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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이 글은 좀 길어질 여지가 있다. 필자가 알고 있는 KOEI사의 대작 <대항해시대2>에 관한 외적인 거의 모든 지식이 담겨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 작품과 필자의 연관성은 나중에 천천히 썰을 풀어보기로 하고 이번 포스팅에서는 대항해시대2의 위대함에 대해서 하나둘 짚어보며, 내가 매료된 점들을 풀어나가고자 한다. 철저히 시리즈물로서 대항해시대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이 게임 자체에 대한 이야기가 주가 될 것도 미리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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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괄 - 게임이 갈 수 있는 최대의 영역에 발을 들여 놓다.
학교를 다니던 시절 이 게임이 발매되었던 것을 기억하고 있는 게이머라면, 이 작품을 절대로 잊을 수 없으리라고 단언한다. 이 게임은 1993년 KOEI사에서 발매된 게임이자, 현존하는 게임 중에서 최대의 보고를 집약시킨 걸작 중의 초걸작이다. 비단, 일반 게이머 뿐만이 아니라, 인문학이나 역사에 관심이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이 소일거리 삼아 이 게임을 즐기기 시작하면 적어도 1년 이상은 꾸준히 '재미를 볼 수 있는' 류의 게임이기도 하다. 필자는 이 게임을 1995년부터 무려 14년간 즐기고 있으며, 즐길 때마다 개별적인 스토리라인과 별개로 시스템 자체에서 엄청난 재미를 재차 캐내고 있다. 이 게임이 '역사물'이 가지고 있는 모든 미덕을 집약시킨 게임이며, 역사물의 가치보다는 시뮬레이션 게임 본연의 특성에 맞춰진 <삼국지> 시리즈에 비하면, 단독 텍스트로서 이 게임의 수명이 타 패키지에 비하여 비약적으로 높은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물론, 삼국지는 역사적 원전과 연의라는 메타 텍스트가 존재하긴 하지만) 언어학자이자 소설가였던 저 유명한 J.R.R 톨킨이 "훌륭한 예술 작품은 아이들이 입는 옷처럼 자라날 수 있는 여유를 남겨둔다"라고 말한 바가 있는데, 바로 그 점에 있어서 이 작품은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 평가받을 수 있는 여지가 충분하다. 이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아래에서 풀어나가도록 하겠다.
게임 메뉴얼을 읽어보면, 본작은 '항해를 바탕으로 한 어드벤처 게임'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역사를 배경으로 하고, 모험이 게임의 주가 된다는 점에서는 게임의 본질은 어드벤처 게임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그러면서 당시 인기를 끌던 '스탠다드 RPG'의 맵 시스템과 아이템등 몇가지 요소를 끌어들여서 RPG의 분위기를 가지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이 게임이 RPG가 아닌 이유는 캐릭터가 지정되고 컨트롤해야함은 사실이고, 일정 부분의 시나리오를 가지고도 있지만 본질적으로 Role Playing의 기본 요소인 자유도가 없으며, (여기서 말하는 자유도란 게임 자체의 자유도가 아니라, 롤 플레잉의 자유도를 말한다.) 따라서 이 게임은 항해 어드벤처 게임이라는 점이 거의 정확할 듯 싶다.
또한 전투에 있어서는 <삼국지>에서 보여주던 전투 시뮬레이션을 끌고 왔으니, 매우 다채로운 게이머 층을 끌어들일 수 있었다.
그러나 이 게임은 삼국지와 조금 다른 점이 있다. 철저한 역사 시뮬레이션 게임이라는 점이다. 즉, 게임에 실제 상황을 극사실적으로 대입하려 한다는 점이 있는데, 항해를 하기 위해서는 바람의 방향, 조류, 함선의 성격이 맞춰져야 하며, 선원의 배치를 조정해야하는 등 비교적 간결하면서도 여러 분야에 신경을 써 놓아서 재미를 주고 있다. 여지껏 등장한 게임들을 비추어 보아도, 시스템 자체에는 큰 불만을 가질 수가 없다.
