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말씀의 향기♣ No3409
2월22일[재의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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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주님! 하루의 양식이 될 이 묵상글을 받아보는 모든 이들을 축복하시고 주님의 뜻대로 살게 하시며 은총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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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의 수요일 기원과 의미>
성경에서 재(灰)는 참회를 상징한다. 구약에서 요나가 니네베 사람들에게 회개를 촉구하자 백성들과 임금이 단식을 선포하며 잿더미 위에 앉았다.(요나 3,4 참조) 신약에서 예수님도 죄인들에게 “재를 뒤집어쓰고 회개”(마태 11,21)하는 일에 대해 언급했다.
유다인들에게는 하느님께 죄를 지으면 머리에 재를 뒤집어쓴 후 예를 갖춰 참회하는 관습이 있었다. 그리스도교에서 이를 받아들여 사순 제1주일 전 수요일, 머리에 재를 바르는 일을 참회 예식으로 거행했다. 여기에서 재의 수요일이라는 이름이 비롯됐다. 성 그레고리오 1세 교황은 재의 수요일을 가톨릭교회의 공식적인 사순 시기 첫날로 제정했고, 복자 우르바노 2세 교황은 모든 신자가 재의 예식에 참여토록 권고했다.
재에는 다양한 의미가 있다. 재는 우리가 죄를 지어 하느님에게서 떨어져 나오게 된 ‘슬픔’을 상징한다. 물질이 타고 남은 잔재물인 재. 이는 인간이 지은 죄의 잔재로서, 지은 죄에 대한 ‘보속’ 행위도 기억하게 한다. ‘열정’을 뜻하기도 한다. 불로 단련 받아 자신을 모두 태워버린 재처럼 우리도 하느님을 항한 열정으로 자신을 온전히 태워야 한다는 의미다. 모든 것을 다 태우고 남은 재에는 불순물이 없다. 재를 머리에 얹는 것은 하느님이 인간을 빚었던 처음 그때처럼 순수하고 깨끗하게 정화돼야 한다는 의미도 함축한다.
성 바오로 6세 교황 때, 교회는 재의 수요일에 금식과 금육을 실천하도록 규정했다. 신자들은 이날 두 가지를 동시에 지켜야 한다. 금식은 하루 한 끼 식사만 거르면 된다. 금육재는 만 14세부터 죽을 때까지, 금식재는 만 18세부터 만 60세 전날까지 지킨다. 금식과 금육은 절제와 극기로 그리스도의 수난에 동참한다는 의미를 갖는다. 아울러 단식과 금육으로 절약한 것을 가난한 이웃에게 베풀고 봉헌하며 사랑을 실천해야 한다는 실천 과제도 내포한다.
**cpbc방송미사**
https://m.youtube.com/watch?v=jffT_SuKmK0 (조영훈 스테파노 신부님 집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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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겸손→성찰→회개→자신의 비참함 인식→이웃 사랑의 실천!>
또다시 재의 수요일이 돌아왔습니다. 사제는 교우들의 머리에 재를 얹으면서 외칠 것입니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사람아, 너는 먼지이니, 먼지로 돌아갈 것을 생각하여라.”
다시 맞이한 사순시기, 우리에게 주어진 중요한 과제가 하나 있습니다. 회개입니다. 어떤 분에게 회개 좀 하라고 했더니, 아무리 생각해도 회개할 거리가 없다고 해서 놀랐습니다.
회개는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사람, 자신의 힘과 능력만 믿는 사람, 자신을 돌아볼 줄 모르는 사람에게 회개는 불가능합니다. 회개는 겸손한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주님께서는 겸손의 덕을 지닌 사람에게 성찰의 능력을 선물로 주십니다. 죽었다가 깨어나도 성찰이라고는 단1도 없이 살아가는 사람 많습니다. 반대로 틈만 나면 자신을 성찰하고, 공동체의 현실을 성찰하고, 부조리하면서도 고통스러운 현실을 성찰하고, 다양한 사건 사고를 성찰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성찰하게 될 때 우리는 겸손해집니다. 겸손한 사람은 자신이 얼마나 나약하고 비참한 존재인지를 정확히 파악합니다.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 없이 살아가는 한 인간 존재가 얼마나 비참한 것인지를 잘 압니다.
자신의 비참함을 잘 알고 있기에, 자연스레 그의 시선은 자신보다 더 비참한 동료 인간의 현실을 눈여겨보게 됩니다. 그의 고통, 그의 상처에 깊은 연민과 측은지심을 느끼게 되고, 자연스레 도움의 손길, 즉 자선을 펼치게 됩니다.
겸손→성찰→회개→자신의 비참함 인식→이웃 사랑의 실천, 바로 이 사순시기 우리 내면에 이루어져야 할 영적 여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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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강론 동영상)
https://youtu.be/_-NE3LFY_x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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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자선, 단식이 위선이 되지 않게 하려면>
오늘은 재의 수요일입니다. 재는 죽음을 의미합니다. 십자가를 의미합니다. 사는 게 중요하다 할 수 있겠지만, 성경은 살려고 하면 죽을 것이라고 하고 죽으려고 해야 살 것이라고 가르칩니다. 그리고 오늘 복음에서 내가 죽는 방식이 ‘자선-기도-단식’이라고 알려주고 있습니다.
다만 그런 것들을 사람들에게 보이려 하지는 말라고 합니다.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렇게 하는 것은 자기를 죽이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살리려는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올바른 목적으로 가지고 사순을 시작해야 합니다. 자기를 사랑하며 이웃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이웃을 사랑하지 않으면 하느님과 함께할 수 없습니다. 누군가와 함께 머문다는 말은 그의 뜻을 따른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느님의 뜻은 사랑입니다. 사랑하려면 자기를 죽여야 합니다. 내가 살아있으면 아무리 기도-자선-단식을 해도 위선에 지나지 않습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광야로 불러내시는 이유는 나를 죽이는 것이 사랑과 영원한 생명, 곧 행복의 길이기에 나를 미워하는 삶을 훈련하기 위함입니다.
영화 ‘어톤먼트’의 줄거리입니다. 1935년 영국, 부유한 집안 출신인 13살 브라이오니 탤리스는 침실 창문 밖을 통해서 언니 세실리아와 가정부의 아들 로비 터너를 염탐합니다. 브라이오니는 언니와 로비의 관계를 질투합니다. 브라이오니는 농담으로 쓴 편지를 보며 로비가 점점 성도착증 환자라고 의심을 해갑니다.
이때 브라이오니의 사촌 로라가 강간당하고 어떤 남자가 도망치는 것을 봅니다. 로라와 브라이오니는 그녀를 폭행한 걸 로비라고 결론짓습니다. 그들의 증언, 세실리아에게 쓴 노골적인 쪽지를 근거로 그는 체포됩니다. 감옥에 있던 로비는 4년 후 제2차 세계 대전에 강제 참전하게 됩니다.
어느덧 성인이 된 브라이오니는 로비를 범죄자로 몰고 간 걸 후회하고 속죄의 삶을 살기로 합니다. 자신의 이야기를 책으로 쓰고 출판하고 언니에게 찾아가 사죄합니다. 그리고 이 모든 사실이 자신의 거짓 증언 때문이었다고 말합니다. 로비는 누명을 벗고 세실리아와 로비가 재결합하고 같이 가려고 했던 바닷가에서 행복하게 재회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끝납니다.
그러나 브라이오니가 나이가 들어 밝힌 사실은 조금 다릅니다. 사실 그녀는 세실리아와 로비를 찾아가고 사과하지 못했습니다. 세실리아와 로비는 재결합하지 않았고 로비는 덩케르크에서 패혈증으로 사망했고 세실리아는 몇 달 후 블리츠에서 폭탄 테러로 사망했습니다.
브라이오니는 소설에서 두 사람에게 현실에서 자신이 빼앗은 행복을 돌려주고 싶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제가 보기에는 이것은 그저 스스로 자기를 위로하기 위한 하나의 방편에 지나지 않아 보입니다. 이 자전적 소설로 성공한 작가로 평생을 산 브라이오니의 표정에서는 언니와 로비에게 전혀 미안해하는 모습이 보이지 않습니다. 영화의 제목은 ‘속죄’인데 그녀는 자신의 이야기로 부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책으로 언니와 로비에게 속죄가 이루어졌다고 믿습니다.
