲示衆生 佛之知見故 出現於世.
욕시중생 불지지견고 출현어세.
欲令衆生 悟佛知見故 出現於世.
욕령중생 오불지견고 출현어세.
欲令衆生 入佛知見道故 出現於世.
욕령중생 입불지견도고 출현어세.
모든 부처님 세존이 중생으로 하여금 부처님의 지견(知見)을 열어 주사 청정함을 얻게 하고자 세상에 출현하시며(開), 중생에게 부처님 지견(知見)을 보여 주고자 세상에 출현하시며(示), 중생으로 하여금 부처님의 지견을 깨닫게 하고자 세상에 출현하시며(悟), 중생으로 하여금 부처님의 지견도(知見道)에 들여놓고자(入) 하므로 세상에 출현하시느니라.
舍利弗 是爲諸佛 唯以 一大事因緣故 出現於世
사리불 시위제불 유이 일대사인연고 출현어세.
사리불아, 이것이 모든 부처님께서 오직 일대사 인연으로 하여 세상에 출현하신다고 함이니라.
개시오입(開示悟入)의 사불지견(四佛知見)은 중생이 원래 가지고 있는 불계(佛界)를 개발하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므로 개삼현일(開三顯一)이 되는 것이다. 지견(知見)이란 불계를 지견하고 각지(覺知)하는 것, 다시 말하면 체득하는 것이다. 개시오입은 부처의 염원이며, 그 근본은 삼대비법(三大秘法)의 어본존(御本尊)이 된다. 또한 신심(信心)에 의해서만이 개시오입할 수가 있는 것이다.
개시오입에 대해서는 어의구전상(御義口傳上)에 개불지견(開佛知見)의 개(開)란 신심의 이명(異名)이며 시불지견(示佛知見)이란 남무묘법연화경(南無妙法蓮華經)을 나타내고, 오불지견(悟佛知見)의 오(悟)란 즉신성불(卽身成佛)이라고 깨닫는 것이며, 입불지견(入佛知見)의 입(入)이란 깨달은 당체(當體)가 직지도량(直至道場)으로 된다는 것 등 상세한 해석하고 있다.
▶ 開(개)는 회의문자이나 형성문자로 보는 견해도 있다. 开(평평할 견)는 간자(簡字), 幵(평평할 견)은 동자(同字)이다. 문 문(門; 두 짝의 문, 문중, 일가)部와 开(견)이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开(견)은 두 개의 물건이 평평(平平)하게 줄 짓는 일을 말한다. 따라서 두 손으로 빗장을 들어 올려 양쪽 문짝을 여는 것의 뜻으로 쓰인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열 계(啓),열 벽(闢),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닫을 폐(閉)이다. 용례로는 신문이나 책 등을 처음으로 간행함을 개간(開刊), 어떤 모임을 주장하여 엶을 개최(開催), 책을 폄을 개권(開卷), 새로 나라를 세움을 개국(開國), 버려져 있던 거친 땅을 처음으로 일구어 논밭을 만드는 것을 개간(開墾), 어떠한 장소를 열어 공개함을 개장(開場), 새 영화를 처음으로 상영하는 것을 개봉(開封), 처음으로 시작함을 개시(開始), 방학을 마치고 다시 수업을 시작함을 개학(開學), 어떤 회의나 행사 등을 시작하는 것을 개막(開幕), 재판을 시작하기 위하여 법정을 엶을 개정(開廷), 책을 펴 글을 읽으면 새로운 지식을 얻음을 개권유득(開卷有得), 책을 펴서 읽으면 반드시 이로움이 있다는 개권유익(開卷有益), 문을 열고 도둑을 맞아들인다는 개문납적(開門納賊), 문을 열어 반가이 맞아들임을 개문영입(開門迎入), 일부러 문을 열어 놓고 도둑을 청한다는 개문읍도(開門揖盜), 하늘이 열리고 땅이 열린다는 개천벽지(開天闢地), 재원을 늘리고 지출을 줄인다는 개원절류(開源節流) 등에 쓰인다.
