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정비결과 목성 가진 사람
토정비결(土亭秘訣)은 조선 중기의 학자인 이지함(李之菡)이 지은 것이라고 전해 온다. 그의 호 토정(土亭)은 생의 대부분을 마포 강변의 흙담으로 된 움막집에서 살았기 때문에 붙여진 것이다. 낡은 옷에다 무쇠솥을 갓처럼 쓰고 다닌 기인으로 전해 온다.
이지함은 사대부가의 자손이다. 아버지는 현령 이치(李穉)이고, 어머니는 광산 김씨인데 판관을 지낸 김맹권(金孟權)의 딸이다. 김맹권은 수양대군이 집권하여 단종을 죽이자 낙향하여 은거한 인물이다.
14세에 아버지를 여의고 맏형인 이지번(李之蕃)에게서 글을 배웠고, 16세에 어머니를 여의었다. 이후 형 지번을 따라 서울로 거처를 옮겼으며 형의 보살핌을 받았다. 후에 서경덕(徐敬德)의 문하에서 공부하였는데, 그의 영향을 받아 점술, 의학, 천문, 지리에 달통하게 되었다.
1573년 주민의 추천으로 천거되어 포천 현감이 되어, 임진강의 범람을 막아 많은 인명을 구제하였다. 이듬해에 사직하고 귀향했으나, 1578년 다시 아산 현감으로 등용되었다. 이때 걸인청(乞人廳)을 만들어 관내 걸인과 노약자 및 굶주린 자의 구호에 힘썼다.
특히 포천 현감을 사직하는 상소문 등에는 그의 민생에 대한 견해가 잘 나타나 있는데, 농업과 상업의 상호 보충, 자원개발과 해외 통상을 강조하였다.
토정이 의학과 점술에 능하다는 말을 듣고,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일 년의 신수를 봐 달라 하므로, 이에 응하여 펴낸 책이 토정비결이라는 이야기가 전해 온다. 그러나 이런 이야기는 믿기 어렵다. 왜냐하면,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토정은 허황된 사람이 아니라, 현실주의자요 실천주의자이기 때문이다. 사대부가의 출신이지만 그들이 꺼리는 장사를 직접 하기도 하고, 상공업을 강조한 실학자였다. 이런 사람이 허탄에 찬 점술서를 지을 까닭이 없다. 뒷날 후학들이 만든 그의 문집인 토정집(土亭集)에도 토정비결에 대한 이야기는 전혀 없다.
그러므로 토정비결(土亭祕訣)은 이지함이 의학과 복서에 밝다는 소문에 가탁하여, 누군가가 토정의 이름을 빌려 지은 것이라 봄이 타당하다.
그런데 토정비결에는 “북쪽에서 목성을 가진 귀인이 와서 도와주리라” 같은 희망적인 구절이 많은데, 이는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자 한 배려로 보인다. 그럼 여기서 토성이니 목성이니 하는 성씨는 어떤 것인가를 알아보자.
목(木)자가 붙은 성은 전부 목성(木姓)일 것 같지만 그렇지도 않고, 김(金)씨는 금성(金姓)일 것 같지만, 이 또한 그렇지 않다. 목자가 붙은 이(李) 씨는 화성(火姓)이고, 권(權) 씨는 토성(土姓)이다. 또 김(金) 씨는 목성(木姓)이다.
토정비결에 따른 성씨를 오행으로 분류하면 다음과 같다.
① 목성(木姓)
간簡 강康 고高 고固 공孔 김金 동董 박朴 연延 염廉
우虞 유兪 유劉 육陸 정鼎 조趙 조曺 주朱 주周 차車
추秋 최崔 홍洪 화火
② 화성(火姓)
강姜 구具 길吉 나羅 단段 당唐 등鄧 변邊 석石 선宣
설薛 신辛 신愼 옥玉 윤尹 이李 전全 정丁 정鄭 주奏
지池 진陳 채蔡 탁卓 함咸
③ 토성(土姓)
감甘 공貢 구丘 구仇 권權 도都 도陶 동童 명明 목睦
민閔 봉奉 손孫 송宋 심沈 엄嚴 우牛 임林 임任 재再
전田 피皮 현玄
④ 금성(金姓)
경慶 곽郭 남南 노盧 두杜 류柳 문文 반班 방方 배裵
백白 서徐 성成 소邵 신申 안安 양梁 양楊 왕王 원元
음陰 장張 장蔣 진晋 편片 하河 한韓 황黃
⑤ 수성(水性)
경庚 고皐 기寄 남궁南宮 노魯 동방東方 마馬 매梅 맹孟
모毛 모牟 변卞 복卜 상尙 선우鮮于 소蘇 어魚 여呂 여余
오吳 용龍 우禹 천千 허許 황보皇甫