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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고사6 - 걸어서 알히페리아에 입장해 화려하기 그지없는 궁전을 구경하다!
2026년 5월 16일 알히페리아궁전에 갔더니 오전은 예약 마감이 되었기로 오후 4시 표를 사고는 북쪽
으로 걸어서 기둥의 성모 대성당 (필라르 성당) 에다가 라 론하 라고 부르는 미술관을 구경합니다.
페드라 다리 Puente de Piedra 남쪽에 라 세오 성당 (산 살바도르, 사라고사 대주교청) 을 거쳐 내려와
알폰소 거리 레스토랑 엘 튜보 El Tubo 를 찾아 샐러드등 몇가지 음식에 생맥주를 시켜 점심을 듭니다.
이제 알히페리아 궁전으로 가야 하는데 시내 버스를 탈까 하다가.... 아직 궁전 입장 예약시간인 4시 까지는
시간이 좀 남았기로 버스 대신에 구글 지도를 보면서 또 종이에 손으로 그려온 지도를 들고 걷습니다.
알폰소 거리 남쪽으로 걷다가 우회전 해서 C. de los Cereros 도로를 따라 30분을 걸어 3시 20분에
알하페리아 궁전에 도착했는데,오후 4시니 30여분이 남았는데도 입장시켜 주는데.....
알하페리아 궁전 (Palacio de la Aljafería) 은 스페인 북부에서 가장 큰 이슬람 양식의 건축물입니다.
11세기 사라고사를 통치하던 이슬람 바누 후드 왕조가 지은 궁전이며, 유네스코 세계유산 이라고
하는데 궁전을 구경하다 보니 기둥이며 회랑과 모서리 무늬에 정원이 꼭 어디를 닮았다고 생각
했더니... 울 마눌은 예전에 본 스페인 남쪽 그라나다의 암람브라 궁전과 흡사하다고 기억해 냅니다?
메카에서 일어난 무함마드의 후계자들이 세운 다마스커스의 이슬람 우마이야 왕조가
이집트를 점령한후 지중해를 따라 리비아, 튀니지, 알제리 및 모로코를
이슬람화 하고는 712년에 바다를 건너 스페인에 상륙해 서고트 왕국을 멸망시킵니다.
옛날에 로마인들이 건설했던 카이사르 아우구스타는 그후 이슬람의 땅 알 안달루스에 포함
되었고, 아랍어로 사라쿠스타 라고 불리게 되었지만..... 안달루스의 수도인
코르도바에서 먼 북쪽이라 여기 사라쿠스타 (사라고사) 는 종종 독립적인 행보를 보입니다.
750년 다마스커스의 우마이야 조가 바그다드에서 일어난 압바스조에 멸망하자 안달루스 총독 유수프는
말리크(왕) 를 칭했지만.... 755년에 우마이야 왕족 아브드 알 라흐만 1세가 안달루스에 당도해
유수프에 도전했는데, 마침 사라쿠스타는 바스크족과 함께 반란을 일으켰기에 거의 독립 세력이 됩니다.
756년 아브드 알 라흐만이 안달루스 대부분을 장악한 후에도 사라쿠스타의 후사인 알 안사리는
명목상으로만 복속했다가, 774년 스페인에 세워진 후우마이야조가 아닌 바그다드의
압바스 왕조에 복속을 표하며 독립했으니....... "외교는 원교근공" 이고 적의 적은 우리편 이라?
778년에 샤를마뉴(칼 마르텔) 의 프랑크군이 피레네를 넘어 사라쿠스타(사라고사) 를 공격했지만 함락하지
못하고 돌아가다가 론세스바예스 전투에서 바스크인들에 패하니 유럽의 오랜 노래인 롤랑의 노래인데....
엉뚱하게 롤랑이 이슬람과 싸우다가 죽은 이야기로 왜곡해 기독교도 기사들의 사기진작 무훈시가 나옵니다?
사라쿠스타 (사라고사) 는 851년 서고트계 무슬림 무사 이븐 무사가 총독에 부임한 후에
다시 코르도바의 후우마이야조에서 자립했고, 859년에는 무사의 아들 룹이
톨레도 총독에 봉해지며 바누 카시 가문은 안달루스 북부에서 위세를 떨치기 시작합니다.
930년 아미르(왕) 아브드 알 라흐만 3세는 아들 무함마드를 총독으로 봉하길 주저했으나, 코르도바로
찾아와 군사원정 참여 및 연공납부를 약속하자 사라쿠스타에 봉했지만, 무함마드는 기독교국
레온 왕국의 라미로 2세와 동맹해 935년 '칼리파' 아브드 알 라흐만 3세를 공격하니 배신의 시대라?
