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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마경훈목사의 설교 카페 원문보기 글쓴이: 마경훈목사
다윗이 역경을 이겨냈던 비결/ 시편 3:1-8
(설교자: 마경훈목사, 비전교회)
https://www.youtube.com/watch?v=htabkzlEpfU&t=2s
역경지수(Adversity Quotient)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 용어는 미국의 폴 스톨츠(Paul Stoltz) 박사가 처음 사용했습니다. 역경지수란 수많은 역경에도 굴복하지 않고, 냉철한 현실 인식과 합리적인 판단을 바탕으로 끝까지 도전하여 목표를 성취하는 능력을 말합니다. 폴 스톨츠 박사는 [장애물을 기회로 전환시켜라]는 책에서 사람들이 역경에 대처하는 스타일을 등반에 비유하여 3가지 타입으로 분류합니다. ①힘든 문제나 역경이 다가오면 도망가거나 포기하는 사람들을 도망자 혹은 겁쟁이 라고 말합니다. ②역경 앞에서 뚜렷한 대안을 마련하지 못하고 현상유지 정도로 적당히 안주하는 사람이 60~70% 정도인데, 이 사람들을 야영자라고 합니다. ③시련이 다가올 때 자신의 모든 능력과 지혜를 동원하여 기어코 정복하고 마는 사람들을 클라이머 등반가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이 역경지수가 높을까요? 일반적으로는 의지가 강한 사람입니다. 재미교포 가운데 벨 연구소 소장인 김종훈 사장이 있습니다. 수년 전 경제전문지 「포브스」가 선정한 미국 최고 갑부 400명에 포함된 분입니다. 그는 명문대를 나와 대학 교수가 되고 벤처사업가로 명성을 떨쳤습니다.
그런데 그의 인생에 많은 역경이 있었습니다. 10대의 청소년 시절에는 집안 형편이 너무 어려워 편의점에서 밤11시 부터 아침7시까지 일하고 등교했습니다. 방과 후에는 2시간 자고 공부하다 또 편의점에 출근하는 식의 생활을 했습니다. 그가 강연하면서 이런 말로 도전했습니다. “여러분, 저를 보십시오. 저 같은 사람도 해냈습니다. 여러분도 할 수 있습니다. 의지가 미래를 만듭니다.”
그러나 인간의 의지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아무리 강철 같은 의지를 가진 사람도 결국은 넘어지고 쓰러집니다. 그러므로 역경지수를 더욱 높이려면 은혜로우시고전능하신 하나님께 연결되어야 합니다. 즉 하나님의 의지하는 신앙의 힘이 있어야 합니다.
시편 3편은 당당하게 역경을 헤쳐 나갔던 다윗이 기록한 시입니다. 그가 이 시편을 쓸 때는 그의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였습니다. 표제어를 보면 [다윗이 그의 아들 압살롬을 피할 때에 지은 시]라고 되어 있습니다. 세상에는 마음 아픈 일이 많지만 아들이 아버지를 죽이려고 하는 이런 상황만큼 고통스럽지는 않을 것입니다. 다윗은 아들의 칼을 피해 신발조차 신지 못하고 도망쳤습니다. 그를 반대하던 자들이 도망치는 다윗을 쫓아오면서 조롱하고 비방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다윗은 유대광야에 숨어서 이 시를 쓴 것입니다.
다윗에게는 대적들이 너무 많았습니다. 1절에 보면 다윗은 자기의 대적이 많다고 두 번이나 말했습니다. 2절에 보니 다윗은 많은 사람이 자기를 대적한다고 말했습니다. 6절에 보면 다윗은 대적의 수를 천만인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실제로 천만 명이라는 말이 아니라 그렇게 많다는 것을 과장법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그런데 다윗은 그런 악조건 속에서도 담대했습니다. 오직 하나님을 의지하여 역경을 극복했습니다. 다윗이 역경을 극복한 비결은 신실하게 하나님을 의지하는 신앙의 힘이었습니다. 저는 5절이 놀랍습니다. “내가 누워 자고 깨었으니 여호와께서 나를 붙드심이로다” 다윗은 그런 상황에서도 잠을 잘 수 있었습니다. 그 비결은 여호와께서 자기를 붙드시고 계시다고 확신 때문이었습니다. 6절입니다. “천만인이 나를 에워싸 진 친다 하여도 나는 두려워하지 아니하리이다” 적들이 사방으로 에워싸도 다윗은 두렵지 않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여호와께서 자기를 붙드신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다윗의 이런 자신감은 어디서 온 것일까요? 다윗이 이렇게 문제 앞에서 담대하고 엄청난 역경을 이겨낼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요?
