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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크리스천 영성학교 원문보기 글쓴이: 운영자(고집사)
게으르면 평생 고생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부유하게 사는 틀림없는 원칙은 부지런한 것이다. 일자리가 부족하고 먹고 살기가 마땅치 않았던 시대라 할지라도 부지런한 사람이 배를 곯으며 굶어 죽는 일은 없었다. 하나님은 자신이 만든 세상에 충분히 먹고 살만한 자연 환경을 만들어 놓으시고 부지런한 노동을 통해 이를 얻도록 해 놓으셨다. 그러므로 새나 들짐승을 포함한 모든 생물들은 이 원칙에 합당하게 생활하여 생존하며 종족을 번창시키며 수천 대를 내려오며 잘 살고 있다. 사람들도 이 원칙에 예외는 아니다. 게으르지 않고 부지런하게 살려고 애쓰는 사람에게 빈곤은 없다. 그러나 일하기 싫어하고 게으른 성품을 버리지 못한다면 입에 거미줄을 치고 살아야 할 것이다.
수십 년 전만 올라가도 우리나라는 누구나 먹고 살기 힘들었다. 6.25전쟁 후에 피폐해진 산업으로 일할 곳이 변변치 않아 대학을 졸업한 인텔리조차도 구직판을 가슴에 걸어놓고 고용주를 기다리곤 했다. 새벽이면 거지들이 때 국물이 졸졸 흐르는 얼굴에 깡통을 하나씩 들고는 동네를 돌아다니는 모습이 낯설지 않은 풍경이었다. 그 당시에는 게을러서 일을 하지 않는다면 곧 굶어 죽는 것을 의미했다. 그렇기에 거지들도 다른 거지들이 오기 전에 먼저 찾아가 손을 내밀어야 하기에 서둘러 잠자리에서 일어나야 했다. 그렇지만 지금의 우리나라는 세계 12위의 경제대국이며 국민소득 2만 달러를 내다보는 잘 사는 나라이다. 그러기에 더욱 게으른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나이 40이 다가오도록 부모의 곁을 떠나지 않은 사람들이 그 좋은 예이다. 요즘처럼 괜찮은 직장을 얻는 것이 쉽지 않은 때라, 고무원이나 고시공부를 한답시고 부모에게 학비와 용돈을 타서 고시촌에 들어가서 30대 중반이 넘도록 부모 속을 썩이는 청년들이 있다. 이들이 조금만 더 하면 합격의 영광을 쥐어질 만한 성적권에 있다면 그나마 위안이 될 터이지만, 아예 합격과는 멀어진 처지이지만 회사에 취업하기도 몸도 마음도 추스르기가 쉽지 않아 세상에 나오기가 두려워 고시촌이나 독서실의 쪽방에서 나오지 않고 있다. 그들은 이미 성인이 되었지만 부모의 치마폭에서 벗어나길 싫어하는 정형적인 게으른 모습이다. 이들은 시간이 흘러 부모마저 이 세상을 떠난다면 어떻게 살 것인지, 이미 찬바람이 스산한 그들의 앞날이 훤하게 보인다.
