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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차 세계대전과 어린이의 삶
안선모
1. 전쟁과 인간
사람들은 여러 가지 이유로 전쟁을 한다. 종교와 사상 때문에, 자유와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석유를 얻기 위해, 물을 얻기 위해, 땅을 지키기 위해, 돈을 벌기 위해, 상대 국가를 잘 모르고 오해해서, 혹은 어떤 진실을 감추기 위해 등등. 이 모든 이유의 저변에는 자기 나라는 정의롭고 옳으며, 상대편 나라는 옳지 못하다는 생각이 깔려 있다. 그렇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전쟁을 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그들이 말하는 선악의 판단 기준은 무엇일까? 과연 그들이 세워놓은 그 판단 기준이 절대적인 잣대라고 확신해도 되는 것일까? 그 누구도 판단할 수 없는 자신들만의 잣대로 인간은 전쟁을 벌였고, 전쟁에 참여했으며, 그것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임이 분명하다.
인류 역사에서 전쟁은 언제나 참혹했지만 20세기에 들어서면서 훨씬 더 끔찍한 일이 되었다. 1,2차 세계대전에 사용된 새로운 무기는 한 번의 공격으로 수십만 명의 생명을 앗아갔으며 군인들뿐 아니라 전투와 상관없는 민간인들조차 공격의 대상이 되어 전방과 후방의 구분이 없는 대량 학살이 이루어졌다. 그렇게 일어난 두 번의 세계 전쟁은 어떤 이유로 일어났으며, 어떤 모습으로 사람들의 삶을 바꾸어 놓았을까? 이런 궁금증을 바탕으로 아동문학 작품 속에 나타난 전쟁의 모습과 그 전쟁이 바꾸어놓은 어린이의 삶을 살펴보고자 한다.
2. 세계 역사에서 가장 큰 두 가지 전쟁
1) 1차 세계 대전의 개요
1914년 6월 28일, 오스트리아의 황태자 프란트 페르디난트가 부인과 함께 보스니아 사라예보에서 열리는 오스트리아 육군의 연습을 보러왔다 돌아가는 길에 세르비아 청년의 총을 맞아 죽는 사건이 일어났다. 이 사건을 계기로 세르비아를 확실하게 짓밟을 구실을 갖게 된 오스트리아는 1914년 7월 28일-정확히 사라예보 사건이 일어난 지 한 달 만에 전쟁을 선포하게 된다.
사람들은 모든 전쟁을 끝내기 위한 전쟁이라면서 이 전쟁을 시작했다. 하지만 1차 세계대전은 더 큰 전쟁의 서곡에 불과했다. 이때 죽은 사람만 약 9백만 명, 다친 사람은 2천2백만 명이 넘는다. 5년 동안이나 참호전이 계속되었으며 이 전쟁부터 대량 살상 무기가 크게 발전해 전투기, 독가스, 전차, 잠수함, 기관총 등이 사용되었다. 이 전쟁으로 영국, 프랑스, 러시아에서 가족을 잃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2) 2차 세계 대전의 개요
1939년 9월 1일, 독일이 폴란드를 쳐들어가 점령함으로써 시작된 제2차 세계대전은 이틀 후인 9월 3일, 영국과 프랑스가 독일에 선전 포고를 함으로써 본격적인 전쟁의 막이 올랐다. 그로부터 반 년 만에 덴마크, 노르웨이, 프랑스, 네덜란드, 벨기에, 룩셈부르크를 차지한 독일은 이에 만족하지 못하고 소련을 공격하게 된다. 이에 분노한 소련은 영국과 프랑스와 동맹을 맺고 독일에 맞서게 됨으로써 본격적인 제 2차 세계대전이 시작되었다. 독일의 편에 서 있던 이탈리아는 영국이 지배하고 있던 북부 아프리카를 공격해 전쟁을 벌이고, 동남아시아에 이어 남태평양에 힘을 뻗치려던 일본은 1941년 12월 7일, 미군이 머무르던 하와이의 진주만을 선전 포고도 없이 공격하는 등 침략전쟁의 야욕을 드러냈다. 하지만 미국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한 원자폭탄의 위력에 일본이 항복함으로써 전쟁은 드디어 막을 내렸다. 6년에 걸친 전쟁으로 일반인과 군인을 포함해 약 5,000만 명의 희생자가 생겨났다. 일본의 경우 원자폭탄 투하로 14만 명이 다치거나 죽었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핵이 폭발할 때 생겨난 방사능에 오염돼 큰 고통 속에서 살아가는 등 전쟁의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3. 아동문학 작품 속에 나타난 전쟁과 삶의 모습
세계대전을 다룬 아동문학 작품의 수가 그리 많지 않으므로 여기서는 세계 대전 별로 구분하는 대신 그림책 부문과 일반책 부문으로 나누어 논하고자 한다.
1) 그림책 부문
<크리스마스가 가져다준 평화>
<존 매커천, 해와나무>
‘전쟁 속에 꽃핀 평화, 크리스마스 휴전 이야기’라는 부제에서 볼 수 있듯이 이 책은 제 1차 세계 대전 당시 적군과 아군의 구분 없이 함께 어울려 지낸 달콤했던 하루 동안의 평화와 행복에 대한 이야기다. 지은이 ‘존 매커천’은 미국에서 유명한 포크 음악인으로 1984년 자신이 쓴 ‘참호에서 보낸 크리스마스’라는 곡을 바탕으로 이 그림책을 썼다.
영국인 할아버지가 손자손녀에게 가장 즐거웠던 1914년의 크리스마스를 얘기해주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1차 세계 대전이 시작된 그해 겨울 프랑스와 벨기에 국경 사이에 참호를 만들어 참호전이 시작되었는데, 이 참호전이란 것은 먼저 공격하는 쪽의 피해가 컸기 때문에 서로 눈치를 보며 공격을 미루고 있는 상황이었다. 전쟁에 동원된 군인들은 앳된 티를 채 벗지 못한 어린 소년들이었다. 크리스마스 전날, 모두가 집에 두고 온 가족을 생각하며 우울해 하고 있을 때 독일군 쪽에서 크리스마스 캐럴이 들려왔고, 영국 군인들이 경건한 마음으로 따라 불렀다. 잠시 후 두 진영의 병사들은 작은 선물을 주고받고 악기를 연주하고, 축구를 하면서 최고의 크리스마스를 보낸다. 이 시간만큼은 그들은 서로에게 총부리를 겨누어야 할 이유가 없었다.
