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이 매우 길게 써질것 같습니다. 좀 지루하시더라도 읽어주셨으면 합니다.
혹시 어제 EBS에서 하는 서길수의 고구려 혼을 찾아서인가의 프르그램을 보셨나요?
매주 월,화,수 밤 9시에 합니다.
보시다보면 다분히..EBS의 교육의도에 빠져들것이고 방송에 나와 얘기하는 서길수교
수나 다른분들의 설명에 손을 들어주는 쪽으로 그쪽 설명이 타당하고당연한것처럼
보여질것 입니다.
제가 쫌 위기의식을 느꼈습니다. 평소 전 역사이델로기적인것으로 전체적으로
중국과 한국에 대해 생각만 많이 했지 고구려등에 대해 깊게 들어가진 않았거든요
어차피 저역시 여러분을 내편으로 끌어오기위해 속임수나 설득하기위한 글솜씨를
뽑내야 하고 그내용 역시 그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다분히 매우 인위적이고 한방향으
로 흐르게 해야 합니다. 이점은 제가 미리 말쓰드립니다.
우선 고구려가 한국고대사 혹 한국의 역사 고대 고조선에서 발해등까지 이어진 역사
중의 하나라는 의미에서 고구려가 얼마나 한국과 가까운 것인지 제나름대로
써보겠습니다.
우선 고조선등과 연관시켜서...제가 아는 내용들만 얘기하겠습니다. 우선 거석숭배문
화 저도 ebs방송등에서 많은 정보를 얻곤하는데요..고구려에선 큰돌(바위)를 섬긴다
고 하죠.옛날 조선의 무덤양식이라던 지석묘(고인들)같은것의 영향을 받았다고
설명들을 합니다.
이런 커다란바위숭배문화가 있는것 같고 또 고구려지배층과 백제지배층의 조상이
같다.지배층이 같은 문화를 향유한다.는것이 있습니다 그예로 백제의무덤들이있는
송파구 방이동의 적석총무덤들이죠..혹시 가본적 있으신지 모르겠지만이곳의 무덤양
식들이 고구려 장수왕릉무덤처럼 계단식으로 되어있습니다.이런것을 본다면 백제와
고구려의 지배층의 장례문화가 매우 흡사하고 정말 동명왕을 같은 조상으로두었구나
하며 생각이 드실것입니다.
또 고구려등의 온돌문화와 음식문화(시루떡) 그리고 놀이문화(씨름,택견,윳놀이)등
이 있겠죠.그리고 고구려인들이 머리에 새깃털을 꼽는 모양들등을 보시면 저런것들은
신라등에서 머리에 쓰는것과 같거나비슷하다는 생각이 드실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일단 고구려등이 한국문화 혹 신라나 백제등과 동질문화적인이라고 생각되어지는
것들을 적어봤습니다.
그리고 지금부턴 ebs에서 서길수교수의 방송에서 제가느끼는것들을 예기하겠습니다.
우선 상당히 머리를 써가면 용어선택및 말하는것에서 매우 사람의 정신을 쏙 빼고
전형적인 2분법적인 방법으로 강의를 하더라구요..
우선 그들은 중국과 고구려 이렇게 나눠버렸습니다.중국하면 또 여러왕조 나라들로
나눠짐에 불구하고(이러한것들은 넘어가죠)일단 현대적 표현으로도 널리 쓰이고
아예 국명으로도 쓰이는 중국을 고구려와 완전히 지역을 나누어 중국과 고구려는
공통점이 적다는것을 강조하였고 어제 강의에서는 무덤의 벽화를 가지고 중국의
고구려를 제외한 모든 중국영토지역에서의 벽화출토의 예아 고구려의 예를 나누어
도표로 만들었습니다.
