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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재주 많은 사람도 하나님을 놀래킬 수 없고,
아무리 재간 많은 사람도 하나님을 속일 수 없다.
“ 스스로 속이지 마십시오. 하나님을 속일 수는 없습니다. 사람은 자기가 심은 대로 거둘 것입니다. [8] 자기 육체의 욕망대로 심는 사람은 육체로부터 썩을 것을 거둘 것이며, 성령의 뜻을 따라 심는 사람은 성령으로부터 영원한 생명을 거둘 것입니다.”(갈 6:7-8, 쉬운)
정말 하늘이 있을까?
정말 천국이 있을까?
정말 주님이 다시 오실까?
걱정하고 염려하지 마라. 세상의 끝이 다하지 아니해도, 그대가 숨을 거두는 날이 주님을 뵈올 날이다. 그대에게 주신 모든 시간을 거두실 때, 그대는 그분앞에서 답변을 하여야 할 것이다.
“내가 네게 준 시간들을 너는 무엇을 하는데 보내었느냐?”
“내가 네게 준 생명들을 너는 무엇을 위하여 사용하였느냐?”
“내가 네게 준 재능들을 너는 무엇과 바꾸었느냐?”
하늘이 하실 일을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 하늘은 그대가 염려하지 않아도 반드시 정해진 시간에 당신의 뜻을 이루실 것이다. 우리는 매일 하루씩 나아간다. 오라는데는 많아도 결국 가야할 곳은 한 곳이다. 그곳에서 우리의 인생의 주인을 만나게 될 것이다.
“이 묵시는 정한 때가 있나니 그 종말이 속히 이르겠고 결코 거짓되지 아니하리라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반드시 응하리라”(합 2:3)
하늘을 정말 어떤 곳일까?
하늘에 가면 어떤 일들이 이루어질까?
하늘에 가면 흔히 3가지 놀랄일이 있을 것이라고 한다. 첫째는 이렇게 부족하고, 허물많은 내가 주님의 십자가의 은혜와 사랑으로 천국에 와 있다는 것이 놀랄 것이다. 둘째는 그렇게 믿음이 좋더니만, 그렇게 잘난체 하더니만 다른 사람을 못가도 반드시 그 사람은 올줄 알았는데, 오직 못한 사람이 있어서 놀랄 것이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늘은 그 사람의 모든 비밀과 은밀한 일들을 알고 계시기 때문이다. 셋째는 오지 못할 줄 알았는데 와 있는 사람을 보고 또 한번 놀라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 궁금함을, 그 비밀을 푸는 날이 천년왕국동안 하는 일이다.
세상을 속여왔던 모든 사기꾼들의 실체를,
사람들앞에 자신을 드러내 보였으나 자기자신을 지키지 못했던 그들의 위선을,
하나님의 공의와 자비의 마음으로 깊고 은밀한 일들을 살펴보는 날들이 될 것이다.
그것을 바울은 이렇게 언급했다.
“성도가 세상을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세상도 너희에게 판단을 받겠거든 지극히 작은 일 판단하기를 감당하지 못하겠느냐”(고전 6:2)
판단으로 번역된 헬라어는 “크리노(krino-)”인데 분리하다, 판단하다, 결정하다. '고르다, 골라내다, 선택하다, 평가하다',
라는 의미를 가진다. 이 단어의 히브리어 단어들이 있는데, 샤파트, 딘이다. 샤파트는 '재판하다, 다스리다'를 의미한다.
딘은 '판단하다' '심판하다' 뿐만이 아니라 '처벌하다' '논쟁하다' '변호하다' '어떤 사람을 위해 공평함을 얻다'를 의미이다(창 15:14; 삼하 19:9; 창 30:6; 신 32:36; 시 54:3; 렘 5:28).
세상에나 세상을 심판할 권세를 가지신 분은 예수님이신데, 그 심판의 권세에 참여하게 해 주신 다는 것이다.
“또 인자됨으로 말미암아 심판하는 권한을 주셨느니라”(요 5:27)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상이 새롭게 되어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에 나를 따르는 너희도 열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심판하리라”(마 19:28)
세상을 심판하는 권세를 누릴 때는 천년왕국이라고 한다.
“[4] 또 내가 보좌들을 보니 거기에 앉은 자들이 있어 심판하는 권세를 받았더라 또 내가 보니 예수를 증언함과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목 베임을 당한 자들의 영혼들과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고 그들의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 그리스도와 더불어 천 년 동안 왕 노릇 하니 [5] (그 나머지 죽은 자들은 그 천 년이 차기까지 살지 못하더라) 이는 첫째 부활이라”(계 20:4-5)
언제 그런 깜짝 놀라고 까무러칠 일이 일어날 것인가?
우리가 언제 보좌에 앉을 것인가?
예수님의 십자가, 부활, 승천, 보좌는 연결된 주님이 가실 길들을 보여준다. 믿는 자는 이미 그 보좌에 앉아있다.
“[4]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5]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6]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7]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라”(엡 2:4-7)
믿음은 미래의 시제를 과거완료로 만들어버린다. 성경의 전형적인 믿음의 표현들이다.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미래를 과거완료로 만들어버리는 것이 믿음이다. 아멘, 할렐루야!
