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서 한때에만 취할 수 있는 잠. 잠자는 존재는 너무나 연약해 보여서 우리의 양팔마저 열어젖힌다."
최근 잠에 관한 시를 쓰느라 사전에서 관련된 낱말들을 살펴보았다. 꾀잠, 덧잠, 쇠잠, 꽃잠, 그루잠, 노루잠 등 정말 아름답고 귀여운 형태의 잠들이 있었다. 그중에서도 '나비잠'이라는 말을 발견하고는 깜짝 놀랐다. 이처럼 순한 잠이 있다니! 너무 우아하고 순정하고 단정해서, 정말이지 아기라도 깰까봐 호흡을 고르며 낱말을 바라보았다.
간혹, 이처럼 빛나는 말을 만날 때가 있다. 어떤 낱말은 그 자체가 한 편의 시라서 단어만으로 사랑의 장면을 열어젖힌다. 나는 이 말을 보자마자 볕이 쏟아지는 봄날의 햇빛이 떠올랐다. 뒤이어 어떤 장면이 예고도 없이 마음속에서 불쑥 일어섰다.
3월의 햇살이 창가에 고요하게 내리고 순면으로 이뤄진 요와 이불이 보인다. 아주 부드러운 촉감의 얇은 침구류. 그 섬유 속에 아이는 포근하게 누워있다. 말랑말랑한 종아리와 발그레한 볼이 보이고 오동통한 양팔을 위로 펼친 채 아기는 민들레처럼 숨 쉬고 있다. 그 숨은 얇디얇은 미농지 한 장도 밀지 못할 만큼 작고 여리다.
이 모습은 마치 '잠의 이데아'처럼 보인다. 우리가 꿈꾸는 가장 완벽한 숙면의 형태와 어린 시절의 안온감이 나비잠이라는 말 속에 녹아있다. 더욱이 이 잠은 일시적이고 한시적이라는 점에서 아름답다. 오직 갓난아이만이 취할 수 있는 잠이어서 나이가 들면 두 번 다시 가질 수 없다. 누구에게나 이런 빛나는 한때가 있다. 인생에서 가장 무구하고 취약한 상태로 세상마저 잊은 채 잠에 빠져들던 때 ….
그런데 왜 잠 앞에 나비를 붙였을까. 굳이 《장자》의 호접지몽(胡蝶之夢)을 말하지 않아도 나비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잠과 환상, 평화의 이미지에 곧잘 연결되고는 한다. 나는 '잠과 나비'의 친연성을 생각해 보았다.
첫째, 나비는 우리가 꾸는 꿈과 같이 그 궤적을 예측하기 어렵게 날아다닌다. 둘째, 나비와 잠은 마치 코끼리 귀처럼 둥글고 뭉툭하다. 이 둘은 너무나도 유해서 상상만 해도 어깨가 둥글어질 것만 같다. 또한 나비와 잠에는 모두 양면(兩面)이 있다. 나비에게는 날개의 앞뒤가, 사람에게는 세계의 이편과 저편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리운 이들을 저편에서 만난다. 현실과 다른 또 하나의 세상, 바로 꿈 말이다. 나비의 날개처럼 부드럽게 펼쳐진 채로 잠이 들어 사랑하는 얼굴들을 꿈에서 다시 만난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평생 자신의 얼굴을 육안으로 직접 볼 수 없다. 기껏해야 거울에 비춰 간접적으로 볼 뿐이다. 그런데 이마저도 허용되지 않는 얼굴이 있다. 그건 바로 잠들었을 때의 얼굴이다. 어느 누구도 자신의 잠든 얼굴을 볼 수 없다. 잠을 잘 때 어떤 모습으로 긴장이 풀어지는지 스스로는 알 수 없다.
철학자 알랭 핑켈크로트는 '수면은 얼굴을 정지시킨다(《사랑의 지혜》, 동문선, 1998)'라고 말한 바 있다. 잠든 이의 얼굴은 어떠한 의도나 목적도 없이 풀어진다. 이 중심을 잃은, 무해한 얼굴은 그 사람의 취약성과 연약성을 곧장 열어버린다. 그래서 사랑하는 이들은 함께 잔다. 사랑하는 사람 곁에서 자신의 가장 연약한 얼굴을 풀어놓는 것이다.
사실 나비잠이라는 말을 보고 감동했던 결정적인 이유는 이 말의 밑바탕에 잠든 아기의 잠을 지키는 '어른의 시선'이 나란히 놓여있기 때문이다. 나의 연약함을 누군가가 바라봐주고, 사랑해주고, 지켜준다는 안온한 믿음 속에서 우리는 가끔 어른이 되어서도 나비잠을 잘 때가 있다. 아기의 얼굴로 꿈꾸곤 한다.
어느 봄, 새소리가 참 청아했다. 그 소리를 들으며 다시 눈을 꼭 감았다. 그날 나는 아주 맑은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나는 당신이 냉이를 캐고 달래를 캐고 해쑥을 캐는 걸 넙죽넙죽 받으면서 뒤를 졸졸 따라다녔다. 코끝에서 들풀 향기가 일렁거렸다. 부드러운 안온감이 온몸에 퍼졌다. 그러다 당신이 무릎을 슬쩍 펼치고 일어나 조용히 오솔길로 가자고 했다. 왼편에는 새파란 호수가 펼쳐지고 오른편으로는 빌딩보다 높은 은행나무숲이 있었다.
샛노란 은행잎이 마구 떨어졌는데 바로 옆에는 거대한 침엽수림이 있었다. 우리 중 누구도 아름답다고 말하지 않았다. 우리는 그저 사박사박 흙길을 걸었다. 그러다 나는 체구가 작아 진 걸 알아차렸다. 내가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키가 줄었고 또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손발이 작아졌다. 그렇게 나는 아기가 되고 있었다. 그런데도 걱정은 되지 않았다. 하품을 하며 노곤한 눈으로 당신을 바라볼 뿐이었다.
눈을 뜨자 방 안의 벽지가 보였다. 당신이 없는 세계로 돌아온 것이다. 그리고 나는 다시 눈을 꼭 감았다. 너무 보고 싶은 사람을 막상 만나면 보고 싶었다는 사실도 잊고 마냥 좋은 거구나. 그렇게 시간을 거슬러 다시 얼굴을 보는 일, 아이가 되는 일, 걷는 일, 사랑하는 일, 그 모든 일이 내 안에서 계속되고 있었다. 그리고 그날 아침 눈을 떴을 때 나는 양팔을 펼친 채 누군가를 끌어안듯 누워있었다. 그것이 바로 나비잠이라는 걸 알아차렸다.
글 고명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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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좋은글 감사 합니다
반갑습니다
동트는아침 님 !
고운 걸음주셔서
감사합니다 ~
서서히 새봄이 다가오는
환절기, 늘 평강하시길
소망합니다 ~^^
감사합니다.
반갑습니다
목자 님 !
고운 걸음주셔서
감사합니다 ~
희망 가득한 새봄
맞이하시고 행운과
건승을 기원합니다
~^^
안녕 하세요..........망실봉님
2월 한 달 함께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2월 마무리 잘 하시고 행복한 3월 맞이 하세요
화요일 반갑게 뵐께요^^
고운 방문 걸음주셔서
감사합니다 ~
핑크하트 님 !
희망 가득한 새봄 맞이하시고
기쁨이 배가 되는 즐건 연휴
보내시길 소망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