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복시켜 주시는 하나님
삿15:14-20
제가 3달에 걸쳐 이 시대 우리가 회복해야 할 것이 무엇인가를 시리즈로 설교를 하였습니다. 오늘 이 시간은 회복 시리즈 마지막 주일로 “회복시켜 주시는 하나님”이라는 주제로 은혜를 받으려고 합니다. 19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하나님이 레히에서 한 우묵한 곳을 터뜨리시니 거기서 물이 솟아나오는지라 삼손이 그것을 마시고 정신이 회복되어 소생하니 그러므로 그 샘 이름을 엔학고레라 불렀으며 그 샘이 오늘까지 레히에 있더라(삿15:19)” 삼손이 심히 목이 말라지만 하나님께 부르짖으니까 하나님께서 물을 솟아오르게 하여 이 물을 마시고 삼손이 회복되었습니다. 여기서 “회복되어”라는 말은 “와타쇼브”라는 말로 돌아오다는 말입니다. 갈증 때문에 정신이 혼미한 상태에서 돌아오는 것입니다. 더 확대 해석하면 죄악과 우상으로부터 돌아서는 것입니다(겔14:6). 정신은 ‘루하흐’를 번역한 것으로 ‘생명, 활동 능력, 호흡’ 등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목이 타서 호흡이 끊어져 가는 삼손에게 물을 공급하여 그를 소생시켰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반석에서도 물을 내셔 광야의 백성들에게 생수를 공급하시어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생수의 근원이 되시는 예수님은 예수님께 나오면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 시대를 살면서 인생의 갈증으로 고통받는 분들이 계십니까? 물질의 갈증으로 생수를 찾고 계시는 분이 있습니까? 건강의 갈증으로 애타는 분이 있습니까? 사랑의 갈증으로 방황하는 분이 있습니까? 인정받지 못하고 인정의 갈증으로, 만족을 누리지 못하고 만족의 갈증으로, 쾌락의 갈증으로 게임 중독에, 술중독에, 관계 중독에, 영상 중독에, 성중독에, 노름 중독에 빠진 분이 있습니까? 아직도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고 영혼의 만족을 누리지 못하고 불안과 염려 가운데 살고 계시는 분들이 있습니까? 생수의 근원되는 하나님, 영원한 생수가 되시는 예수님을 이 시간 만나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축복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오늘날 우리도 하나님이 주시는 생수를 마시고 영혼이 회복되고, 정신이 회복되고, 정서가 회복되고, 육신이 회복되고, 경제가 회복되고, 가정이 회복되는 축복을 누려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기갈 가운데 있는 우리를 어떻게 회복해 주십니까?
1. 하나님은 우리를 성령 충만하게 하여 모든 결박을 풀어 회복시켜 주십니다(14).
삼손이 지금 처한 상황은 어떤 상황입니까?
사랑했던 아내가 결혼식 하자마자 다른 사람에게 시집을 가버렸습니다(15:2). 삼손이 결혼하였지만 아내가 자신을 배신하자 분노하여 집에 가니까 장인이 자신의 딸을 삼손의 친구에게 주어 버렸습니다.
블레셋 군인들이 자기를 죽이려고 합니다(9).
그러자 삼손이 분노를 참지 못하고 여우 삼백마리의 꼬리에 횃불을 붙여 블레셋 사람의 밭으로 보내 버렸습니다. 그러자 곡식 단과 베이 아니한 곡식과 포도원과 감람나무에 불이 붙어 한 해 농사가 다 망가져 버린 것입니다. 화가 난 곡식 단을 살라버렸습니다. 그러자 블레셋 사람들이 삼손의 아내와 장인을 불살라 죽이고 삼손을 잡기 위해 군대를 동원하였습니다.
자기 민족이 자신을 죽음으로 내어 놓았습니다(10)
삼손은 바위틈에 숨었지만 블레셋 사람들은 이스라엘 사람들을 포위하고 삼손을 내 놓으라고 합니다. 적들이 죽이려고 하는데 아군인 유다 백성들이 삼손을 보호하지 않습니다. 유대 군인 삼천 명이 삼손을 결박하여 블레셋에 내 주었습니다. 얼마든지 삼손을 도와 블레셋과 싸울 수 있었는데 삼손 한 사람 죽이고 자신들은 살자는 것입니다.