할아버지는 손자손녀에게 말한다. 그 날 전쟁터에서 보낸 크리스마스가 자신의 삶을 바꾸어 놓았다고, 딱 하룻밤 동안 자신은 영웅이었다고. 할아버지의 이 말은 그 날의 크리스마스를 생각하면 화낼 일도 싸울 일도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렇게 죽음 속에서도 인간다움을 지켰는데 삶 속에서 왜 그것을 못 지키겠는가. 용감하다는 것은 두려움에 맞서는 일뿐 아니라 인간다움을 잃지 않는다는 것을 말해준다. 전쟁 속에서도 행복을 누릴 권리를 찾았던 군인들, 그들은 어느 집의 아들이며, 어느 자상한 자식의 아버지이며, 남편이며 동생이며 오빠인 것이다. 전쟁은 전쟁터에서 시작되는 게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 속에서 시작되고 결국 전쟁이 끝날 수 있는 곳도 바로 사람들의 마음이라는 것, 이 동화에서 전쟁을 보는 시각이다.
<노란 별>
<카르멘 애그라 디디, 해와나무>
이 책에는 평화와 평등을 실천한 덴마크 왕의 이야기란 부제가 붙어 있다. 저자 카르멘 애그리 디디는 쿠바에서 태어났지만 쿠바 혁명을 피해 온 가족이 미국으로 건너갔다.
1940년대로 접어든 어느 때, 그러니까 2차 세계 대전이 막 시작한 즈음이다. 덴마크의 크리스티안 왕이 수도 코펜하겐 거리를 둘러보고 있다. 나치 군대가 몰려들어 먹을 게 동이 나고 밤에는 외출이 금지된 상황이었다. 크리스티안 왕은 나치스의 위협과 협박에도 굴하지 않고 왕궁에 걸린 나치깃발을 내리게 하여 온 덴마크 국민의 존경을 받는다. 그러나 왕의 위대함은 그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노란별을 단 유태인이 어딘가로 끌려가 소식을 알 수 없게 되자 왕은 고민에 빠진다. ‘유태인이든 아니든 모두 덴마크의 백성이다. 별을 숨기려면 어디에 숨겨야 할까?’ 마침내 방법을 생각해 낸 왕은 홀로 말을 타고 코펜하겐 거리로 나선다. 그 모습을 본 백성들은 모두 옷에 노란별을 달고 다닌다는 얘기다.
이 동화에서는 전쟁이 주는 위험과 위협을 왕의 소신 있는 행동으로 묘사함으로써 역설하고 있다. 위험을 무릅쓴 왕의 소신 있는 행동으로 인하여 백성들은 그를 신뢰하고 더불어 인간의 존엄성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인간을 구분하고 분류할 수 있는 권한은 그 누구에게도 없다는 사실을, 전쟁을 일으킨 자들만이 모르고 있다.
나치가 유태인들을 괴롭히는 데 사용한 노란별을 역이용한 왕의 지혜로움은 어두운 현실 속에서도 어려움을 이길 수 있다는 희망적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다. 가슴에 다는 순간 인간임을 거부당하게 하는 노란별은 크리스티안 왕과 덴마크 백성들에게는 단결과 희망의 상징이 된 것이다. 옳지 못한 행동에 당당히 맞서는 지도자의 모습, 또 이런 지도자를 믿고 따르는 백성들의 소신 있는 행동을 보여주는 그림책으로서 큰 의미가 있다.
<곰 인형 오토>
<토미 웅거리, 비룡소>
이 책의 저자 토미 웅거러는 1931년 프랑스와 독일 접경지대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겪은 전쟁의 경험이 바탕이 되어 선과 악이라는, 그림책에서는 다루기 어려운 주제를 독창적이고 신선한 방법으로 그려내는 작가로 유명하다.
독일의 어느 자그마한 공장에서 태어난 곰인형은 다비드의 생일선물로 팔려가게 되어 다비드의 둘도 없는 친구 오스카를 만나게 된다. 다비드와 오스카에게 오토라는 이름을 얻게 되고 친구가 되어 즐거운 생활을 하던 중, 다비드가 노란 별표를 달게 되면서 오토의 운명은 급격히 변하게 된다. 폭격으로 세상은 엉망이 되고, 오토는 미국 군인 찰리의 손으로 넘어가게 된다. 오토 때문에 목숨을 건지고 훈장까지 받게 된 찰리는 오토를 데리고 자신의 고향인 미국으로 가지만, 오토의 운명은 그다지 순탄하지 못하다. 쓰레기통에서 다시 골동품 가게로 갔지만 아무도 오토를 거들떠보지 않는다. 그렇게 많은 세월이 흐른 가운데 우연히 오스카는 오토를 발견하게 되고 뒤이어 다비드도 만나게 된다. 하지만 전쟁은 모든 것을 참혹하게 만들었다. 다비드의 부모는 강제 수용소에서, 오스카의 부모는 전쟁터에서 모두 죽었고, 오스카와 다비드는 모든 것을 다 잃은 채 낯선 미국 땅까지 오게 된 것이다. 하지만 변하지 않는 것이 있었으니 오스카와 다비드와 곰 인형 오토의 우정이다. 전쟁은 모든 것을 앗아갔지만 그들의 우정은 갈라놓을 수 없었다. 만날 운명이면 언젠가 만나게 된다는 희망적인 메시지를 던져주는 그림책이다.
<나무들도 웁니다>
<이렌 코앙 장카, 여유당>
이 책의 저자 이렌 코앙_장카는 1954년 튀니지의 튀니스에서 태어났다. 150년 전부터 암스테르담 프린세흐라흐트 263번지 뒤뜰에 살고 있는 마로니에 나무가 화자가 되어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 이야기는 전 세계 독자들이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안네의 일기’ 로 유명한 열두 살 소녀 안네의 이야기다. 새장에 갇힌 한 마리 새를 보는 듯한 심경으로 나무는 피를 토하듯이 그 때의 아픔을 말하고 있다.
1942년 7월 6일 월요일, 안네의 가족이 프린센흐라흐트 운하 위 비밀의 집에 도착한 날부터 마로니에 나무는 소녀를 지켜보고 있었다. 의심을 살까 봐 여행가방도 들지 않고, 옷을 겹겹이 껴입은 채 세차게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도시를 가로질러 도착한 가족들 속에 그 소녀 안네가 있었다. 1942년 6월 12일 열세 살 생일선물로 받은 일기장을 집어든 소녀는 마로니에 나무를 보며 일기를 써내려 간다. 1944년 8월 4일 금요일 갑자기 들이닥친 독일경찰에 의해 붙잡혀 간 안네 프랑크는 베르겐벨젠 집단 수용소에서 티푸스에 걸려 1945년 3월 숨을 거두었다.