1. 하나님이 나의 보호자이시기 때문입니다.
3절입니다. “여호와여 주는 나의 방패시요 나의 영광이시요 나의 머리를 드시는 자이시니이다” 여기서 다윗은 하나님을 세 가지로 고백했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에게 방패요 영광이요 머리를 드시는 자였습니다. 이 대지에서는 다윗의 고백 중에서 ‘여호와여 주는 나의 방패시오’에 초점을 맞추겠습니다.
고대사회에서는 칼과 활과 창으로 전쟁을 했는데 칼과 활과 창을 막아주는 것이 방패였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자신의 방패로 믿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지켜주신다는 말입니다. 주님이 방패가 되시면 적의 어떤 공격으로도 뚫을 수 없습니다. 주님이 막아주시면 누구도 나를 찌를 수 없고, 누구도 나를 칠 수 없습니다. 그 당시에 다윗의 측근 중에 반역자들이 많았지만 여전히 다윗을 따르며 다윗을 위하여 목숨을 걸 수 있는 심복들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런 사람들을 방패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다윗은 오직 하나님만이 자신의 방패라고 믿었습니다.
저는 거의 매일 새벽마다 하나님을 목자로 고백합니다. 목자는 양의 인도자요 공급자요 보호자입니다. 그래서 저는 하나님은 나의 인도자요 공급자요 보호자라고 고백합니다. 하나님이 나의 보호자라는 말은 하나님이 나의 방패라는 말입니다. 다윗의 고백과 같은 고백입니다.
몇 년 전에 성경 유적지 중에 그리스도에 있는 고린도를 다녀온 일이 있었습니다. 그때 제가 고린도에서 인상 깊게 보았던 몇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코린토스운하입니다. 코린토스 만과 에게해의 사로니코스 만을 연결한 운하입니다. 6.3km의 길이이지만 운하를 이용할 경우 펠로폰네소스반도를 돌아가는 것 보다 700km 정도 운항거리가 줄어듭니다. 하지만, 운하의 폭이 24m, 깊이가 8m로 규모가 작기 때문에 운하를 이용하는 선박은 대부분 관광용 여객선입니다. 다리 위에서 바라본 코린토스운하는 장관이었습니다.
또 하나는 고린도 교회 입구에 붙어 있는 역대 목회자들의 이름입니다. 1대부터 88대까지 목회자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1대 목회자가 누구일까요? 사도 바울입니다. 2대는 아볼로고, 3대는 실라입니다. 이 명단만 봐도 역사가 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 하나는 고린도 박물관에서 본 방패였습니다. 당시 전쟁터에 나갈 때 군인들은 투구를 썼습니다. 당시의 투구는 오늘날의 군인들이 쓰는 방탄모와는 다릅니다. 앞을 볼 수 있는 눈과 입을 제외하고는 얼굴을 모두 덮었습니다. 그 이유는 오직 앞만 보고 전진하기 위해서였다고 합니다. 방패는 손에 들고 가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방패를 몸에서 떨어지지 않도록 팔뚝에 묶어서 단단히 고정시켰습니다. 군인들은 방패가 자신의 생명을 지키는 방어막이기에 절대로 몸에서 떨어뜨리지 않았답니다. 잠을 잘 때도 방패를 붙들고 잤답니다. 그리고 전쟁터에서 죽게 되면 자신의 분신처럼 함께하던 방패 위에 그 시신을 올려놓고 조국으로 돌려보냈답니다. 이처럼 방패는 생과 사를 함께하는 무기였습니다. 하지만 군인이 방패를 들었다고 그 방패가 군인을 완전하게 보호해주지 못합니다. 완전한 방패는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다윗은 수많은 전쟁을 경험한 장군이었습니다. 그는 전쟁 중에 하나님이 자기를 보호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확신했습니다. 하나님의 보호는 완전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향하여 “하나님! 당신은 나의 방패이십니다. 하나님! 당신은 나의 보호자이십니다.”라고 고백한 것입니다. 다윗은 이 확신으로 인하여 천만인이 자기를 둘러싸도 편안히 잠을 잘 수 있었습니다.
