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혜그릇 적신 눈물
신 보 성
좋은 법률가는 나쁜 이웃이라는 말이 있다.
나도 삼십 여 년 간 법학을 강의하면서 법을 팔아 밥을 먹고 살아온 사람이니 넓은 의미의 법률가의 범주에 포함시킬 수 있을 것이다.
나쁜 법률가가 나쁜 이웃이 되는 것이야 당연하겠는데 좋은 법률가가 좋은 이웃이 되지 못하고 왜 나쁜 이웃이 된다는 것인지 선뜻 이해하기 어렵다. 아무튼 나는 좋은 법률가인 동시에 좋은 이웃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사과나무에서 사과가 떨어지는 것을 보고 뉴턴은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했는데 법률가는 이런 현상을 보고 사과나무라고 하는 하나의 소유권이 나무와 사과로 분리되는 소유권의 분할현상으로 파악한다.
법률가는 옳고 그름과 권리‧의무를 따지기를 좋아한다. 사람들은 따지기 잘하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 법 없이도 살 수 있는 무골호인을 좋아한다.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의 맞은편 집에 정말로 법 없이도 살 수 있는 젊은 부부가 살고 있다. 이들은 딸 하나를 키우며 오순도순 잘 살아간다.
아내가 들고 오는 시장바구니를 그 집 여인이 얼른 아내의 손에서 빼앗아 우리 집까지 들어다 주는 친절한 도움이 아내와 그 집 여인이 친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그 후 그 여인과 아내는 노래교실에도 함께 다니고 탁구장에도 함께 다녔다. 여인의 탁구실력은 선수 급임에도 불구하고 아내의 탁구 상대가 돼 주었다. 온천탕에 함께 가서 서로 때를 밀어주기도 하고 국내여행도 함께 다녔다. 맛있는 음식을 하면 서로 나누어 먹었다. 여인은 시청에서 운영하는 계약재배 농지를 빌려 무공해 채소를 경작하는데 그 밭에서 길러진 각종 푸성귀를 한 보퉁이 가득 담아다 주는 덕분에 우리 집도 무공해 채소를 먹을 수 있었다.
우리가 장기 외출로 집을 비우게 되면 아파트 현관문 앞에 신문이 쌓이게 된다. 이럴 땐 특별히 부탁하지 않아도 그런 신문을 수거하여 자기 집에 잘 보관해 두었다가 외출에서 돌아온 우리에게 전해 준다. 물론 그 집 앞에 신문이 쌓이면 우리도 그렇게 한다.
아내와 그 여인은 어머니와 딸 같은 나이 차이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이 차이를 의도적으로 허물어버릴 요량인지 간혹 그 여인은 아내의 이름을 옥분아!(가명) 하고 큰 소리로 부른다. 이럴 때 아내는 너무나 기분이 좋아 깔깔깔 웃어댄다. 옥분아! 학교 가야지! 하고 현관문을 두드리면 알았다. 순희야, 곧 나갈게 기다려! 하고 여고생들처럼 구는 광경을 옆에서 지켜볼 때는 부럽기조차하다.
그 여인 내외는 교회의 성가대로 활약하면서 열심이 노래 공부를 한다. 외동딸도 음악이 전공이다. 내가 그 집 사람들을 도와 줄 일은 없다. 그런 사람들을 도우고 싶은데 도와줄 일이 없다. 그분들은 남에게 피해를 미치는 일을 하지 않기 때문에 법적 분쟁이 일어나지 않는다. 현명한 사람들이어서 남에게 사기를 당하지도 않는다. 하여, 법률가인 내가 이런 사람들에게 법률적인 조언을 해 줄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이처럼 법 없이도 살아가는 착한 사람들에게 나 같은 법률가는 무용지물인지도 모른다.
내가 시집을 발간하여 그 여인에게 주었다. 그 여인은 수일 후 고급 과자 한 통을 사 가지고 우리 집을 방문했다. ‟교수님 시 정말 감동적으로 읽었어요. 너무나 슬퍼서 펑펑 울었어요. 잠도 안자고 단숨에 한 권을 다 읽었어요.” 하는 것이었다. 물론 외교적 수사로 그냥 칭찬해주는 것이겠지만 기분이 좋았다. 나의 시집에 수록된 시 한 구절을 외우면서 칭찬해 주는 것으로 보아 틀림없이 읽어본 것으로 짐작되었다. 사실 나는 이런 소리를 듣는 재미로 시를 쓰고 또 시집을 발간하는지도 모른다. 나 같은 늙은이가 시 말고 그 어떤 것으로 젊은 여인으로부터 이처럼 감동적인 칭찬을 들을 수 있단 말인가.