제가 다분히 이런 방법으로 공격을 하는데요.어떤방법이냐면 그럼 너희쪽은 어떠냐
이것입니다. 같은시기 고구려를 제외한 백제지역(여기서 백제는 고구려와같은 국가
동족이 아닌 지역명칭으로 마한등을 계승한것의 의미가 더강합니다.,신라지역에서는
그럼 벽화등이많이 출토되고 있느냐 이죠? 이렇게 물으면 역시 한반도지역에서 고구
려영토를 제외한 곳에선 벽화는 거의 없는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점그렇구요..그래서 중국에서는 고구려까지를 포함하여 어느어느시기의 중국벽화할
때 고구려지역도 포함시키는것으로 알고 있습니다.(중국에서는 사실 돈황지역등의
수많은 국보급 문화재 자체도 모두 중국의 것으로 하쟎아요)
실제 어제 제가 명확하게 따져보진 않았지만 정말 3,4세기경부터.수당시대(10세기초)
까지의 벽화수와고구려내 벽화수등을 비교하여 고구려의 것이 더많다면(다분히 문화
가 더우월하고 뛰어나다 이런 인식가능성까지 보여주므로)차라리 중국보다(중국의한
족왕조보다도 더 뛰어난 문화를 소유한 국가아니었을까?이런 생각까지 드실수도 있을
것입니다.이런점은 좀 단순한 고구려역사논쟁이 아닌 세계사적인 부분인데요
아시아지역에서 대당제국등과 문화를 비교하여 우월했던 나라가 정말 존재했나.?
고구려라는 엄청난 당시의 최첨단 문화선진국이있었단 말인가? 그럼 동이족이 7세기
정도까지도 혹 발해등을 포함하면 10세기초까지도 중원의 한족 우월한 문화종족이라
던 한족의 왕조보다도 더 대단한 문화를 영유하였는가? 하는 문제까지도 될수 있을것
입니다. (다분히 제가 한족우월적인 부분을 일부러강조를 하였습니다.)
잠시 글이 새나갔는데요 다시 어제 ebs방송에 대해예기 하겠습니다.
방송에서는 벽화등에서 많이 중국과 구분된다 쪽으로 방송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실상 그렇지 않고 문화적 공유나 흐름등이 있고 분명이 중국의 문화도 유행하고
퍼져있음에 불구하고 그런부분은 그냥 동양적사상이라고 얼매무르고 중국이란 용어는
안쓰더라구요.(공자님이나 맹자님도 어쨌든 동양의 위대한 학문이긴 하지만)
제가 벽화등에대해 제대로 공부한적은 없어서 많이 알지 못하지만 일단 벽화등과
함께 어떻게 고구려의 문화재가 아직까지 많이 아주 많이 남아있어서 현재 우리들에
게 보여질수 있는지를 얘기하겠습니다.
우선 벽화내용을 보면 사실 중국적인 내용도 많고 중국식의 복장도 많이 나옵니다.
저역시 같이 대응하는 입장에서 중국이란 말을 마구 남발하는데요 ^^
우선 사신도 아시죠? 이것은 중국 화하족 혹 한족들의 고대 사상에 의해 존재하는
것입니다. 이런것들이 고구려등에 퍼진것이죠 고구려로의 도교나,유가등이 수입된지
는 매우 오래된것으로 알고 있거든요.특히 중국의 천문및 약간 상상의 나래를 퍼는
환상적인 이야기등도 고구려로 알려진것 같고요..
사신도는 어쨌든 한족고유의 것인것 같구요(한족이라니 좀 순수 혈통적인것 같은데..
고대의 한족 화하족이 아닌 동방의 이족일수도 있겠죠.그러나..적어도 한나라성립이
후 한인들의 문헌등에선 벌써 이런 것들이 보이므로 그냥 한나라것,중국것이라고 하
겠습니다.
그리고 천문용어나 천문에 대한것도 사실 이미 고대중국문헌등에 나온것들입니다.
28숙이나.여러별자리 이름들요. 견우직녀설화나 달에 두꺼비가 있다는 설화
등도 사실 고대 중국의 신화얘기들입니다.(혹 고대 중국의 동이족의 얘기이거나)
이런점에서 좀 사고의 틀을 깼으면 합니다. 무조건 중국과 연관된것이면 중국에서
문화가 수입됐다는 사고를 하고 고구려와 한반도 남부와 비슷한 문화를 가지고 있으
면 아 이것봐라 이게 봐로 동일문화를 가지고 거의 차이가 없는 민족이라는 증거
아니냐 하겠지만 고구려에서 삼한등 오랑캐땅으로 문화가 전파한것일수도 있겠죠..
즉 고구려의선진문화가 아직 오랑캐땅인 삼한지역으로 문화가 전파되었고 그것이
지금까지 한국인에게 남아 있다는 것이죠..
어제 방송을 보신분이면 와 참으로 중국과 고구려는 많이 차이가 나고 저런 벽화등
유적을 남긴것만으로도 연대를 더 길게 잡아도 고구려의 것보다 수가 적네 하실것입
니다. 전 이런것을 좀 페러독스라고 하겠습니다.
