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우 바오로 신부
모든 성인 대축일
요한 묵시록 7,2-4.9-14 1요한 3,1-3 마태오 5,1-12ㄴ
우리는 주일 미사 때 사도 신경으로 ‘모든 성인의 통공’을 고백합니다. 오늘 모든 성인 대축일을
보내는 신앙인에게 ‘모든 성인의 통공’은 어떤 의미를 전해 줍니까?
제1독서에서 “나는 인장을 받은 이들의 수가 십사만 사천 명이라고 들었습니다.”라는 내용을
듣습니다. 십사만 사천 명은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에서 만 이천 명씩 선발한 총합입니다.
여기서 십사만 사천은 하느님 백성의 충만함을 나타내는 상징적 숫자입니다.
제2독서에서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라는 내용을 두 번에 걸쳐 듣습니다. 이어서
“그분께 이러한 희망을 두는 사람은 모두, 그리스도께서 순결하신 것처럼 자신도 순결하게
합니다.”라는 증언이 덧붙습니다.
한편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과 의로움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들에게
‘행복하다’고 선포하십니다. 그들이 행복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마태오 복음사가는 ‘현재’,
곧 ‘지금 여기’에서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여러 유사 종교와 달리, 가톨릭에서 고백하는 구원은 보편적이며 모든 이에게 열려 있습니다.
현재 우리가 겪는 고통 때문에 ‘지금 여기’에서 이미 실현되고 있는 구원을 부정한 채
하늘만 바라보는 것은 올바른 가톨릭 신앙도 아닐뿐더러, ‘모든 성인의 통공’과도 맞닿지 않습니다.
가톨릭 신앙에서 모범으로 삼는 성인들은 우리처럼 두려움과 고통을 겪었던 이들입니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자녀인 우리도 고통의 현실 속에서 희망의 끈을 놓지 않으며,
‘지금 여기’에서 우리 가운데 이미 하늘 나라가 펼쳐지고 있음을 고백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서울대교구 김상우 바오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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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경원 세례자 요한 신부
모든 성인 대축일
요한 묵시록 7,2-4.9-14 1요한 3,1-3 마태오 5,1-12ㄴ
진짜 행복
‘사막의 라이온’이란 영화가 있습니다.
그 영화에는 이런 장면이 있습니다. 집단 수용소에 수용되어 있는 원주민들은 그들의 특공대를
위해 식량을 모아줍니다. 그러나 이 사실은 발각되어 그 대가로 7, 8명이 무작위로 뽑혀
처형을 당하게 되고 그 중에 한 젊은 아기엄마가 뽑힙니다.
그녀는 교수대 위에서 죽음을 바라보며 이렇게 기도합니다.
“하느님 저에게 주셨던 삶에 감사드립니다.”
사실 세상적 시각으로는 그녀가 하느님께 감사드릴 이유가 거의 없었습니다.
그녀는 지독한 가난 속에서 태어났고, 더군다나 식민지 백성으로 설움과 부자유 속에서 살았으며,
남편은 일찍 전사하였고, 이제는 어린 자식을 세상에 홀로 놔둔 채 젊은 나이에 삶을 마쳐야하는
처지인 것입니다. 그러나 놀라웁게도 그런 처지에서도
그녀는 하느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리는 것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세상에서 바라는 복을 달라고 믿고 빌기도 합니다. 복을 받지 못하면 믿는 것도
내버립니다. 점쟁이도 찾아가고, 무당도 찾아가고, 산신당도 찾아가고, 사주팔자 궁합도 믿고,
복을 준다면 아무것이라도 따라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말하는 사람들 가운데, 자신이 잘해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그 믿음 때문에 구원된다고 하면서, 믿는 것과 사는 것을 따로 떼어 놓고
온갖 나쁜 짓을 하면서 스스로는 믿는 사람이라고 자처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타인을 경시하고 자신만이 옳다고 주장하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면서도
자신은 충분히 훌륭한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고 믿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은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에 의해서 구원을 받는다고 가르치지만, 바로 이 자비와
사랑을 받기에 합당한 삶을 또한 살아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바르게 살려고 노력하고
바르게 살지 못했으면 뉘우치고 속죄하면서 계속 바르게 살려는 노력의 연속이 있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하느님이 원하시는 길이 아닌 세상이 좋다고 가르치는 길이 살아가는 기준이 된다면
이는 잘못된 방향의 삶인 것입니다.