이스라엘과 아랍제국들 사이에 6일 전쟁이 일어났을 때, 이스라엘을 승리로 이끌었던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1967년 6월 5일이었습니다. 그때 이스라엘과 아랍의 연합국 사이에 시나이반도를 놓고서 전쟁이 있었습니다. 지리적으로 보면 이스라엘은 주변에 아랍제국들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또 인구수를 보더라도 비교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 당시 이스라엘의 인구수는 불과 250만 명 정도였고 이스라엘을 둘러싸고 있는 아랍 국가들의 인구수는 1억이 훨씬 넘었습니다. 그래서 세계의 여론은 그 싸움에서 당연히 이스라엘이 패할 것이라고 예견했습니다. 그런데 전쟁이 임박했을 때 그 당시 이스라엘의 국방장관이었던 애꾸눈 모세 다얀 장군은 방송을 통해 전 세계를 향해서 짤막한 성명서를 발표했습니다. “우리는 2,534년 만에 되찾은 우리 조국 이스라엘을 지키기 위해서 부득이 이 전쟁에 참여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만일 전쟁이 일어나면 우리는 최단기간 내에 반드시 이 전쟁을 승리로 이끌 것입니다. 그 이유는 우리 군 전 장병은 이미 최신식 무기로 무장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서방의 첩보원들은 이스라엘이 핵무기보다도 훨씬 더 위력이 있는 새로운 무기를 개발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드디어 전쟁이 벌어졌습니다. 모세 다얀 장군은 이스라엘 장병들을 일선에 투입하고 난 뒤에 자신은 방송국 의자에 앉았습니다. 그리고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기회가 있을 때마다 천천히 또박또박 봉독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말씀은 시편 3편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또박또박 읽어나가는 확신에 찬 그의 음성은 전파를 통해서 이스라엘의 전 장병들에게까지 전달되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과 함께 하시면서 그들의 방패가 되어 주시고, 그들을 보호해 주시고, 그들에게 승리를 안겨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듣는 이스라엘 병사들의 마음이 담대해졌습니다.
놀랍게도 이스라엘은 6일 만에 전쟁에 승리했습니다. 서방 첩보원들은 과연 모세 다얀 장군이 말했던 최신의 무기가 무엇인지를 찾아보았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살펴보아도 새로운 무기가 전쟁에서 사용되었다는 흔적을 발견할 수가 없었습니다. 전쟁에서 승리한 후에 이스라엘의 모세 다얀 장관은 언론에 이렇게 발표했습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었던 그 비장의 무기는 시편 121편이었습니다.” 시 121:1-2을 보겠습니다.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2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하나님은 졸지도 않으시고 주무시지도 않으시며 우리의 출입을 지키십니다. 이스라엘의 비밀 병기는 하나님이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방패이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지켜주실 때, 기가 막힌 타이밍으로 역사하십니다. 홍해가 갈라질 때도 보면 타이밍도 중요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과 애굽 군대의 거리가 적당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먼저 바다를 건넜고, 이스라엘이 건넌 후에 애굽 군대가 추격하다가 바다에 빠져죽었습니다. 만약에 애굽군대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바짝 추격했다면 홍해 바다가 갈라졌어도 이스라엘은 애굽 군대의 밥이 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보호하심에는 적절한 타이밍이 있습니다.
