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족의 도시 연길 – 2007-12-06 –
소란스러움에 눈을 떴다.
창문으로 아침 햇살이 비친다. 수면제 덕분인지 잠을 제법 깊게 잤다.
커튼을 걷으니 옥수수를 추수한 광활한 벌판이 펼쳐진다.
이렇게 땅이 넓은데 이곳 사람들은 왜 한국으로 돈 벌러 올까?
의아스럽다.
연길이 가까워지고 있다.
열차에서는 반가운 말이 들린다. 조선말로 연길 역 안내를 한다.
내리자마자 하얼빈 가는 열차표를 예매해야 하는데 내가 원하는 날짜의 침대표가 없단
다.
주말이라 이동하는 사람이 많은가 보다. 하지만 비싼 침대표는 있다고 하는데 비싸고
편안한 침대칸을 사용할 처지가 아니라서 하루 전 금요일 표를 예매했다.
하얼빈 가는 기차 하루에 한번 21시에 출발한다.
연길서 머무를 시간이 하루 줄면서 마음이 바빠졌다.
3일에 걸쳐서 둘러봐야 할 곳을 2일 동안 봐야 한다.
우선 아침을 먹는데 조선족 식당에 가서 동태 찌개를 주문하니 요강만한 뚝배기에 공
기밥은 머슴밥 주듯 한다.
밥을 반쯤 덜어내고 반찬과 찌개를 먹어보니 영 아니다. 하지만 향차이 들어간 중국 음
식보다는 먹을만해서 하루 종일 돌아다니려면 밥 힘으로 다녀야 하기 때문에 물에 말
아 억지로 입에 넣었다.
연길에는 시외버스 타는 곳이 두군데 있는데 역전앞 좌측에는 가까운 곳으로 이동하는
곳이고 역전에서 시내 쪽으로 있는 곳은 장거리 버스가 출발하는 곳이다.
용정으로 가는 버스는 24인승 미니 버스로 약1시간 소요되며 요금은 6원이다.
- 용두레 우물 -
19세기 격랑의 역사에 떠밀려 국경을 넘은 조선사람들이 간도 지방에 처음 정착한 곳
이 해란강 주변이었다 한다.
해란강 주변의 들판에서 발견한 우물을 '용두레'라 불렀고, '용정'이라는 지명도 이 우
물에서 유래되었다.
용정은 연길에서 차로 50분 거리의 작은 변두리 도시이다.
지금은 초라한 중국 변두리 도시의 초최함 그대로이나 조선사람들의 독립운동의 본거
지였던 용정은 시인 윤동주의 정신적 고향이며 박경리의 대하소설 '토지'의 여주인공
서희가 재기를 다진 곳이다.
용정에 도착한 후 가장 먼저 간 곳은 당연히 용정의 지명이 유래한 용두레 우물이었다.
버스에서 내려 오토바이 택시(2원)나 자전거 택시(1원)로 가면 5분이면 도착 한다.
우물 주위는 잘 꾸며져 있었지만 우물 안의 물은 말랐고 쓰레기만 가득했다.
충격이었다.
용두레 우물에 맑은 물은 커녕 쓰레기만 가득하다니... 사실 맑은 물까지는 기대하지
않았고 적어도 물 비슷한 것은 있을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마치 성황당처럼 깃발이 나부끼고 우물뚜껑에는 소원을 비는 낙서가 무성했다.
다음으로 간 곳은 윤동주와 문익환 목사가 다녔던 대성중학교, 지금의 용정 제1중학교
이다.
사실 엄밀히 말하면 윤동주가 대성중학교를 다닌 건 아니었다.
윤동주는 은진중학교, 평양숭실중학교(후에 폐교됨), 광명중학교를 다녔는데 후에 대
성중학교를 전신으로 은진, 광명, 동흥, 명신여자중학교가 용정중학교로 합병되었기
때문에 그렇게 말하는 것이다.
대성중학교는 교문 입구에서 바로 오른편에 있었다.
건물 앞에는 윤동주 시비가 있었다.
옛날식 건물이 잘 보존되어 있길래 안에서도 옛날식 교실을 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아
니었다.
교실이 있긴 있었는데 한 쪽은 기념품 가게로 변했고 한 쪽은 잠겨있었다.
