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야부도천(冶父道川) 선시(禪詩)
게송(偈頌)이며, 禪佛敎의 선시(禪詩)로 유명한 송나라 야부도천(冶父道川, 야보도천) 선사의 名作이다.
※ "야보도천"으로 읽는 견해도 있지만 관용발음을 존중하여 "야부도천"으로 기록한다.
冶父道川 (야부도천, yě fù dào chuān) 야부(冶父)선사 또는 야보선사로 혼용 하여 쓰고 있기도 한다.
竹影掃階塵不動 (죽영소계진부동) 月輪穿沼水無痕 (월륜천소수무흔) 智慧存於明者心 (지혜존어명자심) 如淸水在於深井 (여청수재어심정) 三日修心千載寶 (삼일수심천재보) 百季貪物一朝塵 (백계탐물일조진)
대나무 그림자가 계단을 쓸어도 먼지는 그대로이고, 달빛이 연못을 뚫어도 물에 흔적이 남지 않구나! 지혜는 밝은 사람 마음에 있는 것, 맑은 물이 깊은 샘에 있는 것과 같은 이치일세. 단 삼일이라도 마음 닦으면 千年의 보배요, 백년을 탐한 재물도 하루아침의 티끌과 같네 그려.
선시(禪詩)는 선수행을 통한 깨달음의 경지를 짤막한 율문으로 나타낸 시를 말한다. 선시(禪詩)는 시(詩)와 선(禪)의 만남이다. 선시는 범불교적 종교시가 아닌 불교 선종(禪宗)의 사상과 철학, 그리고 정신적 경지를 표현한 운문문학이다.
모든 형식이나 격식을 벗어나 궁극의 깨달음을 추구하는 선적(禪的) 사유(思惟)를 담고있는 佛敎 詩 유형의 하나로 선(禪)과 시(詩)가 합일화 되어진 용어로, '선과 시', '선적인 시', '선의 시적 표현', '시의 선적 표현' 등의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선은 사유수(思惟修) · 정려(靜慮)로 풀이 되는데, 이 사유수와 정려는 시의 내면적 소성(素性)과 부합되기 때문에 선과 시는 쉽게 결합될 수 있겠다. 또, 선이 불교의 한 유파이면서도 모든 형식과 격식을 벗어나 궁극의 깨달음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모든 사유(思惟)를 포용할 수 있는데, 이는 철학에 있어서 논리적 사고를 제거하고, 예술에 있어서 형식과 기교를 버리는 것과 같은 맥락을 이루고 있다.
선시의 시작은 게송(偈誦)에서 찾아볼 수 있다. 게송은 인도의 산스크리트어 가타 (gatha, 伽陀)의 음역인 게(偈)와 중국어 풍송(諷誦)의 송(誦)이 합쳐 이루어진 말로 운율형식을 갖춘 경전의 일종으로, 경전에서 불설이 설해지는 양식과 성질을 열두 가지로 분류하여 설명하는 12분교의 하나이다.
○ 야보도천 (冶父道川, 야보도천) 행장
중국 송나라 때 임제종 스님이다. 강소성(江蘇省) 고소(姑蘇) 옥봉(玉峰) 사람으로 속성이 적(狄)씨이다.
야부도천(冶父道川)은 중국 남송(南宋: 1127~1279)대의 사람으로 속성은 적(狄), 이름은 삼(三)이다. 젊어서 군의 집방직(執方職, 군대의 궁수<弓手>)로 있다가 발심하여 출가하였다.
출신은 곤산의 적씨(狄氏)였고 이름이 적삼(狄三)이었다. 여기 삼(三)은 대가족 집안의 세 번째 아들이라는 뜻으로 추측한다.
〈금강경 오가해(金剛經 五家解)〉 중에서도 〈야부송(冶父頌)〉은 가장 뛰어난 것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그의 일생은 모든 인간이 부처가 될 근본성품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잘 보여주고 있다.
