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부산 벡스코에서 1987년 대한항공기 폭파 사건의 범인인 김현희(47)씨와 북한에 의한 일본인 납치 피해자 다구치 야에코(田口八重子)씨의 장남인 이즈카 고이치로(飯塚耕一郞·32)씨가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연합
국정원 내부조사 향배 `관심'
참여정부시절 국정원으로부터 대한항공(KAL) 858기 폭파사건이 조작됐다는 증언을 하도록 강요받았다는 김현희(47)씨 주장의 진위가 국정원 내부 조사에서 어떻게 가려질지 관심을 모은다.
KAL기 폭파범인 김씨는 11일 일본인 납북 피해자 가족과 만난 뒤 가진 기자회견에서 자신이 최근 언론을 통해 주장한 국정원의 증언 강요설에 대해 "구체적으로 이야기하긴 그렇다"며 즉답을 피했다.
그러나 그는 "현 정부에서 지난 정부에서 있었던 일을 조사하고 있다고 하니 그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며 자신의 기존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김씨는 지난 해 11월 남편을 통해 이동복 북한민주화포럼 상임대표에게 전한 편지에서 노무현 정부 때인 2003년 국정원 등이 자신에게 방송에 출연, `KAL기 폭파를 북한 김정일이 지시하지 않았다'는 취지의 고백을 하도록 강요했다는 주장을 폈다.
참여정부 초반 과거사 진상규명이 활발히 이뤄질 당시 KAL기 사건 유족 측과 진보진영 일각에서 강하게 제기해온 전두환 정권의 자작극설(說)이 사실이라고 말하라는 강요를 받았다는 얘기다.
이 같은 주장에 대해 참여정부 초반까지 국정원에 몸담았던 한나라당 이철우 의원은 국정원의 `결백' 입장을 대변했다.
그는 작년 11월 당 최고위원.상임위원장단 연석회의에서 "김현희씨가 TV에 출연해 KAL기 사건은 조작이 아니라는 점을 설명해 달라는게 당시 국정원의 입장이었다"며 "김씨가 20년간 칩거하다 보니 신경이 날카로워지고 피해의식을 갖게 돼 그런 주장을 한 것"이라고 말했다.
김씨 주장의 파장이 진화되지 않자 국정원도 작년 말 내부 진상조사에 착수, 당시 담당 라인의 직원들을 대상으로 김씨 주장의 사실관계, 당시 전반적인 정황 등을 확인하고 있지만 현재까지 뚜렷한 결론을 내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정원이 김씨에게 TV출연을 권고한 것은 사실로 보이는 만큼 쟁점은 결국 나가서 무엇을 말하길 요구했느냐로 모아진다.
김씨 주장대로라면 진보 정권때 국정원 또는 일부 국정원 직원이 정권과 `코드'를 맞추기 위해 전두환 정부 시절 `국기문란' 행위가 있었음을 진술하도록 했다는 얘기가 된다.
반면 이철우 의원이 대변한 국정원 측 입장 대로라면 국정원 측은 김씨가 직접 나서서 자신들에게 쏠리는 의혹의 시선을 해소해 달라는 요구를 했던 게 된다.
2003년 11월 국정원 직원들이 KAL기 사건이 조작됐다는 내용의 실화소설을 쓴 작가를 명예훼손 혐의로 검찰에 고소한 것은 국정원 측의 `결백 주장'에 힘을 싣는 정황이다.
하지만 국정원이 조직적으로 김씨에게 진술 번복을 강요하진 않았더라도 일부 직원이 `일탈행위'를 했을 개연성은 배제할 수 없다는 시각도 있다.
국정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는 2007년 KAL기 사건 재조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조작 사건이 아님을 재차 확인한 바 있다.