2. 게임의 매력
자, 이제부터 본격적인 이야기를 꺼내보도록 하겠다. 이 게임이 현존하는 게임의 최대걸작이라고 서슴없이 말할만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우선 게임의 가장 큰 축을 형성하는 것은 시스템, 게임 소스 (아이디어), 비주얼, 음향이라고 생각한다. 게임을 즐기는데 가장 큰 요소는 시스템이다. 게임Game이라는 어휘의 본질이 '룰Rule'에 있고, 룰은 하나의 언어와 같으며, 이것은 시스템으로 직결되는 문제다. (이하의 내용은 소쉬르의 <일반언어학강의>에서 참조) 여기서 시스템에 만점을 부과하는 섣부른 판단은 하지 않겠다. 다만 주목할 점은 <대항해시대2>의 게임 시스템이 다른 요소들과 훌륭하게 어울리고 있다는 것이다. 시스템은 문학으로 치자면, 소설의 구조, 시의 장르 규정과 비슷하며, 연극으로 치자면 '관객,배우,무대' 따위를 설정하여 연극이 펼쳐질 '멍석을 깔아주는' 역할을 한다.
자, 멍석은 깔렸다. 그 위에 펼쳐지는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게임 소스인 아이디어이다. 사실 가장 하고 싶은 말은 이거다. 소설로 치면 서사 그 자체, 시로 치자면 심상의 이미저리 그 자체, 게임으로 보자면 그 게임을 하면서 '감동'과 '경이' 받는 부분이다. (물론 재미도 있지만, 재미는 우선적으로 시스템에 많은 빚을 진다. <스타크래프트>나 <King Of Fighters>같은 게임은 치밀한 스토리가 없더라도 시스템 자체만으로 충분한 즐거움을 주는 게임들이다.) 이점을 좀 더 깊이 들어가면 '게임 미학에 당위성'에 대한 거창한 이야기까지 꺼낼 수 있겠지만, 이 점은 일단 접어두고 <대항해시대>의 게임에 대한 아이디어에 대해서 자세히 풀어보도록 하겠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이 게임의 위대함은 본질적으로, 게임이 역사물이며 역사에 대한 치밀한 고증을 바탕으로 완벽한 하나의 가상 시나리오를 짰다는 점에 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이 게임은 '15~16세기 사이의 대항해시대에 대한 완벽한 오마주'라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2-1 : 인물
대항해시대를 좋아하시는 분이라면 너무나도 익숙할 화면일 것이다. 이 게임에는 총 여섯 명의 주인공들이 등장한다. 그런데 이 주인공들이 가상인물임은 사실이지만, 또한 모두 역사적 인물과 깊은 관련을 가지고 디자인 되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필자 역시 이에 대해서 아는 점은 거의 없다. 하지만 그 점 만큼은 매우 분명해 보인다.
이 게임의 공인된(?) 주인공은 포르투갈 귀공자 조안 페레로다. (그것은 외전 오프닝 음악이 조안 페레로 테마곡이라는 점에서도 거의 명백하다) 조안 페레로는 사실 모험과 큰 관련이 없는 가문으로 묘사 되고, 실제로도 레온 페레로가 1편에 등장했기 때문에 그런 맥락에서 2편의 주인공으로 꼽히고 있다. 그런데, 실제로 이 게임의 배경이 되는 15세기에 포르투갈의 페레로 가문은 굉장히 직분이 높은 왕실 사서 출신의 가문이다. 그리고 페레로 가문은 주로 15~16세기 항해왕자 엔리케의 업적으로 시작된 수많은 모험가들의 항해담을 기록으로 정리하는 일을 맡았다. <대항해시대1>부터 언급되는 이 '페레로 가문'이 바로 이 왕실 항해 기록사서 페레로 가문에서 모티브를 따왔을 확률이 매우 높다. 그 증거가 바로 본작에서 드러나는데, 조안이 처음 만나 함께 항해하는 도밍고 마냐나는 완벽하게 포르투갈의 '항해왕자 엔리케'에 대한 오마주이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드러나는 항해왕자 엔리케의 그 엄청난 기행들을 생각해보면, 이 작품에서 등장하는 도밍고는 확실히 항해왕자 엔리케의 오마주라고 밖에 볼 수 없다.) 이 점은 필자의 추측에 불과했으나, 에르네스트 로페스에 대한 비화를 알게 되면서 의심은 점점 확신으로 바뀌고 있다.