지금까진 우리가 고구려는 왜이렇게 남겨진 유산이 없냐고 김부식때부터.19세기말까
지 그랬습니다. 그래서 그때까지 고구려에 대한 연구는 김부식,일연,이규보,이승훈
등이 만든 페러다임및에서 약간 더 추가 추가 등에서 대충 그범위내에서 머물렀고요
그런데 20세기에 들어오면 장난이아니었습니다. 남겨놓은 유산이 없었던것이 아니고
모두 사라진것이 아니라 숨겨져 있었습니다 고구려는 그야말로 실제 많이 많이 감추
어졌던 국가였죠..그리고 이젠 벽화등으로 (사료등보다 더 나은 증거물이 되면 됐지
떨어진다고 생각들지 않은)드디어 세상에 나왔고 고구려의 벽화는 정말 생각외로
많이 많이 발굴되었습니다.
모두 깜짝놀랐죠...아니 같은시기 중국본토지역은 남아있는것이 없는데..고구려는 어
떻게 저렇게 많이 남겼을까? 그이유는 간단합니다. 고구려는 사실 멸망순간이후
상당수의 유적은 지상에서 사람들의 이목에서 사라졌거든요..
그리고 전혀 훼손돼지 않은체..1000년이 넘게 아주 잘 보관되어 있었습니다.
반명 중국본토지역은 그렇지 않았죠..수많은 전란이 있었쟎아요..아 우리도 그렇게
말하쟎아요 왜 우리나라 초초의사서는 부식이의 삼국사기이고 시기도 왜이렇게
늦은 12세기때 작품이냐고요..답은 간단하죠? 신라등이 선진문물을 구사하고 고려
초기 번영을 누렸어도 잦은 전란은 거란,몽골의침입으로 쏵다 사라졌다고요..
마찬가지입니다. 중국역시 수많은 전란이 있었구 대대적 번영을 구가하던 대도시들도
한번 쏵다 젯더미가 돼었다가 다시 세워지고 젯더미 되었다가 다시 세워지고 했습니
다,5호의 침입,남북조시기의 전란,거란의 침입,여진의 침입,몽골의 쑥대밭,아주아주
많죠..거기에다 중국식 특유의 유망정권들 많이 있죠..진승,오광의 난부터..황건적의
난,..태평천국난까지(이것은 너무 근대적인가?-_-)
아무튼 중국은 엄청 전란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3세기부터 10세기 까지의 국보급
문화재등은 돈황지역등에서 전란의 화를 면한것들 지금 볼수 있는것이고요.
아무튼 고구려는 엄청나게도 은폐되었던 국가입니다.문화재 성벽하나하나 까지
고스란히 남아있었죠...가장 양호하게 남아있는 세계사에 몇안되는 경우라고 생각되
어집니다.
이점은 매우 강조하고 싶었 고구려가 얼마나 선진적이고 중국의 영향을 받았는지에
대해 마지막으로 한가지 예등을 들면서 글을 마치겠습니다. 반론을 들어주실문은
얼마든지 환영이지 여의치 마시고 잘못된 부분등에서는 콕콕 찍어주십시오
여러분 호태왕비아시죠? 호태왕비 이것 마냥 중국용 칭호 아니에요 아시죠?
사실 제가 지금 쓸글은 좀 유치하고 너무 이런것 까지 딴지 거냐하시는것입니다.
바로 한자사용이거든요..호태왕비 보세워 모든글자가 한자입니다.
고구려에서는 한자를 사용했었네요...(선진문화수입이라고 하실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중국측에선 매우 반가워할 증거물이겠죠) 그리고 고구려등에서 출토된 모든 문자는
다 한자로 되어있습니다.벽화의 내용이나이나.설명등도 모두 한자로 되어있구요..
이부분에 대해선 문자사용만 가지고 그러면 신라나 고려등도 다 한자 사용했다고
하고 고대 일본역시 한자를 썼는데..하며 너무 쫴쫴하다 할것입니다. 그런것 같기도
하고요.그렇지만 가장 일찍히 한자를 받아들인 나라중 하나가 고구려라는것은 생각해
보면단순히 한자사용을 한것에 대해 약간 트집을 잡을수도 있다고 생각되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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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EBS의 서길수의 고구려의 혼...을 보구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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