낚시를 가다
박덕균
정말 오랜만의 여행인데 낚시를 갔다.
취미로라도 낚시를 하는 회원이 한 명도 없는데 가을 야유회에 낚시를
하기로 한 것이다.
필자는 고교시절과 20대 초반에 낚시를 조금 하다가 사연이 있어 낚시를 접고는 그 이후로 30년 가까이 낚시를 하지 않았으니 낚시에 대한 문외한이나 마찬가지다. 더구나 바다낚시는 처음이다.
OB회라는 모임이 있는데 뜻은 old best 라는 뜻이고 십여 년 전에 여주시 수도사업소에 근무 경력이 있는 직원들이 가끔 모여서 저녁을 먹게 된 것이 계기가 되어 모임을 결성하게 되었다.
그땐 회원이 6명 정도밖에 되질 않아서 하나둘 영입을 하게 되었고 알게 모르게 소문이 나면서 입회 신청을 하는 사람이 늘게 되어 지금은 회원이 모두 열여덟 명이나 되는 튼실한 모임으로 거듭났다.
OB회는 회원이 되기가 힘들다. 상수도 업무 쪽의 경력이 있어야 하고 기존 회원들이 만장일치로 찬성을 해야 한다. 투표는 비밀투표이고 만약
한 사람이라도 반대한다면 회원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모임은 번개 모임도 가끔 하지만 정기 모임은 년 초에 해맞이를 가는 것과 가을에 야유회를 가는 것이 정례화되어 있다.
각설하고 앞에서도 이야기했듯이 올해도 야유회를 가기로 하고 회원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에서 삼길포항 인근에 지인이 원룸을 지었는데 방이 몇 개 비어 있으니 사용해 보란다는 것이다. 마침 1층은 식당을 운영한다고 하니 괜찮을 것 같다는 의견이 많았다.
그래서 장소는 삼길포항으로 정하고 그곳에 가면 무엇을 할 수 있느냐 물어보니 바다낚시를 할 수 있다고 해서 모든 회원이 좋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되어 회원 열여덟 명 중 갑자기 아파서 못가는 회원 한 명과 일이 있어 못가는 회원 두 명을 빼고 열다섯 명이 야유회를 떠나게 되었다.
회원들의 업무에 지장이 없게 하려고 금요일 오후에 떠나서 하룻밤을 묵고 다음 날 새벽에 낚시를 하고 돌아와 일요일은 쉬도록 일정을 잡았다. 물론 쉽지 않은 강행이었으나 회원들의 적극적인 열정 덕분에 큰 무리 없이 여행을 떠날 수 있었다.
서산에 도착해 숙소를 확인하고 뒤늦게 따라오는 회원들을 배려해 저녁
식사를 뒤로 미루고 숙소에서 15분 거리에 있는 삼길포항엘 갔다.
좌대 낚시터를 처음 보았는데 항구와 대호방조제 사이에 바지선을 띄워놓고 그 위에서 하는 낚시터였다. 만석좌대, 김선장좌대. 대호좌대 등 여러 곳이 있었지만, 사전에 숙소 주인이 추천해 준 곳이 만석좌대라는 곳이라서 사장님을 만나 낚시 시간과 준비물에 관한 설명을 듣고 낚시터를 확인하고 돌아치다 보니 어느새 항구에 석양이 내려앉고 있었다.
이곳은 서해이지만 일출도 볼 수 있다고 하니 새벽에 낚시터에 오면 해
뜨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숙소로 돌아와 짐을 풀고 저녁 식사를 막 시작하려는데 업무 때문에 늦게 출발한 회원 세 명이 마침 도착해 참석하기로 한 회원 모두가 함께 맛난 저녁을 즐겼다. 메뉴는 꽃게찜, 대하구이, 가리비찜, 해물탕 코스로 정말 맛있고 푸짐한 저녁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각자 선호하는 게임에 맞추어 끼리끼리 모여 게임을 즐겼고 게임보다 술을 좋아하는 주당 회원들은 그동안 밀린 대화를 나누며 밤이 깊어가는 줄도 모르고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다음날 새벽에 낚시를 가려면 적당히 하고 좀 쉬어야 한다고 언질은 주고는 먼저 숙소에 들어 일찍(?) 잠을 청했다.
피곤했다. 전날 야근을 했으니 오전에 좀 쉬었다 출발을 해야 했는데 버섯을 잘 따는 지인을 따라 산에 다녀와서 바로 출발을 했기 때문에 체력이 버티질 못했다.
늦은 밤 어렵사리 잠이 들었는데 회원들이 하나둘 숙소로 들어오며 잠을 깨웠다.
새벽 3시, 두 회원이 잠을 자려니 다른 회원들이 코를 골아서 잠을 못 자겠다고 칭얼대기에 1층 식당이 제법 커서 손님 받는 방이 몇 개 되니 여기서 주무셔도 된다는 주인의 말이 생각나 잠자리를 마련해 주고 담요를 가져다주고 게임을 하던 자리 옆에서 자는 회원들 방에 불을 끄고 나오니 새벽 3시 30분이 넘었다.