명성교회 김삼환 목사님께서 1969년에 시골에서 전도사로 목회하실 때였습니다. 잠을 자다가 한 밤중에 깼습니다. 눈을 뜨고 보니 보름달이 환하게 비추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웬 사람이 창문에 서서 잠긴 문고리를 열려고 문풍지를 뚫고 안으로 손을 스윽 집어넣더랍니다. 도둑이었습니다. 전도사님이 무서워서 도둑에게 맞설 수 없더랍니다. 그래서 위험하니까 사모님을 깨웠습니다. 어려움을 당할 때는 여자들이 담대합니다. 전도사님이 너무 무서워서 사모님에게 일어나라고 소리도 못 지르고 계속 사모님을 꼬집으니까 사모님이 “자는데 왜 이러냐?”고 하더랍니다. 그래서 목사님이 “저거 보라니까. 큰 일 났다니까.”하고 또 꼬집었더니 사모님이 잠에서 깨어나서 소리를 지르더랍니다. “왜, 자는데 이러세요?” 그 소리를 듣고 도둑이 손을 쑥 빼더니 도망을 치더랍니다. 그 때 전도사님이 문을 열고 “야! 이 새끼야.” 소리를 쳤답니다. 도둑이 도망치니 그때야 힘이 나더랍니다. 그리고 사모님에게 자기가 남자라는 걸 보여줘야 하니 문을 열고 한 100m 따라가다가 돌아왔답니다. 김삼환목사님이 그 때 사건을 재밌게 표현하셨는데요. 그때 김목사님이 놀랐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지켜주시는구나! 아~, 그 순간 어떻게 잠에서 깨어났나 생각하니 너무나 놀랍더랍니다. 하나님이 정확한 타이밍에 깨주신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이 방패가 되어주신 것입니다.
우리 교회는 세 번이나 불이 났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세 번 다 하나님이 기가 막힌 타이밍으로 역사하셔서 우리를 지켜주셨습니다. 한 번은 제가 평상시보다 거의 30분 일찍 교회에 가서 불을 잡았습니다. 전기 합선으로 전선에 불이 붙어서 올라가고 복도에 연기가 자욱할 때 제가 예배당에 도착을 해서 불을 잡았습니다. 또 한 번은 저와 아내가 새벽 3시부터 기도를 하고 새벽 5시에 새벽기도회를 마친 후에 그날은 다른 날보다 일찍 목양실로 올라갔습니다. 그런데 목양실 밑 소망홀 창고에서 불이 났습니다. 제 아내가 냄새에 예민해서 불 냄새를 맡았습니다. 제가 아래층으로 내려가 보니 창고에서 불이 가득했습니다. 순간적으로 소화기 생각이 나서 소화기로 불을 잡았습니다. 타이밍입니다. 또 한 번은 강단 온풍기 뒤에서 불이 났는데 그곳에 있던 김기승 장로님이 불을 껐습니다. 세 번다 하나님께서 적당한 타이밍에 역사해주셨습니다.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많은 두려운 상황을 만나게 됩니다. 미국의 시사주간지 TIME이 설문 조사한 내용을 보면 현대인이 두려워하는 것이 무려 278가지라고 합니다. 그 중에 우리에게는 몇 가지가 해당 되는지는 모르겠으나 우리도 분명히 두려운 상황을 만나게 됩니다. 그럴 때 우리는 다윗처럼 하나님을 신뢰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방패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보호자이십니다. 이 확신을 갖고 담대해야 합니다. 딤후 1:7에 보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닙니다. 요일 4:18에 보면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습니다. 이런 말씀에 근거해서 보면 두려움이 찾아올 때 하나님이 나의 방패요 하나님이 나의 보호자라는 믿음을 갖는 것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믿음대로 역사하시기 때문입니다.
2. 하나님이 나의 기도에 응답해주시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천만인이 자기를 에워싸는데도 두려워하지 않고 모든 역경을 이겨냈습니다. 그 비결은 하나님이 자기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해주신다는 확신 때문이었습니다. 4절을 보겠습니다. “내가 나의 목소리로 여호와께 부르짖으니 그의 성산에서 응답하시는도다” 하나님은 우리가 위기 가운데 드리는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십니다. 다윗은 아들 압살롬의 군대에게 쫓겨서 한 밤중에 왕궁을 빠져나왔습니다. 얼마나 상황이 다급했던지 후궁들은 궁에 둔 채 신발도 신지 못하고 나왔습니다. 그런 중에도 “다윗은 하나님은 나의 기도를 들으신다.”는 확신으로 담대했습니다.
