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 일이다. 어머니 집의 다용도실 하수도 배관이 깨져서 수리가 필요했다. 인터넷을 검색해 괜찮아 보이는 업체를 찾아 공사를 맡기고 적지 않은 비용을 지급했다. 그런데 얼마 되지 않아 물이 안 빠지기에 업체에 다시 연락해 보수를 부탁했다.
아내가 어머니 집에서 기다리는데, 약속 시간이 돼도 업체 사람이 오질 않았다. 전화했더니 "곧 가겠습니다."라고 말하고는 여전히 감감무소식이었다. 업체 사무실로 전화하니 다른 사람이 받아 "지금 가는 중입니다."라는 말을 하고 역시나 오지 않았다. 그 후에는 우리 부부의 전화를 아예 받지 않고 다른 사람의 전화기로 전화하자 "네, 곧 갈 겁니다."라는 말만 반복하는 것이었다.
황당하고 괘씸했지만 다시 연락하진 않았다. 그런 사람들과 더 이상 말을 나누기 싫었고 어머니 집에 들이고 싶지도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들에 대한 분노는 측은지심으로 바뀌었다. 거짓말과 회피로 상황을 모면하며 살아가는 삶은 얼마나 삭막하고 불안할까. 과연 이런 마음으로 오랫동안 일할 수 있을까.
이와 반대로 생각지도 못한 도움을 받은 경험도 있다. 20여 년 전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일할 때였다. 간단한 검사 결과를 보기 위해서 점심시간에 가까운 병원에 들렀다. 평소 사람이 많지 않던 대기실이 그날따라 가득 차 있었다. 조정 기일을 잡아 놓은 터라 시간이 지날수록 초조해졌다. 휴대 전화를 가져가지 않아 병원 전화로 주심 판사에게 늦을지도 모른다고 연락했다. 이후로 계속 늦어져서 사무실로 다시 전화하려는 찰나, 한 간호사가 대기자들 앞에 나서서 이렇게 말하는 것 아닌가.
"이분이 급한 일이 있는 것 같습니다. 검사 결과만 보면 되니까 1분도 안 걸릴 거예요. 양보해 주실 수 있을까요?" 대기자들이 흔쾌히 동의해 준 덕분에 검사 결과를 확인하고 조정 시간에 늦지 않게 갈 수 있었다.
간호사의 순간적인 행동에는 깊은 의미가 있었다. 그는 그냥 있어도 됐지만 스스로 나서서 모두에게 좋은 방향으로 문제를 해결했다. "1분도 안 걸릴 거예요."라는 말이 백미였다. 이는 충분한 상황 설명이 됐고 사람들을 설득했다. 나는 그때 일의 진정한 의미를 배웠다. 자기 앞에 벌어진 문제를 해결을 하려는 적극성과 사람들의 선의를 이끌어내는 것. 그 후 법관이나 변호사 일을 하면서 종종 이 장면을 생각했다. 이렇게 책임감을 갖고 일하면 주위가 얼마나 풍성해지겠는가.
하수관 수리업자나 간호사 모두 일로 생계를 해결한다는 점에서는 같지만, 두 사람이 일하며 경험하는 세계는 완전히 다를 것이다. 수리업자는 책임을 회피했고, 간호사는 자기 책임을 기꺼이 넓혔다. 아마도 그들은 지금쯤 차원이 다른 삶을 살고 있을 것이다.
얼마 전 신문을 보다가 깜짝 놀랐다. 국제적인 조사 기관이 세계 각국 국민의 가치관을 조사했는데, 한국인의 84퍼센트가 직업 선택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로 '돈과 안정성'을 꼽았다는 것이다. 한국보다 이 항목의 비율이 높은 나라는 우리나라 소득 3분의 1에도 못 미치는 에티오피아, 이집트, 루마니아에 불과했다. 또한 동일한 조사에서 '보람과 동료'를 택한 비율은 16퍼센트였는데 이는 일본 50퍼센트, 대만 35퍼센트, 심지어 중국의 26퍼센트 보다도 낮았다. 스웨덴은 그 비율이 무려 76퍼센트였다.
이를 보면 우리 사회가 얼마나 물질 중심적이고 불안도가 높은지 알 수 있다. 이런 선택은 결코 보편적인 것이 아니며, 우리가 집단 신경증을 겪는 것과 같은 위험한 상황에 처해 있음을 알려준다.
