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일곱 번째 사건 / 깜보
그 후.
김도곤, 명태, 짱구 사이에 어정쩡한 분위기가 감돌았지만 개학날은 돌아왔다.
김도곤은 오금자선생님의 영어특강과 사실상 전국대회나 다름없는 추계유도대회준비로 눈코 뜰 새 없었고, 명태는 수희와 어울리느라 정신없었다.
짱구는 짱구 나름대로 마음을 잡지 못했다.
김희예로 인해 김도곤을 의식적으로 피했다. 그러나 명태와의 사이는 종전보다 더 밀착했다.
개학날부터 김도곤은 수업 끝난 후 공설운동장 버스종점에서 2구역을 걸어가서 일정한 시간이 지난 후 학교로 되돌아왔다.
체육선생님의 기술트레이닝과 오금자선생님의 특강시간에 맞춰 학교로 되돌아오는 짓을 아무도 모르게 반복하고 있었다.
하루도 빠짐없는 일과였다.
개학 후 거의 보름가까이 지났을 때부터 명태와 수희는 묘한 기류에 휩싸였다.
방학 때, 세상에 둘로 태어난 것이 이상하리만치 붙어 다니던 수희와 명태는 아주 사소한 일에도 자주 다퉜다.
수희의 학교정문에서 집까지 집요하게 따라다녀 수희의 마음을 잡는데 성공한 두 사람사이에 이런 기류가 발생한 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사건이었다. 만나는 횟수가 늘어나면 늘어난 만큼 티격태격했다.
올챙이시절 모르는 개구리 같았다.
가령 빵집에서.
“나는 카스테라.”
그러면 명태는 ‘카스테라는 스펀지 같아서 싫다, 나는 바께뜨가 좋다.’ 이런 식이었다.
수희도 만만하지 않았다.
“나는 부드러운 것이 좋다. 딱딱한 거는 니 혼자 다 쳐 먹어라!”
“머라꼬? 가시나가 곱실곱실해야재 오데서 대드노?”
“내가 니 종이가? 나는 니 비위 못 맞춘다.”
뿐만 아니라 약속시간은 지키는 날보다 어기는 날이 더 많아졌다.
졸업반이어서 준비할 것이 많았던 수희가 올 때까지 명태는 어디서 구했는지 스톱워치를 켜 놓고 시간을 쟀다.
“34분이면 서울도 갔다 올 시간이다.”
“공부하다 깜빡했다. 미안해.”
수희가 진심으로 미안해했지만 명태의 성깔은 꼬장꼬장했다.
“공부가 중하나? 내가 중하나?”
“지금은 당연히 공부가 중요하지. 우린 졸업반이잖아?”
“알았다. 니는 벌레고 나는 꽃이네?”
“무슨 벌레? 무슨 꽃?”
“니는 공부벌레. 나는 무궁화꽃.”
명태가 자신을 무궁화 꽃이라고 표현한 것은 곧 군대 간다는 뜻이었지만 수희는 이해하지 못했다.
수희와 사이가 삐꺼덕거릴수록 명태는 짱구와 더 가까워졌다.
무더위가 막바지 기승을 부리던 8월 마지막 주, 하루 종일 시무룩한 짱구와 명태는 공설운동장 나무그늘에 앉아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니 요즘 와 그라노? 집에 무슨 일있나?”
“알거 없다.”
“우리는 깜보 아이가? 내가 모르면 니를 우찌 돕겠노?”
깜보란 학급이나 동네에서 제일 친한 친구를 이르는 은어다. 깜보가 되면 감히 건드리는 사람이 없었다. 왜냐면 항상 둘을 상대해야하는 부담 때문이었다.
한참 만에 짱구가 대답했다.
“도곤이 때문에 그런다.”
“도곤이가 와?”
“도곤이 그 자썩하고 김희예하고 어불린다고 생각하나?”
명태는 짱구의 마음을 짐작했다.
“아이다. 김희예는 요롷고 도곤이는 이렇다 아이가?”
명태가 두 손으로 콜라병과 드럼통을 그리며 대조하자 짱구는 한결 기분이 좋아졌다.
“그라몬 니는 누하고 어불린다고 생각하노?”
명태가 턱으로 짱구를 가리켰다.
짱구가 이빨을 들러냈다. 입이 귀밑에 붙을 정도였다.
“그런데 도곤이 이기 요새 이상하데이.”
“오데가? 나는 모르겄던데?”
“이기 말이다. 수업만 끝나몬 정신없이 내뺀다. 내가 한번 담판지을라캐도 기회가 없다.”
짱구의 설명을 듣고 난 명태는 다음날 김도곤을 미행하기로 약속했다.
다음날.
