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별곡 20]엄나무순, 혼자만 먹으면 무슨 재민가?
해마다 딱 요맘 때쯤이면 두릅을 데쳐 초고추장에 찍어먹는 재미가 쏠쏠하다. 두릅보다 윗길로 치는 게 엄나무순(개두릅이라고도 한단다)이고, 그보다 더 상급이 옻순이라고 한다. 독활이라고 부르는 땅두릅도 있다. 근방에 전문적으로 두릅를 심어 파는 농가는 거의 없다. 자연발생적으로 나는 곳이 몇 군데 있는지라, 아는 사람들은 그곳으로 몰리게 마련이다. 잠시 한눈을 팔면 외지사람들 요깃거리로 다 따가버리니, 동네주민들은 ‘천신’하기가 힘들다. 고사리나 산취, 머위도 마찬가지이다. 도회지 사람들이 더 좋아하는 게 이런 봄나물이다. 고사리바탕이고 두릅바탕을 어떻게들 아는지, 새벽부터 외지外地 승용차가 산자락에 나래비를 선다.
봄에 한두 번 두릅과 엄나무순을 맛보는 것은 생활의 필수식必需食이자 생활의 지혜이다. 아무리 그렇대도 '우리의 몫'이 없으랴. 오늘은 엄나무 50여그루 있는 곳을 나홀로 찾았다. 남원과 임실 운암에서 고교동창 친구들이 오기로 했기 때문이다. 한 보자기씩 담아주는 것은 온전히 ‘나의 즐거움my pleasure’이다. 엄나무순은 꽃이 막 피어날 때 또오똑 하나씩 따야 한다. 하루이틀만 지나도 쇠어버리니 타이밍이 중요하다. 억센 가시에 찔리기 십상이니 조심해야 한다. 뻘쭘하게 ‘저 홀로’ 큰 엄나무 줄기를 낫으로 잡아당긴다. 20년쯤 된 큰 엄나무는 아예 올라갈 엄두가 나지 않는다. 재밌는 것은 가시가 상당히 사나운데, 나무가 어느 정도 크면 가시가 없어진다는 것이다. 이제 제 몸은 제가 지킬 수 있다는 듯, 사람손이 타지 않을 만큼 컸다는 증거라고 한다.
엄나무순은 오래 전부터 각광을 받은 슈퍼푸드이다. 다른 채소에 비해 포화지방산과 콜레스트롤이 낮고, 비타민C 등이 풍부하다고 한다. 엄나무순 전을 해도 되고 샐러드와 무침을 하거나 미역국을 끓일 때 넣어도 좋다. 우리는 막 데친 순에다 막걸리 한잔이면 세상을 다 얻은 듯 족할 따름이다. 아무튼, 두 친구에게 비닐 한 봉지에 가득 담아 선물을 하자 입이 벌어진다. 시장에서는 솔찬히 비싸게 팔린다고 한다(500g 18000원). 피를 맑게 하고 혈액순환을 활발하게 해 심혈관 질환과 뇌기능 향상, 두통 완화 뿐만 아니라 심신 안정에도 효과적이며, 관절염 근육통 신경통, 면역력 증강에도 좋다니 가히 만병통치인 셈이다.
그건 그렇다치고, 오늘같이 봄비가 차분히 내리는 오후에 산에서 직접 따온 엄나무순을 끓는 물에 30초정도 살짝 데쳐내 초고추장(없으면 고추장에 식초 몇 방울, 설탕 두어 숟갈로 만들면 된다) 찍어먹는 맛이라니, 먹어보지 않은 사람은 정말로 모를 것이다. 게다가 툇마루에 앉아 저 멀리 앞산 중턱을 지나가는 완주-순천 고속도로, 익산-여수 전라선, 일반국도 17번을 쉼없이 지나가는 수많은 버스, 승용차, 기차, 트럭 등을 바라보는 ‘들멍’을 즐기니, 솔직히 그까짓 신선神仙이 부러울 까닭은 ‘1’도 없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