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3주간 화요일,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주교 학자 기념] 마르 3,31-35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바로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
우리는 ‘익숙한 것’의 가치를 잘 알아보지 못합니다. 시골에 사는 사람은 맑은 공기와 푸르른 숲이 얼마나 고마운 것인지 미처 깨닫지 못합니다. 바닷가에 사는 사람은 수평선 위에 떠오르는 태양이나 넘실거리는 파도의 웅장함을 바라보고도 크게 놀라지 않습니다. 그것을 자주 볼 수 있다는 ‘익숙함’ 때문에 감동을 잃게 되는 것인데, 그것은 정말 크나큰 '손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엄마'를 생각할 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엄마'가 너무나도 가깝고 익숙한 존재라는 이유로 엄마의 위대함과 고귀한 가치를 잘 알지 못할 뿐 아니라, 엄마가 마음 속에 어떤 생각이나 꿈을 가지고 있는지를 제대로 알려고 하지도 않는 것입니다.
신경숙 작가의 소설 “엄마를 부탁해”는 바로 이런 ‘익숙함이 가져오는 손실’을 소재로 하고 있습니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가족은 서울역에서 엄마를 잃어버리고, 실종된 엄마를 찾는 과정에서 엄마에 대한 기억들을 하나 하나 떠올립니다. 그리고나서야 비로소 ‘익숙함’ 속에 묻어두었던 ‘엄마’의 참된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가족들을 바라보는 엄마의 마음이 어땠는지, 아들을 통해 대신 이루고자 했던 엄마의 꿈이 무엇이었는지, 엄마가 한 남자의 ‘아내’로서 갖는 가치가 얼마나 고귀한 것인지, 엄마가 한 사람의 여자로서 마음 속에 품었던 희망이 무엇이었는지를 비로소 깨닫게 된 것입니다.
엄마를 잃은 지 9개월이라는 시간이 흐른 후까지도 여전히 엄마를 찾지 못한 주인공은 로마를 방문하여 엄마가 평소에 그토록 갖고 싶어했던 장미묵주를 삽니다. 그리고 성 베드로 성당 안에서 ‘피에타 상’을 바라봅니다. 죽은 아들의 시신을 안고 있는 성모님의 차분하고도 단아한 모습을 넋을 잃고 바라보던 주인공은 성모님이 ‘어머니’로서 겪어야 했던 아픔을 떠올립니다. 아들 예수로부터 "누가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냐?"라는, 마치 모자관계를 부정하는 것 같은 말을 듣고도 끝까지 아들 곁에 남아서 어머니로서의 역할을 다하셨던 성모님의 모습에서 자기 어머니를, ‘익숙함’ 속에 묻혀서 스스로의 고귀한 가치를 잃어버리고도 끝까지 가족들 곁에 남아 자신의 역할을 다했던 어머니를 떠올립니다. 그리고 어머니께 죄송한 마음을 보속하는 심정으로 성모님께 자기 어머니를 의탁합니다. “엄마를, 엄마를 부탁해.”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당신을 따르는 군중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바로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 이 말씀을 ‘예수님께서 성모님이 자신의 어머니라는 사실을 부정하셨다’는 식으로 오해해서는 안 됩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잘 듣고 실행하는 것’ 그것은 성모님께서 성령으로 예수님을 잉태하시던 그 순간부터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한결같이 보여주셨던 모습입니다. 그런 점에서 성모님이야말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당신의 '참된 가족'에 가장 부합하는 분이라고 할 수 있으며, 예수님은 그런 성모님을 핏줄로 맺어진 육친의 어머니인 동시에 신앙으로 맺어진 '영적인 어머니'로서 인정하신 셈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로하여금 그런 성모님을 본받아 하느님의 말씀을 잘 듣고 실천함으로써 당신과 영적인 '가족'공동체를 이루기를 바라시는 것이지요.
그러기 위해서는 "엄마를 부탁해"의 주인공처럼 '익숙함'에 묶이지 않아야 합니다. ‘익숙함’이라는 이름의 편견으로 상대방을 내 방식대로 판단하고 평가하지 않아야 합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실천하고자 노력하는 사람을 나와 동등한 한 사람의 ‘신앙인’으로 바라보고 그가 가진 진면목을, 그의 진심을 더 깊이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래야만 그를 나의 '형제'로 받아들일 수 있고, 그렇게 너와 내가 서로 모여 하나로 단단하게 엮인 사랑의 공동체를 이룰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나와 같은 신앙을 지닌 사람들을 ‘익숙함’의 눈이 아니라, ‘신앙의 눈’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어떻게 교회 다닌다는 사람이 그럴 수가 있느냐’며 그의 인간적인 부족함을 지적하고 비난할 것이 아니라, 그런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실천하고자 노력하는 그를 나의 '동료'이자 '가족'으로 받아들여 구원을 향해 함께 나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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