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단석산 - 작가와 함께하는 산과 길
동행 작가 : 강영환 시인
부산일보 기사 입력일 : 2019-10-23
김수진 기자 kscii@busan.com
걸음마다 깃든 신라의 숨소리
경주 단석산(827.2m)을 갔다. 단석산은 신라시대 때 화랑들의 수련 장소로 이용되었던 곳으로, 산 이름은 김유신이 검으로 바위를 쳐서 갈랐다는 전설에서 유래한다. 무협 소설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이지만 화랑의 기개가 묻어나는 설화이고 단칼에 두 동강이 난 바위도 보고 싶기도 하여 오랫동안 가보려고 벼려왔던 산이다. 설화를 간직하고 있는 산에 들면 그 시대로 돌아간 듯한 착각에 빠진다. 그렇지 않더라도 설화의 의미를 새겨보며 걷는 것도 산행의 큰 묘미 중에 하나일 것이다.
화랑들의 수련 장소로 이용됐던 곳
김유신이 검으로 쳐서 갈랐다는 ‘단석’
암벽 석실 신라 첫 석굴 사원 신선사
정상서 토함산·금오산·고위봉 조망
부산일보 앞에서 목표지점을 건천 나들목을 하고 출발한다. 1시간 40여 분 주행 끝에 건천 나들목을 나갈 수 있었다. 접속된 국도에서 좌회전하여 100m쯤 고속도로를 통과하기 직전 고속도로를 끼고 우회전하여 들어가면 하천을 만난다. 건천이다. 고속도로 다리 아래 주차를 해 두고 하천을 건너면 산으로 이어지는 길이 나온다. 처음 예정은 그랬다. 그런데 차질이 생겼다. 하천이 간밤에 내린 비로 불어나 건널 수가 없게 되었다. 계획은 바뀔 수도 있다는 말로 위안을 삼으며 할 수 없이 제 2안으로 하산지점으로 생각했던 신선사에서 오르기로 계획을 수정했다. 신선사에서 올라가 다시 신선사로 회귀하는 방법을 선택하기로 했다. 고속도로 다리 아래에서 신선사까지는 차로 15분여를 갔다. 계곡을 따라 한참을 올라가니 국립공원 관리초소가 나왔다. 근무하는 분이 보이지 않았다. 위쪽 빈터에 차를 주차해 놓을 생각도 했으나 이어지는 시멘트 길이 유혹한다. 차가 가는 데까지 가보자는 생각으로 심한 경사도를 즐기며 올라가는데 안내 표지판이 나온다. 승용차는 4륜구동이 아니면 올라갈 수 없다고 한다. 실제로 경사도가 심해서 성능이 좋지 않으면 뒤로 미끄러져 위험하다는 생각이 든다. 신선사 주차장도 차량 대여섯 대 주차할 공간밖에 되지 않았다. 주차장에 차를 대놓고 심한 비탈면을 걸어서 5분여를 오르니 신선사가 나왔다.
국보 199호가 있는 신선사는 보기보다 규모가 작은 사찰이었다. 일주문도 없이 요사채 한 동과 법당 한 동이 전부였고 국보인 보살입상군은 오른쪽 비탈면에 바위군이 ‘ㄷ’자 형태를 이루고 지붕을 달아낸 그 안쪽으로 여러 기의 보살입상들이 부조되어 있었다. 바위가 잘 부스러지는 재질이어서 군데군데 살점이 떨어져 나가고 얼굴이 반쪽만 남은 보살상도 있다. 한참을 관람하며 시간을 보내고 아쉬움은 내려올 때 다시 보기로 하고 그곳에서 50여m 옆 능선에 난 정상으로 가는 길에 올랐다. 정상까지 1㎞라서 심한 경사를 이룰 것이라 예상했는데 그것을 뛰어넘는 편안함이 있다. 비온 다음 날이라 길은 많은 습기를 품고 있었다. 눅눅한 바지 감촉이 그렇게 상쾌하지는 않았다. 갑자기 숲을 찢는 듯한 전투기의 굉음이 몇 번이나 머리 위를 지나갔다. 아마도 대구비행장에서 뜬 공군 훈련기들이라 여겨진다. 새소리, 잎새를 흔드는 바람소리를 들으며 산정을 오르려던 꿈을 여지없이 부숴 놓는다. 정상에는 구절초가 빙긋 웃으며 환영해 주었다. 그 미소가 너무 아름다워 마음을 빼앗아 간다.