삼손은 죽음의 위기에 처했습니다(13)
삼손은 결박되어 적진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아내도 잃고 장인도 잃고 민족도 잃어버렸습니다. 이제 마지막 남은 자신의 목숨마저 처절하게 죽을 위기에 처한 것입니다.
이 시간 예배드리면서 혹 삼손처럼 절박한 상황에 처해 있는 성도님 계십니까? 내 힘으로 해도 해도 안되는 상황에 처하신 분 계십니까? 사업을 잘하고 싶은데 아무리 해도 안되시는 분 계십니까? 부채로 인하여 어찌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하신 성도님 계십니까? 경기 불황으로 접을 수도 없고 나갈 수도 없고, 가까이 있는 사람은 도와주지 않고 너만 희생하라고 강요당하시는 성도님 계십니까? 신앙 생활하면서 기쁨도 없고, 염려만 가득차고, 희망도 없이 그저 마지못해 살아가시는 성도님 계십니까? 자녀를 양육하면서 게임 중독에 빠진 자식으로 인해 부모의 위치를 포기하고 싶은 성도님 계십니까? 세상 사는데 아무도 나를 도와 주는 분이 없다고 좌절하고 절망하시는 성도님 계십니까?
이런 절박한 상황에서 삼손을 회복시켜 주시는 하나님을 만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삼손을 어떻게 회복시켜 주십니까? 14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삼손이 레히에 이르매 블레셋 사람들이 그에게로 마주 나가며 소리 지를 때 여호와의 영이 삼손에게 갑자기 임하시매 그의 팔 위의 밧줄이 불탄 삼과 같이 그의 결박되었던 손에서 떨어진지라(삿15:14)” 삼손은 결박되어 꼼짝없이 죽을 상황에 처해 있었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소리를 지르면 덤벼듭니다. 소리만 지르겠습니까? 분노한 폭도들입니다. 그 때 무슨 일이 벌어졌습니까? “여호와의 영이 삼손에게 감자기 임하시매”입니다. 갑자기 하나님의 영이 삼손에게 임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영은 성령입니다. 성령이 삼손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임하셨습니다. 그러자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그의 팔 위의 밧줄이 불탄 삼과 같이 그의 결박되었던 손에서 떨어졌습니다. “할렐루야!” 오늘 이 시간 우리에게도 이런 역사가 일어나시길 바랍니다. 우리를 목에 비수를 들여대는 부채의 결박, 가난의 결박, 질병의 결박, 죄의 결박, 죽음의 결박, 염려와 걱정의 결박, 불안의 결박, 중독의 결박, 냉소의 결박, 우울의 결박 등이 성령의 능력으로 불탄 삼같이 떨어지는 역사가 있으시길 바랍니다. 성령을 받고 성령 충만을 받으면 예수님이 나의 구주로 믿어집니다.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라는 사실이 믿어집니다. 성령의 능력이 나타나고, 성령의 열매가 맺히고, 성령의 사역이 일어납니다. 무식한 어부였던 베드로가 성령 충만을 받자 앉은뱅이를 일으킵니다. 죽음이 두려워 도망했던 그가 성령 충만을 받고 말씀을 외치자 3천명, 5천명이 회개하고 돌아옵니다.(행2:41; 행2:4) 성령으로 말하는 스데반을 당할 자 없었고(행 6: 10), 성령에 충만하며 일하는(행 13: 9) 사울의 앞을 막을 자 없었습니다.(행 13: 6-12). 성령 충만한 빌립 집사님이(행6:3,5) 사마리아에서 전도할 때에 많은 사람에게 붙었던 더러운 귀신들이 크게 소리를 지르며 나가고(행8:7), 그 성에 큰 기쁨이 있었고(행8:8), 큰 능력이 나타났습니다(행8:13).
세례 요한 성령 충만하여 말씀을 전하자 이스라엘 자손이 하나님께로 많이 돌아오게 하는 큰 역사를 일으켰습니다(눅1:15-16).