재동(齊東)의 도겸(道謙)선사에게서 도천 (道川)이라는 법명를 받았고, 정인계성(淨因繼成)에게서 冶父라는 法號와 법통을 이어받아 임제(臨濟)의 6세손이 된다.
처음 동제겸(東齋謙) 스님 밑에서 공부를 하다가 크게 깨치고 건염(建炎, 1127~ 1130)초에 천봉(天峰)으로 가서 정인사 (淨因寺) 반암(蹣庵) 계성(繼成) 문하에서 인가를 받고 그의 법을 이어 임제종 후손이 되었다.
뒷날 다시 동제 스님한테 돌아가 법을 펼치니 출가한 스님들과 세상 사람들이 그의 법력을 흠모하였다. 『금강경』에 대한 세상 사람들의 질문에 스님이 게송으로 답하니, 이것이 유명한 『천로금강경주(天老金剛經註)』이다. 안휘성(安徽省) 야부산(冶父山) 실제선원 (實際禪院) 주지를 역임하였지만 그 분이 언제 태어나서 언제 입적했는가는 확실하지 않다.
대그림자 뜰을 비질하고 있다 먼지 하나 일지 않는다 달빛이 물밑을 뚫고 들어간다 수면엔 흔적 하나 남지 않는다.
借婆衫子拜婆門 禮數周旋已十分 (차파삼자배파문 예수주선이십분) 竹影掃階塵不動 月穿潭底水無痕 (죽영소계진부동 월천담저수무흔)
7언절구의 형식을 갖추고 있는 이 시는 첫 1, 2구가 선의 심오한 경지를 읊고 있어 상당한 양의 설명을 요한다. 따라서 3, 4구만 한역한 것인데 이것만으로도 시적 영감이 감전되는 듯한 맛을 짜릿하게 느낀다.
극도로 절제되고 차분한 감정에 섬세한 필법이 읽을수록 독자를 압도하고 매료시킨다. 시적 상황을 영상으로 떠올리면 이처럼 아름답고 고요한 풍광은 없을 것이다.
그런 가운데 ‘선적 이미지스트’가 얼마나 예리한가. 서정시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내적 세계와 외적 세계를 상호연관시키는 능력이라고 한다.
무사무욕(無私無慾)의 태도로 세계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시인의 심성을 우리는 원시인이나 어린애의 그것으로 비유하기도 하는데 야부의 이 시는 이미 그마저 뛰어넘은 천부적 선적 관찰을 내보이고 있다.
선사들의 삶과 죽음 문제를 깨치고 난 초월의 경지에서 노래한 이 시에서 우리는 고도의 정제된 정신적 수준과 뛰어난 문학적 감수성을 동시에 맛볼 수 있다. 자연관조의 결과가 선적으로 착색되면 얼마나 아름다운 시가 빚어지는 가를 야부가 이시를 통해 여실히 반증하고 있는 것이다.
야부(보)선사는 우리나라 《금강경오가해》에 야부송으로 많이 알려져 있는바. 이 시는 고요한 세계의 극치를 보 여주고 있다. 차분하고 섬세하고, 동양적인 독특한 이미지가 있다. ‘대 그림자의 비질’은 현실에서 도저히 상상해 낼 수 없는 절대 저편의 세계이다.
원전의 표현을 빌리자면, 움직임이 없고(不動) 흔적이 없는(無痕) 세계이다. 선시(禪詩)는 이처럼 일상 언어의 논리를 넘어 그 상상이 비약적이고 초월적이다.
이것은 선시 자체가 선(禪)의 깨달음을 반영한 시이기 때문이다. 야부 선사는 출가 전부터 법문 듣기를 좋아했다. 법회가 열린다는 소식만 들으면 원근을 불문, 만사 제치고 달려갔다.
그가 벼슬을 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 때문에 직무태만죄로 태형(笞刑)을 맞게 된적이 있었다. 형틀에 묶여서 곤장을 맞으면서도 법문 내용에 골몰하였다.