개인적으로 여섯 명의 주인공 가운데에서 필자가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인 에르네스트 로페스가 저 유명한 '메르카토르 지도'와 관련되어 있고, 메르카토르는 교과서에 나올 정도로 매우 유명한 역사적 실존 인물이라는 사실은 여러분도 잘 알 것이다. 그런데, 거의 알려져 있지 않지만, 메르카토르가 지도를 제작할 때에, 몸소 세계를 돌아다니며 지도 제작에 동참했던 어느 무명 여행가가 존재했다는 야사를 아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바로 이 '메르카토르를 대신하여 세계를 항해하고 지도제작에 도움을 준 어느 무명 모험가'(아직 이름을 읽어본 책은 없음)가 바로 이 에르네스트 로페스의 모티브다. 이 점은 <대항해시대 외전>에서 메르카토르 지도 제작자로 로페스의 이름이 함께 명기되어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대목에서 매우 확실하게 드러난다.
필자가 찾아낸 실존인물에 얽힌 주인공은 이렇게 두 명이다. 아무래도 전공이 인문학에 관련되어 있다보니 본의아니게 이런저런 잡다한 책들을 읽게 되고, 그러면서 시간이 갈수록 <대항해시대2>의 게임 자체 안에 숨겨져있던 또다른 재미의 베일들이 하나둘 벗겨지기 시작한다. 필자는 지금도 게임을 즐기면서 이런 점들에 의해서 그 안에서 희열을 느낀다. 말 그대로'할 때마다 다른 재미를 느끼게 되는' 배경이 되는 것이다.
혹시 나머지 네 명의 주인공들에 얽힌 실존 인물들을 알고 있는가? 필자는 이제 두 명의 인물에 대한 에피소드를 찾아냈을 뿐이다. 앞으로도 계속 책도 읽고 다큐멘터리도 보면서 15세기 대항해시대의 역사에 대한 자료들을 접할 날이 있을 것이고, 그럴 때 마다 이 게임의 주인공들에 얽힌 또다른 사실들을 풀어나가게 될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14년을 했지만, 지금도 새로운 사실들과 함께 게임을 즐기고 있다. 지금 몇몇 단서는 피에트로 콘티가 이탈리아 출신의 유명 모험가를 모티브로 했다는 것인데, 자료를 뒤져보면 너무나도 많은 모험가들이 나오고, 그런 책들에는 '빚에 쫓겨 모험을 시작했다'라는 야사는 거의 등장하지 않기 때문에 알기가 어렵고, 옷토 스피노라는 '해적 드레이크'와 연관이 있어보이는데 영국 해전사는 문외한이라 아직 많이 낯설다.
그 밖에, 너무도 유명한 이야기지만, 게임 내의 제독, 교수, 귀족의 이름은 모두 실존인물에서 빌어오거나 모티브를 가지고 만들어진 캐릭터이다. 이 점에 있어서도 유저가 이쪽 분야에 관심을 가지면서 하다보면, 게임 스토리 뿐만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얽혀서 변주된 또다른 사실들을 알아가는 재미가 생긴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고렙의 대명사인 '필리 레이스'이다. 당대 최고의 모험가이자 항해가 한 명이었다.
2-2 : 지명 / 특산물 / 아이템
이 부분도 너무 유명하여 딱히 거론할 부분이 없다. 이 게임에 나오는 모든 지명은 모두 15~16세기 당시에 불려졌던 이름으로 등록되어 있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단치히. 20세기에 폴란드에 반환되면서 그다니스크로 개명된 단치히는 당시 신성로마제국 영토였기 때문에 예전 표기명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또한 특산물은 현재 익히 알려진 특산물이 팔리기도 하지만 (런던의 모직물이나 보르도의 와인 등), 현재에는 딱히 유명하지 않으나, 당대에 매우 유명했던 상품들이 교역소에서 팔리는 경우도 보여진다. (대개 그런 상품들은 상업투자를 하여 상업가치를 올려야 나오는 것으로 설정 된 곳도 꽤 있다. 예를 들면 일본의 은이라든가...)