내가 살면 누구를 살릴 수 없습니다. 그래서 기도-자선-단식을 하는 우리의 자세도 마찬가집니다. 유다인들은 기도-자선-단식의 광야 생활을 하면서도 결국 그것을 자랑으로 내세웠습니다. 자기 생명을 미워하고 자기를 죽여야만 사랑이 가능하기에 그것을 연습하는 시간이 광야의 사순인데, 그들은 그것 자체에만 의미를 두었습니다.
마치 영화에서 자기에게 재물과 명성을 많이 벌어준 책을 써놓고 언니와 로비에게 할 책임을 다했다고 말하는 브라이오니의 모습과 흡사합니다. 자기를 왜 죽여야 하고, 자기 목숨을 왜 미워해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하며 지내는 사순절은 그래서 위선이 됩니다. 나의 생명을 미워할 때야 이웃의 생명을 소중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나의 죽음 없이는 이웃에게 피해만 끼칠 뿐입니다.
올해의 사순은 기도-자선-단식으로 나를 죽이고 이웃을 살리는 기쁨을 장착하는 훈련의 사순절이 되기를 기도해봅니다. “누구든지 나에게 오면서 ……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루카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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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교구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님(가톨릭 평화신문 미주지사)]
50이 넘은 분 중에서 탤런트 김혜자를 모르는 분은 거의 없습니다. 저는 그분을 ‘전원일기’에서 조용한 내조로 한 가정을 이끌어가는 정숙한 아내요 엄마의 모습으로 보았습니다. ‘사랑의 머길래!’에서는 보수적인 남편에 순종하지만 자신의 딸은 자유롭게 살도록 도와주는 현명한 엄마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엄마의 바다’에서는 갑자기 다가온 시련과 고통을 이겨내며 가정을 지키는 강인한 엄마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언젠가 화보 ‘꽃으로도 때리지 마라.’의 소개를 보면서 아프리카의 굶주린 어린이를 돌보는 모습도 보았습니다. 탤런트 김혜자 선생님은 “나는 직업을 탤런트라고 쓰는 사람을 보면 너무 이상해요. 연기는 그냥 나예요”라고 말하였습니다. 탤런트를 직업이라고 하면 자존심이 상한다고 합니다. 연기는 그냥 숨 쉬는 것처럼 자기 자신이라고 합니다. 주인공이 아니면 작품을 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조금도 망설임이 없이 ‘그렇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모습에서 교만함이 아니라, 자신의 일(mission)에 대한 자부심을 볼 수 있었습니다. 주어진 역할이 곧 자신이라는 열정으로 61년을 연기자로 살아왔습니다.
저도 뉴욕에서 지내면서 몇 가지 일을 하고 있습니다. 가톨릭평화신문 미주지사의 일, 부르클린 한인성당의 일, 퀸즈성당의 일, 동북부 엠이 대표 사제의 일입니다. 하느님께서 제게 기회를 주셨으니,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다른 일을 핑계로 지금 하는 일을 소홀히 한다면 비겁한 행동입니다. 여러 가지 일을 한다고 자랑한다면 교만한 행동입니다. 신문을 만들 때면 매의 눈으로 교정을 보고, 직원들이 마음껏 일할 수 있도록 격려하고 용기를 주면 됩니다. 성당에서 미사를 봉헌할 때면 미리 고백성사를 주고, 강론 준비를 성실히 하면 됩니다. 동북부 엠이와 함께할 때면 미리 일정을 잡고 계획된 일이 차질 없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도와주면 됩니다. 제게 주어진 일(mission)에 대한 자부심을 품고 기쁘게 지내면 하느님께서는 더 큰 은총을 주시고, 축복을 주심을 믿습니다. 촉매가 있으면 더 큰 에너지를 얻는 것을 봅니다. 제가 함께하는 성당의 교우들이 신문사를 위해서 봉사하고 있습니다. 동북부 ME에서는 행사가 있을 때 신문사에 광고를 주고 있습니다. 신문사에 필요한 기사를 보내주기도 합니다. 군림하는 주인공이 아닌, 봉사하는 주인공이라면 언제든지 응답해야 합니다.
교회는 오늘 ‘재의 수요일’을 시작으로 사순시기를 지내게 됩니다. 은혜로운 회개의 때를 시작하면서 신앙인들은 사순시기의 주인공이 되면 좋겠습니다. 대림과 성탄 그리고 연중의 신앙생활에 머물지 않고 주님의 수난과 십자가의 고통에 동참하는 사순시기의 주인공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사순시기를 지내는 우리에게 4가지를 말씀하십니다. 앞으로 사십일 동안 주님의 수난을 묵상하면서 4가지를 실천하면 좋겠습니다.
첫째는 ‘자선’입니다. 나의 능력과 재능을 이웃을 위해서 기꺼이 나누면 좋겠습니다. 내가 가진 재물을 기쁜 마음으로 나누면 좋겠습니다.
둘째는 ‘봉사’입니다. 손이 두 개 있는 것은 하나는 이웃을 위해서 사용하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발이 두 개 있는 것도 하나는 이웃을 위해서 사용하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셋째는 ‘기도’입니다. 묵주기도, 성체조배, 성경읽기, 십자가의 길, 피정은 사순시기를 풍요롭게 하는 보물창고입니다.
넷째는 ‘단식’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나라를 선포하시기 전에 40일 동안 단식하셨습니다. 단순히 음식을 절제하는 것을 넘어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찾는 것이 진정한 단식입니다.
“하느님과 화해하십시오. 지금이 바로 매우 은혜로운 때입니다. 지금이 바로 구원의 날입니다. 갑자기 죽음을 맞지 않게 하시고, 회개할 시간을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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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교구 조욱현 토마스 신부님]
복음: 마태 6,1-6.16-18: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아주실 것이다
오늘은 사순절이 시작되는 재의 수요일이다. 성경에서 40이라는 숫자는 여러 가지 의미를 가리키는 숫자이다. 하느님께서는 노아 홍수 때 40주야 동안 폭우가 내리게 하여 심판하셨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에서 400년을 종살이하였으며, 모세가 십계명을 받기 전에 40 주야를 단식과 기도로 지냈고, 또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를 떠나 가나안에 도착하기까지 40년이나 걸렸다. 예수께서도 공생활을 시작하시기 전 40 주야를 광야에서 기도와 단식으로 준비하신 것을 알 수 있다. 오늘 시작되는 사순절도 오늘부터 시작하여 부활 때까지 주일을 제하고 세어보면 40일이 된다. 교회가 이렇게 사순절을 제정한 의미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사순절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으로 차지하신 영광스러운 부활의 기쁨을 누리고 그분의 영광에 우리도 참여하기 위하여 그분의 수난에 우리가 참여하는 시기다. 그리고 우리의 삶을 하느님께로 돌리는 회개와 보속의 시기이다. 이럼으로써 우리 자신이 진정으로 하느님 아버지께 사랑받는 자녀들이 되어 그 영광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시기이다. 그래서 교회는 오늘 “재의 예절”을 거행한다. 이 재의 의미는 회개와 보속, 죽음과 겸손을 잘 보여 주고 있다. 그래서 우리가 머리에 재를 받는 것은 우리의 죄로 인한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 및 부활에 참여하기 위하여 우리 자신을 돌아보며 보속하겠다는 약속의 표시이다.
