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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한 말로 이치를 가리는 자 (욥기 42:2)
인도에 의료선교로 있던 선교사의 이야기입니다.
어느 아낙네가 아기를 업고 병원으로 헐레벌떡 들어와서는 아이를 침대에 내려놓고 살려달라고 애걸복걸하더랍니다.
진찰을 해보니 자기 병원에서는 도저히 안 되겠고 큰 병원으로 옮겨 수술을 받지 않으면 생명이 위태로우니 서둘러 도시에 있는 큰 병원으로 가보라고 권했답니다.
그러자 아낙네가 하는 말이 “그러면 그 사이에 우리 집 소는 어떻게 하느냐”고 되묻더라는 겁니다.
선교사는 마음이 답답해 “아니, 아이가 죽느냐 사느냐 하는 판에 소가 뭐 그렇게 중요합니까? 소가 중요합니까? 아이가 중요합니까?” 묻자
“당연히 소지요. 아이는 2~3년 후면 또 낳을 수 있지만 소는 일평생 노동을 해서 돈을 벌어도 사기가 어렵습니다”.
여인에게는 아이보다 소가 더 중요했던 것입니다.
인간의 생명보다 당장 먹고사는 것이 더 중요하게 여겨지는 의식 구조가 문제입니다.
무엇을 더 의지하며 믿고 삽니까?
영혼의 소중함을 깨닫지 못하고 생명을 소보다 못하게 여기는 것처럼, 영혼마저 세상에 내어주며 살아가고 있는 모습은 아닙니까?
여러분에게 무엇이 우선입니까?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스스로 택해야 합니다.
욥기는 우리 삶의 고난과 의문에 대한 가장 깊은 탐구를 담고 있는 책입니다. 의로운 사람 욥이 겪은 비극과, 그 고난 속에서 친구들과 벌인 논쟁, 그리고 마침내 하나님을 대면했을 때
그가 내뱉은 고백이 바로 오늘 본문 42장 2절입니다.
“주께서는 못 하실 일이 없사오며 무슨 계획이든지 못 이루실 것이 없는 줄 아오니”
이 짧은 한 절의 고백 속에는 욥의 모든 고난의 여정,
인간의 한계,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본질이 응축되어 있습니다.
먼저 우리는 성경에서 가장 깊고 심오한 질문을 던지는 책,
욥기의 한 구절에 집중하려 합니다.
바로 하나님께서 폭풍우 가운데에서 욥에게 직접 던지신 말씀입니다.
"무지한 말로 이치를 가리는 자가 누구냐?" (욥기 38:2, 개정개역)
우리가 검증되지 않은 얕은 지식으로 함부로 속삭일 때,
가장 깊고 근원적인 신뢰의 끈이 느슨해집니다.
그 말의 무지함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깊은 뜻을 놓치고,
스스로 만든 잘못된 방향이라는 미로 속으로 걸어 들어갑니다.
가장 슬픈 결과는 스스로의 성장을 멈추는 자기 확신의 감옥입니다.
상황을 잘못 이해하고도 자신의 말이 옳다고 믿는 순간,
성장을 멈춘 자리에는 **무거운 정체(停滯)**[진전 없이 멈춰 있는 상태를 의미, 쉽게 풀리지 않고 압도적인 느낌을 주며 해결하기 어려운 상태]의 그림자만 드리웁니다.
결국, 문제의 진짜 원인을 깨달을 기회를 놓친 채,
이미 겪었던 아픔과 동일한 실수나 갈등을 반복하는 쳇바퀴에 갇히게 됩니다.
그의 삶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같은 자리를 맴도는 고단함으로 채워집니다.
무지한 말의 그림자는 곧 삶의 메마름으로 이어집니다.
욥의 고백은 하나님의 **전능성(Omnipotence)**을 시인하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욥은 고난을 겪는 동안 "하나님은 과연 선하신가?
내 고통에 대해 무관심하신가?" 하는 의문을 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자신에게 너무 멀리 계신 것처럼 느꼈습니다(욥 23:3, 8-9).
욥은 동방의 의로운 사람이었지만,
하루아침에 모든 것을 잃고 극한의 고난 속에 던져졌습니다.
그의 고통은 단순히 재산을 잃은 고통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왜?'**라는 질문에 답을 찾을 수 없는 이해할 수 없는 고통에 몸부림쳤습니다.
오늘 이 말씀은 고난 속에서 신음하며 하나님의 침묵 앞에서 혼란스러워하는 우리 모두에게, 인간의 유한한 말과 하나님의 무한한 뜻 사이의 간극을 깨닫게 하는 천둥소리가 될 것입니다.
I. 욥의 무지한 말: 고난 속에서 던지는 인간의 오해
하나님께서 욥을 향해 **"무지한 말로 이치를 가리는 자"**라고 책망하신 것은, 욥이 그의 고난에 대해 불평하고 따지면서 하나님의 깊은 섭리를 오해했기 때문입니다.