대한항공 858기 폭파후 체포돼 1987년 12월 15일 김포공항에서 압송되는 김현희. ⓒ연합뉴스
북한 공작원 출신으로 대한항공(KAL) 858기 폭파테러범이었던 김현희(47) 씨가 “KAL기 사건은 북한이 한 테러고, 저는 가짜가 아니다”며 “일부 유가족이 의혹을 제기하는데 20년이나 지난 사건인데 아직도 뭐 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북한 노동당 직속 35호실로 불리던 대외정보조사부 소속 공작원이었던 김현희 씨. 그는 지난 1987년 11월 29일 바그다드에서 서울로 가던 대한항공(KAL) 858편 보잉 707기를 미얀마 근해에서 공중 폭파한 혐의로 체포, 그해 12월 15일 김포공항을 통해 국내로 압송돼 왔다.
김현희 씨는 11일 부산 해운대구 벡스코(BEXCO)에서 이뤄진 북한에 납치된 일본인 피해자 다구치 야에코(田口八重子)씨 가족과 면담 후 가진 공동 기자회견에서 대한항공 858기 폭파테러가 북한에 의해 자행됐음을 거듭 강조했다.
그렇다면 대한항공 858기 폭파테러 사건이 조작된 것이라며 북한의 테러를 전면 부정하는 정권의 자작극이라는 설(設)이 난무했던 까닭과 배경은 무엇이고, 과연 진실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이 사건을 둘러싸고 지금까지도 지난 1987년 12월 대선을 앞두고 전두환 신군부 독재정권이 노태우 전 대통령에게 정권을 넘겨주기 위한 조작된 자작극이었다는 가설들이 끊이질 않고 있다.
이러한 가설은 오랜 시간 “대선을 앞둔 시점에서 KAL기 사건이 발생하지 않았다면 노태우 대통령의 당선은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또는 “115명의 탑승객이 순식간에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러나 정부는 KAL858기 탑승객의 생존을 확인하기 위한 최소한의 노력도 하지 않았다. 이 사건으로 인해 당시 여당출신 대통령 후보자는 200만에 이르는 표를 확보했다”는 식의 내용으로 확대 재생산돼 왔다.
김현희 씨는 최근 조갑제 전 월간조선 대표와의 인터뷰에서 대한항공 폭파 사건을 준비했던 사전 작업들을 비교적 상세하게 털어놓았다.
“제가 사용한 건 북한에서 개발한 신종이었어요. 액체. 양주병 있잖아요, 헤네시나 코냑 병에다가 넣으면 겉으로 보면 똑같은데요 뭐. 색도 똑같고 무사통과예요. 라디오에 있던 컴포지션3인지 뭔지는 잘 모르고요. 남한에서 조사한다고 한 거지 저는 폭약관계는 사실 잘 모릅니다. 다만 액체 폭약에, 라디오에 3개인가 4개인가 들어갔어요. 오래돼서 뭐 특수제작을 해서 배터리에, 이쪽으로 틀면 라디오가 나오게끔 되어있고 나머지는 폭약이었다고 그러대요. 시간이 되면 액체폭약에 점화를 시켜주는 그런 역할을 하는 거였죠. 기폭제….”
김 씨는 또 자신을 두고 과거 TV방송에서 ‘김현희는 대한항공 테러범이 아니다’라는 주장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방송국) 스스로 바보 되는 거죠. (TV방송)선전 나오는 거 보고 깜짝 놀랐어요. '이거는 가짜입니다' 소리를 치는데…100명이서 하나 바보 만드는 건 문제도 아니다, 거기 나가서 진짜라고 말해봐야 먹힙니까? 오히려 바보 되지. 열 명이 달라붙어서 가짜라고 말하는 데서 제가 진짜라고 말해봐야 바보 되는 거지…가짜라고 그러는데, 그걸 어떻게 그렇게 단정해서 말할 수 있는 지. '이건 어디서 데려왔는지 모르지만 완전히 가짜다'라고 하는데 어떻게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지…책임 질 수 있는가요? 인간적으로 좀 너무 하대요.”
당시 폭파 테러가 조작됐다면 김 씨 역시 독재정권의 희생양인 셈이다. 그러나 이날 김 씨는 “현 정부에서 지난 정부에서 있었던 일을 조사하고 있다고 하니 그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면서도 극구 자신이 북한 공작원 출신이고, 북한이 저지른 테러였음을 숨기지 않았다. 그것이 진실이었기 때문이었다.