교회에 다니지만 아직도 성령을 받지 못하시는 성도님이 계십니까? 제가 131 쉐마 독서반을 하면서 아이들에게 물어 보았습니다. “오늘 밤 죽으면 천국 갈 수 있겠느냐?” 한 아이만 갈 수 있다고 말하고 다른 아이들은 다 모르겠다고 했습니다. 자신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님들은 어떻습니까? 또 아이들에게 물어 보았습니다. “죽었는데 눈을 떠보니까 천국에 있었습니다. 그 때 하나님이 너 어떻게 천국에 왔느냐? 물어 보면 어떻게 대답하겠는냐?”라고 물어 보았습니다. “대부분 바르게 살아서”라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천국에 가는 것입니까? 믿음으로 가는 것입니다. 무엇을 믿습니까? 우리 주님께서 우리의 죄를 속죄하기 위해 십자가에 돌아가시고 부활했다는 사실을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내 모든 죄를 용서해 주심으로 나는 죽음으로부터 해방되었다는 사실을 믿는 것입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롬 10:10)”라고 말씀하시는데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세주로 영접하면 성령님이 내 안에 계시다는 증거입니다.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고전 12:3)"
"너희가 아들이므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갈4:6)“
성령을 받으면 인생이 달라집니다.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슥4:6)” 말씀처럼 내 힘으로 하지 못하는 것을 성령의 능력으로 하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인생의 세 가지 한계, 인식의 한계, 능력의 한계, 윤리의 한계를 뛰어 넘는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알지 못한 영의 세계 신비의 세계를 알게 됩니다. 성령으로 내가 할 수 없는 일을 하게 됩니다. 성령으로 어찌할 수 없는 도덕적 한계를 극복합니다. 여호와의 신이 기드온에게 임하니까 미디안 군사가 아무 힘을 쓰지 못합니다(삿6:34-35). 미미한 것으로 위대한 역사가 이루어집니다. 농부인 엘리사도 여호와의 신이 임하니까 요단강 물을 가르고, 여리고성의 물을 달게 하고, 마른 도랑에 물을 채우고, 기름 병의 기적을 행하고, 나아만의 문둥병을 고치고 죽은 아이를 살리는 기적의 사람으로 쓰임받습니다. 그가 여호와의 신을 갑절 받았기 때문입니다(왕하2:9).
기지촌 창녀, 동성애자, AIDS환자를 사랑한 전우섭 목사님의 간증을 읽어 보았습니다.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어린 시절, 갈등과 반목으로 분열된 교회에서 우리 가정이 길거리로 내 팽겨 쳐졌을 때 아버지처럼 목사는 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고 합니다. 지긋지긋한 가난이 싫었고 목양지를 따라 자주 이사 다니는 것이 싫었답니다. 기득권 층의 부조리를 바로 잡겠다고 10년은 학생운동을 10년은 민중운동을 했다고 합니다. 열아홉의 총각 나이에 나는 벌써 고아 두 명의 양아버지가 되었고 틈만 나면 빈민촌, 철거촌, 고아원, 입양기관을 찾아 그들과 함께 웃고, 울고, 분노하며 때로는 그들과 함께도 했다고 합니다. 아내의 동의를 얻어 기지촌 여성들과 혼혈 어린이들을 위한 공동체를 만들어 이들을 위한 쉼터, 놀이방, 공부방, 상당실 등을 운영하면서 그들의 복지와 인권, 재활과 삶의 변화를 위해 열심히 일했답니다. 에이즈(AIDS, HIV 강염자)환자들을 회복시키기 위해 동분서주했답니다. 이렇게 궂은 일을 하는 가운데 사역에 대해 정신적으로 회의적인 생각을 갖게 되었고, 육체적으로는 탈진상태에 빠져들게 되었답니다. 