또한 많은 사람들이 열광하는 부분중 하나가 바로 아이템과 배, 무기의 정밀함이다. 당시 제작된 무기, 장신구, 건조되던 배들을 매우 사실적으로 재현 했다는 점 때문에 많은 매니아들을 양산해내기도 했는데, 카라벨 라돈다와 라티나 (카라벨이 여러가지로 개조되며 나뉘어진 시기가 딱 이 게임의 배경시기다), 갤리선, 브리간틴, 카락 등 실존했던 배들을 모델로 삼아 게임에 반영하였으며, 일기토의 필수품이자, 몇몇 게이머들에겐 '전리 수집품'으로 기능했던 그 엄청난 무기들 역시 그 지방에서 사용되거나 내려오는 검, 갑옷들을 수록하고 있다. (예를들면 프람베르그나 클레이모어 같은 지방색 강한 검들의 제공은 어찌 보면 서비스 차원이다.) 이 아이템들에 대한 자세한 할말이 있는데 아래에 첨언하여 자세히 다루겠다.
2-3 : 문화 / 전설
필자가 다른 작품도 아니고 <대항해시대2>를 시리즈의 최대걸작이라고 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1편은 첫작품이라 문화와 역사적 배경이 많이 떨어지고, 3편은 역사적 정보와 방증이 거의 완벽에 가까웠지만, 바로 이 점때문에 2편에게 밀리고 있다. 이 게임은 엄연히 역사 시뮬레이션 게임의 범주에 들어간다. 하지만 게임의 재미를 배가시키기 위해서 엄청나게 많은 중세 유럽의 전설, 이야기, 야화들을 끼워넣었고, 그 결과 (게임 자체가 로망에 대한 얘기이기도 하지만) 게임의 환상적 분위기를 극한까지 끌고 나갔다. 엄청난 찬사를 과분하게 내리자면, <백년동안의 항해>이라는 마르케스의 패러디를 하사해 주고 싶다. 즉, 게임을 하다보면 어디부터 어디까지가 현실이고, 어디부터 어디까지가 전설과 가상인지 도무지 분간이 안가는 경우가 종종 드러나고 있다. 이 부분이 <대항해시대2>의 최대의 매력중 하나이다. 여기에 대해서 몇가지 예를 들어보도록 하겠다. 이 점은 많은 게이머들이 무심코 지나갔을 수도 있는 부분이기 때문에 이야기해보겠다.
이런 전설과 문화적인 이야기가 제일 많이 드러나는 부분은 단연코 '발견물'이다. 발견물은 '비비원숭이'나 '동충하초'(한국의 발견물이다) 같이 실제로 존재하고 잘 알려진 존재도 있지만, 반대로 '도도새'처럼 멸종해버린 동물도 있다. (물론 당시에 도도새는 실존하는 새였다!) 또한 문화적 차이가 극명하게 발견물에 붙는 경우도 있는데, 대표적인 것이 B급 탐색물이 '불타는 물'이라는 것이다. 중동 지역에서 발견되는 이 탐색물의 설명을 읽어보면 게이머는 그것이 '석유'라는 사실을 쉽게 눈치챌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십자군 전쟁 이후 유럽인들이 중동에서 솟아나는 석유를 '불타는 물'이라고 부른 재밌는 일화를 게임에 구겨넣을 생각을 그 누가 했을까? 그 뿐만이 아니라 전 세계에 존재하는 전설들을 '발견물'에 넣은 경우도 있어서 이 게임의 발견물 정보를 다 꿰고 있을정도가 되면 어지간한 세계 민간 문화의 대표적인 상징은 어느정도 헤아리게 될 수 있다. 아프리카 동부에서 발견되는 B급 발견물 중에서 '모케레무벰배'라는 커다란 공룡이 있다. 동아프리카 주술사들 사이에 내려오는 전설의 괴수 '모케렘벰베'(원어로는 모케렘음벰베 정도로 읽힌다)는 괴수 매니아들 사이에서는 네시에 필적할 정도로 유명한 수수께끼의 수장룡이며, 검치호에 대한 에스키모들의 전설은 매우 유명하다. 이런 부분을 문화적으로 알고 있는 사람이 <대항해시대2>를 플레이한다면 소위 말해 미치지 않고 못배기게 된다.