김 씨는 작년 11월 전 안전기획부(국정원 전신) 요원 출신 남편을 통해 이동복 북한민주화포럼 상임대표에게 전달한 편지에서 참여정부 시절인 2003년 국정원이 자신을 방송에 출연, “KAL기 폭파를 북한 김정일이 지시하지 않았다”고 고백하라고 강요했다고 주장했다.
다음은 김 씨가 이동복 상임대표에게 보낸 편지 중 일부 내용이다.
“5년 전인 2003년 경 친북성향의 정부가 들어서면서 세상은 저를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았습니다. KAL기 사건의 조작설과 음모론이 그 어느 시기 때보다 크게 제기되었고 MBC등 공영방송사들이 이에 편승하여 KAL기 사건의 실체를 부정적으로 방송하는 안타까운 사태가 발생하였습니다.…(중략) 그리고 MBC와 SBS 등 방송제작진들은 저의 집을 습격하고 촬영․방송하여 노출시키는가하면 국정원과 경찰당국은 저와 저의 가족을 추방하는 정말 있을 수 없는 일들이 발생했습니다. 2003년 10월이 되어 저의 신상에 이상한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국정원의 모 직원으로부터 국정원 내부가 시끄러우니 외국으로 이민을 갈 것을 권고 받았습니다. 담당직원으로부터는 전화로 수십 차례에 걸쳐 KAL기 사건에 관한 질문들을 받았습니다. 그는 저에게 뼈아픈 옛 기억들을 상기시켰습니다. 저와 관련해서 국정원 내부에 어떤 일이 전개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이러한 일련의 대한항공 폭파테러사건을 자작극으로 몰아가려 했던 일각의 시도는 1987년 신군부 독재정권의 자작극 설(設)이 사실임을 입증하려는 취지였던 것.
그러나 이러한 강요에 김현희 씨는 굴복하지 않았다. 흉악했던 신군부 독재정권을 두둔하자는 것이 아니다. 좌파정권이던 우파정권이 됐던 역사적 진실은 왜곡될 수 없고, 불변하기에 반드시 지켜져야 하기 때문이다.
11일 역사 속에서 부활한 대한항공 585기 폭파테러의 진실은 억측스럽게도 집요했던 방송사들의 조작 시도와 국정원의 거짓 고백 강요에도 김 씨가 다시 한 번 "명백한 북한에 의한 테러였다"고 밝히며 진실임을 재확인시켜주었다.
조갑제 전 월간조선대표는 이날 오전 기자회견장에 나가기 직전의 김 씨와 자신이 나눈 전화통화 내용을 홈피에 이렇게 소개했다.
“기자들 앞에서 김현희 씨가 웃지 않았으면 합니다. 김현희 씨가 잘 살면 배가 아프고, 못 살면 가슴이 아픈 사람들이 많아요. 지난 좌파정권 때 아무리 억울한 일을 당했어도 김 씨에 의하여 115명이 죽었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됩니다.”
조갑제닷컴에 공개된 KAL기 폭파 테러범 김현희 씨가 이동복 북한민주화포럼 상임대표에게 전달한 편지 원본(위).11일 오전 부산 해운대구 벡스코 컨벤션센터에서 북한이 납치한 일본인 다구치 씨 가족과 면담을 갖고 기자회견을 하는 김현희 씨.(아래)
1987년 대한항공(KAL)기 폭파사건의 범인 김현희씨가 11일 북한에 납치된 일본인 다구치 야에코(田口八重子)씨의 가족을 부산에서 만났다. 북한은 도쿄에서 다구치씨를 납치해 북한으로 끌고가 이은혜란 이름을 지어주었다. 김현희씨에게 일본어와 일본 관습을 가르친 게 바로 이은혜다. 다구치씨는 1978년 실종 당시 22세였고 한 살배기 아들이 있었다. 이 아들이 32세 청년으로 성장해 자기 어머니에게서 일본어를 배웠다는 김씨를 만나러 한국을 찾은 것이다.