욥이 고난 중에 했던 '무지한 말'의 본질은 다음과 같습니다.
1. 고난의 이유를 단정하려는 말
욥은 자신에게 죄가 없음을 확신했기에,
자신을 정죄하는 친구들의 논리(죄 때문에 고난받는다)에 맞서 격렬하게 항변했습니다.
그러나 이 항변의 끝에서 그는 하나님을 심판대 앞에 세우려는 듯한 태도를 취했습니다.
"하나님, 당신은 왜 의로운 나를 치십니까?
왜 나에게 침묵하십니까?"
욥의 말은 고난의 원인을 인간의 논리로 '이해하고' '판단하려' 했던 시도였습니다.
성경에서는 고난은 죄의 결과만은 아니다:
욥의 친구들은 고난이 욥의 숨겨진 죄 때문에 왔다고 주장했지만(인과응보적 관점), 욥의 이야기는 의인에게도 고난이 닥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축복이 항상 의로움의 증거가 아니며,
고난이 반드시 죄의 징벌은 아니라는 것을 가르칩니다.
욥은 자신의 지식으로 하나님의 주권을 제한하려 했습니다. 이것이 첫 번째 무지함입니다.
2. 하나님의 광대하심을 망각한 말
욥은 극도의 고통 속에서 하나님이 자신을 외면하고 버리셨다고 생각하며 탄식했습니다.
그러나 이 탄식 속에는 하나님이 온 우주를 다스리는 전능하신 창조주이심을 잠시 잊은 채, 자신에게만 집중하는 인간적인 시각이 담겨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욥의 고난의 이유를 설명하는 대신, 우주의 창조 질서(바다의 경계, 별들의 운행, 눈과 우박의 창고, 사자와 까마귀를 먹이시는 일 등)를 물으십니다 (욥 38-41장).
이는 곧 "너는 이 광대한 우주의 작은 일부조차 이해하지 못하면서, 어찌 나의 깊은 뜻을 다 안다고 주장하느냐?"라는 강력한 반문이었습니다.
폭풍 가운데서 임하신 하나님의 장엄한 질문들(38-41장)을 듣고, 욥은 인간 지혜의 미약함과 하나님의 창조와 통치 능력의 광대함을 깨달았습니다.
II. 하나님의 응답: 무지함을 깨닫게 하는 절대 주권
하나님의 질문은 욥의 **'무지한 말'**을 깨뜨리고 **'하나님의 이치(섭리)'**를 회복시키는 유일한 응답이었습니다.
1. 고난의 이유보다 중요한 하나님의 존재
하나님은 욥에게 고난의 '원인'을 설명하지 않으셨습니다.
대신 **'내가 누구인지'**를 보여주셨습니다.
이는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줍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이유가 축복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 그분의 속성 때문에 되어야 함을 강조합니다.
****하나님의 속성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속성은 크게 비공유적 속성과 공유적 속성으로 나뉩니다.
1. 비공유적 속성 (하나님께만 고유한 특성)핵심 속성간단 설명
자존성 (Aseity)스스로 계시며, 아무것에도 의존하지 않으심.
불변성 (Immutability)변하지 않으심.
무한성 (Infinity)모든 면에서 한계가 없으심.
2. 공유적 속성 (인간이 제한적으로 반영할 수 있는 특성)
A. 지적 및 능력적 속성
전지성 (Omniscience)모든 것을 아심.
전능성 (Omnipotence)모든 능력을 소유하심.
주권 (Sovereignty)만물을 다스리시는 최고의 권위.
B. 도덕적 속성 핵심 속성
거룩성 (Holiness)죄로부터 완전히 분리되심 (도덕적 순결).
의 (Righteousness)항상 옳게 행하시며 공정하심.
진실성 (Truthfulness)말씀이 모두 진실이며 약속을 지키심.
사랑 (Love)자신을 내어주시려는 영원한 성향.
자비 (Mercy)고통받는 자를 긍휼히 여기심.
이 속성들은 모순 없이 조화를 이루어 완전하신 하나님의 성품을 나타냅니다.
욥은 모든 것을 잃었을 때에도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라고 고백하며,
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이 가능함을 보여줍니다.
사탄은 욥이 하나님을 섬기는 이유가 축복(울타리) 때문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욥이 어찌 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이까" - 욥 1:9).
하나님이 생각하는 욥?
"네가 내 종 욥을 주의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가 세상에 없느니라." (욥기 1:8, 2:3)
의로움: 욥은 흠이 없고, 바른 생활을 하며, 하나님을 향한 경외심이 깊었습니다
왜? 하나님은 사탄에게 시련을 허락하십니까?,
욥이 모든 것을 잃는 극심한 고난 속에서도 조건 없이 하나님 그분 자체만을 경외하는 진정한 믿음을 가지고 있음을 온 우주와 사탄에게 보이려 하셨습니다.