발견물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다. 이 게임에서 항해를 하다보면 별별 알수 없는 일들을 당하여 배가 난파된다든가, 선원이 죽거나 배가 움직이지 않는 사건들은 100% 환상 민담에 기반하여 만들어진 이벤트다. 이를테면 <대항해시대2>의 게이머라면 모두 하나의 이유로 이름을 기억하고 있을 틈북투 항구, 여기로 향해 니제르 강을 따라가다 보면 정체불명의 불새가 나타나 돛을 태워버리는데, 어릴 때 책에서 서아프리카의 불새에 대한 전설을 읽은 기억이 있다. 자세한 건 좀 더 찾아봐야겠지만 여기에 대한 이야기와 얽혀있을 것이 거의 분명하다. 또한, 함부르크에서 라인강 줄기를 따라 깊이 들어가다보면 베오그라드라는 보급항이 나온다. 여기를 가는 길에 세이렌으로 추정되는 물 속 요정들이 노래를 불러 선원들이 홀려 죽는 이벤트가 발생한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이 세이렌들은 우리가 알고 있는 인어mermaid의 원조로, 상반신이 여성이고 하반신이 물고기이며, 바다에서 노래를 부르는 인어에 대한 에피소드는 바로 이 불가리아의 강가에서 전해지는 내용이다. (그리스 신화의 세이렌들은 하피에 가깝고, 실제로 이 부근에 바로 저 유명한 '로렐라이 전설'이 시작된 곳이기도 하다.) 즉, 인어 세이렌의 거의 원형전설을 유지하고 있는 불가리아 지방에서 인어에 대한 이벤트가 발생하는 것이다. 버뮤다 지역에 가면 배가 움직이지 않는 것은 매우 유명한 이야기니 넘어가고, 그 밖에도 이런 이벤트의 거의 모든 내용이 그 지역에 연결된 전설이나 문화적 풍문과 매우 밀접한 연관이 되어있으니, 다시 게임을 즐기기 되면 하나둘 찾아가면서 한다면 매우 색다른 재미를 즐길 수가 있다.
자, 틈북투 얘기가 나왔으니, 이에 엮여서 아이템 얘기도 같이 해보자. 이 게임을 즐겼던 게이머들 중에서 틈북투 항구를 굳이 찾아가는 이유는 99%가 단 하나의 이유때문이다. 그렇다! 이 항구에서 바로 전설의 무기인 '성기사의 검'을 팔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 한가지 의문을 가지는 것은 당연하다. 성기사의 갑옷은 아시다시피 나폴리의 암시장에서 금괴63개를 지불하고 구입할 수 있다. 그런데, 어찌하여 성기사의 검은 엄청나게 멀리 떨어진 아프리카의 틈북투에 덩그라니 떨어져 있는 것인가! 자, 여기서 이 게임에 등장하는 무기들이 가지고 있는 숨겨진 매력이 하나 더 드러난다. <대항해시대2>에 등장하는 무기들은 D급부터 ☆급까지 여러 등급의 무기가 있고, D급부터 A급까지는 실존하는 무기를 바탕으로 디자인 되었다. 그런데, ☆급의 무기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무기들, 요컨데 '전설의 무기'들을 모티브로 디자인되었다. 그러니까 이 게임에 등장하는 모든 ☆급 무기들은 그 무기가 등장하는 지역의 전설에 얽혀있는 무기들이 되겠다. 일본에서 찾을 수 있는 요도와 중국의 '청룡언월도'는 우리에게 매우 익숙한 전설이기 때문에(무라마사, 관운장) 이 쯤은 쉽게 알아챌 수 있다. 그런데, ☆급의 무기가 한두개가 아니다. 나머지는 어떨까? 자, 필자가 알고 있는 이야기를 하나 하겠다.