이 재의 예절은 우리의 죽음을 미리 묵상하게 한다. “사람아,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다시 돌아갈 것을 생각하여라.” 이것은 우리의 현세적인 삶의 종착점인 죽음을 생각하게 함으로써 이기적인 생활과 그럼으로써 하느님을 멀리 떠난 삶에서 회개와 이웃에 대한 사랑의 실천으로 돌아서게 하는 데 있다. 죽음의 의미를 아는 사람은 어떤 사람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그리고 어떻게 죽음을 맞을 것인가를 알며 하느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을 실천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 재는 한 줌의 흙이다. 우리가 죽어 땅에 묻히면 한 줌의 흙이 된다. 그 자리에는 아무런 형체도, 권세도 명예도 볼 수 없다. 이러한 의미를 가진 재를 교만과 명예의 자리인 머리에 얹음으로써 인생무상과 자신의 나약함을 깨닫고 겸손하라고, 자신의 본 모습을 찾으라고 하는 것이다. 겸손하지 못하면 회개와 보속의 실천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남에게 보이기 위한 선을 행하지 말라고 경고하시면서 자선과 기도, 단식에 관한 세 가지 본보기를 알려주신다. 자신의 덕을 내보임으로써 사람들의 칭찬을 얻으려 하지도 말고, 다른 사람들 앞에서 넘치게 기도하면서 자기의 신심을 자랑하지도 말라고 하신다. “스스로 나팔을 불지 마라.”(2절) 내가 하는 일을 떠벌이지 말라는 뜻이다. 인간의 찬사를 얻으려 하느님의 일을 하는 것은 신심 깊은 마음의 자세가 아니기 때문이다. 친절한 행동은 그 자체가 나팔이다. 그러기에 숨겨야 할 것은 그런 행동이나 장소보다도 베풀려는 뜻이다.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라.”(3절) 이 말씀 역시 사람들 눈에 띄지 않도록 하라는 말씀인데, 할 수 있으면 우리가 선을 베풀 때, 베푸는 손조차도 그 사실을 모르게 하라는 말씀이다. 또한 이 말씀은 오른손은 의인과 의로운 행위를 뜻하고 왼손은 죄인과 죄가 되는 행동을 의미한다. 그래서 어떤 일이 주님의 가르침에 따라 이루어지려면, 의인인 오른손은 왼손이 하는 일을 몰라야 한다. 즉 우리가 충실하고 신심 깊게 행하기 위해서는 죄인들 앞에서 자랑하지 말아야 한다.
“너는 기도할 때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은 다음, 숨어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여라.”(6절) 우리의 기도는 인간에게 하는 것이 아니다. 기도는 어디에나 계시며 우리가 말하기도 전에 들으시고 마음의 비밀을 이미 알고 계시는 하느님께 기도하는 것이다. 그분께 기도하면 우리는 큰 상을 받을 것이다.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주실 것이다.”(6절) 하시기 때문이다. 사람들에게서 상을 받으려 하는 자들은 하느님으로부터 또 다른 상을 받을 수는 없는 것이다. “너희는 단식할 때에 위선자들처럼 침통한 표정을 짓지 마라.”(16절) 교회도 또한 이 시기에 극기와 절제를 통하여 이웃에게 선을 베풀어 그리스도를 닮고, 어느 때보다 기도를 많이 하여 은총을 받고자 마음을 모으는 때이며, 예수님의 부활 영광을 우리도 누리기 위해 속죄하도록 초대하고 있다. 이 사순시기를 통하여 우리가 더 하느님의 자녀로서 부활의 영광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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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교구 송영진 모세 신부님]
<사순시기>
사순시기는 부활절을 잘 맞이하려고 준비하는 시기입니다. 이 말은 너무나도 당연한 말이어서 할 필요가 없는 말 같지만, 사순시기의 의미만 생각하다가 부활절을 잊어버리는 경우가 있으니, 다시 강조할 필요가 있습니다.
십자가만 바라보다가 부활을 잊어버리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우리가 십자가를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부활이 있기 때문입니다. 만일에 예수님께서 부활하시지 않았다면, 십자가 수난은 아무 의미도 가치도 없는 일로 끝나버렸을 것입니다. 그것과 마찬가지로 사순시기는 부활절이 있어서 중요한 시기입니다. 부활절이 없으면 사순시기도 없습니다.
우리가 사순시기 동안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을 묵상하고, 그 일에 참여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예수님의 부활에 동참하기 위해서입니다. 부활에 동참할 생각이 없다면,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에 참여할 이유가 없습니다. 넓은 뜻으로 생각하면, 우리 인생 전체가 하느님 나라에서 부활하려고 준비하고 노력하는 사순시기입니다. 바로 그 목적과 목적지를 잊어버리면, 또는 믿지 않으면, 인생은 그냥 허무한 방랑으로 끝나게 될 것입니다.
‘재의 수요일’에 거행하는 ‘재를 머리에 얹는 예식’은 인생의 진짜 목적과 목적지를 잊지 말라고 거행하는 예식입니다. 먼지처럼 사라질 허무한 인생을 살지 말라는 뜻으로 재를 머리에 얹는 것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여러분은 썩어 없어지는 씨앗이 아니라 썩어 없어지지 않는 씨앗, 곧 살아 계시며 영원히 머물러 계시는 하느님의 말씀을 통하여 새로 태어났습니다. ‘모든 인간은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꽃과 같다.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지만, 주님의 말씀은 영원히 머물러 계신다.’ 바로 이 말씀이 여러분에게 전해진 복음입니다.”(1베드 1,23-25)
신앙인은 하느님의 자녀로 ‘새로 태어난’ 사람인데, 목적지에 도착한 사람이 아니라, 그곳을 향해서 나아가는 사람입니다. 완전히 도착할 때까지는 방심하면 안 됩니다. 자만하고 방심하면, 배반자 유다처럼 중간에 탈락할 것입니다.
“너희는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의로운 일을 하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그러지 않으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에게서 상을 받지 못한다. 그러므로 네가 자선을 베풀 때에는, 위선자들이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듯이, 스스로 나팔을 불지 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그들은 자기들이 받을 상을 이미 받았다. 네가 자선을 베풀 때에는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라. 그렇게 하여 네 자선을 숨겨 두어라. 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주실 것이다.”(마태 6,1-4)
위선자가 되려고 신앙생활을 시작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누구나 처음에는 진실한 신앙인이 되려고 결심하고, 또 그렇게 노력하면서 살아갑니다. 그러나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눈에 보이지 않는 하느님은 잊어버리고, 눈에 보이는 사람들의 시선만 의식하게 되는 일이 자꾸 생깁니다.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또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으려고’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아닌데도,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사람들의 시선과 평가를 의식하게 되고, 신경 쓰게 되고, 그게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게 됩니다.
사실 칭찬을 받는 것은 누구에게나 기분 좋은 일이고, 기쁜 일이고, 행복한 일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의 칭찬’은 함정이 숨어 있는 위험한 일이기도 합니다. 스스로 조심하지 않으면, 그 칭찬 때문에 교만해지고, 위선자가 되어버립니다.
<아마도 마귀는 처음에는 ‘칭찬부터’ 하면서 접근할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인정하고 칭찬하는 말부터 해서 경계심을 없애고, 그다음에 유혹하는 말을 할 것입니다. “너는 지금 아주 잘하고 있다. 하느님께서도 너를 보면서 기뻐하실 것이다. 그렇지만 더욱 잘하려면, 그리고 끝까지 가려면, 힘을 좀 아껴야 하지 않을까?
그렇게 힘을 전부 다 쏟아 부으면, 언젠가는 힘이 빠지고, 지치고, 결국 끝까지 가지 못할 것이고, 그러면 너무 아깝지 않은가? 끝까지 잘하려면 좀 쉬엄쉬엄해라.”
“바오로 사도도 아니면서 왜 그렇게 선교활동을 열심히 하는가? 그동안 충분히, 많이 했으니 이제 좀 쉬어도 되지 않은가?” 이런 말들이 바로 ‘칭찬 같은 유혹’입니다.
마귀는 그런 식으로 유혹할 텐데, 실제로 우리가 자주 듣는 말입니다. 말하는 사람 자신은, 자기 말이 유혹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자기가 ‘유혹하는 마귀의 일’을 하고 있다는 것도 모르지만, 듣는 사람 쪽에서는 아주 위험한 함정이 됩니다.>
예수님의 말씀에서,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라는 말씀은, “하느님은 사람의 마음속을 꿰뚫어 보시는 분”이라는 뜻이기도 하고, “사람들이 못 보는 것도 보시고, 사람들이 모르는 것도 아시는 분”이라는 뜻이기도 하고, 인간은 하느님께 아무것도 감출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하느님은 인간들을 감시하시는 분”이라는 뜻으로 오해하면 안 됩니다. 하느님은 ‘감시자’가 아니라 ‘보호자’ 라는 것이 우리의 믿음입니다.
어떤 말이나 행동이나 생각을 할 때, 하느님을 의식하면서 조심하는 것은 좋은 일이고 필요한 일인데, 하느님이 감시하고 있다는 생각 때문이 아니라, 그분의 사랑과 보호에 응답한다는 생각으로 그렇게 해야 합니다.