이태백이 아니라 삼태백(삼십대 태반이 백수)이 울고 있는 신조어가 난무하는 가운데, 명퇴나 해고로 직장을 나오고 자영업도 못하는 40대를 넘어선 이들의 모습은 언론에서도 이미 뉴스거리가 안 된다. 이들은 대부분 가족을 거느린 가장인데다, 그 나이라면 사교육비를 포함한 자녀들의 학비가 엄청난 시기라 일할 곳이 없다는 것은 온 가족이 살을 에는 빈곤층으로 곤두박질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지만 현실은 냉혹하고 이미 자신감은 사라진지 오래이다. 직장 다니면서 저축한 돈은 없고, 겨우 장만한 집을 담보로 대출을 얻어 자영업을 하자니 이미 거덜 난 친구들의 손사래가 앞을 막는다. 차라리 굶더라도 집이라도 있다면 얼어 죽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겨우 알음알음으로 다녔던 곳은 연고판매를 떠미는 판매회사였지만, 친구나 친척을 찾아가 사정해야 하는 일이 적성에 맞지 않아서 판매가 시원치 않아 이 회사도 오래 다니지 못하고 그만두었다. 그래서 남은 것은 참담한 상처와 무기력해진 자신감뿐이다. 그래서 허구헌날 낮에는 침대 속에서 빠져 나오지 않고, 밤에는 TV로 영화를 보거나 컴퓨터 고스톱으로 날을 새는 박쥐족으로 변해 버렸다. 남편을 바라보다 못한 아내는 허드렛일이라도 해야 한다며 식당을 다니며 가장이 해야 할 일을 대신하고 있다. 직장이 없는 중년남자들의 하소연은 일을 하려고 해도 받아줄 데가 없다는 것이다. 물론 공사장에서 노동일이라도 할 수 있겠지만 평생 해보지 않은 일이라 엄두도 나지 않고, 이 일마저 새벽 4시에 일어나 인력시장에 나가서 기다려야 하는 고된 일이라 이미 게을러진 몸은 말을 듣지 않는다. 그래서 아내의 눈치를 보고 자존심을 구겨가며 하루하루를 지탱하는 쪽을 택하고 있다. 가장인 남편이 직업이 없다면, 이 가정을 살얼음판을 걷듯 위태하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리고 이러한 시간이 계속되면 자연스레 가정불화로 인한 싸움이 이어지고 가정이 깨지며 가족들이 뿔뿔이 흩어지는 일연의 사건으로 일단락된다. 물론 버려진 가장은 물론이고 남은 가족들이라고 빈곤층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가장은 노숙자가 되거나 쪽방을 전전하면서 알코올중독자로 망가진 인생을 원망하며 죽음을 기다리게 된다. 이렇게까지 험악한 인생으로 번지지 않더라도 게으른 삶을 선택한 대가는 가혹하기 그지없다. 차라리 공사판에 다니며 눈물과 땀에 젖은 지폐를 줍는 것이 평안한 영혼을 위해 행복하지 않겠는가? 그렇지만 안타까운 것은, 인생은 연습이 없다는 것이다. 마땅한 직업이 없고 받아줄만한 직장이 없다고 해도 숨이 턱턱 막히는 막노동과 길거리를 전전하는 방문판매라도 이를 악물고 했다면 이렇게 까지 삶이 후회스럽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겠지만, 게으른 삶을 선택한 어리석고 미련한 책임에서 도망칠 수가 없다.
게으른 사람은 위태롭다.
게으른 사람이 집에만 붙어 있다면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다. 아내가 일터로 나가 비워둔 주부의 역할을 대신해서 취사에 세탁, 청소까지 말끔하게 해놓는다면 아내에게 귀여움(?)을 받는 일까지 생길지도 모를 일이며, 기다리는 동안 괜찮은 직장을 소개받거나 찾아내서 다시 번듯한 일터로 나가는 기회도 잡게 될 것이다. 그렇지만 집안에서의 자신의 위치를 잘 알고 있기에 편하게 돈 벌수 있는 일을 찾아다니게 된다. 세상에는 땀 흘리지 않고 돈을 잘 버는 일은 없지만, 이들은 그런 일을 찾아 헤매다 찾아낸 것이 소위 복권이나 성인 게임, 도박 등이다. 이런 곳에서 남은 재산을 탕진하거나 주변에서 돈을 빌려 구렁텅이로 달려가는 막차를 타게 된다. 게으름으로 인한 무능력을 잘 알고 있기에 일확천금을 얻을 수 있다는 유혹에 쉽게 빠지게 되는 것이다.
