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상반된 의견을 가지고 있는 두 부류가 논리적인 언변을 통해 쟁점화한다. 즉, 서로 다른 의견을 상대방에게 주장하는 것이 바로 논쟁이다. 이 논쟁의 최소충분조건은 바로 사람과 주제, 그리고 말하고 듣겠다라는 의지여야한다.
얇은 금테와 새벽라디오진행에도 어울릴법한 목소리가 떠오르는 손석희씨가 진행하는 이 백분토론. 꼬꼬마시절때 잠안자고 몰래 티비보면서 채널돌리다 우연치않게 접한 이후로, 보려고 의식하진 않지만 나도모르게 한다는 것을 알게되면 볼수밖에 없는, 꽤나 묘한 방송이다. 아마 생방송을 좋아하는 나의 알수없는 심리도 기인하겠지만.
앞서 두리뭉실하게 정의한 논쟁을 카메로 앞에서 보여주는 이 프로그램은, 참으로 척박했던 한국사회의 토론문화를 어느정도 규격에 맞게 정착시키는데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그 영향이란, 아직 인터넷이 제대로 보급되지 않던 시절의 챗토론부터, 현재의 촛불을 위시한 활발한 리플놀이까지 이르는, 광범위한 시공간속에서 이루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것도 사회자라는 중립자적 역할을 끼고, 상대방의 안면을 위아래로 훑으면서 하는 토론의 형식은, 아직도 입으로 외는 조선시대 왕명의 연대기적 암기 - 태종태세문단세 - 로 대변되는 주입식 암기로 인한 토론문화의 부재와, 작금에 이르러 인터넷으로 토론 비스무리한게 이루어지긴하지만 익명성의 보장과 접근성의 무한한 용이로 인한 막말과 헛말의 난무속에서 더욱 빛나는 것이다. 거친 언변의 소유자와 나긋한 음성의 소유자들이 나와서 서로간의 목소리 크기를 재면서 주거니 받거니, 그러다 어느 한분이 주거니 주거니 주거니 연속 쓰리콤보를 날려버리면 사회자가 끼어들어 알겠습니다~ 라고 일침을 가하는 형식의 토론쇼는 보는이로 하여금 시원한 카타르시스를 제공하기에 이른다. 왜냐면 나도 막 시끄럽다고 느낄참이었거든.
어느 버라이어티쇼 못지않는 잔재미를 주는것도 이프로를 보는 이유일테다. 생방송에 대한 기대심리와 더불어 자칫 지성인들이 하는 말싸움 또한 호기심을 유발하는 것도 물론 한몫 한다. 이 토론을 위해 준비한 논리들의 기승전결을 구경하는 재미와, 타인의 독설에 감정으로 대응하는 NG장면또한 별미이다. 진중권교수나 유시민의원, 전여옥의원, 노회찬전의원 등과 최근 미국산쇠고기문제 및 촛불시위 토론으로 부상하신 송호창변호사, 박상표 대표 등 저마다 독특한 어법과 논리전개로 청중으로 하여금 듣는 맛을 느끼게 하는 패널들 또한 보게 하는 요인일 것이다. 물론, 가장 큰 이유는 이 주제에 대한 나의 관심정도이다. 개인적으로 개고기 문제와, 디워 문제가 가장 다이나믹했는데, 뭐, 취향이니까.