그래도 잠시 눈을 붙였다고 잠이 오질 않아 숙소 밖으로 나와 산책을 했다. 새벽바람이 상쾌했다. 하늘은 왜 이리 맑고 별은 왜 그리 많은지 눈이 시렸다. 하늘은 다 같은 하늘인 줄 알았는데 어릴 적 고향의 하늘을 여기서 보는 듯했다.
잠시 뒤 숙소로 돌아오니 버스 기사님이 밖으로 나오시기에 왜 벌써 나오시냐고 물으니 5시에 출발하는 것 아니냐고 하신다.
어느새 새벽 4시 40분이었다.
회원들이 피곤할 테니 출발시각을 조금만 늦추자고 하고는 5시에 숙소를 돌아다니며 회원들을 깨워 식당에 부탁해놓은 해물라면을 먹고 부랴부랴
항구로 출발했다.
항구는 낚시꾼들로 들썩거리고 여명은 벌겋게 물이 오르고 있었다.
새벽 낚시가 유리하다고 해서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아 회원들을 나누어
반은 줄 서서 기다리고 반은 준비물을 사야 했다.
미끼, 바늘, 장갑, 음료수, 컵라면, 소주 등등 만반의 준비를 하고도 시간이 남아 그나마 다행이었다.
드디어 아침 6시 30분, 저마다 대어(大魚)와 다어(多魚)의 꿈을 안고 출발하기 시작했다. 좌대에 도착해 낚싯대를 대여하고 낚시하는 방법에 대해 설명을 듣고 6명은 가두리낚시를 9명은 자연낚시를 시작했다.
먼저 도착한 우리 옆의 가족들은 벌써 우럭 4마리 돔 2마리를 건져 올리고 의기양양해 있었다. 그야말로 전문가였다.
우리 회원들도 우럭 한 마리, 삼치 한 마리를 건져 올리며 환호성 속에서 환상의 꿈이 부풀어 올랐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었다. 일본열도로 상륙한 태풍 탈림의 영향이 있었다지만 바람도 괜찮았고 파도도 별로 없었다.
그런데 낚시는 꽝이었다. 2시간이 넘도록 어떤 회원도 물고기를 건져 올리지 못했다. 미끼도 생새우, 갯지렁이, 오징어, 꼴뚜기에 밑밥까지 이것저것 다 써보고 사장님의 낚시 강의와 옆 좌대 아저씨의 낚시에 대한 조언에도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자연낚시야 어차피 운에 맡긴다지만 가두리 낚시를 회원을 바꿔가면서
해보고 낚시터를 옮겨 다니며 해봐도 별 소용이 없었다.
회원들이 다 지쳐서 컵라면에 소주를 마시며 가두리에 물고기를 풀어 넣는 시간을 기다려서 해보기로 했지만, 그마저도 운은 따르질 않았다.
하기야 낚시꾼들은 백 명도 넘는데 물고기 20~30마리 풀어서 그 물고기가 초보자들 차지까지 올 리가 만무하지 않은가.
이제나저제나 하며 참고 참다가 회원들과 상의를 해서 이 낚시터는 손님들 우롱하는 사기꾼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모두 철수를 했다.
결국, 우리는 대리만족으로 선상횟집을 찾았다. 바닷가에 배를 대놓고 회를 썰어 주는 곳이 선상횟집이다.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다 인심 좋게 생긴 아주머니에게 이것저것 회를 넉넉하게 사고 소주와 초고추장, 마늘, 야채 등을 사도 채 십만 원이 들지 않았다. 좌대낚시에 들어간 비용이 준비물을 포함해 오십만 원 넘게 들었으니 정말 미친 짓이다.
확신하건대 우리 회원들은 앞으로 좌대낚시는 절대 안 할 것이다.
어쨌든 바닷가 그늘막 아래 둘러앉아 넋두리를 늘어놓으며 먹는 회 맛은
정말 꿀맛이었다. 좌대를 잘못 선택했느니 너무 큰 좌대로 가서 대접도 못 받고 돈만 날렸느니 좌대낚시는 사기라느니 하면서 분위기는 물이 올랐고 어젯밤 누가 웃었고 누가 울었냐는 등 시시콜콜하고 구수한 대화에 웃음이 끊이지 않는 자리였다.
비록 물고기는 못 잡았지만 이번 야유회가 나름 재미있고 의미 있는 나들이였다고 회원들이 입을 모으니 우리의 이번 야유회도 성공한 셈이다.
새벽부터 서두른 일정이었기에 일찍 귀가하기로 하고 각자 선물들을 사
들고 돌아왔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도 피곤한 회원이나 운전을 할 회원들은 쉬었지만 그렇지 않은 회원들은 돌아오는 내내 화기애애한 술 파티가 이어졌다.
여주에 도착하니 오후 3시가 되었다.
아침과 점심을 제대로 못 먹었기에 해장국에 소주 한 잔으로 헤어짐의 아쉬움을 달랬다.
금요일 오후 출발하는 힘든 일정에 열의를 다해 참석해 주시고 빡빡한 강행군에 모두 동참하여 함께 즐겨주신 우리 회원님들에게 다시 한번 진심으로 고맙다는 인사 말씀 전하며 다음의 야유회는 좀 더 알차게 준비해야겠다고 살며시 다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