이제 세월이 흘러 열세 살 소녀를 끝까지 지켜보았던 마로니에 나무는 또 다른 나무가 자신의 자리를 참되게 지켜나갈 거리는 희망을 품고 역사 속에서 사라져간다. 인간이 인간에게 저지른 만행은 인간뿐 아니라 온 우주 만물이 기억한다는 섬뜩한 경고를 던져주고 있다. 모든 자연이 기억한다는 것. 그래서 역사는 거꾸로 흐를 수 없다는 것이 이 동화에서 다루는 시각이다.
<백장미>
<크리스토프 갈라즈, 아이세움>
이탈리아 작가 로베르토 인노첸티의 작품이다. 독일의 아주 작은 도시에 사는 소녀 로즈 블랑슈는 어느 날 들이닥친 군인을 가득 실은 트럭을 의아한 눈초리로 바라본다. 그러다 우연히 고장 난 트럭 위에서 어린 사내아이가 도망치는 것을 보았다. 하지만 그 사내아이를 발견한 시장이 그 아이를 트럭으로 끌고 갔고, 트럭은 어딘가로 향해 떠났다. 소녀는 너무나 궁금했다. 왜 자기만한 작은 아이를 끌고 가는 것이며, 그 트럭은 어디로 가는 것인지. 바퀴자국을 따라 한참 걸어가던 로즈는 마침내 그들이 간 장소를 발견하게 된다. 전기 철조망 뒤 담 저편에 노란색 별을 달고 있는 아이들을 보자, 로즈는 빵 한 조각을 건네준다. 그 다음날도 또 그 다음날도 로즈는 책가방에 먹을 것을 숨겨 그곳을 찾아간다. 하지만 어느 날 발견한 것은 텅 비어 있는 그곳. 그리고 안개 속에서 어느 편인지 알 수 없는 군인이 나타났고 거리는 그 군인들로 가득 차 있었다. 로즈 블랑슈의 엄마는 오랫동안 딸을 기다렸지만 딸은 나타나지 않았다.
철조망 속 아이들은 다른 아이들이 아니고, 바로 로즈의 친구이자 이웃이었다. 그래서 로즈는 위험을 무릅쓰고 먹을 것을 가져다주었다. 로즈의 눈에 비친 전쟁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어른들의 힘 자랑, 쓸데없는 편가름이 아니었을까? 어른들이 그렇게 총을 겨누고 서로를 죽이고 있을 때, 소녀에게는 네 편 내 편이 없었다. 모두가 내 편이었고, 내 친구였고, 내 이웃이었다. 어른들은 전쟁을 일으키지만, 아이들은 참혹한 전쟁 속에서도 인간의 도리를 하고 있다는 것, 이것이 이 동화가 주는 강력한 메시지다.
<경극이 사라진 날>
<야오홍, 사계절>
‘1937년, 친화이허 강가에서’ 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 이 책은 2차 세계 대전이 일어날 조짐이 역력히 보이기 시작하는 1937년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 해 일본은 자신들의 야욕을 채우기 위해 중국을 무차별 공격하여 수많은 사람들을 학살한다. 이른바 난징대학살이다.
두 달 동안 난징에서 공연을 하기로 되어 있는 샤오 아저씨 덕에 경극표 석 장을 얻어 극장으로 간 주인공은 경극의 매력에 쏙 빠지게 된다. 하지만 거리는 온통 전쟁의 음울한 분위기로 가득 차 있다. 침략군을 위해 노래할 수 없다면서 샤오 아저씨가 떠나고 난 후 일본 폭격기가 나타나 온 도시를 파괴한다. 유리창이 깨지고 컴컴하고 눅눅한 방공호에서 주인공은 처음 경극에 빠져들었던 그 저녁을 회상한다.
중국인이 자랑하는 전통문화인 경극을 통해서 진정한 애국이 무엇인지 가르쳐 주는 그림책이다. 자유와 평화, 그리고 전쟁의 참상을 직접적으로 이야기하기 보다는 경극을 통해 경극이 사라진 그 날을 영원히 잊지 말자고 간접적으로 가르치고 있다.
2) 일반책 부문
<빼앗긴 내일 중 ‘적군의 묘지에 바친 꽃>
<즐리타 필리포빅, 멜라니 첼린저 엮음, 한겨레아이들>
‘빼앗긴 내일’은 전쟁에 관한 일기를 모아놓은 책이다. 1902년 독일에서 태어난 ‘피테 쿠르’의 일기는 군사 정책으로 고통을 겪어야 했던 독일인들의 모습과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전쟁에 대한 사람들의 두려움이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1916년부터 1917년 겨울까지 식량 부족은 갈수록 심해졌고, 사람들은 전쟁에 지쳐갔으며 1918년 10월 3일 공식적으로 항복을 선언한 그 날부터 패전국으로 전락한 독일은 연합국이 제시한 어마어마한 배상비를 짊어지게 되어 독일 국민들은 커다란 고통에 빠졌다.
일기는 독일이 전쟁에 들어간 1914년 8월 1일부터 시작하여 1918년 11월 29일에 끝난다. 열두 살 소녀 피테의 눈에 비친 전쟁은 춥고 을씨년스럽고 배고프다. 하지만 그 암울한 상황 속에서도 피테를 비롯한 독일 국민들은 적군을 배려하는 마음을 잊지 않는다. 독일 소녀의 눈으로 볼 때 전쟁은 어쩌면 한 편의 코미디 같기도 하다. 1916년 9월 1일에 쓴 일기를 보면 이런 내용이 있다.
‘8월 27일에 루마니아가 오스트리아-헝가리에 선전포고를 했다. 바로 다음날 우리는 루마니아에 선전포고를, 8월 29일에 우리 편인 터키가 루마니아에 선전포고를, 오늘 불가리아가 러시아에 선전포고를 했다. 옛날에 손님이 북적대는 대식구였을 때 손님들이 명함을 주고받곤 했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선전포고가 꼭 그런 것 같다. 서로서로 상대에게 전쟁을 선포하고 있으니 말이다, 딱 하나 빠진 게 있다면, 인사를 하고 손에 입을 맞추는 것이다. “실례지만 제 선전포고를 받아주세요!” “정말 감사합니다. 제 것도 받아주세요!”’
소녀의 눈에 비친 우스꽝스러운 전쟁의 모습이다. 그런 파괴의 현장에서 소녀는 이름 모를 적군의 묘지에 찾아가 꽃을 바친다. 전쟁 초반에 죽은 러시아인들, 프랑스와 영국인들, 또 모하메단이라는 생소한 이름 앞에 소녀는 꽃을 바치며 위로의 인사를 전한다. 무덤의 똑같은 모양을 보고 ‘죽음 앞에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고 생각하는 열두 살 소녀는 전쟁을 일삼는 어른보다 훨씬 지혜롭고 배려심이 깊으며 차분하고 현명하다.