북한은 다구치씨 납북사실을 인정하면서도 "1986년 교통사고로 사망했다"고 했다. 그러나 김씨는 이날 "(내가 북한에 없을 때인) 1986년 다구치씨를 결혼시켜 어디로 데려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피랍자들이 그냥 죽었다고 생각하지 말고 그들이 돌아오도록 계속 노력한다면 기적이 일어날 수도 있다"고 했다.
일본 정부는 북한이 납치한 일본인이 모두 17명이라고 밝혀 왔으나, 북한은 자신들이 납치한 일본인은 13명이라고 주장해 왔다. 그중 5명이 2002년 고이즈미 총리 방북(訪北) 직후 일본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북한은 나머지 8명은 죽었다고 했다. 그리고 일본측이 제시한 납치자 명단 가운데 4명은 북한에 온 사실이 없다고 하고 있다. 그러나 다구치씨의 오빠는 이날도 "북한이 납치한 일본인이 아직도 모두 생존해 있다고 믿는다"고 했다. 일본은 일본인 납치문제 해결을 최우선 외교 과제로 삼고 있다. 북한과의 관계정상화 협상은 물론 북핵 6자회담 등에서도 주요 고비마다 납치문제 우선 해결을 주장해 왔다.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도 지난달 일본 방문 때 피랍자 가족들을 만나 이 문제 해결에 대한 미국측 의지를 보여줬다.
북한은 일본인만이 아니라 세계 여러 나라 사람들을 납치해 평양으로 데려와 여러 용도로 부려먹었다. 대한민국은 북한이 저지른 민간인 납치 범죄의 가장 큰 피해자다. 6·25전쟁 이후 어부 등 499명이 북한으로 끌려갔지만 대부분 생사조차 확인하지 못하고 있다. 북한은 납치·납북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국제사회의 정상적인 일원으로 복귀할 수 없다. 북한은 납치·납북자들의 생사 확인과 진상 규명, 가족 상봉, 자유의사에 따른 거주지 선택 등을 허용해야 한다.
김현희씨는 이날 다구치씨 가족과 만나는 자리에서 "KAL기 폭파는 북한의 테러이며 나는 가짜가 아니다"라고 했다. 김씨는 작년 말 인터뷰에서 "노무현 정권에서 국가정보원을 동원해 나를 MBC 등에 출연시켜 바보로 만들려 했다"고 말했었다. 김씨는 KAL기 폭파마저 조작으로 몰아가려 했던 범죄 음모에 대해 "나는 가짜가 아니다"라고 절규한 것이다. 국정원은 김현희씨마저 가짜로 몰아가려 했던 전(前) 시대의 공작에 대한 조사를 신속히 마무리, 진상을 낱낱이 밝히고 소모적 논란에 마침표를 찍어야 한다.
조선닷컴 입력 : 2009.03.11 2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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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희 "난 가짜 아니다"…'폭파 조작설' 일축
<8뉴스>
<앵커>
김현희 씨는 당시 폭파사건은 조작된 거란 항간의 의혹을 강하게 부인했습니다. 사건은 '북한의 테러'이며, 자신은 가짜가 아니라고 강조했습니다.
안정식 기자가 보도합니다.
<기자>
다구치 씨 가족을 만나며 애틋한 감정을 내보였던 김현희 씨는 대한항공기 폭파사건 조작의혹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 단호하게 자신의 입장을 밝혔습니다.
김 씨는 "일부 유족들이 북한이 저지른 증거가 없다면서 의혹을 제기하고 있는데 20년이나 지난 사건을 아직도 누가 했는지 모른다는게 안타깝다"면서 의혹을 일축했습니다.