알 문디르는 코르도바의 후우마이야에서 독립해 시라쿠스타(사라고사) 에서
아미르(왕) 를 칭했고.... 1023년 알 문디르의 사후 아들 야흐야가 계승해
멀리 바그다드의 압바스 칼리파에 명목상 복속하니 “외교는 원교근공” 이라?
1027년 알 문디르 2세가 계승했고, 마지막 후우마이야 칼리파 히샴 3세에 복속을 표했는데, 1031년
폐위된 히샴 3세는 코르도바를 탈출해 알 문디르 1세의 부하 술라이만 알 주다미가 통치하는
레리다로 망명했고.... 1037년에 사망하자 이후 알 문디르 2세는 어떠한 칼리파도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러던 1039년, 사라쿠스타의 카디(법관) 인 아불 알 하캄이 14촌인 알 문디르 2세를 시해하고
집권하니 귀족들은 굴복했지만 대중은 찬탈이라며 반발했고, 여론이 나빠지자 압둘라는
인질로 삼은 알 문디르 2세의 형제 압둘라 및 아흐마드와 왕실 보물을 챙겨 루에다로 피신합니다.
권력의 공백을 틈타 레리다 영주인 술라이만이 1039년에 사라쿠스타를 장악해 알
무스타인 호칭을 취하며 아미르(왕) 로 즉위하니, 사라쿠스타 왕실은
아랍계 바누 투지브에서 알 무스타인의 아프리카 베르베르계 바누 후드로 바뀌었습니다.
안달루스 내전으로 코르도바가 쇠락한후 이슬람 학자들이 사라쿠스타 (사라고사) 로 유입되었고,
타이파 시대에 무타질라 학파의 중심지로 번영을 누렸누며 1043년 알 무스타인은 아라곤
백작 레미로 1세가 이복형 팜플로나 국왕 가르치아 4세 산치츠에 대해 반란을 일으킬때 도웁니다.
기독교 팜플로나 국왕 가르치아 4세 산치츠는 레온 왕국의 페르난도 1세의 도움으로
아라곤- 사라쿠스타 연합군을 격퇴했으며 1049년 알 무스타인 사망후
장남인 아부 알 무크타디르가 사라쿠스타에, 차남인 유수프가 레리다를 계승합니다.
톨레도의 이슬람 토후국의 아미르(왕) 알 마문은 기독교국 페르난도 1세와 함께 사라쿠스타
토후국을 공격했는데, 1060년 무렵 사라쿠스타의 알 무크타디르는 페르난도
1세와 바르셀로나 백작 라몬 베렝게르 1세에게 평화를 대가로 파리아스 (연공) 를 바칩니다.
아라곤 왕국의 레미로 1세는 1055년과 1063년 사라쿠스타 토후국의 북부 요새
그라우스를 포위했으나, 알 무크타디르가 고용한 카스티야
출신으로 망명한 용병 대장인 엘 시드가 이끄는 3백 기사들에게 패해 전사합니다.
1064년, 레미로 1세를 계승한 아라곤 왕국의 산초 레미리스는 아키텐 및 부르고뉴
십자군과 함께 레리다 인근 바르바스트로를 함락해 학살을 자행했고, 1065년
4월에 사라고사의 알 무크타디르가 지하드 (성전) 를 선포하며 공격해 탈환합니다.
남진 정책을 펼친 사라고사의 알 무크타디르는 1076년 데니아 토후국을 정복해 남북으로
둘러싸이게 된 발렌시아 토후국이 복속하니, 사라쿠스타(사라고사) 토후국은
톨레도와 세비야 토후국과 함께 안달루스의 3대 무슬림 타이파 국가 중 하나로 부상합니다.
이 무렵 알 무크타디르는 9세기 후반 사라쿠스타의 서쪽 외곽에 세워진 사각꼴의 높은 감시탑을
중심으로 성탑들을 갖춘 성벽을 둘렀고, 내부에 궁전을 조성한 궁성을 세운후
자신의 쿤야에 따라 '앗 자파리야' (알하페리아) 라고 명명하니 오늘 우리가 보는 이 궁전 입니다.
1081년에 레리다를 완전 병합한 알 무크타디르는 그해 가을 장남 아부 아미르
유수프 알 무타만을 사라쿠스타 (사라고사) 에, 차남 이마드 앗 다울라
문디르를 레리다 & 데니아 & 토르토사에 봉한 후에 1082년 7월에 사망합니다.