주변 사람들은 "왜 우리가 이런 더러운 놈들과 함께 살아야 하는가?" 라면서 동네에서 떠나라고 강요했답니다. 자기 스스로도 왜 나는 끝도 없이 이상한 부류의 사람들을 위해 목회를 해야 하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사역에 대한 가시적인 성과가 크지 않음에 대한 실망감했답니다. 이만큼 노력하면 큰 건물도 생기고 존경도 받고, 유명해지고 교인들도 몰려오는데......그렇지 못했답니다. 너무도 높은 한계상황에 부딪혀 목회를 포기하기로 작정하고 마지막으로 예수님께 하직인사를 하기 위해 기도원을 향했답니다. 그런데 그 사이에 공동체 여성들이 자신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돈을 모아서 점쟁이를 찾아갔다는 소식이 들여왔답니다. 자존심이 상하고 너무 창피해서 주님께 간청했답니다. "주님, 힘들어서 목회 못해먹겠습니다. 지금 죽는 것이 넉넉하오니 내 생명을 취하십시오!" 나는 주님께 내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고백했답니다. 눈물이 비 오듯이 쏟아지기 시작했답니다. 갑자기 자신의 죄인된 모습이 보이기 시작하면서 통회와 회개의 눈물이 쏟아졌답니다. 그때 갑자기 하늘에서 불덩어리 같은 것이 날아오더니 자신의 몸을 '쾅'치고 지나갔답니다. 나는 충격으로 몸이 뒤로 나자빠지면서 쾅하고 쓰러졌답니다. 분명히 의식은 있는데, 주위에서 기도하는 사람들의 말소리도 들려오는데 몸이 전혀 움직이지 않았답니다. 그 순간 주님의 음성이 들려왔답니다. "네 힘을 빼라. 그리고 너는 가만히 있어라. 네 힘으로 무엇을 하려고 하는 것 자체가 바로 너의 의(義)다. 이제 가만히 기다리면서 내가 할수 있는 일을 할 수 있게하라. 너의 자아가 강하고, 네 힘으로만 하려고 해서 이곳까지 너를 데려 오는데 3년이나 걸렸다. 이제 내가 너에게 새 힘과 새 능력을 주겠다. 네가 하려고 하는 모든 의는 결국 잘 포장된 인간의 의다. 네가 '나는 아무것도할 수 없는 존재다' 라는것을 인식할 때 비로소 내가 일을 시작할 것이다." 나의 온 몸은 분명하고 확실한 주님의 음성에 의해 감전된 듯 마구 떨려오기 시작했답니다. 성령의 기름 부으심으로 갑자기 마음에 평화와 기쁨이 넘쳐흐름과 동시에 두려움, 좌절감, 우울, 열등의식 등이 빠른 속도로 소멸되었답니다. 기쁨이 몰려 오는데 4시간 동안 기쁨의 웃음을 웃었답니다. 그 동안 추구했던 진보적 이념, 학문, 학위, 사회운동, 6개의 시민단체대표직, 50회 이상의 데모, H신문사에서 '21세기 한국사회를 움직인 사람' 으로 선정된 것 등 모든 것들은 아무것도 아니었으며, 영적 전쟁에는 아무런 힘도 발휘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답니다. 기도원에서 공동체로 내려오자마자 나는 첫 번째로 만난 자매에게 안수기도를 했답니다 그런데 안수기도를 받은 그 자매가 갑자기 통회의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답니다. 그 눈물은 옆방의 다른 자매들에게도 번져 나갔답니다. 주일 예배 때 설교하기 위해 강단에 섰는데 갑자기 성령이 강하게 임재 하셨답니다. 모든 성도들이 성령님의 강한 권능에 쓰러지면서 엉엉 울며 회개하였답니다. 몇 시간 동안 데굴데굴 구르면서 자기들끼리 찬양하고 기도하며 통회하고 있었답니다. 성령님께서는 공동체 식구들을 변화시키기 시작했답니다. 10년 간 노력해도 변화되지 않았던 사람들이 며칠사이로 주님께 돌아오게되었고, 서로 사랑하고, 나누어 가지고, 섬기는 일에 동참하게 되었답니다. 주위에서 나를 적대시하던 사람들의 마음이 부드러워지기 시작했답니다. 공동체 안에서 예수님을 닮아 가고자 하는 운동이 일어나기 시작했답니다. 마약, 술, 매춘, 도박에서 해방 받는 일들이 일어났으며, 예수 안에서 참 자유를 누리게 되었답니다.
성령을 받은 후 성령 충만한 삶을 계속 살아야 합니다. 구하고(눅11:13), 회개하고(행2:38-39) 순종하면(행5:32) 우리도 성령 충만을 받을 수 있습니다.