[김현희/1987년 KAL기 폭파범 : 제가 분명히 말하고 싶은 것은 이 KAL기 사건은 북한이 한 테러이고 저는 더이상 가짜가 아니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김 씨는 또 오늘(11일)은 다구치 씨 가족을 위한 자리라며 가급적 말을 아끼면서도 북한의 테러임을 인정한다면 유족들과의 면담에도 응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참여정부 시절 국정원이 폭파사건 조작설을 퍼뜨리기 위해 방송에 출연하도록 압력을 가했다는 자신의 주장에 대한 질문을 받고는 "정부의 조사결과를 기다리겠다"며 구체적인 답변을 하지 않았습니다.
[유가족 분들의 아픈 마음을 헤아리기 위해서 그냥 조용히 살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다 아시다시피 지난 정부에서 그런 일이 있었는데….]
국정원은 김 씨 주장의 사실여부를 가리기 위해 지난해 말부터 조사을 벌이고 있지만 아직 뚜렷한 결론을 내리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1987년 대한항공(KAL) 858기 폭파범인 김현희(47) 씨가 12년 만에 처음으로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내면서 그동안 그의 행적에도 관심이 쏠린다.
김씨는 1990년 3월 대법원에서 사형 선고가 확정되고서 보름 만에 특별사면돼 풀려난 뒤 안보 관련 외부 강연과 수기(手記) 출간 등 공개 활동을 했지만 1997년 5월 전국 공안검사 세미나에서 특강한 것을 마지막으로 공개석상에서 모습을 감췄다.
정부 관계자는 "공안검사를 상대로 한 특강이 김 씨의 마지막 공개활동이었고 그 해 12월 경호를 담당했던 전직 안기부 직원과 비공개 결혼을 하면서 김 씨의 신변보호도 안기부에서 경찰로 이관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김 씨는 이후 서울과 시댁이 있는 경북 일원을 오가며 생활하면서 2000년 아들, 2002년 딸을 각각 출산하는 등 비교적 안정적으로 사회에 적응해간 것으로 알려졌고 KAL기 폭파사건도 점차 세간의 관심에서 멀어져 갔다.
하지만 언론과 소설 등을 통해 KAL기 폭파사건에 대한 의혹이 다시 불거져나오면서 그는 재차 언론의 주목을 받았고 2003년 말 마침 한 방송사가 자택과 친척집 등을 오가는 자신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자 같은 해 11월 중순 이후 잠적했다.
그 후 김 씨가 가족들과 경북 일원에서 여러 곳을 돌아가며 살고 있다는 설과 서울 서쪽에 경기도와 접하는 지역에 거주하고 있다는 설 등이 나돌았으나 확인된 것은 없었다.
단지 2006년 8월 2일 한나라당의 대북 정보통 이었던 당시 정형근 최고위원이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김씨는) 아마 서울, 경기도 서쪽 접경 변두리에 꼭꼭 숨어 있고, 외출할 때에도 (모습을) 안 나타내려고 하는 것으로 듣고 있다"고 주장한 것이 전부였다.
국정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 는 2007년 KAL기 사건 재조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조작 사건이 아님을 재차 확인했지만 김씨의 거부로 조사과정에서 김씨와의 면담조사는 이뤄지지 못했다. 당시 김씨는 과거 호의적이었던 국정원이 달라져 KAL 858기 폭파사건을 재조사하도록 결정한 것에 대해 강한 배신감을 느끼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김씨는 이어 지난 해 11월 남편을 통해 이동복 북한민주화포럼 상임대표에게 전한 편지에서 노무현 정부 때인 2003년 국정원 등이 자신에게 방송에 출연, KAL기 폭파를 북한 김정일이 지시하지 않았다 는 취지의 고백을 하도록 강요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주원 기자>
{ⓒ '글로벌 종합일간지' 아시아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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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나는 가짜가 아니다”라는 김현희의 육성
20090311004289
김현희씨는 “KAL기 사건은 북한 테러이며 나는 가짜가 아니다”라고 조작설을 일축했다. 김씨는 노무현정부의 진상 왜곡 시도를 묻는 질문에 “그런 일이 있었다”고 답했다. 일본인 납치 피해자 가족과 어제 면담한 뒤 공개 기자회견에서였다. 이로써 명백해졌다. 노무현정부의 과거사 규명 작업은 있는 사실을 없는 것으로 만들려는 허무맹랑한 조작 수준이었음을 부인하기 어렵게 됐다. 김씨는 내외국인 115명을 희생시킨 1987년 대한항공(KAL) 858기 폭파범이다. 비록 1990년에 특별사면됐지만 사형을 선고받기까지 했다. 지금도 여전히 큰 심적 고통을 겪고 있을 것이다. 그런 그가 공개석상에 나와 “내가 폭파 범인이니 믿어 달라”라고 주장하는 것은 참으로 딱한 일이다. 과거 정부의 사건 왜곡 집착이 얼마나 강했으면 이런 지경에 이르렀는지 헤아리기 어렵지 않다.
