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초
해마다 여름 끝자락이 되면 산은 사람들을 기다린다. 무더위가 한풀 꺾이고 들녘의 벼가 고개를 숙이기 시작할 무렵이면 사람들은 예초기를 메고 산길을 오른다. 누군가는 그것을 벌초라고 부르고, 또 누군가는 조상을 찾아가는 길이라 말한다. 이름은 다르지만 그 길 끝에는 언제나 한 사람을 향한 그리움이 놓여 있다.
푸른 잔디를 이불처럼 덮은 봉분은 멀리서 보면 평화로운 언덕 같다. 그러나 가까이 다가서면 한 사람의 생애가 잠들어 있는 자리다. 한 세상을 살아낸 시간이 흙 속에 눕고, 그 위를 계절이 수없이 지나간다. 봄에는 연둣빛 풀이 돋고, 여름에는 짙은 초록이 봉분을 감싸며, 가을에는 바람이 먼저 찾아와 인사를 건넨다.
벌초는 풀을 베는 일이 아니다. 시간을 다듬는 일이다.
예초기의 날이 길게 자란 풀을 스쳐 지나갈 때마다 묵은 시간이 조금씩 모습을 드러낸다. 봉분을 덮었던 풀은 쓰러지고, 감추어졌던 흙은 다시 햇빛을 만난다. 사람의 기억도 그렇다. 오래 돌보지 않으면 풀처럼 무성해져 정작 기억해야 할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
어릴 적에는 벌초가 그저 힘든 일이었다. 이른 새벽 잠을 깨워 산으로 데려가는 어른들이 원망스러웠고, 뜨거운 햇볕 아래 흘리는 땀은 견디기 어려웠다. 하지만 아버지는 늘 말씀하셨다.
“조상 산소에 가는 길은 집으로 돌아오는 길과 같다.”
그 말의 뜻을 어린 나는 알지 못했다. 세월이 흘러 부모님 머리에 흰 서리가 내리고, 나 또한 누군가의 추억이 되어 가는 나이가 되어서야 그 말이 가슴에 닿기 시작했다. 벌초는 살아 있는 사람들의 의식이다. 돌아가신 분들은 풀이 자랐다고 불편해하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가 잊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산을 찾는 것이다. 그래서 벌초는 효도의 형식이 아니라 기억의 약속이다.
조문국의 고분을 바라보며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천오백 년이 넘는 세월 동안 누군가는 이 봉분을 지켜 왔을 것이다. 왕과 귀족의 무덤이었든, 이름 없는 사람의 무덤이었든 결국 후손들의 손길이 있었기에 오늘의 모습으로 남아 있을 수 있었다. 초록으로 단장한 봉분들은 마치 방금 벌초를 마친 조상의 산소처럼 단정했다. 둥글게 다듬어진 능선 위로 소나무가 서 있고, 푸른 하늘 아래에서는 배롱나무 꽃이 붉게 피어 있었다. 생명과 죽음은 서로 등을 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한 풍경 안에서 함께 살아가고 있었다.
봉분 위에 자란 풀을 베는 사람의 모습은 멀리서 보면 작다. 그러나 그 작은 움직임이 이어져 한 시대의 문화가 되고, 한 가문의 역사가 된다. 사람은 언젠가 떠나지만, 정성은 오래 남는다. 예초기를 멈추고 땀을 훔치는 순간, 바람이 봉분 위를 스쳐 지나간다. 그 바람은 살아 있는 사람에게는 시원한 여름바람이지만, 어쩌면 먼저 떠난 이들의 안부일지도 모른다. 말은 없지만 마음은 전해지는 법이다.
요즘은 벌초를 대행하는 시대가 되었다. 바쁜 일상 속에서 직접 산을 찾기 어려운 사람들도 많다. 그것을 탓할 수는 없다. 시대는 변하고 삶의 방식도 달라진다. 그러나 한 가지는 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적어도 한 번쯤은 봉분 앞에 서서 이름을 불러 보는 일이다. 풀을 베지 못하더라도 기억은 스스로 자라지 않기 때문이다.
조문국의 오래된 봉분은 오늘도 아무 말 없이 초록빛을 머금고 있다. 왕도 백성도 모두 흙으로 돌아갔지만, 봉분은 시간을 품은 채 후손들에게 삶과 죽음을 함께 이야기하고 있다. 그 앞에서는 누구도 높고 낮음이 없다. 모두가 흙으로 왔다가 흙으로 돌아가는 존재일 뿐이다.
벌초는 조상을 위한 일이면서 결국은 자신을 위한 일이다. 내가 어디에서 왔는지 잊지 않기 위한 의식이고, 앞으로 어디로 돌아갈 것인지를 조용히 배우는 시간이다. 풀을 베며 우리는 봉분을 깨끗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마음속에 자란 무심함과 망각을 함께 베어 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산을 내려오며 뒤돌아본 봉분은 한층 환해 보였다. 바람은 다시 소나무 가지를 흔들고, 배롱나무 꽃은 늦여름 햇살 속에서 붉게 피어 있었다. 세월은 흐르고 계절은 바뀌어도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것은 결국 기억이다. 그래서 벌초는 풀을 베는 날이 아니라, 마음을 다듬는 날이다. 오래된 이름을 다시 부르고, 잊고 있던 시간을 가슴에 새기며, 살아 있는 우리가 다시 삶의 뿌리를 확인하는 가장 조용한 의식이다. 그 의식이 이어지는 한, 봉분은 단지 흙으로 쌓인 언덕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기억을 품은 가장 따뜻한 고향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