언제 우리가 하늘에 올라갈 것인가? 주님이 재림하실 그날 구름가운데로 끌어올려 영광중에 계신 주님을 뵈올 것이다.“[16]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17]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18] 그러므로 이러한 말로 서로 위로하라”(살전 4:16-18)
성도는 그리스도의 재림 때에 그분과 함께 하늘에 올라가(요 14:1~3; 살전 4:16, 17), 보좌에 앉아 재판하고 판결을 실행하는 예수의 권위와 권능을 공유할 것이다(계 20:4; 참조 단 7:22 주석). 성도는 타락한 천사들(고전 6:3)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과 화목하지 못하여 회개하지 않은 사람들을 재판할 것이다. 이 일은 천년기, 즉 그리스도가 성도와 함께 이 지구로 다시 오시기 전까지 경과될 1,000년 동안에 일어날 것이다(계 20:4, 6). 불의한 자들에 대한 심판은 그들의 삶의 기록과 그들에게 배정되어 내려질 형벌을 조사하는 형식을 띨 것이다. 그들의 멸망은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을 제안하셨을 때 자발적으로 거절함으로 이미 정해졌는데, 그 거절로 인해 그들은 의도적으로 영멸을 선택한 셈이었다. 불의한 자들의 삶의 기록에 대한 조사를 통해 의인은 하나님의 공의와 종말까지 완고하게 남는 자들을 다루는 하나님의 방법의 적절함을 이해하게 된다.
주님이 하시는 일들을 볼 때, 아마도 우리는 주님의 공의로우심과 자비하심에 대하여 거저 아멘, 할렐루야를 연발하게 되지 않을까?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시여 하시는 일이 크고 놀라우시도다 만국의 왕이시여 주의 길이 의롭고 참되시도다”(계 15:3)
하늘은 결코 지루한 곳이 되지 않을 것이다.
천년동안 우리는 그 모든 인간사의 신비한 비밀들을 공의의 눈으로 살피며 그들을 위해 주님께서 베푸셨던 자비와 사랑의 손길, 그리고 악인들이 거절한 과정 과정, 그들의 마음이 굳어지는 모든 형편들을 살펴보게 될 것이다. 이런 사실을 미리 알은 바울은 이 세상에서는 아무도 판단하지도, 아무에게도 판단받지도 않을 것이라고 고백하였다. 이 하늘법정을 이해할 때 그는 이미 이 세상의 판단, 사람들의 속좁은 말들, 이러쿵, 저러쿵, 사람들의 발방아에서 자유하는 삶을 살았다.
“[3] 내가 여러분에게서 심판을 받든지 세상 법정에서 심판을 받든지 나는 조금도 마음을 쓰지 않습니다. 또 내가 나 자신을 심판하지도 않습니다. [4] 나는 양심에 조금도 거리끼는 일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나에게 죄가 없다는 말은 아닙니다. 나를 심판하시는 분은 주님이십니다. [5] 그러므로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는 무슨 일이나 미리 앞질러 심판해서는 안 됩니다. 주님께서 오시면 어둠 속에 감추어진 것을 밝혀내시고 사람의 마음속 생각을 드러내실 것입니다. 그 때에는 각 사람이 하느님께로부터 응분의 칭찬을 받게 될 것입니다.”(고전 4:3-5, 공동)
죽어서 바로 천국에 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 주님이 오실 때 데려가실 것이다.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요 14:3)
천년왕국에 왕노릇할자들을 향하여 첫째 부활에 참여한 자들이라고 하였다.
“…그리스도와 더불어 천 년 동안 왕 노릇 하니 [5] (그 나머지 죽은 자들은 그 천 년이 차기까지 살지 못하더라) 이는 첫째 부활이라 [6] 이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 년 동안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 노릇 하리라”(계 20:4-6)
예수님의 재림의 때에 살아있던 자들은 홀연히 변화되고, 이미 주안에서 죽은 의인들은 무덤에서 일어나 변화될 것이다. 이것이 의인의 부활, 구원의 부활, 생명의 부활, 첫째 부활이다.
첫째 부활은 둘째 부활을 전제(前提)로 한 표현이다. 성경에 둘째 부활이라는 표현은 없고, 바로 연결되는 둘째 사망이란 단어를 통해 추론해 볼 수 있다. 첫째 부활은 의인의 부활, 영생의 부활인 반면, 둘째 부활은 둘째 사망의 부활, 심판의 부활 곧 악인의 부활이다. 주님께서 이 땅이 계셨을 때 생명의 부활, 심판의 부활을 말씀하셨다.
“[28] 이를 놀랍게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29]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요 5:28-29)
왜 악인들도 부활하는가? 놀랍게도 악인들도 부활한다는 말인가?
예수님이 재판정에서 자신을 재판하는 자들을 향하여 이렇게 말씀하셨다. “[64]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말하였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후에 인자가 권능의 우편에 앉아 있는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 하시니 [65] 이에 대제사장이 자기 옷을 찢으며 이르되 그가 신성 모독 하는 말을 하였으니 어찌 더 증인을 요구하리요 보라 너희가 지금 이 신성 모독 하는 말을 들었도다”(마 26:64-65)
악인들도 부활하여 그들이 도대체 무슨 짓을 했는지를, 그리고 주님께서 그들을 향하여 어떠한 사랑을 주셨는지를 분명히 보게해 주실 것이다.