2. 하나님은 남은 것으로 회복하고 하나님을 영광 돌림으로 지속적 회복의 자리에 있게 해 주십니다.(15-17)
삼손은 회복되어 어떻게 합니까? 15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나귀 턱뼈 하나로 천명을 죽였습니다. 나귀의 새 턱뼈지만 죽은 나귀 턱뼈입니다. 그것 아무것도 아닙니다. 무기가 아닙니다. 그러나 성령님이 역사하니까 나귀 턱뼈로도 천명을 물리칩니다. 없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백성이 배신하고 장인이 등을 돌리고 적들이 우글거려도 나귀 턱뼈 하나만 있어도 하나님은 그것을 통해 얼마든지 회복시킬 수 있습니다. 지금 나에게 있는 것이 무엇이 있는지를 보십시오. 그것이 하나님의 손에 붙들리면 회복을 일으키는 기적의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하시면 모세의 지팡이로 홍해를 가르실 수 있습니다. 다윗의 물맷돌로 골리앗을 넘어뜨릴 수 있습니다. 기드온은 300명의 용사로 수많은 적들을 물리쳤습니다.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로 5천명을 먹이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말씀 한 마디로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이십니다. 무엇을 못하시겠습니까? 지금 가진 것 없다고, 아는 것 없다고 회복 불가능하다고 낙심하고 좌절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하시면 얼마든지 회복시킬 수 있습니다. 없는 것보고, 잃은 것 보고 좌절하며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메시야의 작곡자 헨델을 보십시오. 1737년 파산한 뒤에 헨델은 중풍과 건강의 악화로 고통을 당하였고 56세가 되었을 때, 거의 파산지경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68세 때 완전히 실명하였습니다. 그러나 남아 있는 것 붙들고 기도하며 위대한 음악을 남겼습니다. 그는 중풍과 허약한 육체, 시각 장애를 겪으면서도 "내가 나서 자라난 신앙 안에서 살다가 죽겠노라"고 말하며 끝까지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정열적으로 감당하였습니다.
실낙원의 저자 밀톤을 보십시오. 1652년 실명하였습니다. 어려움은 계속 닥쳐왔습니다. 아내는 떠나고, 아들은 죽었습니다. 자신은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질 뻔했습니다. 그는 절망하지 않았습니다. 실명한 상태에서 서사시를 쓰는 일에 집중하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말을 받아쓸 딸이 있었습니다. 딸로 하여금 한 구절 한 구절 받아쓰게 하여 "실락원"을 1667년에 완성하였고, 이어서 1671년 복락원과 투기사 삼손을 합본으로 완성했습니다. 영국의 유명한 "윈스턴 처칠"도 학교 다닐 때에 낙제한 사람입니다. 유명한 발명왕 에디슨도 무수히 많이 실패하였습니다. 1879년 10월18일 발명가 토머스 에디슨은 일정 전압에도 견디는 라멘트를 만드는데 11만 번이나 실패한 사람입니다. 다 잃은 것 같지만 아직 우리에게는 회복할 수 있는 하나님의 능력의 도구가 남아있습니다. 하나님 손에 붙들리면 얼마든지 회복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 말씀합니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막9:23)” 바울은 고백합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빌 4:13)” 이 말씀이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이 되어 회복되는 삶의 축복이 있으시길 바랍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회복하고 지속된 회복의 복을 받아야 하는데 한 번 회복되고 꺼꾸러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삼손을 보십시오. 이 큰 기적을 체험받고 어떤 일이 벌어집니까? 18절을 보십시오. 심히 목이 말랐습니다. 기갈로 죽을 지경에 이르렀다는 말입니다. 외적 원인에 의한 죽음의 문제가 아니라 냇적 원인에 의한 죽음의 문제가 다가온 것입니다. 지속적으로 회복의 축복을 누리지 못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오늘 성경이 우리에게 말씀하시고자 하는 내용은 16절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삼손이 회복된 후 한 일이 무엇입니까? 노래를 부르는 것입니다. 그 노래의 내용을 보십시오. “나귀 턱뼈로 한 더미 두 더미를 쌓았음이여 나귀의 턱뼈로 내가 천명을 죽였도다.” 유치원 수준의 노래를 부릅니다. 삼손이 힘은 세지만 아마 아이큐는 조금 떨어진 것 같습니다. 그리고 턱뼈를 내 던지고 그곳 이름을 라맛 레히라고 이름을 지어 주었습니다. “당나귀 턱뼈의 언덕”이라는 뜻입니다. 전승을 기념하여 지은 이름입니다. 그런데 오늘 성경을 보면 무엇인가 문제가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누구의 힘으로 이긴 것입니까? 성령이 강하게 역사하신 것입니다. 턱뼈 사실은 나실인으로 만지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으로 하나님께서 승리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면 누구를 찬양하여야 하겠습니까? 누구에게 영광을 돌려야 하겠습니까? 하나님께 당연히 찬양드리고 영광을 돌려야 하는 것입니다. 드보라도 승리한 후 누구에게 영광을 돌립니까? 모세도 홍해를 가른 후 누구에게 영광을 돌립니까? 한나도 아이를 낳은 후 누구에게 영광을 돌립니까? 마리아도 예수님을 잉태한 후 누구에게 영광을 돌립니까? 모두가 하나님께 찬양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삼손은 자신을 찬양하고 자신이 영광을 거둡니다. 하나님이 천명을 죽여 준 것이 아니라 내가 천 명을 죽였도다라고 노래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잠16:18)"라고 말씀합니다. 교만은 지속적인 회복을 누리지 못하게하는 것입니다. 히스기야가 그랬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죽을 질병에서 고침받았고 적을 물리쳤습니다. 그 때 그는 교만해져 버렸습니다.