<안네의 일기>
네덜란드가 독일에 점령당해 있던 2년 동안 독일군의 박해를 피해 은신처에 숨어 지내야 했던 유대인 소녀 안네 프랑크의 일기는 전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책이다. 전쟁에 대한 두려움, 이성 친구에 대한 고민, 부모님과의 갈등, 자기 자신에 대한 반성과 희망이 잘 드러나 있는 이 일기는 역사의 희생양이 수많은 어린이들의 실상을 역력히 보여주는 책으로 유명하다. 전쟁 속에서 숨어 살면서도 자기 성찰과 고민이 끊이지 않았던 소녀의 애틋한 감정이 고스란히 살아남아 있다. 역사적 사실이 그대로 담겨 있는 책이어서 더욱더 소중한 보물 같은 책이다.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
<잉에 숄, 푸른나무>
이 책의 저자 ‘잉에 아이허 숄’은 1917년 독일에서 태어났다. 이 책의 원제 백장미는 독일 뮌헨 학생들이 만든 저항 조직의 이름이다. 전쟁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제 2차 세계대전의 침략국 중의 하나였던 독일에서 자유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쳤던 학생들의 이야기로 중요한 가치를 지녔다. 이 책의 주인공 대학생 한스와 조피는 나치에게 저항하는 ‘백장미단’을 조직하여, 히틀러를 비방하는 전단을 뿌리다가 잡혀 사형을 당하게 된다. 죄명은 히틀러에게 맹목적으로 복종하는 독일 국민들을 비판하고, 저항할 것을 촉구하는 전단을 뿌린 것이다. 그들은 독일 국민들이 용기가 없어서 차마 말하지 못한 것을 대변했다는 이유로 사형을 당하지만, 독일 지식인들의 고뇌를 고스란히 드러냈다는 점에서 중요한 책이다.
사실 독일의 대학생들은 1930년대 초에는 가장 광신적인 나치스에 속해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히틀러는 환멸의 대상이 되었고, 나치즘을 낳은 거리, 뮌헨의 대학은 학생 반항 운동의 온상이 되었다. 한스 숄을 중심으로 결합한, 나치스 제국에서 처음 있는 저항 운동 ‘백장미단’은 ‘백장미의 편지’로 알려진 반나치스 선언으로 저항의 불길을 당긴다. 나치스는 불안감을 느끼고 한스와 조피, 크리스토프를 잡아들이고, 신속한 재판을 통해 사형을 집행한다.
어떻게 한 나라가 다른 나라를 침략할 수 있는지, 그리고 전쟁 속에서 사람들에게 가해지는 폭력과 인권 유린은 어디까지인지를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다. 아무리 광적인 사상이 온 사회를 지배한다고 해도 사회정의는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는 책이다.
<히틀러의 딸>
<재키 프렌치, 북뱅크>
이 책의 저자 재키 프렌치는 오스트레일리아의 아동문학가로서 역사를 사랑하는 작가로 유명하다. 제목을 보는 것만으로도 호기심이 확 일어나는 책이다. 히틀러의 딸이라? 아, 히틀러에게 딸이 있었나 보구나. 히틀러는 어떤 아버지였을까? 또 그 딸은 아버지를 어떻게 생각했을까? 등등 끊임없이 일어나는 궁금증. 이야기는 오스트레일리아, 비가 몹시도 내리는 날, 한 정류장에서 시작된다. 마크와 안나, 벤 그리고 꼬마 트레이시는 스쿨버스를 기다리며 이야기를 만드는 게임을 시작한다. 안나가 들려주는 이야기 속의 소녀 하이디(히틀러의 딸)는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도 못하고 함께 살지도 못하며, 누구를 만나지도 못하는데 그 이유는 단지 하나! 얼굴 한쪽에 붉은 반점이 있고, 다리를 절기 때문이다. 히틀러가 우수한 인종을 만든다고, 유대인뿐만 아니라 집시, 장애인까지도 죽인 것을 생각한다면 충분히 이해가 가는 일이다. 장애인을 경멸했던 히틀러, 자신의 딸이 장애인이었으니 당연히 딸로서 대접하지 않고 숨겨놓고 키울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 책은 현대와 과거를 오가며 두 가지 축을 배경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한 축의 배경은 현대, 오스트레일리아이고 또 한 축의 배경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유럽이다.
처음에는 이야기게임에 아무 생각 없이, 시간을 보내기 위해 참여했던 마크는 안나의 이야기를 들으며 ‘하이디의 이야기가 진짜일까, 가짜일까?’로 고민을 하며 꿈을 꾸기까지 한다. 과거의 역사가 현대로 들어오면서 아이들은 갈등하고, 고민하게 된다. "사람들은 옳은 일을 해야 한다. 하지만 자기가 옳은 일을 하는지 그른 일을 하는지 어떻게 알까?"
"어떻게 하면 선과 악의 차이를 알 수 있을까?"
"자기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다 틀렸다면 자신은 어떻게 해야 좋은가?"
"아버지가 극악무도한 사람이라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등.
이 책은 마인드맵처럼 끊임없이 다양한 생각들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에서 좋다. 현대의 아이들에게 과거로 돌아가, 그 시대를 살펴보고, 비판하게 하며 또한 반성하게 한다는 점에서 역사교육의 몫까지 겸하고 있다.
<안톤>
<엘리자베스 쵤러, 대교출판>
'살아갈 자격이 없는 아동'으로 분류된 여덟 살 소년 '안톤'의 이야기이다. 인간이 이토록 잔인할 수도 있구나, 자연의 지배자라 우쭐대는 인간이 지도자를 잘못 만나면 마치 중독되듯이 다른 사람의 인권을 마구 짓밟고, 함부로 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일으키는 책이다.
이 책의 주인공 안톤은 전쟁이 무르익어가는 시절, 전차에 받쳐 뇌를 다치면서 글자를 잘 못쓰고 말을 더듬게 되었다. 그러니까 안톤은 선천적 장애가 아니라, 후천적 사고 후유증인 것이다. 하지만 학교에서도 아이들에게 무차별한 학대를 당하고, 마을의 나치 추종자들에게도 동물 취급을 당한다. 이 책을 보면 여덟 살, 아홉 살 아이들도 어른 못지않게 악마의 성향을 띄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아이들이 어쩌면 그렇게 잔인하게 행동할 수 있을까? 친구를 때리고 발 걸어 넘어뜨리고, 바보, 병신이라고 놀리고. 그러는 아이들을 부추기듯, 바라보는 하이만 선생은 또 어떤가? 1차 대전 때 다리 하나를 잃어 외다리인 하이만 선생은 안톤의 뺨을 사정없이 때리는 것은 물론이고 심지어는 '난 자격미달자입니다'라는 말을 50번씩 써오라고 시킨다. 안톤이 가장 힘들어하는 것이 글씨 쓰기라는 것을 알면서 일부러 그렇게 시키는 것이다. 아, 잔인한 인간의 심성이여.