우리 인생의 시나리오에서 우리는 주인공처럼 보이지만,
진정한 주연은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의 고통, 멈춤, 회복, 그리고 모든 순간은 그분의 영원하신 계획을 이루어가는 과정 속에 있습니다.
그 계획은 인간이 이해하지 못할 때도 많지만, 결국은 가장 선하고 완전하게 이루어집니다.
고난의 이유 (Why)를 아는 것보다,
고난 속에서 함께하시는 하나님 (Who)을 아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합니다.
미국의 알래스카 주(State of Alaska)는 본래 소련의 소유지였습니다. 소련인들은 얼음덩어리로 덮여 살기에 부적합하고 관리가 힘들다고 알래스카를 1867년 미국에 단돈 720만 달러에 팔아 버렸습니다.
그러나 돈으로 살 수 없는 가치가 그 땅에 숨어 있음을 그들은 전혀 몰랐습니다.
현재 미국에서 사용하는 석유의 대부분이 알래스카에서 나오고, 가스는 물론 묻혀있는 지하자원의 양이 가히 헤아릴 수 없을 정도랍니다.
어찌 통탄할 일이 아닙니까?
보는 눈이 없기에 빼앗긴 것입니다.
아무리 영적 축복을 부어도 볼 줄을 모른다면 잃어버리기 마련입니다
하나님은 사탄에게 욥을 시험할 수 있는 권한을 허락하십니다. (욥 1-2장) 이는 인간의 고난조차도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통제(주권) 아래 있음을 보여줍니다.
욥은 모든 것을 잃었을 때에도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라고 고백하며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합니다.
우리의 고난은 때로 인간의 유한한 지혜로는 풀 수 없는 신비의 영역입니다.
중요한 것은 고난 앞에서 하나님을 정죄하는 것이 아니라, 고난 중에도 여전히 창조주요, 주권자요, 선하신 통치자이심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2. 귀로만 듣던 믿음에서 눈으로 뵙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폭풍우 같은 질문에 욥은 비로소 자신의 무지함을 깨닫습니다. 그는 자신의 말을 철회하고 회개합니다.
"내가 깨닫지도 못한 일을 말하였고 스스로 알 수도 없고 헤아리기도 어려운 일을 말하였나이다...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주를 눈으로 뵙나이다." (욥기 42:3, 5)라고 고백하며,
자신의 무지함과 오만함을 회개합니다.
욥기는 고난의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은 여전히 모든 것을 통제하고 계시며, 주권자이심을 가르칩니다.
욥의 고난은 그를 죄 때문에 심판하신 것이 아니라, 그를 더 깊은 차원의 믿음으로 이끌기 위한 통로였습니다.
이론적 지식(귀로 듣는 믿음)에서 벗어나, 고난을 통과하며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대면하고 경험하는(눈으로 뵙는 믿음) 성숙으로 나아간 것입니다.
III. 결론: 우리의 무지한 말을 내려놓을 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도 욥처럼 살면서 수많은 **'무지한 말'**을 합니다.
힘들 때: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지 않으셔."
기도 응답이 없을 때: "내 기도는 소용없어. 하나님은 듣지 않으셔."
고난 앞에서: "내가 무슨 죄를 지었길래 이런 벌을 받지?"
이러한 말들이 바로 하나님의 광대하심과 깊은 섭리를 가리는 무지한 말일 수 있습니다.
"무지한 사람은 아는 것이 없기 때문에 감히 말하고,
현명한 사람은 아는 것이 많기 때문에 조심스럽게 말한다.[지식이 부족할수록 오히려 자신감 있게 말하고, 지혜로운 사람은 신중하다는 뜻]
오늘 이 자리에서 우리는 욥과 같이 고백합시다.
우리의 무지함을 인정하십시오:
하나님의 뜻은 인간의 지혜와 논리로 다 헤아릴 수 없음을 겸손히 인정합시다.
하나님의 주권을 신뢰하십시오: 고난의 이유를 다 알 수 없을지라도,
하나님이 지금도 선하고 온전하게 세상을 통치하고 계심을 믿읍시다.
하나님은 인간의 고통의 문제 한가운데서도 자신이 여전히 모든 것의 절대적인 주권자이심을 드러내려 하셨습니다
깊은 신앙으로 나아가십시오:
고난을 통해 귀로만 듣던 하나님이 아닌, 우리 삶 가운데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경험하고 대면하는 신앙의 깊이를 추구합시다.
우리의 무지한 말을 멈추고,
하나님의 크신 이치와 섭리 앞에서 침묵하며 겸손히 주님의 뜻을 기다릴 때, 비로소 우리는 고난의 폭풍우 속에서도 참된 평안과 성숙을 얻게 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