동생 문디르가 형을 거부하고 기독교 아라곤 왕국의 산초 라미리스와 동맹하자 알 무타만은 기독교인
용병 대장 엘 시드를 앞세워 맞섰으며, 문디르가 조공을 바치던 바르셀로나 백작
베렝게르 라몬 2세와 함께 알메나르를 포위하자 엘 시드가 나서 격파하고 후자를 포로로 잡았습니다.
이를 틈타 아라곤 왕국의 산초 라미리스는 1083년 그라우스, 1084년 아르게다스를 함락해
싱카협곡으로 나아갈 교두보를 얻었으며, 뒤이어 그와 동생 문디르는 형이 지배하는
나라 사라쿠스타로 진격했으나 1084년 8월의 에브로강 전투에서 엘 시드에게 패배합니다.
1085년, 카스티야 왕국이 이슬람의 도시 톨레도를 점령하여 사라쿠스타를 안달루스 남부로 부터
고립시키자, 기독교 세력의 공격에 더 취약해진 사라고사는 무역 감소로 경제 위기까지
맞았고 이듬해 20년 넘게 이슬람 사라고사를 섬기던 기독교인 엘 시드가 발렌시아로 떠납니다.
군사 능력은 부족했지만 알 무타만은 부친을 닮아 학문, 특히 수학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는데, 반세기
가 넘는 둘의 치세에 사라쿠스타에서는 수학, 철학, 의학, 천문학에 걸친 고대 그리스 저서
들이 아랍어로 번역되었고 수학의 체바 정리를 고안한 알 무타만 본인 처럼 새 이론들도 더해집니다.
또한 사라쿠스타에는 유대인 공동체가 있었고, 7개의 시나고그 (유대 회당) 및 탈무드 학교인
예시바가 있었으니, 의사 겸 히브리어 학자였던 요나 이븐 자나흐, 알 무스타인 2세의
주치의로써 주군의 명으로 약학서를 집필한 요나 이븐 비클라리쉬 등의 학자들도 활약했습니다.
1086년 알 무타만이 사망한후 아들 알 무스타인 2세가 계승했으며, 같은해 아프리카
의 이슬람 무라비트 왕조가 안달루스 (스페인) 에 개입해 사그라하스 전투
에서 레온-카스티야 군대를 격파하며 레콩키스타를 전반적으로 위축시키게 됩니다.
다만 이슬람은 톨레도 수복에는 실패했기에 사라쿠스타에서는 먼 일에 불과했으니 아라곤 왕국의
산초 레미리스는 1087년부터 에스타다등을 점령하며 기세를 올렸고, 1090년 문디르의 사후
아들 술라이만 다울라는 어렸으니 전에 용병으로 부렸던 발렌시아의 엘 시드에게 거꾸로 조공합니다.
교황 파스칼 2세로 부터 1차 예루살렘 십자군에 참여하는 대신 사라고사 공략에 집중하라는 조언을 받은
아라곤의 페로 1세는 아키텐 및 카탈루냐 기사들과 사라쿠스타를 포위했는데, 수비대가 격렬히 저항
하자 후슬리볼 요새를 지은후 회군했고 그후 알 무스타인 2세는 아프리카계 무라비트 왕조와 동맹합니다.
1102년 발렌시아를 정복한 아프리카의 이슬람 무라비트 군대가 북상해 1103년 우르헬 백작 에르멘골
5세를 전사시키고 발라구엘을 수복했으며... 레리다와 토르토사가 무라비트령이 되었는데,
1104년 페로 1세는 다시 사라구스타를 공격했으나 실패하고 우에스카로 철수하던 중에 사망합니다.
페로 1세 사후 이복동생 알리폰소 1세는 1109년 레온-카스티야의 상속녀 우라카와 결혼한후
카스티야에 개입하며 전선은 소강 상태에 빠졌고, 알 무스타인 2세는
사라쿠스타 주민들에게 자신과 아들 압둘 앗 다울라에게 충성을 서약하고 후계자로 선포합니다.
1110년 1월, 이슬람 알 무스타인 2세는 아라곤왕 알리폰소가 나라를 비운 틈에 팜플로나 왕국을 침공해 마을
들을 약탈하고 조공을 받아냈지만.... 회군 도중에 기독교 아라곤-팜플로나 기사들의 반격으로 전사합니다.