<사람들의 칭찬에 취해서 우쭐해지면, 마음이 풀려서 위선자가 되는 쪽으로 가게 됩니다. 그런 일이 생기는 것을 예방하려면, 내가 나 자신을 스스로 감시하고, 내가 나 자신에게 브레이크 역할을 해야 합니다. 그런 노력을 할 때, 하느님께서 우리를 보호해 주시고 지켜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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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청주교구 정용진 요셉 신부님]
“나에게 돌아오너라.”(요엘 2,12) 사순 시기를 여는 첫 말씀입니다. 교회는 하느님께 돌아오라는 요엘 예언서의 말씀으로 이 시기를 시작합니다. 오늘 “사람아, 너는 먼지이니, 먼지로 돌아갈 것을 생각하여라.”라는 말과 함께 사제는 우리 머리에 재를 얹습니다. 사순 시기에 우리는 희생과 절제, 포기와 단념이라는 말들을 먼저 떠올립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기쁨’으로 부르셨습니다. 사순 시기는 이 기쁨을 되찾는 때입니다. 그래서 이 시기가 우리에게 기쁨을 가져다주는 시간이었으면 좋겠습니다. 하늘에서 내리는 비처럼 하느님의 자애와 은총이 우리 모두에게 쏟아져 내리는 시간이었으면 좋겠습니다. 하느님께서 당신의 얼굴을 우리에게 다시 보여 주시는 시간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먹을 ‘빵’을 얻으려고 오늘도 바삐 일하고 움직입니다. 그런데 배가 부르고 물질적인 욕구가 어느 정도 채워지면, 사람마다 정도는 다르겠지만, 자신 안에 더 깊은 곳으로 향하는 열망이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는 젊음과 검은 머리카락이 마치 짧은 숨처럼 지나가 버린다는 것을 알게 된 다음에야 비로소 우리가 세상에서 풀어 낼 수 없는 더 깊고 근원적인 열망이 있음을 깨닫습니다.(코헬 11,10 참조) ‘내’ 세상이, ‘내’ 날들이 끝나 간다는 사실에서 우리는 우리 존재에 대하여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깊은 내면의 ‘다른 음식’을 정말로 필요로 한다는 것을 알게 되면 우리는 하느님 앞에 서 있는 인간인 ‘나’라는 존재를 진실로 바라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느님과 대화하며 점차 ‘나’라는 인간이 누구이고 ‘사람다운 것’이 어떤 것이며 인간이 어떻게 변화되어야 하는지 생각할 수 있게 됩니다.
사순시기는 우리를 자신 안으로 초대합니다. 우리 삶의 밑바닥부터 들여다보고 바꿀 기회의 시간 동안 우리 마음의 화두가 하느님 말씀을 다시 듣는 것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를테면 예수님께서 악마의 유혹에 맞서시며 하신 첫 번째 말씀, 곧 “사람은 빵만으로 살지 않고, 하느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마태 4,4; 참조: 신명 8,3)라는 말씀을 되뇌며 그 의미를 찾는 시간을 보내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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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교구 전인준 파트리치오 신부님]
<“너희는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요엘 예언자는 ‘주님의 날’ 다시 말해서 심판날에 대해서 예언하면서 주님의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다. “마음을 다하여 나에게 돌아오너라. 옷이 아니라 너희 마음을 찢어라. 주 너희 하느님에게 돌아오너라.”(요엘 12,12-13)
‘주님께 돌아오라’고 예언자는 호소합니다. 지금도 사람이 숨을 거두는 순간 유족들은 그들의 겉옷을 찢으며 슬픔을 표시한다고 합니다. 나아가서 친지의 죽음의 소식을 들었을 때도 심지어는 장례식장에서 옷을 찢으며 슬픔을 표시한다고 하지요. 슬픔, 절망, 수치, 분노 등의 격한 감정을 표시하는 이런 관습은 성경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습니다.
야곱의 아들들 중에 맏형 르우벤은 동생 요셉의 피 묻은 옷을 보았을 때(창세 37,29), 야곱의 아들들이 막내 벤야민이 도둑으로 몰렸을 때(창세 44,13), 옷울 찢습니다.
여호수아가 아이에서 이스라엘군이 패배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여호 7,6), 엘리의 두 아들이 죽고 하느님의 궤를 빼앗겼다는 소식이 전해 졌을 때(1사무 4,13), 옷을 찢습니다.
다윗이 사울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2사무 1,11), 요시야가 하느님의 율법 말씀을 들었을 때(2열왕 22,11), 옷을 찢습니다. 욥이 가족의 비극적은 소식을 들었을 때(욥 1,20), 욥의 세친구가 욥의 처참한 모습을 보 았을 때(욥 2,12), 옷을 찢으며 슬픔을 표시합니다.
대제사장은 옷을 찢는 행동이 허락되지 않았지만(레위 21,1-4. 10), 신약에서 대사제 카야파는 예수의 말씀을 듣고 하느님 모독이라고 하며 분노를 표현할 때 (마태 26,65), 옷을 찢습니다. 바오로와 바르나바는 리스트라 사람들이 자신들을 신으로 숭배하려고 할 때(사도 14,14), 마찬가지로 자신의 옷을 찢습니다.
그런데 요엘은 하느님께서 진정한 회개 없이 형식적으로 옷을 찢는 유대인들을 거슬러 마음의 회개하라고 외치는 것입니다. 이런 예언자 말씀의 맥락에서 예수님 말씀을 더욱 공감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겉으로 드러나는 회개의 행동을 하지 말고 진정한 마음의 회개를 바탕으로 ‘ 선행’과 ‘기도.’ 그리고 ‘단식’을 하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이웃에게 하는 ‘선행’에 대해서 말씀하시는데 남들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 아니라 바로 하느님을 바라보는 마음으로 하라고 당부하시는 것입니다.
“네가 자선을 베풀 때에는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라. 그렇게 하여 네 자선을 숨겨 두어라. 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 주실 것이다.”(마태 6,3-4)
이번에는 주님께서 ‘기도’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당시의 신앙인의 대표라고 할 수 있는 바리사이들은 틀에 박히고 형식적이면서 또 남들이 들으라고 긴 기도를 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이렇게 당부의 말씀을 하십니다. “너는 기도할 때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은 다음, 숨어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여라. 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 주실 것이다.”(6절) 끝으로 단식할 때에도 드러나지 않게 하라고 당부의 말씀을 하십니다. 당시 바리사이들은 그 표시를 내며 요란하게 했거든요.
“너는 단식할 때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어라. 그리하여 네가 단식한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드러내 보이지 말고, 숨어 계신 네 아버지께 보여라. 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 주실 것이다."(17-18절)
주님께서 ‘선행’, ‘기도.’ ‘단식’에 대해서 가르치시면서 드러나게 하지 말 것과 사람이 아니라 하느님을 향해서 하라는 뜻입니다 사람이 자칫 잘못하면 교만과 위선에 빠질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제일 싫어하시는 것인데도 사람들은 공공연하게 자신을 드러내고 완전한 사람인 양 행세하는 모습들을 볼 때가 있습니다. 성숙하지 못하고 진정한 신앙의 삶을 사는 사람들이라 할 수 없는데 이외로 이런 사람들이 많은 것입니다.
사순절을 시작하는 재의 수요일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이마에 재를 바르며 창세기 때에 하느님께서 인간을 빚으신 창조사업을 새롭게 회상하고 있습니다. 인생은 먼지와 흙으로 돌아간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허무한 나의 존재에 하느님께서 당신 생명의 입김을 불어 넣으시어 이렇게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한편 먼지와 같이 허무한 존재이면서도 또한 하느님의 모상인 존귀한 존재인 것입니다. 우리는 사람들을 의식하며 진실은 숨기고 꾸밈의 많은 순간들을 보냈습니다. 이제는 우리 자신이 인간이 아니라 하느님을 바라보며 요엘 예언자가 주님의 날을 준비하여 하겠습니다. 예언자가 외쳤듯이 형식이고 위선적인 행동이 아니라 하느님께로 향하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오늘 특히 마태오가 전하는 주님의 말씀을 새기며 사순절을 시작하여야 하겠습니다. 형식적이고 드러나는 신앙생활이 아니라 주님께서 생명을 불어 넣으신 살아있고 성실하고 진실한 신앙의 삶을 이제부터라고 살아야 할 때입니다.
