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용민 사도 요한 신부
11월 2일 죽은 모든 이를 기억하는 위령의 날 둘째 미사
지혜서 3,1-9 로마 5,17-21 마태오 11,25-30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복음서에서 가장 위로가 되는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성당에 다니는 개인적인 이유야 다양하겠지만, 신앙생활은, 삶에 지치고, 상처받으며
고통을 겪는 내가 조금이라도 마음의 평화를 얻으려는 것입니다.
비록 열심히 기도 생활은 못해도 주일 미사만큼은 빠지지 않으려 하고, 묵주를 주머니에 넣어 다니며,
판공성사의 의무라도 지키려는 데에는, 신자로 사는 것이 그래도 위로와 행복의 이유가
될 수 있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찾는 평화가 늘 교회의 방식대로 얻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하느님께서 계시다고 믿어도 그분이 느껴지지 않고, 교회의 가르침이 시대에 뒤떨어진 낡은
이념처럼 여겨지기도 합니다. 신앙생활은 역동적인 현대인의 삶에 역행하는 것처럼 보이고,
교회 생활은 동료 신자와의 관계와 인맥이 끊기면 냉담의 길로 들어서는
사회생활의 일부로 느껴집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새로운 박해의 시대입니다.
배교의 칼날 앞에 용맹하게 신앙을 증언한 순교자들의 시대와는 다릅니다.
현대는 교묘한 방법으로 하느님을 부정하고, 신앙을 개인적인 취향으로 둔갑시키며,
교회를 제도와 규율로 사람들을 통제하려는 조직으로 끌어갑니다.
현대의 악은 인간의 영혼을 죄와 불순종의 종으로 만들고, 하느님 없는 삶을 꿈꾸게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선하신 뜻이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감추어지고,
철부지들에게 드러났다고 말씀하십니다. 세상의 무거운 짐과 멍에를 벗는 지혜를
당신의 십자가의 길에서 배우는 철부지들이 참된 지혜를 얻는다고 말씀하십니다.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는 예수님의 역설은 오직 주님을 신뢰하는 사람만이
얻게 될 선물임에 틀림없습니다.
인천교구 송용민 사도 요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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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규 베네딕토 신부
11월 2일 죽은 모든 이를 기억하는 위령의 날 둘째 미사
지혜서 3,1-9 로마 5,17-21 마태오 11,25-30
구약 성경에서 지혜와 슬기는 인간이 받을 수 있는 가장 좋은 선물로 표현됩니다.
이 선물을 통하여 사람들은 하느님의 계획을 이해하고, 하느님의 뜻이 이 세상에서 이루어지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 다른 어떤 선물이 아닌 지혜를 청한 솔로몬이나, 지혜 문학이 들려주는 삶에 대한
성찰들은 인생에서 얻을 수 있는 참된 선물이 무엇인지 알려 줍니다.
지혜 문학은 지혜와 하느님의 뜻을 연결시킵니다. 하느님의 뜻을 아는 것이 곧 지혜이고,
지혜를 얻는 가장 쉬운 길은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것, 곧 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그런데 당시 지혜롭고 슬기롭다는 자들은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못하였습니다.
종교 지도자들은 그들의 지식과 생각에 가려져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려 하지 않았고,
예수님을 믿지도 않았습니다.
마침내 그들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습니다.
오히려 복음에서 철부지로 표현된 이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그분을 믿었습니다.
이렇게 하느님의 뜻이 세상에 드러납니다.
이런 배경에서 오늘 예수님의 말씀은 한 발 더 나아가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르도록
초대합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멍에는 율법을 상징합니다. 이제 예수님께서는 참된 안식을 위한 길을 제시하십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그 가르침을 따르는 것은 구약 성경에서 말하는 지혜를 얻는 길이고,
하느님께 이르는 길입니다.
예수님의 말씀 안에 하느님의 뜻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진정 지혜롭고 슬기로운 이들은 그들을 통하여 하느님의 뜻이 드러나도록 하는
사람들입니다.
서울대교구 허규 베네딕토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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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철호 요한 신부
11월 2일 죽은 모든 이를 기억하는 위령의 날 둘째 미사
지혜서 3,1-9 로마 5,17-21 마태오 11,25-30
제1독서로 봉독한 지혜서를 묵상하면, 연옥은 우리가 ‘조금’ 단련을 받는 곳에 불과합니다.
연옥에서 보내는 시간은 용광로 속의 금처럼 단련을 받아서 하느님의 완전한 번제물이 되려고
준비하는 기간입니다. 연옥에서 단련받는 사람들은 마치 벌을 받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불사의 희망으로 가득 차 있기에 결코 희망을 버리지 않습니다.
그들은 단련을 조금 받은 뒤 은혜를 입게 될 것입니다.
그들의 영혼은 이미 하느님의 손안에 있기에, 그들이 받는 고통은 고통이 아니라 기쁨일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때가 되면 그들을 반드시 당신의 나라로 이끌어 들이실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는 언제나 당신께서 선택하신 이들을 버려두지 않으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한 사람의 범죄 이후 모두가 죄를 짓게 되어 죽음을 겪게 되었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의로운 행위로
모두가 의롭게 되어 생명을 얻게 되었습니다(로마서 5장 12절-17절 참조).
그러나 교만을 버리지 못하는 인간들은 아버지의 선하신 뜻을 알지 못하고 아들을 거부하여
스스로 죽음을 겪게 됩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예수님께서는 오늘도 말씀하십니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예수님께서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신 분이십니다. 그러니 그분께 의탁하면서 그분을 향하여
나아가야 합니다. 그런 사람만이 지옥 불의 고통을 면하고 하느님께 나아갈 수 있습니다.
물론, 우리는 부족함으로 말미암아 연옥의 단련을 피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연옥의 단련을 면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예수님처럼 다른 이들의 십자가를 대신 지는 이들,
곧 벗을 위하여 기꺼이 목숨을 내어놓는 이들입니다.
그들은 고통 가득한 연옥의 단련 대신 이미 이 땅에서 단련을 받은 이들입니다.
이런 이들을 우리는 성인이라 부릅니다.
부산교구 염철호 요한 신부
- ‘오요안 신부의 가톨릭‘
가톨릭사랑방 catholics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