알 무스타인 2세의 전사후 즉위한 이마드 앗 다울라는 무라비트령 발렌시아 총독 무함마드
이븐 파티마의 사라쿠스타 점령 시도를 격퇴한후 카스티야에 조공하며
보호를 청했지만 사라쿠스타와 레리다에서 봉기가 벌어지자 천혜의 요새 루에다로 피신합니다.
그리고 1110년 5월 31일, 무라비트조 발렌시아의 새 총독 무함마드 이븐 핫즈가 사라쿠스타
(사라고사) 를 접수했고.... 총독으로 봉해진 그는 후슬리볼 요새를
점령해 사라쿠스타(사라고사) 의 안전을 확보하고 아라곤에 대비하다가 1115년에 사망합니다.
1114년에 부인인 카스티야의 여왕 우라카와 화해한 아라곤 왕국의 알리폰소는
1118년 5월 남프랑스 및 카탈루냐 병력과 함께 사라쿠스타(사라고사) 를
포위했으며 로마 교황청은 참여한 기사들에게 성전이라면서 "사면권" 을 줍니다.
2만 5천 인구의 사라쿠스타는 구원을 청했고 그라나다 총독 압둘라 이븐 마즈달리가 당도했지만
11월 16일에 갑자기 사망하니, 식량과 사기가 떨어진 수비대는 12월 항복 의사를
밝혔고 공성 병기는 풍족했지만 역시 식량난에 시달리던 포위군은 관용적인 조건을 내걸었습니다.
12월 18일에 입성한 아라곤왕 알리폰소는 아라곤식으로 '사라고사' 로 개명한 도시를 새
수도(3차) 로 삼았고, 무슬림 주민들이 세금을 바치는한 종교의 자유 및 신변 안전
을 보장해 주었으며 떠나고자 하는 이들에게는 재산을 처분할 1년의 기한을 주었습니다.
아라곤 왕국의 알리폰소는 사라고사를 기반으로 1119년 투델라 등을 점령했으며, 1120년 6월 세비야
총독 이브라힘 이븐 유수프가 이끄는 무라비트왕조 군대가 사라고사 수복을 위해 북상했으나
테루엘과 사라고사 사이에서 벌이진 쿤툰다 전투에서 알리폰소에게 패배해 이브라힘이 전사합니다.
1121년 10월 이슬람 대사원은 산 살바도르 대성당으로 개조되었고, 1140년부터 로마네스크 양식의
바실리카로 세워졌으며, 알리폰소는 1134년 레리다 방면의 프라가를 공격하다가
전사하니 동생 레미로 2세가 즉위하는 과정에서 팜플로나( 나바라 왕국) 와 동군연합은 해체됩니다.
1137년 아라곤왕국 레미로 2세의 퇴위후 외동딸 페이로넬라와 결혼한 바르셀로나 백작 라몬 베렝게르 4세는
아라곤 군대를 이끌고 1148년 토르토사, 1149년 레리다와 프라가를 점령하며 에브로강 유역을 확보합니다.
그리고 1164년 페이로넬라 사이의 아들 알리폰소 2세가 즉위하며 아라곤 왕국과 바르셀로나
백국의 동군 연합이 이루어졌으니, 알리폰소 2세는 1170년 사라고사 남쪽의
무슬림 반란을 진압하고는 1171년에 테루엘을 점령하며 사라고사의 안전을 확보합니다.
다만 13세기 들어 지중해 교역이 발달하며 점차 아라곤 연합왕국의 경제 중심지는 해안의 바르셀로나로 옮겨
졌고, 1236년에 점령된 발렌시아에도 왕들이 즐겨 머물면서 내륙인 사라고사는 상대적으로 소외됩니다.
그나마 1204년 부터 15세기 까지 아라곤 국왕들이 사라고사의 알하페리아 궁전에서 행진한후 산 살바도르
대성당에서 대관식을 치르는등 정치적 위상은 유지되었지만, 1247년 차이메 1세가
아라곤 왕국내 무슬림 (무데하르) 추방령을 내린후 그나마 남아있던 사라고사 무슬림 공동체는 소멸합니다.
그라고는 알하페리아 궁전을 나와 아침에 왔던 길을 되짚어 버스 정류장 2개 거리를 걸어서
버스 정류소 Conde De Aranda No62(No 41) 한 블록 안쪽에 있는 우리 호스텔
VTZ The Botanic Hostel (78 Calle Basilio Boggiero) 로 돌아와서 이틀째 밤을 보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