관습으로 옷을 찢는 행동이 얼마나 어리석고 의미 없다는 사실임을 주님의 복음을 통해서 우리는 새롭게 깨달을 수 있습니다. 관습은 시간이 가면서 굳어버리고 결국 생명의 삶을 죽음으로 몰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을 끊기 위해서는 진정한 회개를 통하여 하느님께로 이제는 돌아가야 하겠습니다. 진정으로 회개하는 삶을 통하여 거룩하고 은총의 시기인 사순시기를 맞읍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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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교구 정호 빈첸시오 신부님]
<사순절로 들어가기...>
재의 수요일입니다. 재의 수요일은 그리스도의 수난과 부활을 기억하고, 기념하며, 기다리는 40일간의 긴 여행기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 기간 동안 주님이 우리에게 보여주신 사랑을 세상이 어떻게 받아들였는가를 살펴보며 우리의 삶이 그리스도를 따를 때 어떤 수고와 또 어떤 영광의 삶을 살게 되는지 생각해보게 됩니다.
오늘 우리는 이마에 성지가지를 태운 재를 얹습니다. 재를 머리에 얹는 것은 참회, 곧 잘못을 뉘우침으로써 우리 자신의 부족함을 아파하는 그리고 우리 자신을 모든 것이 타고 남은 재처럼 겸손함으로 준비시키는 의미를 가집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시기에 재를 얹은 모습으로 출발하여 기도로 주님께 감사와 함께 우리 자신을 봉헌하고, 선행과 자선으로 주님의 사랑을 본받으며, 단식으로 우리 자신의 생명을 주님과 함께 나누는 극기의 삶을 살게 됩니다.
40일 간의 여행을 시작하는 오늘, 출발점에서 우리는 주님의 복음으로 우리의 이 길고, 어렵고, 고된 길을 준비하게 됩니다. 그리고 복음은 기도와 선행과 자선과 단식 등 우리가 해야 하는 일들에 대한 가르침을 전해줍니다.
주님은 복음 속에서 이들 덕에 대해 열심히 하라는 말씀 대신 모든 것을 남에게 보이기 위한 것으로 시도하지 않도록 주의를 주고 계십니다.
남들이 보는 앞에서 하는 선행, 스스로 나팔을 불며 자신의 선업을 자랑하는 자선, 사람들이 바라보는 기도를 즐겨하는 일, 침통한 얼굴로 고통을 드러내며 하게 되는 단식을 주님은 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선행은 모든 삶에 있어서 그 사람의 됨됨이를 나타내는 삶의 태도와 방식입니다. 또한 자선은 다른 사람들을 생각하는 그 사람의 대인관계의 기본적인 태도를 보여줍니다.
기도는 하느님께 자신의 마음을 열어 보여드리고 그분의 목소리를 듣게 되는 하느님과의 고유한 대화 방법이며 단식은 자신의 생명을 걸어 주님과 일치를 이루는 사람의 정성을 드러냅니다.
이 덕들은 모두 사랑이라는 하느님의 큰 덕을 품은 사람에게서 자연스레 나타나는 삶의 모습입니다. 또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 곧 예수님이 세상을 사시며 우리에게 보여주신 것들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사순절 이런 덕들로 생활하는 것은 주님의 길이 바로 이런 참된 사랑의 삶이었음을 기억하고 우리 또한 그 사랑으로 세상을 살고자 하는 노력이라 말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 모두를 남에게 보이기 위한 것으로 그 목적을 삼는다면 그것을 사랑이라는 말과 어떤 면에서건 연관시키기 어려울 것입니다. 아무리 우겨댄다고 하더라도 그 모든 것은 욕심을 위해 수단으로 사용되었을 뿐 그 어떤 것도 좋은 것이라 사랑이라 말할 수 없습니다.
사순절, 그 사순절이 각자에게 가져다주는 의미는 모두 다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께 사순절은 오늘도 미사를 통해 계속되는 당신의 실제 죽음의 시간입니다.
우리는 연습 삼아 조금 경건하게 사는 날이라 우리의 불성실을 위로할 수 있다지만, 그리고 많은 정성들을 천국에 가는 수단처럼, 또 사람들 앞에 보이는 자랑으로 여기지만 우리 주님께 이 시간들은 세상에 마지막 힘을 다해 죽기를 각오하고 내어 놓는 사랑의 실제 삶의 기간입니다.
그러니 우리 모두 주님을 우리 이기심과 욕심의 도구나 방법으로 삼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복음 속에 주님 앞에 드러나는 남에게 보이기 위한 것들처럼 말입니다. 그 모든 것은 주님을 위한 것이 아니라, 주님을 분명 이용하는 것입니다.
대신 아주 작은 사랑이라도 그 작고 소중한 마음 하나를 품는 것이 이 시기에 모든 우리의 삶을 의미 있게 해 줄 것이라 생각합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생각하고 그들을 위해 진심 어린 선행, 자선, 기도, 단식을 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이제 일어나서 길을 떠납시다. 머리에 재를 얹고 가진 것 모두를 버리고 홀가분하게 사랑의 길을 떠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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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대교구 한창현 모세 신부님]
<참회와 속죄, 그리고 절제>
참회와 속죄, 그리고 절제의 생활을 통하여 주님의 수난과 함께하는 사순절의 첫날 재의 수요일입니다. 은총의 시기라고 불리는 이 시기의 첫날 우리는 단식과 금육으로 육신의 몸을 정화하고, 이 기간동안 하느님의 은총으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날 준비를 하기 위해 내적인 마음의 회개를 준비해야 하겠습니다.
해마다 이 기간이 오면 사람들은 나름대로의 몫을 정해서 주님과 함께 하고자 합니다. 어떤 사람은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씀에 따라 가장 가까운 이웃인 가족에게 주님을 모시고 섬기듯이 하고자 다짐하기도 합니다. 또 어떤 이는 평상시에 소홀히 했던 기도에 대해서 충실하고 깊이 있는 시간을 가져서 주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그 마음을 접해보겠다고도 합니다. 또 어떤 이는 욕심을 부리는 것을 절제하고자 다짐을 합니다.
이렇듯 내가 무엇을 한다는 다짐은 나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그러한 수고와 노력을 주님께 봉헌한다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주님께 봉헌할 때 나머지는 주님께서 채워주시고 갚아주시기 때문입니다.
복음 말씀에서도 자선을 베풀고 기도를 하고 단식을 하는데 남들이 모르게, 또 남에게 드러나지 않게 하라고 합니다. 숨을 일도 보시는 아버지께서 갚아주시기 때문입니다. 마치 나의 것을 태워서 에너지를 내고 남는 재와도 같은 존재가 될 때 하느님은 그러한 우리를 잊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재란 아무것도 가지지 않는 타버린 존재, 더 이상 태울 것이 없는 존재로 자신을 깨끗하고 순수한 본래의 모습으로 살아가도록 우리를 일깨워줍니다. 그리고 생명과 새로운 성장을 위한 가장 좋은 거름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오늘 머리에 재를 받는 우리는 사순시기동안 새로운 각오로 살기를 다짐해 봅니다.
재와 같은 존재가 되고자 한다면,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와함께 살아가는 곁의 자매를 위해서 무엇인가를 꼭 다짐해 봅시다. 주님께서는 우리의 마음 속 생각까지도 다 아시고 재와 같은 존재가 되었다고 해서 하찮게 버리지 않고 오히려 그 고운 마음을 더욱 아름답게 꾸며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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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부교구 상지종 베르나르도 신부님]
<그리하여 올바르게>
마태오 6,1-6.16-18 (올바른 자선, 올바른 기도, 올바른 단식)
“너희는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의로운 일을 하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그러지 않으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에게서 상을 받지 못한다. 그러므로 네가 자선을 베풀 때에는, 위선자들이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듯이, 스스로 나팔을 불지 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그들은 자기들이 받을 상을 이미 받았다. 네가 자선을 베풀 때에는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라. 그렇게 하여 네 자선을 숨겨 두어라. 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 주실 것이다.
너희는 기도할 때에 위선자들처럼 해서는 안 된다. 그들은 사람들에게 드러내 보이려고 회당과 한길 모퉁이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한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그들은 자기들이 받을 상을 이미 받았다. 너는 기도할 때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은 다음, 숨어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여라. 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 주실 것이다.
