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강해(433강)
주 예수님의 죽음과 새 계명(14)
로마서 3:19~20절 “우리가 알거니와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게 하려 함이니라 20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직역하면 율법이 말하는 것은 범죄 한 자들에게 주신 것입니다. 율법은 죄인들의 입을 막고 너희는 하나님의 저주 아래 있다는 것을 알게 해 주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율법을 지켜서 구원을 받을 사람은 이 세상에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런데도 율법을 주신 것은 죄를 깨닫게 하시려고 주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의 증거를 보면 율법은 이미 죄인에게 주어진 것이라고 합니다. 왜, 주었느냐 하면 죄를 깨닫게 하려고 주었다고 합니다. 죄를 고발해서 넌 지옥에 가야 할 자라고 알려준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율법은 구원하기 위해서 준 것이 아니고 죄를 깨닫게 하시려고 준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율법을 지켜서 복을 받거나 의를 만들고자 하는 것은 불법이 됩니다. 율법은 아무리 잘 지켜도 의가 나오지 않고 도리어 율법을 통해서 자신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킬 수 없는 죄인임을 알아야 합니다. 결국, 옛 언약인 율법은 인간은 하나님 말씀대로 살 수 없는 죄인임을 알려 줍니다.
유대인들은 이러한 바탕 위에 옛 계명 아래 있을 때 주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그런데 지금 주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새 계명을 주신다고 하십니다. 새 계명을 주시는 것은 옛 계명으로 할 수 없기에 주어진 것입니다. 만약에 옛 계명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있었다면 새 계명을 주실 이유가 없습니다.
옛 계명으로는 도무지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가 없기에 새 계명을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새 계명은 옛 계명의 완성입니다. 옛 계명은 새 계명 안에서 완성이 됩니다. 그러면 주 예수님께서 주신 새 계명이 어떻게 주어지는지를 보면 하나님의 뜻이 어떻게 완성이 되는지를 알 수가 있게 됩니다.
오늘 본문에 주 예수님이 자기의 죽음을 말하면서 새 계명을 주신다고 합니다. 새 계명은 주 예수님의 죽음을 근거로 주어지기에 주 예수님도 자신의 살과 피를 가지고 새 언약을 세우신다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주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주시는 새 계명은 옛 계명과 다른 차원의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만약 새 계명도 옛 계명처럼 인간이 지켜야 한다고 한다면 굳이 새 계명을 줄 필요가 없습니다. 옛 계명이나 새 계명이나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것에는 두 계명이 똑같습니다. 계명의 내용은 다를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옛 계명과 새 계명의 차이는 그 계명을 지키는 주체가 다릅니다.
옛 계명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켜야 했습니다. 하지만, 새 계명은 주 예수님이 친히 지킨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옛 계명과 새 계명의 다름이고 차이입니다. 이렇게 되면 하나님의 계명은 인간이 지키는 것이 아니고, 지킬 수가 없고 주 예수님만이 지킬 수가 있기에 주 예수님이 지킨다는 뜻입니다.
애초부터 그러니까 창세 전에 그렇게 언약 되어 있었습니다. 창세 전 언약을 보면 아버지와 아들 간에 언약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언약에는 애초부터 인간은 배제되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언약은 주 예수님 홀로 지키시는 것입니다. 성도는 예수이 피로 맺어진 새 언약으로 얻어진 전리품입니다.
주 예수님은 자신의 피로 이루신 새 언약을 전리품들인 성도들에게 주십니다. 성도들은 새 언약을 받았습니다. 자기가 새 언약을 직접 맺은 것이 아닙니다. 주 예수님이 맺은 것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주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새 계명을 맺는다고 말하지 않고 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새 계명을 지키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주셨습니다. 새 언약은 제자들이 맺는 것이 아니고 주 예수님이 맺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믿음을 주어서 주 예수님이 나를 대신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셨다는 것을 믿어지게 해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을 받은 성도는 그 어떤 말씀을 대하더라도 주 예수님께서 다 지키셨다는 것을 앞세우고 나아가게 됩니다. 주 예수님께서 새 계명을 주신다는 것은 제자들보고 지키라는 말이 아닙니다. 주 예수님이 지킨 것을 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을 믿어지게 해 주신다는 말입니다.
신앙생활은 믿음의 문제이지 행함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확실하게 정립하고 가야 합니다. 주 예수님이 하신 것을 믿을 것이냐? 아니면 내가 지켜야 할 것이냐의 싸움입니다. 새 언약이란, 주 예수님이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새 언약에는 인간이 끼어들 틈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과 주 예수님 간에 맺은 계약이기 때문입니다. 옛 언약은 하나님과 인간이 맺은 것이지만, 새 언약은 하나님과 주 예수님이 맺었습니다. 그러니 새 계명은 인간을 철저히 무시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새 언약에서는 말씀에 순종할 주체가 제자들 대신 주 예수님이 끼어든 것입니다.
그래서 신약에서는 하나님께서 말씀에 순종하라고 하지 않고 주 예수님을 믿으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 예수님께는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눅 18:8)라고 하십니다. 그러면 무엇을 믿을 것입니까? 주 예수님이 나를 대신하여 말씀에 순종하셨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주 예수님이 나를 대신하여 순종하심을 믿는 것이 신앙입니다. 그래서 본문에서 주 예수님이 새 계명을 준다고 하면서 서로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옛 계명이나 새 계명의 내용은 똑같지만, 옛 계명과 새 계명의 차이는 지키는 주체가 다릅니다. 그렇다면 옛 계명은 내가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주님께 영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