다윗의 군대는 압살롬의 군대에 비하여 열세였습니다. 모든 힘의 축이 압살롬에게로 쏠렸고 다윗에게는 불리하게 돌아갔습니다. 다윗에게는 아히도벨이라는 전략가가 있습니다. 그때까지는 그가 모든 일을 주도했습니다. 그는 다윗의 참모요. 친구였습니다. 그런데 그가 압살롬 편이 되었습니다. 이 때 다윗은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삼하 15:31입니다. “어떤 사람이 다윗에게 알리되 압살롬과 함께 모반한 자들 가운데 아히도벨이 있나이다 하니 다윗이 이르되 여호와여 원하옵건대 아히도벨의 모략을 어리석게 하옵소서 하니라”
하나님은 다윗에게 지혜를 주셨습니다. 다윗은 후새라는 충성된 신하를 압살롬에게 위장 투항하게 하였습니다. 아히도벨은 압살롬에게 시간을 지체하지 말고 다윗을 추격하면 죽일 수 있으니 군사 1만2천 명을 달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됐으면 다윗은 끝난 것입니다. 그런데 후새가 아히도벨의 지혜로운 전략을 막아냈습니다. 후새는 압살롬에게 다윗은 전쟁에 능한 사람이라 그 정도의 숫자로 공격을 했다가 혹이라도 적은 피해라도 있으면 압살롬의 군대가 패하고 다윗의 군대가 승리한다는 소문이 돌게 되고 병사들이 요동하여 전세가 다윗에게로 기울 수 있으니 좋은 방법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는 전국에서 군사를 모집하여 대군을 이끌고 다윗을 추격해야 이길 수 있다고 했습니다. 후새가 그렇게 말한 것은 다윗으로 하여금 멀리 도망을 치게 하고 또 다윗이 압살롬의 군대에 반격할 수 있는 시간을 끌기 위함이었습니다. 객관적으로 볼 때 아히도벨의 전략이 후새의 전략보다 탁월했습니다. 그런데 압살롬은 더 좋은 아히도벨의 전략을 버리고 그보다 못한 후새의 전략을 택했습니다. “아히도벨의 모략을 어리석게 해주시옵소서”라는 다윗의 기도가 응답된 것입니다. 그 결과 압살롬은 다윗에게 패했고, 요압의 창에 심장이 찔려 죽었습니다. 하나님은 위기 가운데서 기도한 다윗의 기도에 응답해주신 것입니다.
삼상 17:47입니다.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에게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넘기시리라” 다윗이 젊을 때 골리앗에게 한 말입니다. 다윗은 전쟁은 숫자나 전략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속해있다고 믿었습니다. 이제 다윗은 늙었습니다만 그는 아직도 젊을 때의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기도응답은 과학적이지 않습니다. 논리적이지 않습니다. 또 상식적이지도 않습니다. 기도응답은 과학도 초월하고, 논리도 뛰어넘고, 상식도 넘어섭니다. 하나님이 하시기 때문입니다. 성도의 기도는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에 반드시 응답하십니다.
우리가 흔히 찬송은 곡조 있는 기도라고 말하는데, 찬양을 통해서 응답 받은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재즈의 화음은 하나님의 위로다”, “재즈의 악센트는 하나님의 은총이다”라며 자신의 앨범을 하나님께 바친 재즈 피아니스트인 곽윤찬 성도입니다. 그는 아내가 임신했을 때 ‘주의 영광 이곳에 가득해’ 라는 찬양을 수도 없이 들려주었습니다. 이 곡을 많이 들려준 이유가 있었습니다. 임신 5개월 정도 되었을 때, 담당 의사는 태아의 뇌실이 커서 정상아로 태어날 확률이 적다고 말했습니다. 엄청난 충격이었습니다. 몇 년을 기다려 어렵게 생긴 아이라 계속 안 좋은 생각만 들었습니다. 의사는 한 달 후에 정밀검사를 하자고 했지만 안색이 안 좋아 보였습니다.