그 자비와 공의의 사건들을 마치 파노라마처럼 공개해 주시며, 자신의 생의 모습들을 다시 보여주실 때, 죄로 멸망당할 악인들 마저도 주님의 공의로우심과 자비를 인정하게 될 것이다. 그 사건을 이렇게 성경은 묘사한다.
“[12]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큰 자나 작은 자나 그 보좌 앞에 서 있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13] 바다가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계 20:12-13)
그때에는 변명도 있을 수 없다. 사정을 봐주는 것도, 하늘의 자비도 이미 거두어졌다. 오직 정의와 공의만이 바로 세워질 것이다. 자신들은 심판을 받아 영원한 멸망을 선고받았는데, 새 예루살렘안에서 면류관을 쓰고 주님과 함께 행복한 의인들의 모습을 보면 그들이 얼마나 마음이 아프고 쓰라릴 것인가!
하늘 새 예루살렘이 보이고, 그 안에서 영광받는 의인들의 무리를 볼 때 그들의 마음은 얼마나 안타깝고, 부럽고, 지난 날 자신들의 행위를 후회하게 될 것인가?
부활한 악인들이 하나님의 공의와 자비에 넋을 잃고 있을 때, 악의 괴수 사탄 마귀가 다시 한번 저들을 미혹할 것이다.
우리가 저 성을 공격하자. 저 성을 얻자! 돌격! 악의 무리들이 연합하여 새 예루살렘을 치려는 것을 곡과 마곡의 전쟁이라고 한다.
“[7] 천 년이 차매 사탄이 그 옥에서 놓여 [8] 나와서 땅의 사방 백성 곧 곡과 마곡을 미혹하고 모아 싸움을 붙이리니 그 수가 바다의 모래 같으리라 [9] 그들이 지면에 널리 퍼져 성도들의 진과 사랑하시는 성을 두르매 ...”(계 20:7-9)
그때에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가?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그들을 태워버리고 [10] 또 그들을 미혹하는 마귀가 불과 유황 못에 던져지니 거기는 그 짐승과 거짓 선지자도 있어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으리라”(계 20:9-10)
“[14]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져지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15]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져지더라”(계 20:14-15)
놀랍게도 사망이 사망할 것을 말씀하신다. 사망과 음부가 불못에 던져진다는 것은 사망과 음부를 여기서 의인화하었다. 음부라는 말의 헬라어는 ‘하데스’인데, 흔히 하데스는 호머(Homer)의 작품에서 지하 세계에 있는 신의 고유한 이름으로 등장하며, 반면에 여타의 헬라 문헌에서 이 단어는 어두운 삶을 영위하는 사자의 거처인 지하 세계를 의미한다. 곧 모든 사망과 절망, 죽음, 죄의 영향력들은 다 불타 없어질 것이다. 얼마나 놀랍고 공의로운 심판이며 악의 마지막인가!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용광로 불 같은 날이 이르리니 교만한 자와 악을 행하는 자는 다 지푸라기 같을 것이라 그 이르는 날에 그들을 살라 그 뿌리와 가지를 남기지 아니할 것이로되”(말 4:1)
“잠시 후에는 악인이 없어지리니 네가 그 곳을 자세히 살필지라도 없으리로다”(시 37:10)
오직 사랑과 행복, 즐거움과 기쁨이 가득한 새하늘 새땅 새나라를 이루실 것이다.
“[18] 내 백성이 내가 창조하는 것 때문에 영원히 즐거워하고 기뻐할 것이다. 내가 예루살렘을 기쁨이 가득한 성으로 만들고, 그 백성을 즐거움이 가득한 백성으로 만들겠다. [19] 내가 예루살렘을 기쁨으로 여기고, 내 백성을 즐거움으로 여기겠다. 그 성에서 다시는 우는 소리와 부르짖는 소리가 들리지 않을 것이다.”(사 65:18-19, 쉬운)
우리는 주님으로 인해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주님은 우리로 인하여 기뻐하시며 즐거워하실 것이다. 그 영원한 행복, 사랑의 나라의 주인공이 되고 싶지 않은가!
“대쟁투는 끝났다. 죄와 죄인들은 없어졌다. 온 우주는 깨끗해졌다. 오직 조화와 기쁨의 맥박만이 온 우주의 만물을 통하여 고동(鼓動)한다. 생명과 빛과 환희가 만물을 창조하신 분에게서 끝없이 넓은 우주로 퍼져나간다. 가장 작은 원자(原子)로부터 가장 큰 세계에 이르기까지, 만물은 생물계와 무생물계를 막론하고 조금도 흠이 없는 아름다움과 완전한 기쁨으로 하나님은 사랑이시라고 선포한다.”(쟁투, 678)
https://youtu.be/6fNSs2MkeoA?list=RD6fNSs2MkeoA

첫댓글 아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