나치는 아리안 족의 우수한 혈통을 보존하기 위해 1939년 10월부터 독극물을 주입하거나 굶기는 방법으로 전쟁이 끝날 때까지 5천 명의 장애아들을 살해했다고 한다. 정말 놀라운 일이다. 하지만 안톤은 가족과 함께 자신의 운명과 맞서 싸워나가고, 결국 그 모든 어려움을 이겨낸다. 또 하나 놀라운 사실, 이 글을 쓴 엘리자베스 쵤러의 외삼촌이 바로 안톤이라는 것이다. 작가는 외삼촌의 이야기를 쓰기위해서 무수한 자료 조사를 거친 끝에 이 책을 썼다고 한다.
하지만 독일은 참으로 대단한 나라이다. 자신들의 감추고 싶은 부끄러운 과거를 소재로 한 이 책에 '구스타프 하이네만 평화상'을 수여했다. 과거를 밝혀 잘못된 점을 바로잡고, 좀더 나은 미래를 맞이하기 위한 노력일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감추고 싶은 역사를 낱낱이 드러낸다는 것, 앞으로 우리들이 해야 할 발전적 과제라고 생각한다. 숨긴다고 숨겨지는 게 아닌 것이 바로 역사다. 있는 그대로 드러내놓고, 정당한 평가를 받으면 얼마나 홀가분할 것인가. 그런 면에서 일본은 독일에게 많이 배워야 할 것이다.
<빼앗긴 내일 중에서 ‘삶을 붙드는 수용소의 기억>
호주인 아버지와 말레이시아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실라 알란’은 1925년 말레이시아에서 태어났으며 주로 싱가포르에서 자라고 생활다. 1942년 2월, 실라가 열일곱 살 되던 해, 일본이 싱가포르를 점령했다. 1937년부터 일본군 지도자들은 중국을 정복하기 위한 전쟁에 막대한 군사력을 동원했으며, 그 때문에 엄청나게 많은 중국인이 희생되었다.
1942년 2월, 영국, 인도, 호주의 수많은 군사를 생포하면서 싱가포르에 있는 영국의 군사 기지를 점령했다, 약 2,000명의 영국연방 국민들이 창이 수용소에 수감되었다. 포로들은 처음에 수용소 안에서 자유롭게 이동했지만, 3월 초 모든 수용소에 담장이 쌓여진 뒤부터 이동이 제한되었다. 포로들은 서약서에 탈출을 시도하지 않겠다고 강제로 서명해야 했다.
창이 수용소는 9월 5일에 해방을 맞았으며 이 태평양 전쟁으로 무려 1,100만 명의 중국인과 2백만 명에 이르는 일본인이 목숨을 잃었다.
일기는 1941년 12월 8일 시작하여 1945년 11월 24일, 호주에서 끝났다. 실라 알란은 시든 꽃다발 속에서 죽음과 전쟁의 모습을 본다. 꽃다발에 봉오리도 더러 있었는데, 미처 피어 보지도 못하고 죽고 말았다. 내가 죽였다. 아무 생각 없이 한 짓이었지만 전쟁이 바로 이런 게 아닐까? 소녀는 그렇게 차츰차츰 어른이 되어간다.
전쟁은 사소한 생각, 작은 오해, 크나큰 욕심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그리고 전쟁은 인간의 심성마저도 변하게 만든다. 정복자의 거만한 태도와 폭력에 시달리던 사람들은 나날이 날카롭고, 포악하게 변해간다. 좋은 뜻으로 시작한 일도 나쁜 결과를 낳게 되고 좁은 수용소 안에서 여러 명이 살다보니 여유도, 배려도, 최소한의 예의도 사라지게 되는데 이 모든 것이 바로 전쟁 때문이라는 것! 전쟁은 아이들을 일찍 철들게 한다.
<빼앗긴 내일 중에서 ‘우리가 살아남을 수 있을까?>
나치스는 1차 세계대전 패배의 원인과 독일의 궁핍한 생활을 모두 유태인의 탓으로 돌렸다. 또한 독일인은 ‘우수한 인종’이며, 유태인을 비롯한 ‘열등한 인종’이 유럽을 오염시킨다고 믿었다. 나치스는 독일 국민의 순수성을 오염시키는 위협적인 존재로 유태인, 집시, 그리고 장애인을 지목하고 이들을 계획적으로 살해하기 시작했다.
1930년대 말 나치스는 치명적인 주사와 독가스로 독일의 장애인을 숱하게 죽였다. 1941년 6월 소련을 침략한 뒤, 나치스는 점령한 도시의 유태인과 집시들을 변두리의 들판이나 좁은 골짜기 같은 곳에서 대규모로 총살하기 시작했다.
그 뒤 나치스는 많은 사람들을 한꺼번에 몰살시킬 좀더 효율적인 방법을 찾던 중 점령지 폴란드에 여섯 개의 수용소를 설치하고 가스로 유태인들을 무자비하게 학살했다.(시체는 화장하여 처리했다) 홀로코스트의 많은 희생자들은 또한 고된 노동, 굶주림, 끔찍한 환경이 가져온 질병으로 게토(나치스가 점령지에 설치한 유태인 거주 지역, 벽이 둘러져 유태인들은 저녁부터 아침까지 나오지 못했으며, 외출할 때는 측정한 표시를 달아야 했다)와 수용소에서 생을 마감했다.
15살 소녀 클라라 슈왈트는 삶의 터전인 폴란드의 졸키에프가 나치스의 손아귀에 넘어가지 가족과 함께 지하실에 숨었다. 그곳에서 열일곱 명의 유태인과 함께 2년 동안 숨죽이며 지내온 끝에 죽음을 피할 수 있었다. 클라라의 일기(1944년 1월 14일 금요일)에 나타나 있듯이 전쟁으로 사람들은 동물이 되었다.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지하실에 숨어 앉아 있다. 가족을 잃었는데도 살겠다고 꾸역꾸역 먹는다. 전쟁에서 살아 남는 것이 승리하는 것이다. 그러니 클라라의 가족은 그 모든 역경을 이겨냈으니 당당히 승리한 것이다.
<모차르트를 위한 질문>
<마이클 모퍼고, 웅진주니어>
이 책의 저자 마이클 모퍼고는 영국을 대표하는 어린이책 작가이다.