"히스기야가 마음이 교만하여 그 받은 은혜를 보답지 아니하므로 진노가 저와 유다와 예루살렘에 임하게 되었더니(대하32:25)"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자를 물리치십니다. “(약4:6) 하나님 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
바로는 교만(출5:2)으로 자기도 망하고 백성들도 망했습니다.
웃시야가 교만하여 향단에서 분향하려다고 문둥병에 걸렸습니다.(대하26:16) 헤롯이 교만하여 충먹어 죽었습니다. 천사가 겸손하지 못하고 하나님처럼 높아지려다가 사탄으로 전락되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처럼 눈이 밝아지려고 하다가 결국 에덴 낙원으로부터 추방되었습니다. 인간의 교만으로 쌓은 바벨탑은 결국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하만(에3:5)도, 느브갓네살(단4:30)도, 벨사살(단5:23)도 결국 교만 때문에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우리가 회복되면 겸손함으로 회복의 축복을 지속적으로 누려야 합니다. 겸손하면 존귀한 자리에 이르게 됩니다.
“사람이 교만하면 낮아지게 되겠고 마음이 겸손하면 영예를 얻으리라 (잠 29:23)”
겸손하면 재물과 영광과 생명을 얻게 됩니다. “겸손과 여호와를 경외함의 보응은 재물과 영광과 생명이니라 (잠 22:4)”
하나님은 겸손하면 더 큰 은혜를 주십니다.(약4:6) 겸손하면 높임을 받고 인정을 받습니다(잠 29:23). 겸손한 자가 천국에서도 큰 자라 일컬음을 받습니다(마18:4). 겸손하면 영이 소성케 되고(사57:15), 겸손하면 기도의 응답고(시편 10:17) 겸손하면 재앙이 물러가고(역대하 12:6),겸손하면 풍부해지고(시편 22:26) 겸손하면 여호와께서 붙들어 주십니다(시편 147:6)
3. 하나님은 부르짖어 기도할 때 인생의 목마름을 회복시켜 지속적인 승리의 자리에 있게 해 주십니다.(18-20)
우리 인생살이는 한 가지 문제가 풀렸다고 다 풀리는 것은 아닙니다. 올해 건강 검진에서 이상이 없다고 다음해에도 이상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올해 매출이 회복되어 잘 된다고 다음해에도 잘 된다고 보장할 수 없습니다. 요즈음 일본의 방사능 누출로 인하여 해산물이 어려움을 당하고 있습니다. 우리 집사님 한 분도 해물을 하기 때문에 제가 걱정이 되어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내일 어떤 일이 벌어질지 전혀 알지 못합니다. 삼손이 1천 명을 죽이고 승리했지만 바로 앞에 다가오는 것이 무엇이었습니까? 18절을 보십시오. 목이 말라 죽을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그 때 삼손은 무엇을 합니까? 방금 전까지 내가 천명을 죽였다고 자랑하던 그의 입술이었지만 자신의 힘으로는 어찌 할 수 없는 죽음의 위기기 다가오자 주께서 종의 손을 통해 이 큰 구원을 베푸셨다고 고백합니다. 이제 제 정신이 든 것입니다. 대부분 우리 인간들이 그런 것입니다. 고난을 당해 보아야 하나님을 찾는 것입니다. 고난을 당하면서도 고난의 시간을 낭비하고 헛되게 보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고난은 하나님께 돌아오라는 싸인이며, 선물이고, 은혜입니다. 코미디언 이성미 집사의 간증을 들어 보았습니다. 공부하지 않는 아들이 케나다에 가면 공부하겠다고 하여 케나다로 아들을 데리고 갔답니다. 그런데 여전히 게임만 하고 공부를 하지 않았답니다. 그래서 새벽 기도를 나가면서도 집에 와서 있는 욕 없는 욕 다 퍼부으며 살았답니다. 아들이 왜 밖에서 다르고 집에서 다르냐고 항변했답니다. 그러나 고쳐지지 않았답니다. 그런데 어느날 아들이 학교에서 케나다 아이와 다투어 상처를 입치고 추방될 위기에 처했답니다. 그 때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고 욕하는 습관을 바꾸어 버렸답니다. 어느날 아들이 욕하지 않는 어머니를 보고 이상히 여기더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새벽 기도회를 따라가겠다고 하더라는 것입니다. 아들이 변화되어 목회자가 되겠다고 신학대학에 들어갔다고 합니다. 고난이 다가오면 그 고난을 통해 하나님께 나가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는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삼손을 보십시오. 무식한 기도같지만 부르짖어 기도합니다. 이제 목말라 죽겠습니다. 목말라 죽게 되면 할례받지 못한 자들의 손에 떨어지겠습니다. 그러니 물 좀 주십시오. 아주 단순한 기도입니다. 