너희는 단식할 때에 위선자들처럼 침통한 표정을 짓지 마라. 그들은 단식한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드러내 보이려고 얼굴을 찌푸린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그들은 자기들이 받을 상을 이미 받았다. 너는 단식할 때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어라. 그리하여 네가 단식한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드러내 보이지 말고, 숨어 계신 네 아버지께 보여라. 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 주실 것이다.”
<그리하여 올바르게>
벗을
만나는
자선
벗과 나
그 사이에
아무도 없이
하느님 닮은 내가
벗을 오롯이
보듬게 하소서
그리하여 올바르게
하느님을
만나는
기도
하느님과 나
그 사이에
아무도 없이
하느님 닮은 내가
당신 앞에 오롯이
서게 하소서
그리하여 올바르게
나를
만나는
단식
나와 나
그 사이에
아무도 없이
하느님 닮은 내가
나와 오롯이
마주하게 하소서
그리하여 올바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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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교구 반영억 라파엘 신부님]
<부활의 기쁨을 희망하며>
부활의 기쁨을 준비하는 사순절입니다. 사순이라는 말은 40일이라는 뜻입니다. 성경에서 40이라는 숫자는 중대한 사건을 두고 그를 준비하는 기간을 상징합니다.
모세는 십계명을 받기 전 40일간 재를 지켰고, 엘리야도 호렙산에 갈 때 천사가 주는 음식만 먹으며 40일을 걸었으며, 예수님께서도 공생활 전 40일 동안 단식과 기도를 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에게 가장 중요한 사건인 부활을 제대로 준비하기 위해 40일간의 기간을 정하여 기도와 희생으로 재를 지키는 것입니다.
믿는 이들에게 부활의 영광이 없다면 그 믿음은 헛된 것이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몸소 죽음을 이기시고 다시 살아나셔서 우리에게 부활의 희망을 안겨주셨습니다. 기쁨이 큰 만큼 거기에 걸맞은 부활 준비가 필요합니다.
오늘 복음은 자선과 기도, 단식으로 제시하고 있는데 자선할 때 “스스로 나팔을 불지 마라.” 기도는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은 다음 하라.” 단식할 때는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어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남이 모르게 할 때 “숨은 일도 보시는” 아버지께서 갚아주실 것이라고 하십니다. 우리는 남이 알아주지 않으면 서운해하며, 좋은 평판을 받기를 기대하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내면의 힘을 길러 그런 것에, 민감하지 말라는 가르침을 주십니다. 내적인 힘이 있으면 그 어떤 것에도 흔들림이 없습니다.
단식은 자신에 대한 절제와 극기의 상징입니다. 그냥 음식을 먹지 않는 것이 아니라 기도의 한 부분입니다. 단식 함으로써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겪으신 배고픔의 의미를 깨닫게 되고 그 순간부터 배고픈 이들, 가난한 이들에 대한 애정을 느끼며 온 정성을 다하여 그들을 돕는 계기를 마련하게 됩니다. 내가 허기져봐야 굶주린 이들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게 됩니다.
기도는 내 삶의 뿌리가 무엇인지를 알게 합니다. 우리는 기도를 함으로써 하느님과 통교하게 됩니다. 마치 전등이 발전기와 연결됨으로써 빛을 발하듯 기도는 우리를 하느님과 연결해 줍니다.(구엔 반 투안 )
“기도는 심장과 심장의 만남입니다.”(마더 데레사) 사실 기도는 사람들이 들으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뜻을 헤아리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느님 안에 살려면 호흡하듯이 기도해야 합니다. 왜 호흡을 해야 합니까? 하지 않으면 이미 죽은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이 기도하지 않으면 이미 신앙인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기도는 사랑으로 가득 차 있을수록 그만큼 더 가치가 있습니다.(샤를 드 푸코)
자선은 단식과 기도의 자연스런 결과입니다. 기도의 열매는 사랑을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베풀어야 합니다. 자선을 베푸는 사람은 마지못해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라 기쁜 마음으로 해야 하고 또 민첩하게 해야 합니다.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누가 보든 그렇지 않든 자선은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께 바치는 좋은 예물입니다. “자선으로 씨를 뿌리면 열매는 천국에서 넘치도록 얻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저함이 없이 베풀어야 합니다.
기도와 단식, 그리고 자선은 서로를 보완해 줍니다.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해서는 안 됩니다. 오늘 재의 수요일을 맞으면서 기도하고 단식을 지켰는 데 그 희생을 누구를 위해 봉헌하려고 하셨나요?
아침을 굶고 나니 배가 고파요. 그래서 점심을 평소보다 더 많이 잡수셨어요. 그렇게 한다면 알맹이가 빠진 것이지요.
평소에는 굶어도 굶었다는 생각도 없이 지나치는데 사순절이 되면 유난히 배가 고파 옵니다. 마음먹고 무엇인가 하려고 할 때 유혹의 빌미는 항상 있습니다.
기도도 다르지 않습니다. 바빠서 기도할 시간이 없다고 해요. 오히려 너무 바빠서 기도해야 합니다.
주님의 뜻에 어긋나지 않도록, 바빠서 제 길을 걷지 못하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는 내 뜻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 핵심입니다.
그리고 자선은 베풀면 베풀수록 줄 수 있는 능력이 생긴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처음에는 아쉽고 아까운 생각이 들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하면 할수록 기뻐하게 됩니다. 돈을 많이 벌어서 나중에 한꺼번에 좋은 일을 하겠다고 하시는 분은 평생 아무 일도, 못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지금 일상생활의 작은 일에서부터 기회를 놓치지 않기를 바랍니다.
사순절에 자주 듣는 말이 ‘회개’입니다. 회개는 죄를 뉘우치는 것입니다. 죄는 하느님에게서 멀어지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회개는 하느님께로 다시 가까이 가는 것입니다. 하느님께 가까이 가기 위해서 외적인 기도와 단식, 자선에 앞서 마음의 단식과 자선, 그리고 기도에도 소홀함이 없기를 바라며 하루하루를 은혜로운 때, 구원의 날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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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교구 조명연 마태오 신부님]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이제 막 걸음마를 걷기 시작한 영아는 평균적으로 하루에 2,368걸음으로 701미터를 걷고, 1시간에 17번 넘어진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몇 번이나 넘어져야 제대로 걷게 될까요? 한 천 번은 넘어졌다가 일어나야 이제 도움 없이도 스스로 잘 걸을 수 있게 됩니다. 성인이야 걷는 것을 그렇게 어렵지 않게 생각하지만, 영아에게는 어떨까요?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넘어졌다가 일어나는 일을 반복하는 과정을 거쳤기에 점점 넘어지는 횟수가 줄어들고, 또 잘 걸을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걷는 것을 넘어서 뛰어다니게 됩니다.
우리 삶도 이 영아의 걸음마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처음부터 잘 걷고, 잘 뛰는 영아가 없는 것처럼, 실패 없는 안정된 삶이란 소위 성공의 삶만을 살아간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욕심이 아닐까요?
영아는 그 많은 실패에도 불구하고 좌절이나 절망하지 않습니다. 지금 성인인 사람 모두 이렇게 좌절이나 절망하지 않았던 영아의 시절을 지나갔음을 떠올린다면, 좌절이나 절망하지 않는 DNA를 가지고 있음이 분명합니다. 따라서 실패의 순간에서도 희망과 용기를 잃지 않을 수 있습니다. 특히 우리를 창조하신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늘 도와주시기에 그분 안에서 큰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신앙생활 안에서도 실패를 경험하곤 합니다. 처음에 주님과의 만남에서 얻었던 기쁨과 행복의 순간이 어느 순간 아무런 감정이 없게 됩니다. 쓸데없는 시간 낭비하고 있다는 생각을 갖게도 됩니다. 주님의 존재에 대한 의심도 생깁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을 뒤로 미룹니다. 나중에 시간이 나면, 여유가 생기면, 할 것 없으면, 복잡한 일이 없어지면 신앙생활을 아주 열심히 하겠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신앙생활도 실패 없이는 제대로 주님 앞에 나아갈 수가 없습니다. 그 실패에도 불구하고 주님과 함께하려는 사람만이 신앙생활의 큰 진전을 이루게 됩니다.