이 책은 풋내기 기자 신문 기자로 일한 지 3주 밖에 안 된 레슬리가 위대한 연주가 파올로 레비를 인터뷰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날이 새도록 음악과 작곡가에 대해 얘기를 할 수 있지만 개인적인 것, 특히 모차르트 질문은 하지 말라는 당부를 받는다. 위대한 음악가는 자신이 어떻게 해서 바이올린과 만나게 되었는지 말한다. 그의 아버지 직업은 이발사지만 오래 전에 바이올린을 연주했다는 것이다. 그들은 2차 세계 대전 당시 독일군에게 수치심을 안겨주기 위해 독일군의 온갖 악행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이 강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연주를 했지만 다른 사람들이 굶주릴 때 음식을 먹고, 다른 사람들이 가스실로 향할 때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에 괴로워했다는 것이다. 아버지는 다시는 연주를 하지 않겠다고 바이올린을 박살내 땅에 묻었지만, 어머니는 자신의 바이올린을 고이 간직했고, 그 바이올린으로 자신이 지금까지 연주를 하고 있다는 이야기.
가스실로 향하는 사람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그들이 가장 많이 연주했다는 모차르트 음악은 달콤하고 경쾌하며 사랑스럽다. 자신들을 끝내 용서하지 못하는 부모의 뜻을 이어받아, 모차르트 질문을 하는 것을 가장 싫어한다는 설정은 다소 설득력이 부족하다. 하지만 전쟁 때문에 받은 상처가 얼마나 깊고 크며 오래가는지를 알려주는 부분이다.
<아우슈비츠의 바이올린>
<야엘 아쌍, 시소>
몇 년 전 여름, 동유럽 여행을 했었다. 그때 본 것 중에서 가장 마음을 아프게 한 것이 바로 '아우슈비츠'였다. 사람이 어찌 끔찍한 행동을 할 수 있는가, 몸서리를 치며, 눈물을 삼키며 본 기억이 났다. 사람을 태우는 시꺼먼 연기가 하루 종일 꾸역꾸역 나왔던 굴뚝, 그 때마다 시꺼먼 연기와 고약한 냄새로 코와 입을 막아야만 했다던 그 때, 그 현장. 도저히 무엇으로도 감출 수 없는 역사적인 그 현장에 내가 서 있다는 사실만으로 벅찼던 그 날을 생각하면 아직도 온몸이 온 마음이 저려온다.
이 책은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에서의 독일군의 만행을 기억하고 있는 유태인 음악 선생님과 음악에 대한 순수한 열정을 지닌 이슬람 소년의 우정을 그린 작품이다.
시몽은 교직생활 35년차인 중학교 음악선생이다. 그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걸 그다지 즐기지 않는다. 학교에 가는 걸 두려워하고, 아이들 앞에 서는 걸 힘들어한다. 그런데 이제 학교에서의 마지막 해, 잘 해 보자고 마음을 먹지만 매년 그를 속 썩이던 슈크리 형제들의 막내- 말릭을 운명적으로 맡게 된다. 슈크리 형제들은 모두 열 명, 아랍계 이슬람 사람들이다.
유태인인 시몽은 2차 세계 대전 중,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 광장에서 독일군의 강요로 바이올린을 연주하던 기억 때문에 더 이상 바이올린을 켜지 않는다. 말릭은 바이올리니스트였던 외할아버지 바바가 알제리 전쟁 당시 연주하러 나섰다가 목숨을 잃었다는 이유로 가족에게 바이올리니스트가 되고 싶다는 꿈조차 말할 수 없다. 이런 둘이 운명적으로 만나 음악으로 소통하기 시작한다.
너무나 상처가 깊어 기억하고 싶지 않은 아픈 역사를 가슴 속에 감추고 살아야 했던 시몽, 그는 상처를 안으로 안으로만 보듬고 살았다. 그리하여 음악에 대한 열정도 사라지고, 가르치는 것에 대한 사명감도 잃었다. 만약 시몽이 말릭을 만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시몽은 죽을 때까지 상처를 치유하지 못했을 것이다. 말릭의 가족도 마찬가지다. 이 책이 멋진 이유는, 기억조차 하고 싶지 않은 역사의 상처를 우리가 어떻게 어루만져야 하는지에 대해 힌트를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에바>
<조안 M. 울프, 푸른나무>
조안 M. 울프는 미국 초등학교 선생님이다. 그녀는 이 이야기를 쓰기 위해 할머니의 고향인 체코 공화국을 방문, 리디체 마을을 찾아가 1942년 6월 10일 사건에서 살아남은 네 명의 생존자들에게 그들이 겪었던 끔찍한 기억을 들었다. 그리고 그 여행 이후, 작가로서나 한 인간으로서 새로운 삶을 살 수 있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 의미는 과연 무엇일까?
이야기는 1942년 5월, 체코슬로바키아의 작은 도시 리디체에서 시작한다. 별을 좋아하는 소녀 밀라다는 열한 번째 생일날, 아빠에게서 중고 망원경을 선물 받는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6월의 어느 날밤 들이닥친 독일군에 의해 모두 끌려간다. 나치는 금발 머리에 파란 눈을 가진 아이들을 폴란드 푸쉬카우에 모아 독일 아이들로 만드는 교육을 한다. 1944년 8월, 밀라다는 에바라는 이름을 얻어 독일 퓌르스텐베르그에 사는 독일인 가정에 입양하게 된다. 그곳 주인 남자 베르너는 수용소 소장으로 일하는 사람들한테는 거칠고 건방졌으며, 딸과 아내에게는 너그러운 척 봐준다는 태도로 임하고 아들에게만은 한없는 애정을 표현한다. 그렇게 독일 아이가 되어 가고 있던 어느 날, 밀라다는 숲에서 철조망을 발견하는데 그곳에서는 이상한 냄새가 숨 막힐 듯 풍겨왔다. 철조망 안의 여자들이 부르는 노래가 고향의 말임을 알게된 밀라다는 그곳이 바로 고향 사람들이 추위와 굶주림으로 고생하고 있는 ‘라벤스뤼크 여자 수용소’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때 밀라다의 심경은 어땠을까? 자신은 독일아이가 되어 잘 먹고 잘 사는데, 자신의 가족을 비롯한 고향 사람들은 죽음을 넘나들고 있었다면?
1945년 10월, 체코슬로바키아 프라하. 밀라다의 가족은 여섯 명에서 이제 엄마와 밀라다 둘 밖에 남지 않았다. 이 이야기에 나오는 인물, 모든 아이들은 실제 인물이 아니다. 단지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쓴 것이다.