이 때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십니까? 하나님이 기적을 일으켜 한 우묵한 곳에서 물을 터뜨립니다. “레히에 한 우묵한 곳”을 직역하면 “턱뼈 안에 있는”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나귀 턱뼈의 우묵한 곳”에서 물을 내었다고 해석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계곡 중에 한 우묵한 곳이 터져 물이 나오게 했다는 것입니다. 가나안의 밀 추수기는 건기로 산과 들과 골짜기 심지어는 우물까지도 마르는 시기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삼손의 기도를 응답해 주어 하나님께서 물을 마시게 하여 회복시켜 주신 것입니다. 이 때 삼손은 그 우물 이름은 “엔학고레”라고 불렀습니다. “부르짖는 자의 샘”이라는 말입니다. 부르짖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샘물을 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부르짖음으로 회복시켜 주시는 샘물의 축복을 지속적으로 누려야 합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회복은 지속적으로 이루어집니다. 시험에 들지 않고 넘어지지 않기 위해서는 지속적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시험에 들지 않도록 깨어 기도하라고 했습니다.(마26:41) 그러나 베드로는 어떻게 합니까? 기도하지 않고 잠만 잡니다. 세 번이나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말했지만 결국 기도하지 않다가 말고의 귀를 베고 예수님을 저주까지 하고 도망가 버립니다.
삼손도 마찬가지입니다. 지속적인 회복의 축복을 누리려면 기도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삼손은 지속적으로 기도하지 않습니다. 삼손의 생애에서 부르짖었다는 말이 두 번 나옵니다. 16장 28절에서 눈 뽑히고 재주 부려야하는 비참한 처지가 되었을 때 부르짖었고 하나는 15장 18절입니다.
우리 인생에 있어서 지속적인 승리를 하는 것은 쉬운 것이 아닙니다. 사탄이 우는 사자 같이 두루 삼길 자를 찾고 있습니다. 광명의 천사로 위장하여 유혹하고 있습니다. 조금만 한 눈을 팔면 넘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지속적으로 회복의 축복을 누릴 수 있는 비결이 무엇이겠습니까? 다른 것이 아니라 기도입니다. 때로는 새벽기도도 하시고, 40일 금식 기도도 하시고, 철야 기도도 하셨던 예수님 말씀합니다.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하시니라(눅21:36)"
바울도 영적 전쟁을 말하며 그 영적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비결이 기도인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되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고(엡6:18)"
"기도를 항상 힘쓰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골4:2)"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 감옥에서 기도하고 찬미하였습니다(행16:25-34) 이 때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옥문이 열리며, 모든 죄수들의 쇠고랑이 벗겨지는 신비한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대하 20: 14-23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노래와 찬송을 시작할 때에 이스라엘을 치러 왔던 모압, 암몬, 세일의 3개국 연합군을 하나님께서 전멸시키는 기적이 나타났습니다. 이러한 기적은 오늘날도 이루어질 줄 믿습니다. 기도하면 자신을 때리고 쇠고랑을 채운 원수에 대한 미움이 살아집니다. 고난과 위기 속에서도 마음이 동요되지 않습니다. 평안함이 있습니다. 두려움이 살아집니다.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찬미하니까 간수가 회개하고 그와 그 권속이 다 예수를 믿는 영적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우리가 자녀들 잘 양육하기를 원합니다. 기도해야 합니다. 바운즈는 새벽기도한 사람치고 잘못된 사람이 없고, 세계적으로 위대한 일을 했던 인물들은 새벽기도의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위대한 종교개혁자 칼빈도 새벽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존 웨슬레는 새벽기도의 거장이었습니다. 