판타지를 좀 좋아하거나 필자처럼 중세덕후(?)라고 자칭하는 사람이라면 혹시 성자 게오르기우스라고 들어봤는가? (영명 St.George) 이 분은 아프리카로 선교 원정을 나가셔서 검과 갑옷으로 드래곤을 제압하고 아프리카에 기독교를 전파하신 분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이 분은 저 유명한 '중세 기사들의 수호성자'로 더더욱 유명하신 분이다. 그리고 이분이 로마 출신이며, 아프리카에 원정을 가서 기사도의 용맹을 높이셨다. 자, 바로 이 전설에서 스플릿되어 성기사의 검은 아프리카의 '대학도시'였던 틈북투로 들어가고, 갑옷은 나폴리로 흘러들어가게 된 것이다. 현재 서비스중인 <대항해시대 온라인>의 '성조지의 검' 퀘스트를 보면 이 점이 거의 명백하게 보이는 것으로 보아서는 필자의 예상이 맞으리라 생각된다. 또하나의 ☆급 갑옷인 코펜하겐의 에롤즈 플레이트의 경우, "에롤 가문의 갑옷"이라는 의미까지는 추적을 해 내었으나, (에롤 가문은 켈트-스코틀랜드의 아주 오래된 가문의 하나라고 위키피디아에서 검색) 아직 그 이상은 찾지 못했고, 브라질 페르남부코 항구의 룬 블레이드도 그 연원을 아직 다 알지는 못했다. 그래서 더 재밌고, 여전히 게임을 즐길만한 여지가 남아있는 것이다.
3. 비주얼
최근에 게임을 즐기게 된 젊은 유저들이라면 <대항해시대2>의 그래픽에 굉장한 실망을 가지게 될 지 모른다. 하지만, 그래픽에 실망할지언정 비주얼은 엄청나게 미려하다는 표현 밖에 할 수가 없다. 그 비주얼이란 여러가지를 의미하는 데, 첫째로 256컬러로는 거의 한계의 경지까지 보여주는 선박 묘사와 아이템점에서 파는 다양한 물건, 건물의 모양들, 그리고 인터페이스에 등장하는 일러스트들이다. 특히 당대 실존했던 물건이나 건물들의 특징만을 추려서 간소하게 표현하거나, 각 항구의 특징들을 굉장히 명쾌하게 잡아내는 그림들, 그리고 대항해시대의 분위기를 돋우며 상상력을 자극하는 여러 일러스트는 비주얼에 거의 만점의 평가를 주기에 손색이 없다. 게다가 (대항해시대 온라인에서도 이미 확인된 바 있지만) 자세히 보면 항구에 들어갈 때마다 그 지역의 전통의상을 입은 사람들이 등장한다. 이것은 매우 세심한 배려인데, 결국 온라인 게임이 등장하면서 화려한 그래픽으로 말미암아 이 부분을 극대화 시켰다고 볼 수도 있다.
만약 이 게임이 모든 부분만 유지한 채 XP버전으로 다시 나온다면, 아마 패키지 시장 초유의 대박이 터지지 않을까 생각될 정도로 이 게임의 비주얼은 매우 훌륭하다.
4. 음악
게임 내적인 것과 스토리적인 면 외에 사실 이 게임의 가장 커다란 파란은 바로 이 '음악'이었다. 게임보다 OST가 더 많이 팔렸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이 게임의 OST는 뛰어나다 못해 환상적이다. 필자는 이 게임을 즐길 당시에 음악을 거의 듣지 않고 살았는데, 최근에 깨나 듣는다고 깝죽대는 현재에 이르러 대항해시대 OST를 구매하여 들으면서 내린 결론은 마찬가지로 '환상적이다'라는 것이다.