이런 사회에서 우리는 일에 대해 보다 용기 있게 행동할 필요가 있다. 물론 생계를 위해 일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목표를 조금 더 넓힐 수 있지 않을까? 돈을 넘어서는 목적이나 보람 없이 일을 계속한다면 무기력에 빠지기 쉬울 것이다.
평생 사람들의 무감각한 삶을 흔들어 깨우는 소설을 썼던 조지 엘리엇의 말이 떠오른다. "세상의 선은 대단한 일이 아니라 평범하고 일상적인 행위를 통해 자라난다. 우리가 그렇게 나쁜 일을 겪지 않을 수 있는 이유는 드러나지 않은 삶을 충실하게 살아 낸 사람들 덕분이고, 나머지 절반은 아무도 찾지 않는 무덤에 묻힌 사람들 덕분이다." 일상에서 자기 일을 묵묵히 하는 사람들이 세상을 지탱한다는 말이다. 우리가 하는 일은 세상에 근본적인 영향을 미친다.
우리는 매일 똑같은 밥을 먹는다. 하지만 매 끼니 밥은 신선해야 한다. 매일 하는 일도 매일 먹는 밥처럼 신선하게 마주하면 어떨까. '진정으로 뛰어난 사람은 흔해빠진 일도 남다르게 처리하는 사람'이라는 부커 워싱턴의 말 처럼.
윤재윤|변호사
봄의 도착
헬렌 셰르베크 ‘회복기’, 1888년.
푸른 눈의 아이가 버들가지로 엮은 커다란 나무 의자에 앉아 있다. 손에 쥔 머그컵 안에는 새순 돋은 나뭇가지 하나가 꽂혀 있다. 아이의 몸은 하얀 이불 천으로 감싸져 있고, 머리카락은 헝클어져 있다. 잠자리에서 막 일어난 걸까. 제목을 보니 아이는 지금 병에서 회복 중이다.
이 그림을 그린 헬렌 셰르베크는 19세기 핀란드를 대표하는 여성 화가다. 가난한 환경에서 자랐지만 뛰어난 재능 덕에 열한 살에 장학금을 받고 핀란드 미술아카데미에 입학해 정식으로 미술을 배웠다. 이 그림은 26세 때 그린 것으로 당시 그녀는 영국 남서부의 콘월 지역에서 겨울을 보내고 있었다. 콘월은 아름다운 해변과 따뜻한 햇살로 유명해 예로부터 화가들에게 인기 있는 여행지였다. 셰르베크는 긴 겨울이 지나고 봄이 시작되는 시기에 이 그림을 그렸다. 그림 속 모델은 인근 학교에 다니는 어린 학생이다. 짧은 머리와 짙은 색 옷 때문에 남자아이로 보이지만 실은 여자아이다. 학교 선생님이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활기 넘치는 아이였지만 화가는 그림 의도에 맞게 아픈 아이의 모습으로 표현했다. 창으로 들어오는 밝은 햇빛과 나뭇가지의 새순은 봄의 상징으로, 아이가 다시 건강해질 것을 암시한다.
사실 이 그림에는 화가의 아픈 경험이 투영돼 있다. 셰르베크는 네 살 때 계단에서 넘어져 심각한 부상을 당했지만 가난 때문에 제때 치료받지 못해 불편한 다리로 살았고, 이것이 평생 콤플렉스였다. 또한 이 그림을 그릴 당시, 파혼의 상처에서 회복 중이었다. 그러니까 몸과 마음의 상처에서 회복되고픈 화가의 의지를 담은 그림인 것이다.
혹독한 겨울을 끝내고 봄을 맞고 싶은 것이 어디 화가 혼자만의 바람일까. 봄의 도착과 희망을 전하는 이 그림은 제작된 그해 파리 살롱전에 출품돼 호평을 받았고, 핀란드에서 전시된 후 국립 아테네움 미술관에 소장되었다. 가난과 장애, 사랑의 상처를 묵묵히 견뎌낸 화가에겐 봄이 주는 최고의 선물이었을 테다.
이은화 미술평론가
Cornwall's north coast콘월의 북쪽 해안
Helene Schjerfbeck헬렌 셰르베크(1862-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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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안녕 하세요.............망실봉님
감동방에 좋은 글 담아 주셔서 고맙습니다
따스한 햇살 처럼...포근한 하루 보내세요
오늘도 수고 많으셨어요^^
반갑습니다 ~
핑크하트 님 !
고운 걸음주셔서
감사합니다 ~
서서히 새봄이 다가오는
환절기, 늘 평강하시길
소망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