그 때문에 곤장을 몇차례 때렸는데도 별 반응이 없었다. 그러자 형을 집행하던 관리가 화를 내면서 사정을 두지 말고 치라고 호통을 쳤다. 이 말에 곤장을 때리던 형리(刑吏)가 억울하다는 듯 있는 힘을 다해 곤장을 내리쳤다. 이 순간 곤장이 부러지고 야부는 아픔을 못이겨 ‘아이구!’ 소리와 동시에 천지가 열리며 크게 깨쳤다는 일화가 있다.
[集註金剛般若波羅蜜經(下)] 집주금강반야바라밀경(하)
1417년 공림사에서 간행한 금강경 주석서. 하권. 보물 제1223호. 1권 1책 목판본. 개인 소장.
1417년(태종 17) 공림사(空林寺)에서 간행한 금강경 주석서.
하(下)권. 1권 1책. 목판본. 보물 제1223호. 이 책은 금강반야바라밀경에 대한 53가(家)의 주해(註解) 가운데 왕일휴(王日休), 진웅(陣雄), 부대사(傅大士), 안여여거사(顔如如居士), 야부도천선사(冶父道川禪師), 약눌선사(若訥禪師), 육조대사(六祖大師), 자암승미선사(茨菴僧微禪師), 지자선사(智者禪師) 등의 주석을 모아 편집한 것이다.
금강경 전체 32분과 가운데 제15 지경공덕분(持經功德分)부터 제32분 응화비진분(應化非眞分)까지 수록되어 있다.
선시는 무아(無我)이어야 한다
야보도천(冶父道川) 선시(禪詩)
得樹攀枝未足奇 득수반지미족기 懸崖撒手丈夫兒 현애철수장부아 水寒夜冷魚難覓 수한야냉어난멱 留得空船載月歸 유득공선재월귀
나뭇가지 잡는 것쯤 기이할 것 없으니 벼랑이라도 손 놓아야 대장부일 것이다 물도 차고 밤도 차 고기 오지 않아서 빈 배에 달빛을 가득 싣고 돌아온다
千尺絲綸直下垂 천척사륜직하수 一波纔動萬波隨 일파재동만파수 夜靜水寒魚不食 야정수한어불식 滿船空載月明歸 만선공재월명귀
긴 낚싯줄 드리우고 보고 있자니 한 물결 일렁이자 여러 물결 따라 일어나고 물 차고 고요한 밤 고기들 입질 없어 허공을 배에 싣고 달빛 속에 돌아오네
山堂靜夜坐無言 산당정야좌무언 寂寂寥寥本自然 적적료료본자연 何事西風動林野 하사서풍동림야 一聲寒雁唳長天 일성한안누장천
조용한 밤 산막에 앉아 말문 닫고 보니 고요하고 적막함이 본래 자연이었구나 무슨 일로 서풍은 잠든 숲을 깨우고 기러기 하늘에서 기룩기룩 우는고 ※여기서 서풍은 석가모니 부처님과 법문을 이름.
