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들어라! 난 절대 너희와, 자신의 욕망만 이루려던 미레이룬에게 이것을 넘겨 줄 수 없다. 그리고 지금부터 날 가로막는 자는 소멸을 각오해야 할것이다!"
분노를 폭발시키며 살의를 품는 소년의 말에 사자들은 잠시 움찔했으나, 곧바로 자세를 잡고는 낫을 앞으로 천천히 내렸다. 이런 사자들의 모습을 본 소년은 마치 살아있는 어떤이에게 말하듯 자신이 꼭 쥐고 있던 검에게 속삭였다.
"아프겠지만, 조금만 참아줘. 널 지키기 위해서니까.. 날 도와줄 수 있겠지?"
소년의 말에 반응이라도 하듯 검은 은은한 은빛을 어둠에 뿌렸다. 검의 은은한 은빛을 잠시 바라보던 소년이 나직히 웃으며 검을 잡고 자세를 잡았다.
"그대 사자들이 택한길은 역시 소멸인가?
......
그대들이 정 그것을 원한다면 나도 어쩔 수 없지.... 옛 그대들의 충성심을 생각해서 마지막 기회를 주었건만...."
소년은 고개를 가로 저으며 자세를 다시 잡았다. 그런 소년의 모습에 십대 사자들도 긴장을 하는듯 낫을 다시 고쳐 잡았다. 잠시 어둔 공간이 침묵에 싸였다. 소년과 사자들의 시선만이 교차되고 있었다. 가장 중앙에 있던 사자가 소년에게 말을 하며 침묵은 깨졌다.
"네리안님의 생각이 그러시다면, 저희 10대 사자들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습니다! 무력으로라도 t.o.m을 찾아 가겠습니다!"
이것은 소년의 목숨과 t.o.m 이라 불린 것을 함께 가져 가겠다는 선전포고와 같은 것이었다. 그러나 나지막히 웃는 소년의 웃음소리에서 그 선전포고는 소용이 없어져버렸다. 맑은 쇠음들이 어둠을 울렸다. 소년의 은은한 은빛을 뿌리는 검과, 10대 사자들의 낫이 교차되었다. 10대 1의 불리한 싸움임에도 불구하고 소년은 전혀 밀림의 기색이 없었다. 철저하게 짜여진 공격이었으나, 소년은 그 짜여진 것 조차 모두 알고 있는 듯 부드럽게 피하고, 막아냈다. 9번째 사자의 공격도 허공만을 가르고 쓰러지자 소년은 쓰러진 10대 사자들의 뒤쪽으로 가볍게 내려 앉았다. 10명의 사자들 중 단 한사람, 가장 중앙에 서있던 자만이 가까스로 서있을 뿐이었다.
"시엔. 너도 알고있지 않나?
너희들을 이정도로 만들어 준건 나였다는 걸 말야. 너희들의 공격방식, 대열 모든것은 내가 너희에게 가르쳐 준것, 그러니 나에게 통할 리가 없지 않나?
아니면, 나에게 마지막 인사라도 하는 것인가?"
이 말에 침울한 표정을 짓고 듣던 시엔이라 불린 사자는 이내 슬픈듯 눈을 감아버렸다. 그러나 다시 정신을 가다듬으려는듯 고개를 한번 휘저은 뒤 그가 입을 열었다.
"그건 저희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도자의 명령만을 듣고, 그것을 목숨을 바쳐 지키는 것이 10대 사자들, 저희의 중책이라 가르쳐 주 신것도 네리안님 이십니다. 그리고, 이것이 그 무엇보다도 우선시 되어야 한다고 하신것 또한 네리안님 이신걸 아시지 않습니까?
현재 저희의 지도자는 미레이룬 님. 저희가 10대 사자인 이상 그 분의 명령에 따라야 하기에 이렇게 네리안님께 칼날까지 들이대야 하 는 것입니다."
슬픈이 서려있는 시엔의 말에 네리안 또한 슬픈듯 고개를 돌려버렸다. 고개를 돌린 네리안이 중얼거리듯 말했다.
"시엔... 내 처음이자 마지막 부탁을 들어 줄 수 없을까?
들어 주느냐 그렇지 않느냐는 너의 판단에 맡기도록 하고 말야."
잠시 생각하던 시엔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게 네리안은 스승이자, 친구이자, 지도자 였었기 때문이다. 비록 주인과 하인이라는 인연으로 만났지만, 네리안에게서 받은 모든것은 주인과 하인이라는 관계를 떠난 것이었다. 그렇기에 시엔은 네리안의 부탁을 거절할 수 없었다.
"고맙군. 허락해주다니.. 그럼... 나와 세이루나를 저 빛의 세계로 보내줄 수는 없겠나?"
순간 시엔의 눈이 커졌다. 어둠에 세계에 존재하는 이가 빛의 세계로 간다는 건 절대 있을 수도 없는, 있어서도 안될 일이었기 때문이다. 설령 간다해도 그곳에서 살아 갈 수 있을 지는 미지수였다. 그만큼 위험하기에, 또 목숨을 걸어야 할 일이기에 시엔의 반응은 당연한 것이었다. 그리고 세이루나와 함께라니... 그말은 t.o.m 과 함께 가겠다는 뜻이었다.
"무..무슨 말씀이십니까! 빛의 세계라니... 그곳이 어떤 곳인지 잘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그리고, 저에겐 t.o.m 을 찾아 오라는 미레이룬 님의 명이 계셨습니다!"
당황한듯 시엔의 목소리를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러나 네리안은 당연하다는 듯한 눈빛으로 시엔을 바라봤다. 그런 네리안의 눈빛에 다시한번 당황스러움을 금치 못하던 시엔은 다시 마음을 가다듬곤 작게 한숨을 쉬며 네리안에게 말했다.
"휴..
그 고집스런 성격은 여전하시군요, 네리안님. 하긴, 장로회에서 조차 손을 든 고집이시니.... 제가 꺾을 수 있을리 없겠습니다만.."
네리안의 눈빛에 졌다는듯 시엔은 어깨를 가볍게 으쓱하며 말했다. 네리안은 살짝 미소지으며 그의 말을 받았다.
"그래, 어떻할 건가? 내 부탁을 들어 주겠는가? 아니면 계속 나와 맞서겠나? 난 되도록이면 전자 쪽이길 바라는데."
그것은 협박이었다. 은은한 살기와 함께 전해지는 냉기에 시엔은 약간 움츠렸으나, 곧 네리안에게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그 한마디가
자신의 목숨과 지금 쓰러져 있는 나머지 사자들의 목숨까지도 좌우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시엔은 마치 그것과 상관없는 듯 당당히 그 한마디를 꺼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