노무현정부의 국가정보원이 왜곡에 앞장섰다는 사실은 이미 알려져 있다. 당시 국정원은 “MBC PD수첩에 출연하거나 인터뷰에 응해 KAL기 폭파를 북한 김정일이 지시하지 않았다고 고백하라고 여러 차례 강압했다”고 김씨가 편지를 통해 지난해 공개한 바 있다. 김씨는 진술 번복 강요를 뿌리친 벌로 살던 곳에서 쫓겨나고 5년간 도피생활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과거사위원회는 김씨에게 10여차례에 걸쳐 조사를 받으라고 요구했다고 한다. 독재정부에서나 가능한 인권 유린이고 권력 남용이다.
김씨의 공개 육성이 나왔으므로 노무현정부의 사건 왜곡과 강압 의혹은 한 점 의혹이 없도록 조사돼야 한다. 김씨는 회견에서 “정부가 조사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했다. 그렇다면 국정원이 왜 이런 일에 앞장섰는지, 지시 라인이 누구인지, 과거사위의 활동은 정당했는지를 규명해 조속히 공개해야 한다. 관련자는 일벌백계해야 할 것이다. 아울러 조작설을 전파한 정황이 짙은 지상파 방송 3사 등의 배후에 누가 있는지도 밝혀내야 한다.
★*… 대한항공기 폭파 사건의 범인인 김현희 씨와 북한에 의한 일본인 납치 피해자 다구치 야에코 씨 가족의 면담이 11일 부산 벡스코에서 예정된 가운데 김현희 씨가 대한항공기 폭파사건 이후 22년만에 공식석상에 처음으로 얼굴을 드러냈다. 검은 정장을 입은 김현희 씨가 경찰특공대의 호위를 받으며 벡스코에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11일 부산 벡스코(BEXCO) 기자회견장. '대한항공(KAL) 858기 폭파 조작설'에 대한 질문에 답하는 김현희(47)씨의 얼굴에는 안타까움이 배어 나왔다.
22년 전인 1987년 115명의 생명을 앗아간 사건에 대해 "진범이 바로 나이니 제발 믿어달라"고 다시 공개석상에서 설명해야 하는 자신의 처지에 대한 회한도 서려 있는 듯했다. 내내 조용하던 목소리도 이때만큼은 높아졌다. 김씨는 "일부에서 아직까지 (KAL기 폭파는 안기부의 자작극이며 '북한 공작원 김현희'는 가짜라는) 의혹을 제기하는데 20년 지난 사건을 아직도 누가 한지 모른다는 것이 안타깝다. KAL기 사건은 북한의 테러"라고 강조해 말했다.
검은색 바지정장 차림에 짧은 머리를 한 김씨는 다소 야윈 모습이었다. 김씨의 이날 공개 기자회견은 근 19년 만이다. 1987년 사형선고를 받은 그는 1990년 특별사면을 받은 뒤 이듬해 기자회견을 가졌고, 이후 간간이 언론에 등장했지만 공개된 석상에는 일절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었다.
