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 장군이 영의정 류성룡에게 쓴 편지글을 분석해보다>
약 10일전 ,난중일기 계사년 5월 바로 앞에 있는 편지글을 조심스레 살펴봤습니다.난중일기 계사년 3월 22일 이후 빈 여백에 쓰여져 있는 편지가 다수 있는데,그중 맨마지막 편지글이 중요인물에게 보낸 편지 원문이라고 사료되어 여러가지로 유추해봤습니다.
서애 류성룡은 임진란이 일어나기 1년전에 종6품이던 정읍 현감이던 이순신을 7계급 승진시켜 정3품 전라좌수사로 임명하는데 힘을 썼고,많은 부분에서 이순신을 후원하여,결국 국난을 극복하는데 커다란 공헌을 하였음은 주지의 사실입니다.아래 첨가된 편지글을 보니 서애 류성룡 선생에게 쓴 편지글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고 보여집니다.
난중일기의 일기 본문에 등장하는 ,이순신 장군이 주고 받은 '편지'가 등장하는 날짜는 도합 76회정도 기록되어있습니다.계사년 3월22일과 5월1일 사이에 있는 편지글은 포함하지 않은 숫자입니다.그중 삼도수군통제사 이순신과 영의정 서애 류성룡은 십수차례의 서신을 왕래하면서 국난극복의 최일선에서 ,또한 전략과 정치,외교면에서 서로의 상황과 문제점, 익히 아는 정세분석과 교류를 통해 미증유의 국난을 헤쳐나가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근거1:우러러 그리워하다(瞻戀之至)->상급자에게 쓴 글이라고 보여진다.
근거2: '어른'이라고 번역되어있는 태체(台體)는 정2품 이상의 대신 이상이 대상입니다.그러면 체찰부사,체찰사,병조판서,우의정과 좌의정,영의정 등으로 대상을 압축해볼 수 있습니다.
근거3:먼바다에서 변방을 지키느라 문후를 드리지 못했음->남해안 지역에 있는 경상,전라 관찰사는 제외하고 ,해안이 있는 兩道지역에 있는 체찰사와 체찰부사도 제외시킬 수 있다고 보여집니다.
근거4: 이 곳의 적세(賊勢)는~(중략)~나랏일에 있어서는 어떠하겠습니까? ->중앙에 있는 중요인물에게 한산도 진영 주변과 왜적의 동태(정황)을 설명하고 있다고 보여집니다.
근거5:전라도에 새로 온 관찰사와 원수(元帥)조차도 연해의 군량을 싣고 가고 있습니다->해안지방에 있는 군량창고를 도원수와 관찰사가 함부로 건드리며 군량을 갖고 가고 있으니 권한이 있는 영의정께서 막아달라고 하소연(부탁)하고 있다고보여집니다.
근거6:저는 다른 도(道)의~수군 어사(水軍 御使) ~일을 바로잡을 수 있을 것입니다-> 수군어사를 보내달라고 요청하고있다.->수군어사를 파견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분은 누구일까?->비변사를 책임지고 있는 영의정과 선조뿐이라고 보여진다.선조는 편지의 대상이 아니므로 영의정인 류성룡으로 단정지을 수 있다고 본다.
근거7:그런 까닭에 장계를 올렸으나 아직 조정의 의사를 알 수 가 없습니다.->조정(비변사)을 책임진 분께 올린 편지글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조정을 책임진 분은 류성룡밖에 더 있을까?조정의 여러 대신들과 선조의 의견을 조심스럽게 문의하는 것으로보인다.
근거8:종사관 정경달~(중략)~잉임(仍任)시킬수는 없겠습니까? ->둔전을 경략하는데 대단한 성과를 내고 있는 종사관 정경달을 추수가 끝날 때까지라도 잉임시키고,둔전을 경작하는 것을 방해하는 관찰사를 막아달라고(제지해달라고) 요청과 부탁을 하는데, 권한을 갖고 있는 분은 바로 비변사를 책임지고 있는 영의정 류성룡이라고 추측해봅니다.
★종사관을 문관으로 임명시켜달라는 장계를 올린 후 장흥 본가에서 정양(靜養)중이던 전 선산부사 정경달이 난중일기에 처음 등장하는 것이 1594년 2월 28일이고,1595 2월에 남원부사로 이임해갑니다.그러니까 1594 가을 즈음에 쓴 편지라고 보여집니다.
★이편지 앞부분에 여러편의 편지가 등장하는데 사천해전(1592.5.29)때 맞은 조총의 탄환을 맞아 부상을 당했고,고름이 생겨서 치료중인데 매일 갑옷을 입고 있어서 치유가 더디며,뽕나무 잿물과 바닷물로 씼어내고 있다는 형편을 설명하는 여러편의 편지와는 내용과 쓴 날짜가 다르지만 난중일기(일기초) 여백에 나중에 삽입(揷入)한 것으로보여진다.
난중일기를 분석하면서 보니, 이순신 장군이 수많은 편지를 주고 받았는데,특히 류성룡과 주고 받은 편지의 실체를 보고자 기대했습니다.그동안 우리가 잘 확인을 못해서 몰랐지만,결국 난중일기(이충무공전서) 안에 있었습니다.눈물납니다.
예천에서 박갑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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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글 전문全文>
삼가 살피지 못하였지만 체후가 어떠신지요. 우러러 그리워함이 간절하여 저의 마음을 감당하지 못하겠습니다.일찍이 어른(台體)께서 건강이 좋지 않으시다는 말을 듣고도 먼 바다에서 변방을 지키느라 아직 문후를 드리지 못하였으니 매우 근심스러울 따름입니다. 이곳의 적세는 요즘 다른 흔적이 없고 연일 정탐해 보면 굶주린 빛이 많이 있는데 그들의 뜻은 반드시 곡식이 익으면 이를 저축하는데 있을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방비는 곳곳이 불화하여 방어하여 지키는 형세가 만무(萬無)합니다.
왜놈들이 기이하게 여기는 것은 수군인데 수군으로서 싸움에 나아가는 자가 없고 각 고을의 수령이 관찰사에게 공문을 보내도 조금도 감독할 뜻이 없습니다. 군량은 더욱 의뢰할 곳이 없어 온갖 생각을 해 보아도 조치할 방도를 알 수 없으니 수군에 관한 한 가지 일도 그 형세상 장차 행하지 못할 것입니다. 저와 같은 이의 한 몸은 만 번 죽어도 아깝지 않지만 나랏일에 있어서는 어떠하겠습니까. 전라도에 새로 온 관찰사와 원수(元帥)조차도 군관을 보내어 연해에 있는 수군의 양식을 쌓아둔 곳간을 털어 싣고 가고 있습니다.
저는 다른 도의 먼바다에 있어서 조처할 방도가 없고 형세가 이토록 극심하게 되었으니 어찌 하오리까. 만약 특별히 수군 어사를 보내어 수군에 관한 일을 총괄하여 감독하게 한다면 일을 바로 잡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까닭에 장게를 올렸으나 아직 조정의 뜻을 알 수가없습니다. 종사관 정경달(丁景達)이 둔전(屯田)을 감독하는 일에 심력을 다하였지만 전 관찰사의 공문에는 "도주(道主:관찰사) 이외에는 둔전을 계속 경작할 수 없으니 일체 검사하지 말라"고 한다니 그 뜻을 알 수가 없습니다. 정 공이 이제는 함양군수가 되었다니 그 감독하던 일도 앞으론 허사가 될 것 같아 근심스러울 뿐입니다. 추수하는 동안만이라도 그대로 잉임(仍任)시킬 수는 없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