교실 안도 볼 수 있게끔 해 놓으면 더 좋을텐데... 아쉬웠다.
2층에는 기념관(전시관)이 있었다.
윤동주와 문익환의 모교인지라 두분의 기록과 사진이 많다.
관람객은 나 혼자 뿐이다. 백두산 관광차 들리는 곳이라 겨울인 지금은 백두산 관광을
하지 못하니 관광객이 없나 보다.
호젓하게 둘러보는데 눈화장 짙게한 아즈매가 설명이 필요하냐고 하기에 오케이 했더
니 대신 기부금을 내야 한단다.
얼마냐고 했더니 100원 이상 마음대로란다. NO 했다.
먼저 설명한 다음 성의를 표하라고 했으면 기부 하겠는데 돈을 내야 설명해준다는 사
고방식이 싫었다. 지들 월급을 누가 주는데…,
나는 윤동주 시인 보다는 문익환 목사 사진 앞에서 오래 머무르게 되는 것은 무엇일
까?
문목사님께 뭐라 여쭤보고 싶은데 입에서만 맴돌뿐 생각이 정리 되지 않는다.
- 일송정-
일송정은 버스편이 없어서 택시로 가야한다.
왕복 30원에 흥정했다.
선구자
작사:윤해영 작곡:조두남
1. 일송정 푸른 솔은 늙어 늙어 갔어도
한줄기 해란강은 천년 두고 흐른다
지난날 강가에서 말 달리던 선구자
지금은 어느 곳에 거친 꿈이 깊었나
2. 용두레 우물가에 밤새소리 들릴 때
뜻 깊은 용문교에 달빛 고이 비친다
이역하늘 바라보며 활을 쏘던 선구자
지금은 어느 곳에 거친 꿈이 깊었나
3. 용주사 저녁종이 비암산에 울릴 때
사나이 굳은 마음 길이 새겨 두었네
조국을 찾겠노라 맹세하던 선구자
지금은 어느 곳에 거친 꿈이 깊었나
연길에서 용정으로 차를 타고 가다 보면 용정에 들어서는 길목 우측에 비암산이 있다.
비암산 정상 소나무 옆에 정자가 세워져 있는데, 이것이 바로 "일송정 푸른 솔이 늙어
늙어 갔어도"로 시작하는 노래 선구자의 '일송정'이다.
60여년전 항일혁명 근거지의 비밀 회의 장소로 활용하는 등 많은 애국인사들과 애국청
년들이 모여 활동한 곳이다.
일송정은 당시 일제가 소나무 껍질을 벗기고 말려 죽이고 정자를 파괴했는데, 1990년
에 복구해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다.
선구자를 목청을 가다듬고 우렁차게 불렀다. 해란강을 보니 웬지 가슴이 뭉클해진다.
이 척박한 땅에서 조국의 독립을 위해 제대로 먹지도 입지도 못하며 숨어서 독립운동
을 했을 투사들을 생각하니 나는 입으로만 개혁을 조국의 발전을 나불 거리는 것은 아
닌가 하는 죄책감이 든다.
윤동주 생가를 가려니 보수 공사중 으로 출입을 금한다고 해서 연길로 돌아와 시장구
경에 나섰다.
東市場은 중국사람들이 많이 이용하는 곳이고 서시장은 조선족 시장이다.
재래 시장으로 엄청 크며 바퀴벌레 약부터 산삼까지 없는 것이 없다. 우리 60~70년대
시장 모습이다.
하루가 또 바삐 지나고 있다.
숙소를 정하고자 택시기사에게 핸드폰좀 빌려 달라고 하는데 이눔들이 모두 내 말을
못 알아 들어 몇 명과 실랑이을 하는데 민박집 찿으세요? 하는 조선말에 반가워 그냥
따라 갔다.
연길역 플렛폼
연길역앞 버스 터미널
연길의 동태찌개
용정 주위 민가
용정시내
용두레우물
용두레우물
대성중학교(현 용정중학교)
문익환,서정주
이 곱상하게 생긴 얼굴을 보며 생전 문목사님의 강인함이 어디서 나왔을까 의문이 들었다
윤동주 시비
일송정
일송정 푸른솔
해란강
용정시내에서 일송정 오는길
첫댓글 힘들게 다녀 오신곳을 앉아서 잘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