번듯한 직장에 이름을 걸고 다니고 있다면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렇지만 게으른 사람이 그 천성을 버리지 못한다면 경영진이나 상사에게 좋은 평판을 받을 리가 없다. 그렇잖아도 일하겠다는 사람이 넘쳐나는 데 굳이 게으른 사람까지 먹여 살리고 싶지 않다. 지각을 밥 먹듯이 하며 칼 퇴근은 인생의 좌우명으로 여기고, 잔업이나 특근을 해야 할 처지가 되면 갑자기(?) 다급한 일이 생기곤 한다. 외근이라도 나가면 행방이 묘연하고, 밤새도록 마신 술에 숙취가 가시지 않아 책상에 앉아있어도 업무에 집중하지 못하며 졸기 일쑤이다. 인원을 삭감해야 하는 회사의 입장이라면 해고 1순위는 따 놓은 당상이다. 게으른 사람이 자영업을 하더라도 수익이 높을 리가 없다. 아침 늦게 일어나 침대에서 뒤척이다 점심시간이 다 되어서야 출근해서 직원들 얼굴이나 한 번 보고, PC방에서 고스톱 게임이나 즐기거나 친구들에게 여기저기 전화해서 오늘 저녁 신나게 놀 궁리만 하고 있는 데 무슨 수익이 나겠는가? 앞이 안 보이는 불황에 피 말리는 경쟁에 적자보지 않으면 다행스런 현실에 사업에 관심조차 두고 있지 않으니 얼마 안가 문을 닫지 않는다면 도리어 이상한 일이 것이다. 아무리 게으르다 할지라도 자신의 이러한 사정을 모를 리가 없다. 그래서 이들도 마음 한 구석에는 불안하고 조급한 마음이 도사리고 있다. 그래서 이들은 한탕에 큰 재산을 모으는 일이 없나 해서 늘 귀를 쫑긋 세우고 있다. 이들을 먹잇감으로 여기는 유혹들은 도처에 흔하다. 일을 하면서도 상사 모르게 책상에 켜놓은 컴퓨터나 휴대폰으로 정보를 교환하고 거래를 할 수 있는 주식 투자이다. 특히 주변에서 주식으로 입이 떡 벌어지는 돈을 벌었다는 소식이 들리면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그들은 조급하기에 오랜 시간과 합리적인 방법의 투자를 선호하는 것이 아니라, 단기간에 돈을 버는 데이트레이딩이나 순식간에 돈을 버는 위험한 분야에 손을 댄다. 자신도 잘 모르는 해외펀드, 제3시장 주식, 선물, 옵션 같은 우주 위험한 분야에 뛰어든다. 이러한 곳에는 언제나 지금밖에 기회가 없으며 한밑천 잡을 만한 엄청난 고수익이라는 달콤한 유혹으로 속삭이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이 분야에서 잔뼈가 굵은 고수도 장기적으로 일정한 수익률을 올리기 어려운데, 경험과 지식이 없는 아마추어는 순식간에 엄청난 돈을 털어 넣게 된다. 그 뿐만이 아니다. 잃어버린 돈이 아까워 신용으로 돈을 빌리거나 대출을 얻어 결국은 집을 날리며 주변사람의 소중한 돈과 사채를 빌려 도저히 갚을 수 없는 악성부채를 뒤집어쓰고서야 끝나게 된다. 돈만 잃는 것이 아니다. 온통 주식투자에 정신이 팔려 있는데 월급을 주는 직장은 없다. 이미 해고를 당하거나 퇴직금이나 명퇴금이 아쉬워 벌써 사표를 쓰고 받아 챙기고 나와 모두 탕진해버린 뒤일 것이다. 이처럼 게으른 성품은 위태하기 짝이 없다. 일확천금을 속삭이는 사기꾼의 유혹이나 무모하고 위험한 투기의 희생양이 되기 때문이다.