새벽기도 덕분에 88세까지 건강하게 살면서 역사적으로 길이 남을 엄청난 일을 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새벽에 기도 소리가 있는 가정이 소망이 있습니다. '다니엘 학습법' 저자 김동환 목사님이 계십니다. 2000년도에 서울대를 수석으로 졸업한 사람입니다. 대학 4년 동안의 평균 점수가 99.26이라고 합니다. 달동네 문제 학생들을 불러모아 소위 SKY school 이라는 공부방을 만들어 자원봉사합니다. 그가 그렇게 되기 까지는 어머님의 새벽기도의 힘이라는 것입니다. 아버지는 알콜 중독자입니다. 어머니는 새벽에 나가 기도합니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 아이들 앞에서 기도합니다. 단칸 방입니다. 큰 아들은 영적 생명을 구원하는 지도자가 딸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음악가가 작은 아들은 인간의 육신을 살리는 의사가 되게 해 달라고 기도했답니다. 그런데 그 기도가 그대로 응답되어 다 그렇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세계적인 암 전문의 원종수 권사님이 계십니다. 딸 셋 가정에 네 번째 아들로 태어났다고 합니다. 아버지는 육군 대위였는데 6살 때 결핵성 뇌수막염으로 머리에 결핵균이 들어가서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어머니는 사과를 길거리에서 파셨고, 어떤 때는 고구마도 쪄서 팔기도 하시고....그런데도 어머니는 새벽마다 교회에 가셔서 기도하였다고 합니다. 비가오던 눈이 오던, 날씨가 춥던 덥던, 한 시간 반 정도의 거리를 매일 새벽기도를 다니셨습니다. 새벽기도를 다녀오신 후에 자녀들을 놓고 기도하시는데 아들어 머리에 손을 얹고 기도했다고 합니다. "하나님, 이 아들을 제가 어떻게 기르겠습니다. 이 딸들을 이 자녀들을 제 힘으로 어떻게 기르겠습니까? 하나님 아버지 도와주세요." 어머니는 삯바느질 하였다고 합니다. 고등학교 2학년이 되었을 때 선교사님 댁에서 파출부를 하셨지만 둘째 누님이 도벽으로 쫓겨나야 했답니다. 갈 때가 없는 한 겨울이었고 돈도 없고 먹을 것도 없이 쫓겨났답니다. 그럼에도 어머니는 절망하지 않고 새벽기도를 했다는 것입니다. 그는 16살에 변화가 되었습니다. 새벽기도는 겨울에는 4시 반에 하고, 여름엔 4시에 하는데 하루도 안 빠지고 엄마와 함께 갔습니다. 2학년 때 전교 480명중에 410등을 했다고 합니다. 대전고등학교 밴드부에서 나팔을 불었다고 합니다. 그는 기도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새벽기도 시간에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고 합니다. "종수야.. 종수야.. 네가 기도를 열심히 하는데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 지혜를 구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공부합니다. 전교에서 410등하던 사람이 5등이 되었습니다. 결국 1등으로 졸업하고 서울대 의과대를 들어갔습니다. 유학을 가고 세계적인 암 전문의가 되었습니다.
사무엘은 기도하지 않는 것을 죄라고 했습니다.(삼상 12:23)" 다니엘은 한 나라를 다스리는 총리이지만 하루에 세 번씩 어김없이 기도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다니엘은 지속적인 승리를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렘 33:3)"
"울고 있는 형제여 왜 찬송을 잊었는가 어둠 속의 찬송은 기적을 부른다오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 감옥의 문을 찬송으로 열었다오 고통의 문을 찬송 찬송으로 찬송 찬송으로
울고 있는 형제여 왜 기도를 잊었는가 어둠 속에 기도는 하늘 보좌 흔든다오 네 모든 사정을 주님께 고백을 하여 위로받고 구원받아 참 평화를 영원 영원토록 영원 영원토록(1129)"라는 찬양이 있습니다.
이웃도 못하고, 선생님도 못하고, 부모도 못하고, 과학도 못하고, 지식도 못하는 것이 있을 지라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회복시켜 주십니다.
1. 하나님은 우리를 성령 충만하게 하여 모든 결박을 풀어 회복시켜 주십니다(14).
2. 하나님은 남은 것으로 회복하고 하나님을 영광 돌림으로 지속적 회복의 자리에 있게 해 주십니다.(15-17)
3. 하나님은 부르짖어 기도할 때 인생의 목마름을 회복시켜 지속적인 승리의 자리에 있게 해 주십니다.(18-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