너는 흔들리지 않아도 꽃이다
돌 틈에 뿌리박고 서 있어도
향기를 뿜어내는 너는 구절초다
누가 꺾어가지 않는다고 상심하지 마라
바람이 네 향기를 훔쳐 가고
나비가 네 마음을 빼앗아 간다
햇살은 네 가진 색을 부러워하지 않느냐
네가 산정에서 보내는 미소가
내 마음을 앗아 간다
흔들리지 않아도 너는 꽃이다
신선사를 출발한 지 50분 만에 정상에 도착했다. 먼저 단석을 만났다. 반으로 갈라져 틈이 제법 벌어져 있다. 칼날로 벤 듯한 반듯함이 없어 벼락을 맞았거나 해머로 내리쳐서 갈라놓은 듯한 모습이었다. 아무려면 어때 그냥 김유신 장군의 설화를 믿기로 한다. 그래야만 내가 힘들여 이 산에 오른 값어치가 생기는 것이다. 인증샷을 찍고 주변을 둘러보니 첩첩이 산으로 둘러쳐져 있는 가운데 동북간 멀리로 경주 시내가 내려다보인다. 산행 시간이 너무 짧아 옷에 땀도 배지 않았다. 그래서 아침에 출발점으로 삼았던 코스를 따라 역주행하기로 마음먹고 길을 따라 북쪽 방향을 잡고 내려갔다.
정상에서 경사도가 끝나는 지점쯤 평평한 분지가 나타나고 주변에는 깨진 기왓장들이 널려 있다. 아마도 널찍한 목은 절이 있었던 터로 짐작이 된다. 이 주변을 발굴하면 국보급 유물이라도 나타날지 모를 일이다. 능선을 따라 한참을 내려가다 갑자기 되돌아 오를 일이 걱정이 되고 배도 출출하여 너럭바위에 앉아 점심을 먹었다. 바라다보이는 단석산 정상부가 수평으로 길게 이어져 보였다. 계곡은 깊고 나무들은 우거져 시원한 바람이 골짜기를 타고 상승한다. 간간 지나가는 사람들 말소리가 들려왔다. 이 산도 경주 시민들에게 사랑을 받는 산이란 걸 느꼈다. 산행 코스도 다양하게 개발되어 여러 지역에서 접근이 용이하게 되어 있다. 타 지역에서 온 분들은 주로 원점 회귀산행으로 건천 고속도로 다리 아래에서 출발하여 정상을 찍고 신선사로 하산하는 경우가 가장 일반적인 코스다.
점심을 먹고 너럭바위에 누워 하늘에 흘러가는 구름을 보았다. 빠르게 흘러가는 구름이 나를 눈을 어지럽게 한다. 나는 하늘을 우러러보고 하늘은 나를 내려다본다. 우리는 서로를 간직한다. 휴식을 마치고 다시 몸을 추슬러 내려왔던 길을 다시 올라갔다. 식후라서 그런지 힘이 더 들었다. 습기 머금은 길에서 낙엽 썩는 냄새가 났다. 지나간 태풍이 할키고 간 상처가 아직 남아 있다. 길 위에 부러진 잔가지들이 수북이 널브러져 있다. 다시 정상에 서서 조망을 살피니 오전보다는 조망이 시원해졌다. 멀리 경주 시가지가 보이고, 토함산, 금오산, 고위봉, 조항산, 벽도산, 선도산, 송화산, 용림산, 구미산 등 낮은 산들이 얼망졸망 자리를 보전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신선사 마애불상군은 국보 제 199호로 신라시대 7세기 전반에 조성된 것으로 본다. 올라 갈 때 보지 못한 마애불상군의 유래가 적힌 입간판을 발견하고 찬찬히 읽어 보았다.
‘이곳은 거대한 암벽이 ㄷ자 형태로 높이 솟아 하나의 석실을 이루고 있으며, 인공적으로 지붕을 덮어 법당을 만든 신라 최초의 석굴사원이다. 남쪽 바위 보살상 안쪽에 새겨진 명문에 의해 이곳이 신선사였고, 본존불은 높이가 일장 육척인 미륵장육상인 것으로 밝혀졌다. 안쪽 바위 표면에는 반가사유상과 함께 삼존불상이 있으며, 삼존불상은 왼손으로 동쪽을 가르키고 있어 본존불로 인도하는 독특한 자세를 보여준다. 이 밑으로는 버선같은 모자를 쓰고 손에 나뭇가지와 향로를 든 공양상 2구가 있으며, 모두 불보살 10구가 돋을새김 되어 있다.
7세기 전반기의 불상형식을 보여주는 이 마애불상군은 신라의 불교미술과 신앙연구에 귀중한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왼쪽 바위벽 아래쪽에 부조되어 있는 공양상의 작은 모습이 아주 눈길을 끈다. 소박하고 경건한 자세로 부처를 공양하기 위해 마악 걸어가고 있는 모습을 방금 바위 위에 새겨 놓은 듯 선명하다. 바위에 새겨진 마애불상군을 가슴에 들이고 왔던 길을 되돌아오면서 가을에 유난히도 많은 태풍에 산에 들지 못하는 산꾼들의 타고 있는 마음이 생각났다.
경주 단석산 산행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