▲ KAL기 폭파범 김현희씨(오른쪽)가 11일 일본인 납북자로 북한에서 자신에게 일본어를 가르친 다구치 야에코씨의 아들을 만나 울고 있다. 아들의 얼굴에서 생사 여부를 알 수 없는 엄마 다구치씨의 모습이 보여 감정이 북받쳤나 보다. 아래 왼쪽은 1988년 12월 검찰에 출두할 당시인 20대의 김씨 사진이고, 아래 오른쪽은 11일 기자회견장으로 들어가는 모습이다./부산=사진공동취재단
김씨는 지난 몇 년간의 근황을 설명하며 "피난생활"이라는 표현을 썼다. "(1997년) 결혼하고 나서 사회와는 거리를 둔 채 (KAL기 사건) 유가족 아픔을 헤아리며 조용히 살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아시다시피 지난 정부에서 '그런 일'이 있어서…. 현 정부가 지난 정부에서 있었던 일을 조사하고 있다고 하니 그 결과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런 일'이란 김씨가 노무현 정부 시절 겪었던 일들을 가리키는 듯하다.
김씨는 최근 이동복 북한민주화포럼 대표에게 보낸 편지 등을 통해 "(노무현 정부 때인) 2003년 국정원 등의 친북좌파세력이 방송을 동원해 KAL기 폭파 조작설을 퍼뜨리기 위해 나를 방송에 출연시켜 'KAL기 폭파를 북한 김정일이 지시하지 않았다'는 취지의 고백을 하도록 강압했다"는 주장을 해왔다. 그러나 김씨는 "그때 있었던 일을 이 자리에서 다 설명하기는 그렇고…"라며 말을 최대한 아꼈다.
이날 기자회견은 일본 외무성 주관으로 김씨가 일본인 납북 피해자 다구치 야에코(田口八重子)씨 가족들과 만나는 것을 계기로 성사됐다. 다구치씨는 1978년 북한에 납치된 뒤 2년가량 김씨와 함께 살면서 일본어를 가르친 인물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씨는 기자회견에 앞서 다구치씨의 장남 이즈카 고이치로(飯塚耕一郞·32)씨와 오빠인 이즈카 시게오(飯塚繁雄·70)씨를 만난 자리에서 잠시 어색해하다가 이내 눈물을 흘렸다. 그는 고이치로씨에게 "어머니를 닮아 역시 핸섬하다. 어머니는 살아있으니 희망을 가져라"라고 했다. 고이치로씨도 "어머니가 확실히 생존해 있다는 증언을 받았고 김현희씨가 (북한의 어머니 대신) 한국의 '어머니'가 되겠다고 했다"고 했다.
북한은 1978년 실종된 다구치(당시 22세)의 납북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다구치는 1986년 교통사고로 사망했으며 유골은 호우로 유실됐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김씨는 "다구치는 1987년에도 나에게 일본어를 가르쳤다"며 북한의 주장은 거짓이라고 말해왔다. 일본 정부는 김씨로부터 확보한 정보를 바탕으로 북한에 해명을 요구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씨는 기자회견에서 한국과 일본 정부를 향해 납치자 문제에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달라고도 했다. 그는 "북한의 자존심을 살려주면서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봐야 하지 않나. 그런 방법으로 계속 노력한다면 기적이 일어날 수도 있다. 한국과 일본 정부는 납치자들이 그냥 죽었다고 생각하지 말고 그들이 가족을 만나도록 해줘야 한다"고 했다.
이날 행사장인 벡스코 주변은 북한의 테러 등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철통 보안이 이뤄졌다. 국정원과 경찰은 폭발물 탐지능력을 갖춘 경찰특공대를 비롯한 정예 요원을 배치하고, 취재진 등 모든 출입자에게 액체 반입까지 금하는 등 '비행기 탑승' 수준의 보안을 거치도록 했다.
김씨가 오전 10시50분쯤 도착하자 건물 외곽에 대기하고 있던 사복차림의 경찰기동대 100여명이 2열로 도열했고, 김씨는 승합차에 함께 타고 있던 특공대원 3명의 근접호위를 받으며 면담장으로 들어섰다.