여인이 돌아간 후 아내에게 그 여인이 사들고 온 과자의 가격이 얼마냐고 물었다. 아내는 3만원이라고 했다. 일만 원 짜리 시집 한 권을 주고 삼만 원짜리 선물을 받았으니 이만 원의 불로소득을 취한 셈이었다. 미안했다. 그 후로 발간된 시집도 그 여인에게 주고 싶은데 만 원짜리 시집 한 권을 주면 삼만 원 짜리 선물을 받아야하니 시집을 선물하기가 망설여졌다. 그럼에도 다른 사람은 몰라도 그 여인한테만은 꼭 시집을 전해주고 싶었다.
현관에서 그 여인을 만났다. ‟숙경이 엄마, 또 시집이 나왔는데 내 시집을 받는 것이 부담스럽게 느껴진다면 시집을 안 줄 것이고 그냥 부담 없이 받을 생각이면 전해 줄까 하오.”하고 말했더니 그 여인은 방그레 웃으면서 ‟교수님, 주세요.”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며칠 후 그 여인은 또 마로 만든 즙을 한통 선물로 들고 왔다. 아내는 그 마로 만든 즙의 가격이 십만 원 정도는 될 것이라고 했다. ‟앗 불싸. 시집을 주는 것이 아닌데…”하고 후회했다. 그냥 돌려주자니 성의를 무시하는 것 같고 ‟이 일을 어쩐담” 하고 고민하고 있으니까 아내가 ‟뭘 그만 일로 고민까지 하세요. 정 그러면 우리도 십만 원짜리 선물 하나 사다 주면 될 것 아니요.”하는 것이었다.
아내는 역시 나의 고민해결사다. 아내 없이 나는 살지 못한다. 나는 일금 십만 원을 아내에게 주었고 아내는 그 돈으로 슬기롭게 해결했다.
그 후에도 나는 여러 권의 책을 발간했지만 그 여인에게는 전해주지 않았다.
그런데, 이 다정한 이웃이 멀리 이사를 간다고 한다. 직장이 대구로 옮겨졌다는 것이다. 한 아파트 옆집에서 십년 넘게 살아온 마음씨 고운 이웃과 헤어진다는 것이 너무나 서운했다. 아내는 딸을 강남으로 시집보낼 때 보다 더 슬퍼했다.
아내는 그분들과의 마지막 석별의 정을 나누기 위하여 그의 주특기인 식혜를 만들었다.
아내의 식혜 만드는 솜씨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탁월하다. 남이 알지 못하는 노하우를 지니고 있는 모양이다. 손자들이 우리 집에 오면 식혜부터 찾는다. 식혜는 재료값이 얼마 들어가지 않는데도 여러 사람이 나누어 먹기에 좋은 음식이다.
아내는 숙경이 어머니를 오라고 하여 그가 만든 식혜를 함께 들면서 여러 가지 지난 이야기로 회포를 푼 다음 이사 가는 날 목이라도 축이라고 주스 통에 담아 주었다.
마침내 정든 이웃이 이사를 가고 말았다. 이삿짐을 실은 자동차가 떠나는 것을 끝까지 지켜보다 돌아온 아내가 방에 들어오더니 시장기가 들었는지 그가 만든 식혜를 훌쩍 훌쩍 마시고 있었다.
방안에서 신문지를 뒤적이고 있는 내 귀에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그건 우는 소리였다. 통곡에 가까운 흐느낌이었다. 나는 무슨 일인가 하고 아내가 식혜를 먹고 있는 부엌으로 나가 보았다.
아내의 식혜 그릇 속으로 눈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부녀회장에게 들은 이야기인데 숙경이네 집이 이사를 가는 것은 직장이 옮겨졌기 때문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 집을 급매로 내놓았기 때문에 시세보다 5천만 원을 싸게 팔았다는 것이다.
숙경이 아버지가 사업에 실패하여 부도가 났거나 중병에 걸린 것이 틀림없다는 것이다. 그 마음씨 고운 착한 사람들이 왜 그렇게 되는지 모를 일이라는 것이다.
마침내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아낸 아내는 가부좌 틀고 앉아 두 손 합장하여 쉼 없이 관세음보살의 명호를 부르고 있었다.
나는 좋은 법률가인 동시에 좋은 이웃이 되고 싶었는데 그 정다운 이웃을 도와 줄만한 좋은 법률가도 아니었고 좋은 이웃도 되지 못했다. 내가 법학을 전공한 것을 후회할 때가 더러 있는데 바로 이러한 경우가 그에 해당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