교문 옆의 큰 느티나무 뒤에 숨어서 김도곤이 나타나기를 기다리던 명태와 짱구는 빠른 걸음으로 걸어가는 김도곤을 살금살금 뒤따라갔다.
김도곤은 골목길에서 첫 번째 정류장으로 나와 주위를 한번 살핀 후 인도로 걸었다.
첫 번째 정류장에서 인도로 나온 김도곤을 가리키며 명태가 말했다.
“도곤이 절마 희예 그 가시나 만나러가는 거 아이가?”
“저거 학교앞에서? 벌건 대낮에 연애한다고 소문날낀데 설마?”
두 번째 정류장에서 김도곤은 문득 멈춰 섰다.
명태와 짱구도 재빠르게 우체통 뒤에 몸을 숨겼다.
김도곤은 한 번 더 주위를 살핀 후, 민첩하게 골목 안으로 들어갔다.
“절마 와 저기로 들어가재? 가시나들 학교는 반대편인데?”
명태와 짱구도 즉시 우체통 뒤에서 나와 골목입구로 달려갔다.
스파이처럼 몸을 낮추고 목을 빼 골목 안을 살피던 명태가 말했다.
“화, 귀신이 곡할 노릇이네?”
긴 골목을 빠져 나가려면 20초는 걸려야 할텐데 김도곤은 골목 안에서 감쪽같이 사라지고 없었다. 골목 안은 긴 블록담벼락이어서 고양이처럼 담을 뛰어 넘어가지 않는 한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우찌된 일이고?”
“유도고수가 되면 변신술도 한다카던데 설마?”
“하이고, 글마 몸띵이에 무신 변신술? 택도 없다.”
명태와 짱구는 골목 안을 샅샅이 뒤졌다. 쓰레기통은 물론이고 방화수드럼통까지 열어보며 흔적을 찾았지만 단서는 없었다. 길에 떨어진 신문지 조각까지 들춰 혹시 땅으로 꺼졌나? 확인했지만 김도곤의 발자국도 찾지 못했다.
낙담한 명태가 탄식했다.
“혹시 도곤이 글마 축지법 쓰는거 아일까?”
“도곤이가? 웃기는 소리 그만해라. 축지법은 산신령이나 도사가 하는기다.”
명태와 짱구는 골목 끝으로 달려가서 여러 갈래로 나눠진 골목을 죄다 뒤졌다.
숨이 턱에 찬 짱구가 말했다.
“니 스톱워치 있재?”
명태가 주머니에서 스톱워치를 꺼냈다.
김도곤이 사라진 골목으로 되돌아 와서 짱구가 뛸 자세를 취한 후 말했다.
“내가 골목 끝까지 뛸라니까 니는 스톱워치 재라!”
세 번이나 스톱워치로 시간을 쟀지만 제일 단시간 주파가 17초였다.
명태도 뛰었지만 명태의 기록은 짱구보다 못했다.
“도곤이는 3초 만에 사라졌는데 우리는 17초라? 이기 무신 변고재?”
명태와 짱구는 김도곤의 골목 안 실종사건에 실망과 낙담으로 지쳤다. 그러나 솟구치는 의문을 주체할 수 없었다.
김도곤의 골목 안 실종을 파헤쳐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불타올랐다.
“한번 실수는 병가상사다. 내일은 치밀한 작전으로 도곤이 일마 체포하자!”
짱구가 핀잔했다.
“도곤이가 죄지었나? 체포는 말 안된다.”
“그럼 흑백을 가리자!”
“흑백도 말 안된다.”
“그럼 머꼬?”
짱구가 듬직하게 말했다.
“일망타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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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여고생들과 만남이후로 세친구들의 생각이 제미있슴니다
독자에게
희해 여학생과 만나는것이 명태
와짱구의 생각대로 만나러 가는것이 맞을까 궁금해집니다
잘보았슴니다 감사합니다 행복한 오후시간되세요
고맙습니다.
이제 몇회 안남았네요.
또 한동안 젠틀맨님 못만난다 생각하니 눈물이 앞을 가립니다. 큭큭.
허지만 오늘밤은 편안하세요
학창시절 만남을 잘그려주신 작가님구 명태
오늘도 단짝친구
김도곤에 얽인 이야기 잘보았슴니다.
감사합니다.
김도곤 멋진 학생입니다.
끝까지 사랑해주세요.
편한 밤되시구요
좋은글 보면서
학교 시절을 생각하며
입가에 미소 를 지어 봅니다.
제미있게 잘보았슴니다.
감사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신선했던 시절이 고교시절이었던 것 같습니다
다시는 돌아가지 못할 날들이지만 기억엔 아직도 생생합니다
좋은 밤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