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린 크리스마스
최휘
크리스마스이브였고 늦은 밤이었다 쿼바디스를 보다가 기독교 표지(標識)가 물고기라는 걸 알았다 냉장고를 열다가 느닷없이 생선을 굽기 시작했다 나는 밤늦게 생선이나 구워 먹는 어둔 사람
프라이팬 위에 붉은 열갱이와 임연수가 지글거리는 동안 친구에게 사진을 전송했다 미쳤냐? 크리스마스이브에 비린내 나게 뭔 생선이냐? 자욱한 연기 속에서 열갱이는 담백하게 임연수는 구수하게 익어 갔다
이게 무슨 냄새야 숨을 못 쉬겠네 어머니가 방에서 나오신다 어둑한 연기 속에서 나타난 어머니가 예수인 줄 알고 깜짝 놀랐다 예수는 문이란 문을 다 열었다 비린내와 연기들이 뭉글뭉글 세상 밖으로 퍼져 나갔다
비린내는 예수의 탄생과 많이 어울렸다 온 세상에 퍼지는 비릿하고 자욱한 것들 그렇다 예수께서 이 세상에 오신 뜻은 생선 굽는 데 있었다 숨 막히는 세상 숨 쉬게 해주려고 예수는 문을 열어 세상 모두에게 비린 은총을 내리신 것이다
늦은 밤 담백하고 구수한 것을 맛본 나는 예수의 은총을 받은 사람일까 진정 생선 굽는 일에는 예수 탄생의 비의가 숨어 있는 걸까
최휘
경기도 이천 출생. 2012년 《시로 여는 세상》으로 등단.
시집 『야비해지거나 쓸모없어지거나』 『난, 여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