이 말을 들은 며칠 후 그는 미국 보스턴의 공연 때문에 비행기를 탔는데, 아무리 참으려 해도 눈물이 계속 흘렀습니다. 그는 ‘주의 영광 이곳에 가득해’라는 가사를 멀리 떨어진 태중의 아기를 향해 ‘주의 영광 그곳에 가득해’로 가사를 바꾸어 부르고 또 불렀습니다. 뉴욕에 도착해 보스턴까지 이동하는 내내 그는 그 곡을 한 300번도 더 부른 것 같았습니다. 공연을 끝내고 한국에 돌아와서도 그 노래를 계속 불렀습니다. 드디어 한 달이 지나고 병원을 찾았습니다. 그의 아내는 긴 시간 동안 정밀검사를 받고 한 없이 울면서 검사실을 나왔습니다. “정상으로 돌아왔데...” 아내의 눈물은 너무 감격스러워서 흘린 눈물이었습니다. 그는 북받쳐 오는 감사를 다시 노래로 표현했습니다. 그는 다시 그 곡을 불렀습니다. 그리고 그는 “놀라운 일을 행하신 하나님의 위대하심은 나의 영원한 찬양 제목이다”라고 고백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여러분! 문제가 우리를 사방으로 에워싼다 할지라도 두려워하지 마시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문제에서, 질병에서, 실패에서, 가난에서, 고난에서, 절망에서 우리를 건져주시는 분입니다. 중요한 것은 기도응답을 믿는 것만 아니라 기도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제가 목회를 하면서 수많은 기도에 관한 설교를 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기도하는 분들은 많지 않습니다. 기도에 관하여 아는 것만으로는 안 됩니다. 시간을 정하십시오. 그리고 기도의 자리에 나아오십시오. 그리고 간절하게 믿음으로 기도하십시오. 기억하세요.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의 기도하는 모습을 보고 계시고 반드시 응답하신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다윗이 천만인이 자기를 에워싸도 두려워하지 않았던 이유는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신다는 믿음으로 기도했기 때문입니다.
3. 하나님이 나의 구원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셨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죽으시고 부활하셨습니다. 그리고 성령님은 우리에게 십자가 복음을 믿게 하셔서 우리를 구원해주셨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구원은 영혼의 구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문제와 우리의 고통에서도 구원해주시는 분입니다.
7,8절을 보겠습니다. “여호와여 일어나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나를 구원하소서 주께서 나의 모든 원수의 뺨을 치시며 악인의 이를 꺾으셨나이다 8 구원은 여호와께 있사오니 주의 복을 주의 백성에게 내리소서” 다윗은 하나님께 자기를 구원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구원은 여호와께 있다고 고백했습니다. 여기서 구원은 역경에서의 구원입니다. 이 믿음이 다윗에게 있었기 때문에 다윗은 천만인이 자기를 에워싸도 두려워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은 말씀에 근거합니다. 말씀에 근거가 없는 확신은 믿음이 아니라 신념입니다. 신앙은 말씀에 근거하지만 체험은 그 믿음을 더 단단하게 만들어줍니다. 이번에 제 둘째 아들 하은이에게 들었어요. 하은이는 하나님께서 자기를 인도하신다는 믿음이 있습니다. 그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한 믿음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성령으로 하나님의 자녀를 인도하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롬 8:14). 하은이는 말씀에 근거한 믿음이 두 가지 체험을 통해서 더 확실해졌습니다. 먼저는 하은이가 장신대에 들어갈 때 꿈을 꾸었습니다. 꿈속에서 하나님께서 ‘장신대 합격’이라는 도장을 찍어주시더랍니다. 그래서 자기가 장신대에 합격할 것을 알았다고 하더군요. 또 프랑스 유학을 위해서 비자를 받아야 하는데, 순서가 먼저 학생 인터뷰를 하고 그 다음에 대사관 인터뷰가 순서입니다. 그런데 학교 측에서 서류를 늦게 해줬기 때문에 대사관인터뷰가 먼저 잡혔습니다. 인터뷰 순서가 바뀌면 프랑스 대사관에서 비자를 내주지 않기 때문에 프랑스에 공부하러 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대사관 인터뷰 이틀 전에 학생 인터뷰를 하는 곳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어떤 사람이 인터뷰 신청을 했는데 취소가 되었답니다. 그래서 그 사람 시간에 인터뷰를 할 수 있느냐는 전화였습니다. 그래서 먼저 학생 인터뷰를 하고 그 다음에 대사관인터뷰를 해서 비자를 정상적으로 받게 되었습니다. 하은이에게 전화를 한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는 말하지 말라”고 하더랍니다. 이제 시간이 많이 흘렀으니 제가 말해도 될 것 같아서 말씀드립니다. 이 두 가지 체험으로 하은는 하나님이 자신을 인도하신다는 믿음을 더욱 확실하게 갖게 된 것입니다.
다윗은 일생을 살아가면서 하나님이 곤란한 처지에 있는 자신을 구원해주신 경험을 많이 했습니다. 다윗이 골리앗과 싸울 때, 하나님은 다윗을 골리앗에게서 구원해주셨습니다. 사울 왕이 다윗을 죽이려 할 때마다 다윗을 위경에서 건져주셨습니다. 또 수많은 전쟁터에서 적들과 전쟁을 할 때도 하나님이 그들의 손에서 다윗을 구원해주셨습니다. 그런 경험으로 인하여 다윗은 이번에도 하나님께서 자신을 구원해 주실 것을 믿었고 믿음대로 되었습니다.