法相非法相 법상비법상 開拳復成掌 개권부성장 浮雲散碧空 부운산벽공 萬里天一樣 만리천일양
법의 상은 법의 상이 아니고 주먹을 펴면 도로 손바닥이 되도다 하늘에서 뜬구름 흩어지고 나면 만리의 하늘이 모두 한 모양이네
三佛形儀總不眞 삼불형의총부진 眼中瞳子面前人 안중동자면전인 若能信得家中寶 약능신득가중보 啼鳥山花一樣春 제조산화일양춘
삼불의 형상과 거동 모두 진실 아니고 눈 가운데 동자에는 그대 앞의 사람 있네 집안에 있는 보배를 믿을 수만 있다면 새 울고 꽃 피는 게 모두 봄의 모습이리
多年石馬放毫光 다년석마방호광 鐵牛哮吼入長江 철우효후입장강 虛空一喝無踪跡 허공일갈무종적 不覺潛身北斗藏 불각잠신북두장
여러 해 동안 돌말이 빛을 발하고 쇠소가 울면서 장강으로 들었네 허공에 지르는 고함소리 자취 없더니 모르는 새 북두에 몸을 숨겼네
蚌腹隱明珠 방복은명주 石中藏碧玉 석중장벽옥 有麝自然香 유사자연향 何必當風立 하필당풍립
조개 속에 진주가 숨어있고 돌 속에 벽옥이 들어있듯이 사향을 지니면 절로 향기로운데 무엇 하러 바람 앞에 서려 하는가
入海算沙徒費力 입해산사도비력 區區未免走紅塵 구구미면주홍진 爭如運出家珍寶 쟁여운출가진보 枯木生花別是春 고목생화별시춘
바다에서 모래를 세면 헛된 힘을 쓰는 것 그래서는 속세의 구차한 삶 면치 못하네 어떻게 내 집의 보배 꺼내옴만 하겠는가 마른 나무에 꽃이 피는 별난 봄이라 해서
♤ 야보도천(冶父道川) 약력
약칭으로 천선사川禪師라고도 한다. 속성이 적씨狄氏인 그를 사람들이 그를 적삼狄三으로 불렀다. 곤산昆山(지금의 산동성山東省 제성현諸城縣) 사람이다. 출가 전에는 현청에서 범인을 잡는 하급관리 포쾌捕快 일을 맡기도 했다. 적삼은 절에 가서 설법을 듣는 것을 좋아했고 참선을 하면서도 지루해하지 않았다. 한번은 설법을 듣느라고 윗사람이 맡긴 일을 잊어버렸는데 일을 소홀히 했다 하여 채찍으로 내려치는 순간 깨달은 바 있었던 적삼은 사표를 내고 출가를 했다. 평소에 적삼에게 설법을 해주던 동재東齋의 겸수좌謙首座는 적삼의 이름을 도천道川으로 바꾸고 이렇게 말했다.
“그대는 전에 적삼狄三으로 불렸으나 이제 이름을 도천이라 바꿨는데 천川은 곧 삼三이다. ‘삼三’을 바로 세워 ‘천川’이 된 것처럼 그대는 이제부터 해탈의 큰 일을 위 해 바른 길을 가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다시 옛날의 적삼으로 돌아가고 말 것이다.” 도천은 스승의 가르침을 가슴에 새기고 정진하였다. 남송南宋 건염建炎 초년 (1127)에 구족계를 받은 후에는 제방으로 배움을 찾아 돌아다녔다. 천봉만암天封蹣庵 선사를 참례한 후, 가일층 정진하는 것에 대해 묻자 만암선사가 그를 찬탄하였다. 도천이 행각 후에 동재東齋로 돌아오자 승과 속 두 무리의 대중들이 한마음으로 그를 맞고 공경하였다. 사람들은 도천선사에게 《금강반야경金剛般若經》 강의를 요청했고, 도천은 게송을 지어 그들에게 강의하였는데, 이 게송은 지금도 세상사람들에게 읽히고 있다. 남송南宋 융흥隆興 원년(1163), 수찬修撰 정공교鄭公喬가 야보冶父 (지금의 안휘성安徽省 여강현廬江縣 동북쪽) 에 절을 짓고 도천선사를 초청하여 법을 열었다. 당에 오르던 날, 도천선사가 대중들에게 남긴 두 개의 게송이 전한다.
群陰剝盡一陽生 군음박진일양생 草木園林盡發萌 초목원림진발맹 唯有衲僧無底鉢 유유납승무저발 依前盛飯又盛羹 의전성반우성갱
음의 기운 다하고 양의 기운 생기니 숲에 있는 풀과 나무 모두 다 싹이 돋네 납승이 가진 것은 바닥없는 발우 하나 그래도 전과 같이 밥 먹고 국 마시네
東邊覷了復西觀 동변처료부서관 挂杖重重活歲寒 괘장중중활세한 帶雨一枝花落盡 대우일지화락진 不煩公子倚欄干 불번공자의난간
동쪽을 보고 나서 또 서쪽을 보네 지팡이는 힘이 들고 날은 몹시 차네 비 맞은 나뭇가지 꽃들은 지고 번뇌 없는 공자는 난간에 기대있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