영화든 애니메이션이든 게임이든 OST는 여타 앨범과 다르게 두가지 요건을 충족시켜야 한다. 첫째는 게임의 '음향의 일부'로서 게임의 배경과 어우러져 몰입도와 분위기의 상승효과에 일조해야하며, 둘째로는 여타 음악과 마찬가지로 독립적으로 청취를 하여도 손색이 없어야 한다. 본작의 OST는 둘을 모두 만족시키면서 이미 '전설'이 되버렸다. 최근에 이 앨범을 다시 들으면서 간단한 감상을 적어보고자 하는데, 우선 적기 전에 칸노 요코에 대해서 잠깐 언급하고 지나가겠다. 뭐, 아는 사람은 다 아는 분이니 알 사람이 다 아는 디스코그래피나 참여 작품 설명은 넘어가고, 순수히 이 작품 OST의 배경만 놓고 보자면, 칸노 요코는 이 OST를 제작할 당시에 재즈에 굉장히 관심이 많았을 거라는 점, 그리고 이 게임 OST를 제작하기 위해서 엄청난 공부를 했다는 점을 알 수 있었다. 그러지 않고서는 이런 풍의 음악을 제작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 OST에는 크게 네가지 요소가 굉장히 균등한 비율로 혼합되어 있다. 재즈와 월드뮤직, 클래식과 이지리스닝(뉴에이지)가 그것이다. 특히 스페셜OST에 유키 구라모토의 음악이 삽입된 걸로 미루어 볼땐 당시에 OST담당이던 칸노 요코가 이지리스닝에 엄청난 관심을 가지고 있었음을 직감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이 빛을 본 불후의 명곡이 오프닝곡 <<Wind Ahead>>과 엔딩곡 <<Close To Home>>이다. 특히 뉴에이지 음악의 본질은 '명상을 위한 이미지즘의 강조'이고, 이것이 감상적 목적보다는 다분히 음향적인 목적이 지향되는 성격을 가지기 때문에, 대항해시대의 어떤 '분위기'를 넣는데 엄청난 상승작용을 하고 있다. 즉, 뉴에이지 싱글로서 듣기 좋으면서도 게임 분위기에 150% 부합하는 음악이 창출된 것이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칸노 요코는 최소한 멜로디라인에 있어서는 필자가 들어본 것 중 유일하게 전세계에서 카이 한센을 능가하는 멜로디메이커이다.(이 표현이 얼마나 파격적인 표현인지 아는 사람은 다 알것이다.) 그녀가 만드는 멜로디라인은 매우 감각적이며 군더더기가 전혀 없고 산뜻하다 못해 서늘하기까지 하다. (그 부분이 이 게임 OST에 엄청난 시너지를 주었던 것은 당연하다) 이 특징이 이지리스닝 풍으로 작곡된 곡들에서 상당히 두드러지는데 조안 페레로 테마곡이나, 유럽 테마곡에서 그런 차분하고 서늘함은 빛을 발한다.
그리고 둘째로 플레이하는 위치가 바뀔 때마다 그 지방의 지역색이 매우 진한 월드뮤직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후에 편곡된 OST에서는 대개 모든 곡이 재즈 어프로치로 편곡되는 성향이 있었지만, 기본적인 틀은 여기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이를테면 중동에 도달하면 나오는 <<Moselm Dance>>의 경우 전형적인 아라비아 음계가 주를 이루고 있으며, 동아시아에 도착하면 한중일 3국이 공통코드로 가지고 있는 5음음계가 두드러지는 곡이 등장한다. 각 주인공들의 테마곡도 대개 그런 풍으로 만들어졌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캐릭터라고 언급한 에르네스트 로페스의 곡은 얼핏 들으면 플라멩코 풍의 음악 같기는 한데, 개인적으로 네덜란드 전통 무곡은 전혀 문외한이라 잘 모르겠고, 조안은 르네상스 콘소트(당시의 챔버뮤직), 콘티는 이탈리안 폴카에서 따온 것 같기도 하다. 그 밖에도 왕궁에 들어갈 때 나오는 장엄한 <<Interlude>>는 다소 배경과 맞지는 않은 것 같다는 느낌이 은근히 들긴 하지만, 전형적인 하프시코드(챔발로) 샘플링으로 연주되는 미뉴엣이다. 또한 주점에서 나오는 친근한 그 음악 <<Fiddler's Green>>에서 편곡할때 피들을 정말로 연주할줄은 꿈에도 몰랐다. 피들이란 보헤미안 집시들이 유럽에 퍼트린 '바이올린의 할아버지'격 되는 악기이다. 소위 '유럽의 깽깽이'라고 불리는데, 현재도 집시들이나 켈트족들이 즐겨 연주한다. 주점에서 나오는 흥겨운 음악으로 봐서는 차분한 켈틱 핀들러와는 거리가 멀고, 이베리안 집시나 헝가리 집시의 무곡에서 따온 것으로 추측이 가능하다. (이 주점 테마의 멜로디를 잘 들어보면 집시 음계가 잡힌다.) 이렇듯이 중세-르네상스 시대의 각 지역색이 완벽히 반영된 OST를 BGM으로 깔아놓다보니 몰입도는 그 어느 게임도 넘볼 수 없는 경지에 이르게 되어 당대에 수많은 폐인들을 양산하는 해프닝을 빚기도 했다. 이 OST앨범은 월드뮤직이나 뉴에이지를 좋아하는 분이라면 게임에 관심이 없더라도 하나쯤 장만할 것을 권유하고 싶다. (재즈음악이라고 말하긴 매우 어렵고, 재즈적 어프로치가 가미된 뉴에이지/월드뮤직 정도가 될 것 같다.)