제가 초등학교 1학년 여름 방학 때 시골에 갔었을 때 동네 형들과 방죽에서 놀았습니다. 저는 수영을 못해서 비료포대에 바람을 넣어 붙잡고 물에 뛰어들었는데 비료포대를 놓치는 바람에 물에 빠져서 죽을 뻔했습니다. 다행히 형들이 저를 꺼내줘서 살았습니다. 간혹 뉴스에서 물에 빠진 사람을 구원하려고 뛰어들었다가 죽은 사람들에 관한 기사가 봅니다. 그분들은 물에 빠진 사람을 구원하려고 했지만 힘이 부족해서 사람을 건지지 못하고 자기도 죽은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하나님은 크고 강력한 손을 가지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얼마든지 우리를 구원하실 수 있는 손을 가지셨습니다.
[기독교 구라회]라는 단체가 있습니다. 구라는 나병환자를 구한다는 의미입니다. 구라회는 한국, 일본, 방글네시아 등에 있는 나병환자들을 돕는 단체입니다. 이 단체를 평생 이끌어 오신 분은 신정하장로님입니다. 이분이 이런 헌신을 하게 된 것은 하나님께서 6.25 전쟁에서 자신을 북괴군으로부터 구원해주신 것이 감사해서입니다. 6,25때 인민군이 서울을 장악했습니다. 피난을 못 떠난 19세 청년 신정하는 인민군에게 붙잡혔습니다. 당시 그는 대학생이었습니다. 그들은 신정하를 의용군으로 입대시키기 위하여 북으로 끌고 가는데 밤낮으로 걸어야 했습니다. 유엔군의 비행기가 끊임없이 포탄을 투하하는데 곧 죽을 것 같았습니다. 그는 두려웠습니다. 도망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감시가 워낙 삼엄하여 엄두를 낼 수 없었습니다. 그는 걸으면서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 저를 살려주세요. 여기서 살려주신다면 저는 평생 하나님만 섬기겠습니다. 하나님의 일이라면 무엇이든지 하겠습니다.” 일행이 임진강을 건너 ‘문산’의 ‘장단’이란 곳에 왔을 때, 초등학교를 빌려 낮잠을 잔 뒤 출발하기로 하였습니다. 낮잠을 자는데 꿈속에서 흰옷을 입은 낯선 분이 말하더랍니다. “지금 빨리 일어나 도망치라.” 그분의 힘찬 음성에 잠에서 깨어났습니다. 모두 자고 있었습니다. 용기를 냈습니다. 화장실에 가는 척 하며 건물 밖으로 나왔습니다. 울타리를 넘어 반대쪽으로 내달렸습니다. 하나님이 그의 기도를 들어주시고 구원해주신 것입니다. 그는 이렇게 하여 전쟁터에서 살아났습니다. 그는 외교관이 꿈이었으나 포기하고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하여 선명회 간사로 들어갔다가 나병환자들에게 관심을 갖게 되었고, 소외와 천대받는 그들을 위하여 살기고 결심하였습니다. 그는 좋은 직장으로부터 초빙을 받았지만 거절하고 하나님과의 약속을 평생 지키며 살았습니다.
영국의 역사가 아놀드 토인비는 현대 문명을 ‘시련에 선 문명’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시련에 선 것은 문명뿐만 아닙니다. 개인의 인생도, 우리의 가정도 그리고 교회와 국가도 시련에 서 있습니다. 우리는 다윗처럼 시련을 극복해야 합니다. 역경을 이겨내야 합니다. 우리는 어떤 시련, 어떤 역경 앞에서도 다윗처럼 담대해야 합니다. 천만인이 나를 둘러 에워싸도 두려워하지 않고 평안히 잠을 잘 수 있어야 합니다.
다윗이 역경을 이겨냈던 비결을 시편 3편을 통해서 세 가지로 정리했습니다.
1. 하나님이 나의 보호자이시기 때문입니다.
2. 하나님이 나의 기도에 응답해주시기 때문입니다.
3. 하나님이 나의 구원이시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