▶ 示(시)는 상형문자로 제물(祭物)을 차려 놓은 제단의 모양을 본뜬 글자로 제물을 신(神)에게 보여 준다는 의미로 보이다를 뜻한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고할 고(告), 살필 찰(察), 살필 심(審), 조사할 사(査), 검사할 검(檢), 볼 시(視), 볼 감(監), 볼 람/남(覽), 볼 관(觀), 볼 열(閱)이다. 용례로는 위력이나 기세를 드러내어 보임을 시위(示威), 미리 암시하여 일러줌을 시사(示唆), 모범을 보임을 시범(示範), 나타내 보임을 시현(示現), 견책하는 뜻을 보임을 시견(示譴), 권면하는 뜻을 보임을 시권(示勸), 편지로 전에 요청한 것을 독촉함을 시독(示督), 기별하여 알려 줌을 시유(示諭), 특별한 예우를 보임을 시이(示異), 징계하는 뜻을 보임을 시징(示懲), 꽃을 따서 무리에게 보인다는 염화시중(拈花示衆), 법문을 개시하여 불교의 깊은 이치를 깨닫게 함이라는 개시오입(開示悟入), 감춤 없이 밝히어 보이라의 물비소시(勿秘昭示), 사냥개를 풀어 짐승이 있는 곳을 가리켜 잡게 한다는 발종지시(發縱指示), 밝히어 말을 하지 아니하고, 슬쩍 그 눈치만 보인다는 미시기의(微示其意), 많은 사람들을 깨우치게 하는 뜻으로 죄인의 목을 베어 나무 위에 매달아 뭇사람에게 보인다는 효시(梟示) 등에 쓰인다.
▶ 悟(오)는 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심방변(忄=心, 㣺; 마음, 심장)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동시에 분명하다의 뜻을 가진 吾(오)로 이루어졌다. 마음 속에 분명하여지다, 깨닫다의 뜻이다. 용례로는 중생계의 사고를 해탈하고 진리를 깨달은 세계를 오계(悟界), 완전히 깨달음을 오달(悟達), 불교의 도를 깨달음을 오도(悟道), 깨달아 앎을 오득(悟得), 완전히 깨달음을 오료(悟了), 지성이나 사고의 능력을 오성(悟性), 깨달아 희열을 느낌을 오열(悟悅), 도를 깨달아 실상의 세계에 들어감을 오입(悟入), 철저하게 깨달음을 오철(悟徹), 잘못을 깨닫고 뉘우침을 오회(悟悔), 부처의 지혜를 깨달아서 의심하지 않는 마음의 오인(悟忍) 등에 쓰인다.
▶ 入(입)은 지사문자로 入(입)은 토담집 따위에 들어가는 것으로, 나중에 대궐 같은 건물에 들어가는 것을 內(내)라 일컫지만 본디 入(입), 內(내), 納(납)은 음도 뜻도 관계가 깊은 말이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들일 납(納),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날 출(出), 떨어질 락/낙(落)이다. 용례로는 서울로 들어가거나 들어오거나 함을 입경(入京), 새로 들어가 삶을 입주(入住), 들어가는 어귀를 입구(入口), 타국에 들어감을 입국(入國), 어떤 단체에 가입함을 입단(入團), 장내로 들어감을 입장(入場), 학교에 들어감을 입학(入學), 물건을 창고에 넣음을 입고(入庫), 산에 들어감을 입산(入山), 훈련소나 연구소 등에 들어감을 입소(入所), 국경에 들어서면 그 나라에서 금하는 것을 물어 보라는 말을 입경문금(入境問禁), 타향에 가면 그 고을 풍속을 물어서 그에 따르는 일을 입경문속(入境問俗), 특별히 가까운 손님이나 기밀을 상의할 수 있는 상대를 입막지빈(入幕之賓), 집에 들어서는 어머니를 받들어 종사해야 함을 입봉모의(入奉母儀), 산에 들어가 놓고 범 잡기를 꺼린다는 입산기호(入山忌虎), 남의 방안에 들어가 창을 휘두른다는 입실조과(入室操戈), 귀로 듣기에 싫지 않다는 입이불번(入耳不煩), 귀로 들어온 것을 마음속에 붙인다라는 입이저심(入耳著心), 들은 것을 마음속에 간직해 잊지 아니하는 일을 입이착심(入耳着心), 불 속에 들어가 밤을 줍는다는 입화습률(入火拾栗)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