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형순 바오로 신부
성 시몬과 성 유다(타대오) 사도 축일
에페소 2,19-22 루카 6,12-19
오늘은 성 시몬과 성 유다 사도의 축일입니다.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고 그분의 가르침을 전하는 데 일생을 바친 두 사도를 기억하는 날입니다.
그들이 걸어간 여정은 예수님의 부르심에서 시작됩니다. 그들 스스로 예수님을 찾아간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그들을 선택하시고 부르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기도하시는 장면이 인상적으로 다가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도들을 선택하시기 전에
홀로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기도하시는 모습은 복음에 자주 등장하기에
그다지 낯선 장면은 아닙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홀로 기도하실 뿐 아니라, 밤을 새워 기도하십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사도들을 선택하시는 순간이 매우 중요하였음을 보여 줍니다.
예수님께서는 홀로 모든 것을 결정하시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와 일치하는 가운데 그 일을
진행하십니다. 그렇게 소중하고 귀한 마음을 바탕으로 예수님의 선택이 이루어집니다.
사도들은 처음부터 사도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고, 예수님의 부르심을 통해서 사도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삶의 여정 속에서 자신을 위한 길을 걷지 않았습니다.
모든 주도권을 주님께 맡기고 그분의 뜻에 따라 살아간 이들이 바로 사도들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우리가 사도들과 예언자들의 기초 위에 세워진 건물이며,
예수님께서 모퉁잇돌이심을 알려 줍니다.
예수님의 선택은 이천 년 전 열두 사도들에게만이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똑같이 이루어집니다. 우리를 위해서, 우리를 선택하시고 부르시고자
예수님께서는 오늘도 밤을 새워 가며 기도하십니다.
우리의 준비와 응답을 기다리시며 우리를 위한 시간을 보내고 계십니다.
오늘 하루는 우리를 향한 예수님의 간절함, 예수님께서 사도들을 선택하기 전에 보여 주신
간절한 마음을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인천교구 박형순 바오로 신부
************
이기우 사도요한 신부
성 시몬과 성 유다(타대오) 사도 축일
에페소 2,19-22 루카 6,12-19
군중은 모두 예수님께 손을 대려고 애를 썼다
오늘은 성 시몬과 성 타대오 사도 축일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느님 복음을 선포하실 때 그분의 가르침과 기적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그분 주변에 몰려 들었습니다. 이 군중 가운데에서 열둘을 뽑아 제자로 삼으셨습니다.
모세에게 열두 지파가 주어졌듯이, 예수님께서도 새로운 이스라엘을 모으기 위한
열두 제자가 필요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공생활 3년 내내 이 열두 제자를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시던 활동에
동행시키시며 사도로 양성하셨습니다. 그리고 당신의 수난이 다가왔을 무렵,
세족례와 성찬례를 통해 사도로 세우셨습니다.
이때 당신의 신원을 명확히 드러내시며 전권을 위임하셨습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내가 너희들의 발을 씻어주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주어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나를 보았으면 곧 하느님을 본 것이다. 너희가 땅에서 풀면 내가 하늘에서도 풀리라.”
사도들의 후계자로 이루어진 교회에서는 사도신경으로 신앙의 정식을 확립하면서,
예수님께서 사도들의 교회에 현존하실 양식을 세 가지로 정리하였습니다
말씀과 성찬과 섬김.
말씀은 구약성경뿐만 아니라 신약성경도 포함시켰고, 성찬은 성체성사로,
섬김은 특히 가난한 이들을 섬기는 공동체의 형제애를 으뜸으로 쳤습니다.
이렇듯 성령의 이끄심으로 교회가 받은 계시를 가르치는 예언직과 더불어 사도직은
교회의 기초가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실 때에 가르침에는 신적인 권위가 서려있었고,
기적에는 신적인 권능이 서려있었기로, 군중은 모두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자 몰려들었고
그분께 손을 대려고 애를 썼습니다.
그러므로 교회에 모인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가 수행하는 모든 사도직에서는 자신들의 지식이나
힘으로만 하려고 할 것이 아니라 사도직에 현존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권능으로
해야 합니다.
그 옛날 예수님의 주변에 몰려든 군중이 그분께 손을 대려고 애를 썼던 것처럼,
오늘날에도 여전히 세상은 하느님의 힘이 필요합니다.
그분에게서 힘이 나와 모든 사람을 고쳐 주었던 것처럼, 온갖 문제와 갈등과 한계로
어려움을 겪는 세상 사람들을 도와주려면 사도직을 수행하는 모든 이들이 말씀과 성찬과
섬김이라는 그분의 현존 양식에 충실해야 합니다.