오늘은 모든 성인의 날 대축일입니다.
우리가 이 축일을 지내는 것은 우리 신앙의 원천이신 하느님을 바로 알고 믿고 바르게 살다가 간
우리 신앙의 증인이신 성인들의 삶을 우리가 본받고자 하는 데 있습니다.
또한 하느님 나라의 차원에서 성인들이 우리 눈에서는 사라져 갔지만 영적 세계에 있어
우리와 친교를 맺고 있음을 새롭게 하는 날이기도 합니다.
사실 성인들의 삶이란 주님이신 예수님을 위해 사는 것이었고, 예수님의 기쁨을 위해 사는 것이
진짜 행복이라는 사실을 깨달으신 분들이었습니다. 성인들을 본받는다는 것은 우리 역시 세상의
가치를 위해서가 아니라 예수님의 기쁨을 위해 오늘을 살아가는 것이
참 행복임을 깨닫고 실천하는 것이겠지요.
그렇다면 우리는 예수님의 마음을 기쁘게 해드리기 위해 오늘이라는 시간 속에서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할까요?
의정부교구 장경원 세례자 요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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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우 요한 세례자 신부
모든 성인 대축일
요한 묵시록 7,2-4.9-14 1요한 3,1-3 마태오 5,1-12ㄴ
성인이시길…(마태오 5,1-12)
사람의 인생은 생로병사를 거치는 삶이지만,
건강할 때는 그 마지막인 죽음을 생각하지 않으려는 게 일반적입니다.
그렇지만 죽음은 또 다른 세상으로 옮아가는 삶이라는 것을 모르는 이도 없을 것입니다.
모든 성인 대축일!
오늘(1일)은 천국에 계신 수많은 성인을 생각하되, 특히 한국 교회의 주보 성인이신
천주의 성모 마리아, 내가 다니는 본당의 주보 성인, 내 세례명의 주보 성인을 생각했으면 합니다.
그리고 내일(2일)부터 일주일은 연옥에 계신 모든 영혼을 묵상해야겠습니다.
세상에는 통념(通念)이 있습니다.
재물은 많을수록 좋고 재물이 있어야 행복하다, 굶주리는 것은 불행하다, 우는 것은 불행하고
웃으며 사는 것은 행복하다, 지위는 높아야 하고 높은 사람이라야 대우받는다,
마땅히 죄인은 벌을 받아야 한다는 것 등입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이 통념에는
어떤 부정(否定)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곧 모든 생명은 똑같이 소중하다는 사실을 부정하면서
하느님의 보편적인 구원 의지를 약화시킵니다.
오늘 복음의 행복선언에 나오는 각 사람은 우리 통념으로 볼 때 모두 부정되는 이들입니다.
그렇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들 또한 하느님 안에서 모두 행복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말하자면 하느님께서는 사람이 아무리 가난해도, 굶주려도, 또 죄인이라도 버리지 않으시는
분이라는 점입니다. 그래서 우리 통념에서 벗어나서 어떤 생명이라도 소중히 생각하고
돌보면서 살 것을 원하시는 하느님이심을 알 수 있습니다.
성경에 “(나는 너희 하느님이 되려고,) …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레위기 11장 45절)하고, 예수님께서도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한다.” (마태오 복음 5장 48절)고 말씀하십니다.
성인이 되는 길은 어려움과 고통이 뒤따르기 마련이지만, 그분들 또한 우리와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거룩함과 완전함의 덕을 쌓고자 애쓸수록
하느님께서는 그리로 향한 희망과 기회를 허락해 주실 것입니다.
모든 성인 대축일을 맞이하여 우리도 천상의 모든 성인 반열에 들 수 있도록 노력하고
성인들의 전구를 빌며 주님의 필요한 은혜를 간구하도록 해야겠습니다.
춘천교구 정영우 요한 세례자 신부
- ‘오요안 신부의 가톨릭‘
가톨릭사랑방 catholics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