교회가 참회의 상징으로 재를 축복하고 신자들의 머리에 재를 얹는 예식을 거행하는 ‘재의 수요일’입니다. 사순 시기를 시작하는 날이지요. 사순 시기는 주님의 수난과 죽음을 묵상하면서 주님의 부활을 준비하는 기간입니다. 기쁜 주님의 부활을 맞이하기 위해는 주님께서 걸어가셨던 수난과 죽음의 길을 우리도 따라가겠다는 결심이 필요합니다. 물론 주님처럼 실제로 무거운 십자가를 짊어지고 걸어가 십자가에 못 박히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의 일상 안에서 경험하는 고통과 시련으로 보이는 십자가를 짊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피하고 도망치는 것이 아니라, 포기하고 절망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 너머에 있는 부활을 봐야 하는 것처럼 우리 삶 너머에 있는 희망의 주님을 볼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부터 시작하는 사순시기를 통해, 주님께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는 신앙의 진척이 이루어졌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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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회(작은형제회)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님]
<태세 전환>
저만 그런지 모르지만, 사순시기가 다가오면 왠지 부담감이나 긴장감도 같이 다가옵니다.
올해도 마찬가지여서 며칠 전서부터 이 사순시기를 어떻게 보낼까, 부담감과 긴장감을 가지고 생각에, 생각을 더 하다가 어제 문득 은총의 사순시기라고 하는데 이런 자세여서 되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며 태세의 전환, 이것이 사순시기를 옳게 맞는 것이요, 회개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죄악에서 돌아서는 것을 회개라고 생각하면 부담이 되지만 하느님 자비에로 돌아서는 거라고 생각하면 기꺼울 것이고, 단식하고 좋아하는 술을 끊는 것을 생각하면 우울하지만, 단식한 것으로 사랑을 실천하겠다고 마음을 바꾸면 뜨거워지겠지요.
그러다가 오늘 독서와 복음을 읽으니 다음 구절, “하느님의 은총을 헛되이 받는 일이 없게 하십시오.”란 말씀이 눈에 뜨였는데, 그런데 하느님의 은총을 헛되이 받는 것이란 어떤 것인지 생각게 되었습니다.
하느님의 은총을 받긴 받았다는 뜻인가? 아니면, 요즘 말로 은총을 개무시하여 아예 받지도 않았다는 뜻인가?
저의 경우, 은총을 개무시하지는 않고 받을 때는 감사히 잘 받으나 오래 간수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결과적으로 은총을 흘려버리거나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은총은 하느님께서 무상으로 주시는 선물이라고 하는데, 이 선물을 귀히 여기지 않아 처박아 놓거나 남 줘 버리는 것과 같지요. 귀히 여긴다면 선물을 열어보고 또 열어보는 은총의 Revival이 이뤄질 텐데.
그렇습니다. 귀히 여겨 은총의 Revival이 이뤄진다면,
말 그대로 은총이 매일 새록새록 되살아날 것입니다.
오늘 복음 말씀처럼 기도할 때 사람들이 보라고 기도하지 않고, 골방에서 하느님의 사랑 안에 머물며 사랑에 오래 잠길 것이고, 사랑의 선물을 몰래 꺼내 보고 또 꺼내 보고 할 것이며, 그때마다 사랑이 되살아나고 사랑이 되살아남으로써 나도 되살아날 것입니다.
다음으로 하느님의 은총을 헛되게 받지 않는 사람은
이웃도 되살아나도록 이웃사랑 곧 자선에 그 은총을 쓸 것입니다.
이 경우, 물론 자선을 Showcase 용으로 다시 말해서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웃을 진정 사랑해서 하겠지요.
사실 진정한 자선이야말로 은총을 가장 귀하게 받는 것입니다. 약 한 알로 여러 사람의 병이 낫게 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이웃사랑은 하느님 사랑을 나눠 먹는 것이고 자선은 그런 거잖아요?
우리가 하는 단식과 재계도 하느님 은총을 헛되이 받지 않게 하기 위한 겁니다. 근자에 제가 방심과 조심을 자주 얘기하는데 방심할 때 지갑을 도둑맞기 쉽듯 조심하지 않고 방심하면 하느님 은총도 헛되이 사라집니다.
단식이나 재계는 우리 마음이 풀어지지 않도록(방심하지 않도록) 마음을 단단히 붙잡게 하는 것(조심하게 하는 것)입니다.
오늘 바오로 사도는 지금이 바로 은혜로운 때이고 구원의 날이라고 합니다. ‘때’란 ‘기회’의 다른 말입니다. ‘기회’란 또 ‘위기’의 다른 말입니다.
우리가 현명하다면 이 사순시기를 구원을 위한 기회의 때가 되도록 태세 전환을 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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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베네딕토회 요셉수도원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회개와 기쁨의 거룩한 사순시기>
-올바른 수행-
어제 어느 자매로부터 받은 카톡 메시지가 고마웠습니다. 참으로 아름답게 익어 성숙되어 가는 영적 삶을 살아야 겠다는 각오를 새로이 하게 됩니다. 이 거룩한 은총의 사순시기, 참 좋은 격려와 자극이 됩니다.
“신부님, 멋지세요!”
뜬금없는 메시시가 궁금해 즉시 누군가 물었고 이어 온 답신입니다.
“안녕하세요. 카톡에 사진이 올라와서 멋지다는 생각에 반가워서 말씀드렸어요. 저는 2주전 남자 아이들과 피정 다녀온 자매입니다. 드문드문이지만 갈때마다 신부님이나 수사님들 연세드시는 모습이 보기 좋고 아름다워 하느님께 감사드리게 됩니다.”
오늘 2월22일 재의 수요일부터 바야흐로 은총의 거룩한 사순시기가 시작되었습니다. 회개와 올바른 수행의 영적훈련으로 삶의 질서를 바로 잡고 주님과의 관계를 새롭고 깊이하는 복된 시기입니다. 베네딕도 규칙에 소개된 “제49장 사순절을 지킴에 대하여”라는 내용이 은혜로워 후반부 3개절만 생략하고 전부를 나눕니다. 여전히 오늘날도 귀한 가르침과 깨우침이 됩니다.
“수도승의 생활은 언제나 사순절을 지키는 것과 같아야 하겠지만 이러한 덕을 가진 사람이 적기 때문에, 이 사순절 동안에 모든 이들은 자신의 생활을 온전히 순결하게 보존하며, 다른 때에 소홀히 한 것을 이 거룩한 시기에 씻어내기를 권하는 바이다.
이것은, 우리가 모든 악습들을 멀리하고, 눈물과 함께 바치는 기도와, 독서와, 마음으로부터 우러나는 통회와 절제에 힘쓸 때, 합당하게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평소의 섬김의 분량에 어떤 것을 이 시기에 더 늘일 것이니, 곧 특별한 기도와 먹고 마시는 것에 대한 절제이다.
그리하여 각자는 성령의 기쁨을 가지고 자기에게 정해진 분량 이상의 어떤 것을 하느님께 바칠 것이다. 즉 자기 육체에 음식과 음료와 잠과 말과 농담을 줄이고 영적 갈망의 기쁨으로 거룩한 부활 축일을 기다릴 것이다.”
결코 우울하고 어둡고 무거운 고행의 사순시기가 아닙니다. 아니 그 반대로 성령의 기쁨을 가지고 올바른 수행에 힘쓰며 영적 갈망의 기쁨으로 거룩한 부활 축일을 기다리는 복된 은총의 사순시기입니다. 베네딕도 규칙 전장을 통털어 “기쁨”이란 단어가 오직 제49장에만 2회 나온다는 사실이 참 각별하게 생각됩니다.
그러니 성령의 기쁨, 영적 갈망의 기쁨으로 부활 축일을 기다리며 자발적 올바른 수행생활에 충실해야 하는 회개의 사순시기입니다. 우리 삶의 여정이 회개의 여정이지만 특히 사순시기는 그러합니다. 구체적으로 오늘 독서는 회개와 화해에 대하여 복음은 사순시기 올바른 회개의 행위에 대해 구체적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제1독서 요엘 예언자의 말씀이 현실감있게 마음에 와닿습니다.
“주님의 말씀이다. 이제라도 너희는 단식하고 울고 슬퍼하면서, 마음을 다하여 나에게 돌아오너라. 옷이 아니라. 너희 마음을 찢어라. 주 너희 하느님에게 돌아오너라. 그는 너그럽고 자비로운 이, 분노에 더디고 자애가 큰 이, 재앙을 내리다가도 후회하는 이다. 너희는 시온에서 뿔 나팔을 불어, 단식을 선포하고, 거룩한 집회를 소집하여라. 백성을 모으고, 회중을 거룩하게 하여라.”