히틀러는 자신이 아끼는 부하 하이드리히(유태인 계획을 세운 인물)가 목숨을 잃자, 이 사건이 프라하에서 남쪽으로 15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리디체라는 작은 마을과 체코의 레지스탕스들이 관계가 있다고 결론을 내리고, 보복작전을 하였다. 1942년 6월 10일, 새벽 나치군들이 리디체에 들이닥쳐, 173명의 남자들이 근처의 호락농장으로 끌려가 총에 맞아 죽었다. 시체는 구덩이 속에 아무렇게나 매장되었다. 나치 의사들은 아이들을 검사, 머리 크기, 눈과 머리카락 색깔을 구분하는 등 여러 가지 검사를 하여 유태인이 아니면서 독일인도 아닌 아이들 중에서 아리안 족의 기준에 맞는 아이들을 골라 레벤스보른(생명의 원천) 프로그램이라는 해괴한 프로그램을 만들어 독일 아이로 만드는데 전력을 기울였다.
리디체 출신 여자들은 베를린에서 북쪽으로 60마일 떨어진 라벤스브뤼크 수용소로 보내졌고 독일어로 체코에 해당되는 ‘Tschechisch'의 머리글자를 딴 T 표식을 하게 했다. 이 표식은 ’정치적 범죄자‘라는 뜻이었다. 유태인들에게는 노란 별을 달아 ’종교적 범죄자‘로 분류했듯이. 작업 도중 다치거나 허약해서 더 이상 일을 하지 못하게 되면 나치에 의해 가차 없이 사살되었고 그들의 시체는 근처 퓌르스텐베르그 화장장에서 불태워졌다. 리디체 아이들은 모두 105명이었는데 이들 중 17명만이 전쟁에서 살아남았다.
<내 사랑 페니>
<제니퍼 L. 홀름, 지양사>
페니라는 여자 아이와 그 외가와 친가 사람들에 대한 자잘한 이야기이다. 그런데도 이렇게 가슴을 울리는 건, 철저한 자료조사와 각 인물들에 대한 작가의 애정 어린 시선, 그리고 2차세계대전 당시의 미국 사회의 상황(우리가 전혀 몰랐던)등이 너무나 진솔하기 때문일 것이다. 페니는 1센트짜리 동전을 말하는 거지만, 이 노래에서는 하늘이 내린 뜻밖의 행운, 복, 횡재 등을 뜻하며, 페니라는 이름은 '하늘에서 내린 복덩이'라는 뜻이 담겨 있다. 아기였을 때 돌아가신 아빠를 그리워하는 페니는 야구를 좋아하고, 이탈리아계 친가 사람들을 사랑한다. 하지만 외가와 친가 사람들 사이엔 뭔가 커다란 벽이 놓여 있음을 느끼게 된다. 서서히, 천천히 아빠의 죽음에 관한 새로운 사실(페니만 몰랐던)이 드러나면서 이야기는 점점 고조되어간다. 한 권의 책 속에 들어있는 이야기에는 우리가 알지 못할 역사속의 감춰진 비밀이 있다. 2차 세계 대전 때 이탈리아가 독일 편을 들었다고 미국에서 살던 이탈리아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감시와 핍박을 당했는지도 알게 되었다. 말하자면 페니의 아버지 이야기는 미국 역사의 감춰진 일면인 것이다.
2차 대전 때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시민권이 없는 60만 이탈리아인을 '적성국 외국인'으로 규정하는 '포고령 2527호'에 서명했다. 이탈리아 혈통의 모든 '적성국 외국인'은 의무적으로 분홍색 '적성국 증명서'를 소지해야 하고 무기나 단파 라디오, 카메라, 플래시 같은 소지 금지 품목은 당국에 반납해야 했다. 게다가 이탈리아어는 '적국의 언어' 라고 해서 사용하지 말라는 경고를 받았다. 많은 이탈리아계 이민자들은 독일계 및 일본계와 마찬가지로 미국에 오래 거주했고 지역 사회의 신망도 높은 사람들이었다. 배우자나 자녀가 미국 시민권자인 경우도 많았다. 그런데도 적과 공모할지 모른다는 의심을 받았다. 수많은 사람이 가택수색을 당했고, 3천명 이상이 체포됐으며, 수백 명은 포로수용소에 구금됐다. 미국 서해안 일대에서는 이탈리아계 '적성국 외국인' 5만 2천명이 일몰에서 일출까지 야간 통행이 금지됐다. 또 수천 명은 대부분 연안 지역에 있는 '금지구역'에서 강제로 이사를 가야 했다.
<레닌그라드의 기적>
<얍터르 하르, 다림>
네덜란드 작가 '얍 터르 하르'가 쓴 <레닌그라드의 기적>을 읽는 내내 너무 슬퍼서 온 몸에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고통을 겪어 본 사람은 그만큼 용서도 많이 해줄 수 있다'는 말이 가슴에 와 닿았다. 고통은 때로 관대한 마음을 심어줄 수 있다. 고통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이 과연 인생에 대해 알 수 있을까?
열두 살, 레닌그라드에 사는 보리스는 극한 상황에 처했다. 때는 1942년, 2년 간 독일군의 포위 속에서 살던 레닌그라드 사람들, 엄마는 영양실조로 죽어가고 있고 아빠는 호수를 가로질러가는 식량수송차에 타고 있다 얼음이 깨지는 바람에 돌아가셨다.
보리스와 같은 나이, 나디아는 역시 영양실조로 아빠와 오빠를 잃고, 들판에 주인 없는 감자를 찾아가는 위험한 모험을 보리스에게 제안하게 되고, 결국 찾으러 가지만 러시아의 원수 독일군을 만나게 된다. 그러나 그 독일군에 의해 두 아이는 목숨을 건지게 된다. 하지만 마지막에 나디아와 나디아의 엄마는 죽게 되고, 나디아는 자신의 일상을 기록한 일기장을 남긴다. 일기장 속에 나타난 레닌그라드의 삶은 지옥 그 자체였다.
<레닌그라드의 기적>은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구성된 소설이다. 이 책의 작가인 얍 터르 하르는 뛰어난 아동문학가인 동시에 역사에 관하여 잘 알고 있는 역사 소설가였다. 그는 1959년 북미사를 시작으로 1965년 러시아사에 이르기까지 여섯 편에 이르는 역사 관련 소설을 썼다. 러시아에서 얍은 유명한 러시아 작가 보리스 마카렌코를 만나게 된다. 보리스는 얍을 자신의 소중한 추억이 담겨 있는 페스카료프스코예 공동묘지로 데려간다. 그곳에는 레닌그라드가 포위되었을 때 사망했던 사람들의 묘가 칠십만 개가 놓여 있었다.