맹목적인 믿음과 지혜를 구별하지 못하는 크리스천
살후 3:10
우리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도 너희에게 명하기를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 하였더니
초대교회 시절에 데살로니가 교회에는 종말이 곧 들이닥칠 것이라고 생각해서 교회 안에서 생활하며 기도에만 열중하는 이들이 있었다. 이들은 자신들의 양식조차도 교회나 교인들의 신세를 졌다. 아마 기도하는 일이 일하는 것보다 더운 중요하고 신성한 일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바울은 이에 대해 일하지 않는 자는 굶어죽으라는 혹독한 말을 삼가지 않았다. 안타깝게도 현대를 사는 우리들도 교회주변에서 그러한 부류의 사람들을 적지 않게 만난다. 새벽기도를 다닌다고 늘 잠이 부족해서 회사에 오기만 하면 꾸벅꾸벅 조는 일들이 있다. 수요예배나 금요철야예배에 참석해야 한다고 하면서 일이 밀려 있어도 밀어두거나 동료에게 맡긴 채 무슨 일이 있더라도 직장을 나와야 하는 이들도 있다. 이들을 비판하거나 불평이라도 내 놓는다면, 순교자라도 된 것처럼 당당하게(?) 자신들의 신앙관을 펼쳐놓는다. 새벽기도를 다니고 예배를 열심히 드리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는 믿음으로 하는 일이니만큼 하나님이 알아서 모든 일을 형통하게 해주신다는 것이다. 인간적인 생각이나 세상적인 지혜로는 결코 알 수 없으며 믿음의 눈으로 보아야 한다고 하면서 입에 침을 튀어가며 열변을 토하기도 한다. 그래서 성경지식이 부족하거나 신앙이 없는 자들은 머쓱해하며 돌아서야만 한다. 이들의 산 같은(?) 믿음을 놀라워해서가 아니라 바늘도 안 들어가는 이들만의 논리를 막을 재간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들은 규정에 정한 근무시간에는 자리를 지키고 있기에 달리 말을 꺼내기도 쉽지 않다. 자영업을 하는 사장 중에는 아예 교회에서 사는 이들도 적지 않다. 자신이 등록한 교회 예배나 행사는 말할 것도 없고 담임목사가 심방을 가거나 다른 교회에서 설교를 한다면 시간을 내서라도 참석한다. 이것이 믿음을 보여주는 행위이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행위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래서 장사가 안 되거나 사업에 문제라도 생기면 아예 짐을 싸들고 몇 날이고 기도원에서 보내는 이들도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무리 믿음이 좋고 신앙행위를 열심히 하더라도 이들은 게으른 이들이다. 믿음이 좋은 게으른 이들이며 예배를 성실히 드리며 기도를 열심히 하는 게으른 사람일 뿐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성실한 노동을 명령하셨고 당신 스스로도 열심히 일하시는 분이다. 노동을 통해서 일용할 양식을 공급하시고 가족의 부양을 해결해 주신다고 약속하셨다. 아무리 신앙행위에 열심히 하더라도 일을 하지 않는다면 빈곤할 뿐이다. 물론 가난하게 살더라도 이를 개의치 않고 믿음을 더 소중하게 여기고 만족하는 이들도 있다. 그렇다면 다행스럽겠지만, 신앙행위를 자신의 노동으로 대신하는 자들이라면 분명히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뜻을 알아야 한다. 그래야 자신의 빈곤한 처지를 실망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지만 어찌된 일인지 우리나라의 교회에는 이러한 이들이 수도 없이 많다. 목회자조차도 수입이 거의 없는 처지를 바라보면서 가족을 부양할 대책을 세우지 않고 기도만으로 다 했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지천이다. 그런 실정이니 평신도들의 처지는 어떻겠는가? 그래서 우리나라의 교회는 가난하고 대부분의 목회자는 빈곤하다. 믿음과 지혜를 구분하지 못하고 맹목적인 믿음을 앞세워 노동을 폄훼하거나 무시하는 자들이 너무 많다. 어째든 이들이 빈곤하게 사는 것은 하나님이 살아계시지 않아서가 아니라 일을 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깨달아야한다. 하나님은 게으른 사람들이 배고프고 가난하게 살 것이라고 성경에 누누이 말했다. 귀를 닫고 듣지 않거나 자의적으로 왜곡되게 해석해서 일을 하지 않고 신앙의 행위로 대신하려는 자들은 평생 빈곤하게 살 수 밖에 없다.
출 처 : 다음 카페 [크리스천 영성학교]
글쓴이 : 신상래 목사
첫댓글 성숙하지 못한, 다소 유아적이며 세상을 보는 시각이 아주 단편적인 사시적 안목을 가지고 읊조리는, 참 세상물정 모르는 소리 같습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