교회 전례 공동체에 속한 하느님의 백성 모두가 회개를 통해 하느님께 돌아올 것을 촉구하는 말씀입니다. 은총의 사순시기, 개인적이자 공동체적 회개가, 무엇보다 생태적 회개가 절실한 때요, 전쟁과 재난에 시달리는 전 세계 나라들의 회개가 참 절박한 시기입니다.
“주님, 당신께 죄를 지었사오니 저희를 불쌍히 여기소서.”
누구보다 종교 지도자들, 정치 지도자들이 참으로 진지하게 회개와 더불어 시편 화답송 후렴을 바치며 주님의 자비를 청해야 할 때입니다. 그러면 요엘 예언서처럼 주님께서도 당신 땅에 열정을 품으시고, 당신 백성을 불쌍히 여기실 것입니다. 무엇보다 화답송 시편 51장,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라는 제하의 시편을 깊이 되새겨야 할 재의 수요일입니다.
“하느님,
당신 자애로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
당신의 크신 자비로 저의 죄악을 없애 주소서.
제 허물을 말끔히 씻어 주시고, 제 잘못을 깨끗이 지워주소서.
하느님,
제 마음을 깨끗이 만드시고, 제 안에 굳건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구원의 기쁨을 제게 돌려주시고, 순종의 영으로 저를 받쳐주소서.”
회개와 함께 가는 화해요 화해의 기쁨과 평화입니다. 이어지는 바오로 사도의 하느님과 화해하라는 말씀도 은혜롭습니다.
“하느님과 화해하십시오. 하느님의 은총을 헛되이 받는 일이 없게 하십시오. 하느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은혜로운 때에 내가 너의 말을 듣고, 구원의 날에 내가 너를 도와주었다.’ 지금이 바로 매우 은혜로운 때요, 지금이 바로 구원의 날입니다.”
오늘부터 시작된 사순시기 하루하루가 은혜로운 때요, 구원의 날이라는 말씀입니다. 바로 여기에 걸맞는 올바른 수행이 바로 복음에서 소개되는 사순시기 대표적 수행인 올바른 기도, 올바른 단식, 올바른 자선입니다. 회개의 진정성은 이런 올바른 수행을 통해 입증되며 열매를 맺습니다.
세 수행에서 공통적으로 강조되는바 위선자들처럼 사람들에게 보이는 수행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내가 진실로 말한다.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다.”라고 못박으며 절대 이런 위선적인 수행을 하지 말라 하십니다. 하느님만이 아시는 참으로 진실하고 겸손한 수행, 하느님 중심의 수행을 하라 하십니다. 순서로 하면 기도, 단식, 자선으로 입증되는 회개의 진정성입니다.
첫째, 올바른 기도입니다.
하느님과의 소통으로 관계의 회복을 뜻하는 올바른 기도에 대한 가르침입니다.
“너는 기도할 때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은 다음, 숨어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여라. 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 주실 것이다.”
둘째, 올바른 단식입니다.
나와의 소통으로 나와의 관계의 회복을 뜻하는 올바른 단식에 대한 가르침입니다.
“너는 단식할 때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어라. 그리하여 네가 단식한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드러내 보이지 말고, 숨어 계신 네 아버지께 보여라. 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 주실 것이다.”
셋째, 올바른 자선입니다.
이웃과의 소통으로 이웃과의 관계 회복을 뜻하는 올바른 자선에 대한 가르침입니다.
“네가 자선을 베풀 때에는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라. 그렇게 하여 제 자선을 숨겨 두어라. 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 주실 것이다.”
한결같이 진실하고 겸손한 올바른 수행입니다. 하느님 중심의 수행이요, 닫힌 이기적 수행이 아니라 하느님께 활짝 열린 기도의 수행, 자신에게 활짝 열려 있는 단식의 수행, 이웃에 활짝 열려 있는 자선의 수행입니다. 참된 회개와 함께 가는 이런 올바른 자발적 기쁨의 사랑의 수행이 우리를 참으로 순수하고 자유롭게 합니다.
일년 영적 농사에 결정적 도움을 주는 특별 영적훈련의 은총의 사순시기가 시작되었습니다. 부활 축일을 기다리며 자발적 기쁨으로 참된 회개와 더불어 진실과 겸손의 올바른 수행에 전념해야할 은총의 거룩한 사순시기, 간절한 마음으로 이 거룩한 미사중 주님께 도움을 청합시다. 주례 사제가 머리 위에 재를 얹어 주시며 하신 다음 말씀 마음에 새기고 은총의 사순시기 내내 진실하고 겸손한, 자발적 기쁨의 회개의 수행에 충실하시기 바랍니다.
“사람아, 너는 먼지이니, 먼지로 돌아갈 것을 생각하여라.”(창세3,19)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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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교구 이병우 루카 신부님]
"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 주실 것이다."(마태6,4.6.18)
<사순시기의 의미!>
오늘 복음(마태6,1-6.16-18)은 사순시기의 첫 날인 재의 수요일 때마다 듣는, '자선과 기도와 단식'에 대한 말씀입니다.
오늘은 거룩한 사순시기의 시작을 알리는 '재의 수요일'입니다. 오늘 우리는 미사 중에 머리에 재를 얹는 예식을 거행합니다. 머리에 재의 얹을 때, 사제로부터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또는 "사람아, 너는 먼지이니, 먼지로 돌아갈 것을 생각하여라." 라는 말을 듣습니다.
'사순시기'는 본격적으로, 그리고 더 집중해서 부활을 준비하는 시기이고, 부활로 나아가는 시기입니다. 부활은 죽음을 절대적 전제로 하기 때문에, 더 집중해서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을 묵상하고, 그 안에 머무는 시기, 그 수난과 죽음에 동참하는 시기입니다.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은 결코 분리될 수 없는 하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순시기는 부활시기'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사순시기는 매우 은혜로운 때이고, 구원의 날입니다. 사순시기는 돌아가는 시기, 회개하는 시기, 곧 부활하는 시기이기 때문에 매우 은혜로운 때이고, 구원의 날입니다.
신앙생활이 힘든 이유는 예수님의 뜻(마음)과 내 뜻(마음)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실행한 구원 행위들(자선과 기도와 단식)을 지금 여기에서 드러내지 말고 감추라고 하십니다.
좀 베풀었다고 우쭐대지 말고, 좀 기도했다고 우쭐대지 말고, 좀 극기했다고 우쭐대지 말고, 항상 겸손하게 예수님의 완전한 죽음에로 더 가까이 나아가는 거룩한 사순시기를 잘 보내고, 기쁘게 부활을 맞이했으면 좋겠습니다.
"너희는 마음을 다하여 나에게 돌아오너라. 주 너희 하느님에게 돌아오너라. 그는 너그럽고 자비로운 이, 분노에 더디고 자애가 큰 이, 재앙을 내리다가도 후회하는 이다."(요엘2,12-13)
오늘은 '단식과 금육'을 하는 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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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히 거룩한 구속주회 한상우 바오로 신부님]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 주실 것이다.(마태 6, 6)
은총의
사순 시기를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한줌의 먼지로
돌아갈
우리들 삶입니다.
먼지의 기도가
우리의 기도입니다.
먼지를
끌어안아
구원하시는
우리의
하느님이십니다.
연연할
그 무엇도
없습니다.
왔다가
돌아가는
짧은 우리들
여정입니다.
우리 존재 자체를
만나는 시간입니다.
십자가로
대답하여 주시는
주님이십니다.
십자가로
이어지는
삶임을
깨닫습니다.
처음 왔던 곳으로
돌아가게 하는
회개입니다.
회개는 십자가로
가르쳐주시는
주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마음을 찢어
새로워지는
변화의 시간입니다.
사순(四旬)의 여정은
성장과 변화의
여정입니다.
아픔이 아픔을
일으킵니다.
마음을
다스리는
십자가의
은총입니다.
우리 영혼의 길은
십자가의 여정을
반드시 거쳐갑니다.
먼지로 돌아갈
우리를 구원하시는
주님이십니다.
기억해야 할 것을
기억하라고
사순이 있습니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야 할
은총의 때입니다.
머리 위에
재를 얹고
십자가를
바라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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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nce 2013. 10. 24
연희동성당 류상현 스테파노
■묵상글 나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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