레닌그라드의 공방전(1941년 9월 8일-1944년 1월 27일)은 2차 세계대전 중에 3년이나 계속되어 왔던 러시아 역사에 남아 있는 비참한 역사적 사실이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레닌그라드(지금의 상트페데르부르크)는 독일군에 의하여 포위되어 수많은 사람들이 배고픔과 전염병, 독일군들의 폭격으로 인하여 죽음보다 더한 고통을 겪었다. 1943년 공격에 성공하여 러시아군이 독일군의 공격 노선을 무너뜨리고 그 이듬 해 1944년에 레닌그라드의 공방전이 끝나게 될 때까지의 처절하고 암울한 상황을 보리스는 얍에게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그 때 들은 보리스의 얘기를 바탕으로 얍은 <레닌그라드의 기적>을 탄생시켰다.
<보헤미아의 여름>
<요제프 홀루프, 창비>
체코와 독일의 접경 보헤미아에서 일어난 일이다. 독일 소년 요제프와 체코 소년 이르시의 독특하고 가슴 뭉클한 우정이야기이다. 현재 체코의 서부에 해당하는 보헤미아는 히틀러의 사상이 손을 뻗기 전까지는 국경 지역이라는 특성 상 독일인과 체코인이 서로 어울려 살던 곳이었다. 이런 그들의 다양한 공존을 깬 것은 히틀러의 사상이었다. 이 게르만민족주의는 서서히 순진한 마을 사람들을 갈라놓고, 두 소년의 우정까지도 짓밟아버린다.
주인공 요제프는 체코 소년 이르시를 강물 위 얼음판에 놓아 거의 죽을 지경에 이르게 한다. 그리고 또 한 번 몰매를 맞는 이르시를 구한다고 쏜 새총이 하필이면 이르시의 머리에 맞게 되고 요제프는 이르시의 머리에 구멍이 나 죽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잘 생긴 소년 이르시는 참으로 대범하게 이러한 위험들을 대하고 어느 날, 두 소년은 죽기 살기로 한 판 싸움을 벌이고 나서 진득한 우정이 싹트게 된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싹 튼 우정은 아름답고, 슬프고, 가슴 뭉클하다.
역사는 돌고 돈다. 전 세계를 손아귀에 넣고자 하던 히틀러는 독일과 맞닿아 있는 체코슬로바키아를 넘보고 결국 히틀러는 체코슬로바키아를 무력으로 점령하고 체코인들은 시민으로서의 많은 권리를 빼앗기고, 심지어 체코슬로바키아의 대학도 모두 폐쇄되고 만다. 그리고 1945년 히틀러가 패망하자, 또 상황은 완전히 바뀌게 된다. 전쟁이 끝나자 국경 지대에 살던 독일인들은 강제로 추방당하고 고향을 잃어버리게 된다. 히틀러가 들어왔을 때, 이르시네 가족이 고향 보헤미아를 떠났듯이 요제프네 가족도 아름다운 보헤미아 땅에서 쫓겨나게 된다. 이 책은 참 많은 것을 던져준다. 인종이 뭐길래, 국가가 뭐길래, 사상이 뭐길래 모든 것을 망쳐놓을까? 언젠가 이 지구에 사는 모든 사람들이 그런 것들의 구분 없이 조화를 이루며 살 날을 꿈꿔본다.
4. 나가는 글
지금까지 살펴본 문학작품 속에 나타난 전쟁의 모습은 두 가지 형태를 지니고 있다. 하나는 전쟁을 일으킨 나라의 국민이 바라보는 시각이고 또 하나는 침략을 받아 고통을 받는 나라의 국민이 바라보는 시각이다. 이 두 시각에는 공통점이 있다. 전쟁은 가해자이건 피해자이건 두 쪽 다 엄청난 고통을 받으며, 개인의 삶을 엉망진창으로 망가뜨릴 수 있다는 것이다. 전쟁을 겪은 사람과 겪어보지 않은 사람과의 삶의 모습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전쟁으로 인한 상처가 강력한 트라우마(과거의 충격이 현재까지 미치는 것)가 되어 평생 동안 삶을 지배한다면, 그것 때문에 삶을 힘겹게 영위해야 한다면 얼마나 악몽 같은 현실이겠는가. 그들이 느낄 충격의 재경험(사건에 대한 기억이나 꿈, 환각이 재연되어 실제와 같이 느끼는 것)은 그 어떤 것으로도 치유될 수 없다.
인간은 두 개의 얼굴을 가지고 있다. 선과 악이라는 두 개의 축 사이에서 인간은 때로는 선의 편에, 때로는 악의 편에 서게 된다. 야망과 욕심에 눈이 멀게 되면 다른 나라를 침략하게 된다. 반대로 이해와 용서에 눈을 뜨게 되면 평화의 길로 가는 것이다.
결국 전쟁이란 것은 사람을 미워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미워하는 사람 또는 국가에게서 무엇인가를 빼앗고, 그들을 복종시키려는 마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무력이 아니라 대화와 협상으로 문제를 풀고, 사람을 미워하는 마음도 푸는 것이 바로 평화, 평화는 어린이와 어른을 위한, 온 세상 사람을 위한 것이므로 지구인들이 모두 힘을 모아 이루어내야 할 과제라고 생각한다.
문학작품 속에 나타난 끔찍한 전쟁의 모습과 전쟁의 상처를 극복해 나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우리는 진실을 마주할 용기를 얻어야 한다. 그것에 그치지 않고 다시는 똑같은 실수, 전쟁이라는 피비린내 나는 게임 속에 빠지지 않아야 하겠다.(끝)
첫댓글 아동문학사상에 싣기 위해 쓴 원고입니다. 이런 원고를 도통 써본 적이 없어서....
애쓰셧습니다! 훌륭한 자료입니다.
와, 대단하세요. 많은 평들을 봐 왔지만 새로운 시도고 또 의미있는 작업이네요. 많은 도움되었습니다.
처음 쓰는 거라, 영 서툴고 어색해요.
많은 정성이 들어간 원고네요. 시간과 노력...
정성은 들어갔지만 내용이 문제예요. 논문 비슷한 건 대학원 졸업하고나서 써본 적이 없으니...
전쟁과 관련한 아동문학 작품 속 내용 분석을 통해 어떠한 시각으로 전쟁이 발생하였으며, 그 원인과 예방은 어떤지를 조목조목 진단해 주셨네요~~앞으로 이런 자료가 교과서에 꼭 수록되어 소개되면 좋겟습니다. 그렇게 되겠지요~~
전쟁에 대한 문학작품은 아이들이 꼭 읽어야한다고 생각해요.
예전에 쓴 원고인데 요즘 세계 곳곳에서 전쟁이 터지고 있어서 안타깝고 슬프네요. 다시 읽어보면 좋겠다는 생각에 옮겨왔습니다. <아동문학사상>(지금은 폐간되었지만)에 발표했던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