말씀과 성찬과 섬김으로 현존하시는 그분의 힘을 충만히 받아
우리 교회의 사도직이 세상 사람들을 도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서울대교구 이기우 사도요한 신부
***********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성 시몬과 성 유다(타대오) 사도 축일
에페소 2,19-22 루카 6,12-19
'날이 새자 제자들을 부르시어 그들 가운데서 열둘을 뽑으셨다.‘
오늘 복음은 열두 사도를 뽑으신 장면을 이렇게 들려줍니다. '예수님께서는 기도하시려고
산으로 나가시어, 밤을 새우며 하느님께 기도하셨다. 그리고 날이 새자 제자들을 부르시어
그들 가운데에서 열둘을 뽑으셨다.'(루카 6,12-13)
이는 야훼 하느님께서 모세를 시나이 산으로 불러올리는 장면을 연상하게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산으로 불러올리시어 그들 가운데서 열둘을 뽑으셨습니다.
그러니까 그분께서는 먼저 부르시어 뽑으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사도를 뽑으시기에 앞서, 밤을 새워 기도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선발 기준은 무엇이었을까요?
우리의 일반적인 기준으로 본다면, 그들이 사도로 뽑힐 만한 충분한 조건들을 갖춘 자들로
보이지 않습니다. 곧 신분이나 능력이나 지위에 있어 사도가 될 만한 자격을 갖춘 이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이름 없는 무명인들이었을 뿐만 아니라, 뽑힌 후에도 여전히 특별한 내력을
전해주지 않습니다. 그러니 거룩한 이들이었기에 뽑힌 것이 아니라, 뽑히었기에 거룩한 이들이
된 것입니다. 거룩한 분에 의해 뽑히었고, 거룩한 사명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가 축일로 지내는 성 유다와 시몬도 그렇습니다. 우리는 사도 시몬이 카나 출신으로
열혈당원이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 뿐, 다른 내력을 알 수가 없습니다.
사도 유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단지 타대오, 곧 '용감한 자'라고 불렸다는 사실 뿐,
다른 내력을 알 수가 없습니다.
마치 '사도'란 모름지기 ‘이름 없이 주님의 뜻을 위해 살다가 가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말해주기나
하듯이 말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거룩한 ‘건물’이 되고, 거룩한 분의 ‘거처’가 되었습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말합니다.
“여러분은 사도들과 예언자들의 기초 위에 세워진 건물이고, 그리스도께서는 바로
모퉁이 돌이십니다.”(에페 2,20)
사실 교회는 사도들의 기초 위에 세워진 ‘건물’(집)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신령스럽게도 이 '건물'(집)은 '자라납니다'.
곧 “주님 안에서 거룩한 성전으로 자라납니다.”(에페 2,21)
그렇게 자라나면서 신령스런 ‘하느님의 거처로 지어집니다.’ 그렇게 지금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을 통하여 하느님의 거처로 함께 지어지고 있습니다.”(에페 2,22)
참으로 신령스런 일입니다.
우리가 ‘주님 안에서 거룩한 성전으로 자라나고 있다’는 이 사실!
지금도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을 통하여 하느님의 거처로 지어지고 있다’는 이 사실!
이토록 우리 안에 당신의 신비가 살아있다니, 헤아릴 수 없이 크나큰 분이 나보다 작아져
내 안에 들어와 있는 이 사랑의 신비 앞에 그저 어안이 벙벙하고 경탄할 뿐입니다.
한편 예수님께서는 사도들을 뽑으신 다음, 그들과 함께 산에서 내려와 군중들 속으로
들어가십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세상에 녹아, 세상에 ‘하느님 나라’, ‘하느님의 집’,
‘하느님의 가정’을 건설합니다. 바로 내가 그 나라의 백성이요, 그 집의 건축 자재요,
그 가정의 식구입니다. 아멘.
<오늘의 샘 기도>
주님!
당신이 불러 뽑으셨으니, 저는 당신의 사람입니다.
당신을 저의 거처로 내어주시고, 저를 당신의 거처로 삼으셨습니다.
하오니, 당신 뜻의 실행이 제 양식이 되게 하시고, 제 몸이 당신 사랑으로 녹아나게 하소서.
제 삶이 당신 뜻에 맞는 예배가 되게 하소서. 아멘.
- 양주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 ‘오요안 신부의 가톨릭‘에서 참조
가톨릭 사랑방 catholics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