며칠자 백분토론까지 보고나서 생각한건, 유럽 지성인들의 토론이나, 하다못해 미국의 어느 시골초등학교회의 수준의 토론을 아직까지 기대하면 안된다. 라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수준이라는 말은 바로 기대치를 의미한다. 한국토론문화를 단순히 폄훼하는게 아니라, 근 몇백년간 다듬어오고 내면화하고 보편화시킨 토론, 토의문화를 가지고 있는 서방의 그것에 비해 아쉽다는 이야기이다. 분명히 서구빠돌이나 맹목적인 팬덤은 아니라는 걸 밝혀둔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것은 바로 토론을 임하는 자세와 마음가짐의 문제이다. 유럽과 미국의 토론방식은 바로 심도있는 대화에 기초한다. 대화란 상대방과 나의 의견교환과 친밀감의 표현이다. 다 그렇지는 않지만, 적어도 어느정도 이런 기저를 가지고 토론을 벌인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나의 의견과 타인이 다르다고 해서 감정적으로 대응하는 것은, 더이상 토론할 여지가, 대화할 가치가 없다는것을 뜻한다. 그건 토론이 아니라 생떼이다. 너는 말해라. 나는 귀닫을테니 - 라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또 하나, 토론은 결론을 내기위한 수단이 아니다. 그러나 토론을 하는, 또는 앞으로 하려는 사람은, 토론은 승부라고 생각하는 면이 강해보인다. 세상에 진리는 없다.(진리가 없다 라는 말도 진리가 되니 자가당착이긴하지만) 그렇게 쉽게 해결책이 나오는 문제라면 토론이란 형식을 굳이 갖다 오지 않아도 되겠지. 아주 당연한 논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의견은 정답이라 굳게 믿고 상대방의 의견은 묵살하거나 무시하는 행위는 스스로의 의견마저 우습게 보이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말하는것은 지식의 영역이고, 듣는것은 지혜의 영역 이라는 아라비아속담은 틀린게 없다. 경청이야 말로 말하는 행위보다 어려우면서도 효과적인것을 분명 알아야한다.
우리나라 토론수준이 극명하게 틀통나는 공간이 바로 인터넷이다. 자기와 다른건 그냥 다른게 아니라 틀린거라고 믿는 이들에겐 인터넷의 토론공간이란 개인블로거들이 올리는 사사로운 일기의 집합에 불과하다. 유레카 라고 외치지는 못할지언정, 왜 더 논리정연하고 이해를 돕는 좋은 의견들이 나와 반하다고 해서 매도급으로 취급되야 될까. 물론 엄마말 잘안들었던 내과거에 비춰보면 이해할법도 하긴하다.
그리고 이왕하는 토론이라면 그 주제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는 습득하고 하자. 그 정보야 말로 나에게 논리라는 옷을 입게 해주는 옷장역할을 할것이다. 범람하는 의견속에서 내 위치를 찾을수 있는 이정표이다. 그 정보마저 없다면 남들이 던지는 의견이 갈고리가 되어 사방에서 낚아칠테니. 그러면 이리저리 축구공같은 신세가 될것이다.
최근에 MB이후로 모두가 미국산쇠고기 문제에 정통하고, FTA협상을 개탄하며, 춧불이라는 단어가 원래의 의미가 아닌, 다른의미로 쉽게 인식되는 요즘. 그야말로 토론의 시대이다. 누구는 국론의 분열로 인한 아노미라고 지칭하지만, 적어도 귀닫고 입닫는것보다야 낫다는게 필자의 일관된 생각이니만큼. 각설하고, 여기저기 두명이상 모이면 찬성과 동의와 비판과 비난을 가하는게 요즘 트랜드인것 같다. 트랜드치고는 꽤 긍정적이면서도 화끈한 키워드임을 부정할수는 없는 듯.
이런 토론의 르네상스를 불러준 대통령님께 심심한 감사를 드리면서, 오늘도 나의 의견을 스스로 되물어본다. 워낙, 말들이 많아서 말이지. 그리고 토론이란 내 의견을 떠드는 것이 아닌, 너의 의견을 듣기 위한 것임을 알필요가 있을듯하다. 하..며칠전 술자리에서 나잘난듯 하며 떠든 나에 대한 반성문인 것도 같다.
팬저
덧. 모케이블에서 대대적인 홍보를 한 끝장토론. 패널들의 무제한 수위를 무기로 절찬리 방영중인데, 나도 한번 본적이 있다. 보고나니 생각나는 이말, 지나친 자유는 오히려 구속이다.
첫댓글 뭘 고고싱하자는거? 끝장토론?
어머, 끝장이라니. 난 그런과격한 표현은 싫은데용
백분토론은 왠지, 정이 잘 안갑니다. 소고기 이전에는 그렇게 관심가는 주제가 없었고, 소고기 이후에는 왠지 팬저 님 말씀하신 대로 끝장토론이라서?
100분토론 재미있죠. 다만, MBC가 요즘 너무 떠받들어지고 100분 토론도 그것을 위한 장이 된다는 점이 약간 마음에 걸리기는 하죠. 끝장토론이라면 케이블 방송 어디에서 하는 게 있을텐데...뭐였는지 기억은 잘 안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