5. 마치며
필자 개인적으로, <대항해시대2>는 인생을 통째로 바꿔놓은 게임이므로 할말은 이것보다 훨씬 많다. 게다가 게임 자체의 이야기까지 넣으면 밤새도 모자랄 지경이다. 분명한 것은 필자가 14년째 이 게임을 계속 즐기고 있고 앞으로 어떤 게임이 나오더라도 계속 즐길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는 것이다. 가끔 친구들이 추천해주는 이런저런 게임을 해보기도 하지만 이 게임을 능가할만한 수준의 게임은 여전히 볼 수 없다. 물론, 게임 시스템/비주얼/음향 적으로 대항해시대에 필적할 수 있는 게임은 얼마든지 있다. 발더스게이트 시리즈가 그러하고, 스타크래프트도 매우 뛰어난 시스템을 가진 게임이다. 하지만 게임 내적인 면에 있어서 거의 백과사전에 가까운 방대한 내용들을 설핏설핏, 그것도 매우 빼곡하게 눌러담아놓고 그것과 우리의 삶과 역사, 실제와 판타지 사이에 호흡을 느끼게 해 줄수 있는, 그런 경지의 게임은 어디에도 없었다. 심지어 역사적 사실을 훨씬 더 첨가하여 게임 시스템적인 재미가 들어간 <대항해시대3> 역시 이 경지까지 도달하지는 못했다. (물론 거의 대부분이 2를 이어받았으나, 주인공들이 빠졌다는 점이 이 게임에서 얼마나 엄청난 마이너스 요인이 되었는지는 이 글의 주인공에 대한 내용만 봐도 알 수 있다.)
이 게임은 KOEI사의 제작의도와 다르게 나에게는 순수히 상상적 유희를 극대화할 수 있는 좋은 시스템으로 내 곁을 지켜주었고, 그것은 지금도 여전히 진행형이다.
무덤까지 가져갈 단 하나의 '게임'을 말하라면 필자는 아무런 망설임 없이 <대항해시대2>를 집어들 것이다!
첫댓글 대항해시대2 OST 구매기념으로 =_=/
대항해시대2 재미있죠... 저는 초반에 도박으로 돈을 모으고 후반에는 배를 점령해서 팔아다가 돈을 모았죠...
수고하셨심!
흠... 거울과 드워에서 안나타나시고 뭐하시나 했는데 여기 계셨군요^^ 대항해시대2라. 3를 먼저 접한 까닭에, 그리고 원체 비주얼적인 게임을 즐기는 까닭에 접하긴 했으나 별로 하지 못한 게임입니다. 하지만 이런 글을 보면 다시 하고 싶어진다능...
언제 한번 대화할 기회가 있다면 좋겠습니다^^;;
Dr.뱃사공//아.. 인터넷을 요새 거의 안하고 사는지라.. 여기 쥔장이 친구놈이라 낚여서 끌려왔...(질질질) 저는 8월되면 시간 많습니다요. :)
앗 그렇군요~ 8월에 기대하겠습니다^^;
아 제길 하고 싶다...
2편 엄청난 명작이죠. 코에이는 그 시절이 더 게임을 잘 만들었던 것 같아요. 2000년대 들어와서 정말 재밌다 싶었던 건 삼국지9,11하고 신장의 야망12 정도였네요. 베네치안 갤리어스 도배하고 돌아다니는 공포의 하이레딘 레이스도 실제로 지중해의 유명 해적이었다고 하죠ㅎㅎ 코에이가 고전 게임 리메이크 몇 개 했는데, 왜 이건 안 하나 모르겠어요. 근데 대항2 지금 하면 항해 때 마다 물자 갖추는게 너무 귀찮더군요. 이후 시리즈에서는 물자 관리가 편해져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