KAL기 폭파 사건
1987년 11월 29일 승객과 승무원 115명을 태우고 이라크 바그다드에서 서울로 향하던 KAL858기가 버마(미얀마) 안다만 해역 상공에서 폭파돼 탑승자 전원이 사망했다. 폭파범인 북한 공작원 김현희(일본명 하치야 마유미·당시 24살)는 13대 대통령선거를 하루 앞둔 12월 15일 서울로 압송됐다. 이후 이 사건은 대선 국면을 유리하게 만들기 위한 당시 안기부(현 국정원)의 자작극이라는 의혹이 제기됐었지만, 2007년 국정원 과거사위는 "조작설은 근거가 없다"고 결론 내렸다.
▲ 1987년 대한항공 858기 폭파 사건의 범인인 김현희(47)씨가 11일 북한에 의한 일본인 납치 피해자 다구치 야에코(田口八重子)씨 가족과 공개적으로 만났다. 김씨는 이날 오전 11시 부산 해운대구 벡스코(BEXCO)에서 다구치씨의 장남 이즈카 고이치로(飯塚耕一郞·32)씨, 오빠인 일본인 납치피해자가족회 대표 이즈카 시게오(飯塚繁雄·70)씨와 만났다. 이는 다구치씨가 납치된 지 31년만, KAL기 폭파사건이 발생한 지 22년 만이다. /정경열 기자
▲ 1987년 대한항공 858기 폭파 사건의 범인인 김현희(47)씨는 11일 일부에서 제기하고 있는 사건 조작의혹에 대해 “KAL기 폭파 사건은 북한의 테러이며, 나는 더이상 가짜가 아니다”고 말했다. 김씨는 이날 오전 부산 해운대구 벡스코(BEXCO)에서 북한에 의한 일본인 납치 피해자 다구치 야에코(田口八重子)씨의 장남 이즈카 고이치로(飯塚耕一郞·32)씨, 오빠인 일본인 납치피해자가족회 대표 이즈카 시게오(飯塚繁雄·70)씨와 면담을 가진 뒤 가진 기자회견에서 “아직까지 유가족 일부가 조작의혹을 하는데 20년 지난 사건을 아직도 누가 했는지 모른다는 것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정경열 기자
▲ KAL 858기 폭파범 김현희씨가 일본인 납북 피해자이자 김현희씨의 일본어 선생으로 알려진 다구치 야에코씨의 가족과 11일 부산 해운대 벡스코에서 만났다. /김용우 기자
입력 : 2009.03.12 02:40 / 수정 : 2009.03.12 07:09 조선일보 & 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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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년만의 외출
김현희 "나는 가짜가 아니다… KAL기 폭파는 북한의 테러"
"나는 가짜가 아닙니다." 11일 19년 만에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낸 KAL기 폭파범 김현희씨는 이렇게 항변 아닌 항변을 했다. 그는 북한 눈치를 보기 바빴던 지난 정권 10년 동안 'KAL기 사건은 우리 정보당국의 자작극'이라고 끊임없이 사건의 왜곡을 시도했던 일부 좌파 세력과, 그 장단에 춤춘 일부 정권 사람들에게 맺힌 게 많은 듯했다. "(지난 정권에서) 있었던 일을 다 설명하기는 그렇고…"라며 말을 아낀 김씨는 최근 몇년 근황을 '피난생활'이라고까지 했다. 20여년 전에는 '남북 분단의 희생자'로 묘사됐던 그가 이제 다시 자신의 뜻과는 상관없이 남녘 땅 좌우 이념 대립의 복판으로 내몰리게 된 것이다. 김씨가 11일 부산 한 호텔에 마련된 기자회견장에 들어서고 있다.
▲ 사진=로이터
입력 : 2009.03.12 02:43 / 수정 : 2009.03.12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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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해만 돌아온 KAL기
★*… 1987년 11월 27일 북한공작원 김현희 씨가 미얀마 근해 상공에서 폭파한 대한항공기의 잔해와 승객들의 유품이 1990년 5월 22일 김포공항을 통해 도착한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