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흥국 경제위기 부른 ‘킹달러’, 한국에도 구조조정 몰고 온다”
박정호 교수가 본 ‘미국 금리인상이 가져온 국내외 경제 변화’
이한경 동아일보 기자 2022-10-15 13:18
“지금 한국은행 내부에서는 고민이 많을 겁니다. 그동안 한국은행
총재가 개인과 기업에 대비할 시간을 주려고 언론 인터뷰를 통해
‘금융통화위원회 회의가 있을 때마다 한 단계씩 금리를 올릴 가능
성이 크다’고 말해왔는데, 문제는 미국이 고공 금리인상 행진을 하
고 있다는 겁니다.
기존대로 한 단계 금리인상을 했다가는 환율 급등, 물가인상, 외화
자금 이탈 같은 악재가 줄줄이 터질 테고, 미국과의 금리 폭을 줄이
려고 두 단계 인상을 단행하면 가계와 기업부채 문제가 심각해질
테니까요.
그럼에도 선택해야 한다면 환율과 물가를 잡는 게 우선입니다. 물가
를 잡는 데 실패하면 국가 전체가 엉망이 될 수 있으니까요.”
신흥국 위기 가져온 ‘킹달러’박정호 명지대 특임교수가 10월 5일
인터뷰에서 들려준 내용은 현실이 됐다. 한국은행은 10월 12일
기준금리를 연 2.5%에서 3.0%로 0.5%p 인상했다.
1999년 기준금리 도입 이후 사상 두 번째 빅스텝(0.5%p 인상)으
로, 10년 만에 기준금리 3% 시대를 다시 열었다. 쉽게 꺾이지 않는
물가와 약세를 이어가는 원화가치, 미국의 3연속 자이언트 스텝
(0.75%p 인상)에 따른 한미 기준금리 역전 폭 등이 이번 결정의
배경이다.
이로써 한국 기준금리는 3.0%, 미국 기준금리는 3.25%를 기록하게
됐다. 미국의 고강도 긴축이 전 세계 경제를 어려움 속으로 몰아넣고
있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대내외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원/달러 환율이 1400원대를 돌파하며
2008년 금융위기 때 수준까지 올랐다. 최근 환율 급등은 달러 강세
에 기인한 면이 크지만 계속 오를 경우 수입 제품의 원화 환산 가격
이 높아져 물가상승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넘쳐나던 유동성 시기가 끝나고 경기침체 우려가
나오는 현 상황에서 박정호 특임교수에게 앞으로 펼쳐질 국내외 경제
상황에 대해 물었다. 연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그는 한국개발연구원
(KDI) 전문연구원 출신의 경제 전문가다.
많은 전문가가 ‘진짜 위기가 오고 있다’고 말한다.
우리 앞에 어떤 위기가 놓였나.
“우선 미국 달러가 킹달러가 되면서 달러 의존도가 높은 신흥국은
경기침체 가능성이 커졌다. 신흥국은 원유나 농축수산물을 달러를
주고 외국에서 사와야 하는데 환율이 높아지면 인플레이션 압박
요인으로 작용해 개인소비가 위축된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전 세계 국가의 모든 부채를 합쳤을 때 달러 부채 비중이 40%를 차
지한다. 달러 부채는 당연히 달러로 갚아야 하는데 킹달러가 됐으니
상환 부담이 커진다.
또 개인과 기업이 모두 어려워지는 상황이 오면 신흥국에 있던 외화
자금마저 미국 등 안전한 곳으로 이동한다. 이로 인해 채무불이행이
나 금융위기, 외환위기를 겪는 국가가 늘어날 수 있다.”
이미 그런 상황에 놓인 국가가 많다고 한다.
“스리랑카, 파키스탄, 엘살바도르, 베네수엘라, 튀니지, 이집트, 발
트 3국 등 20여 개국은 이미 국제통화기금(IMF)에 부채를 상환할
수 없는 상황이니 돈을 추가로 빌려달라고 요청한 상태다.
여기에 IMF에 조만간 도움을 요청할 것으로 예상하는 국가를 포함
하면 40여 개국이 채무불이행 위험을 안고 있다는 보고서가 나왔다.”
지난해와 완전히 달라진 경제상황의 출발점은
미국 인플레이션과 금리인상인가.
“미국의 금리인상 기조가 예상보다 고강도인 것도 있지만 그 배경을
들여다보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라는 돌출 원인이 주범이라
고 볼 수 있다. 지난해부터 다들 올해 물가가 심상치 않으리라는 예상
은 했지만 이렇게까지 높아질 거라고는 생각을 못 했다.
그런데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으로 여러 기초 원자재, 에너지
자원 수급이 어려워졌고 그것이 전 세계적으로 연쇄 작용을 일으켜
지금의 고공 물가 행진을 만들었다.”
물가를 잡기 위해 경기침체를 감수하고도 금리인상을
강행하는 미국의 선택은 옳은 것인가.
“정부 입장에선 물가를 잡는 것이 최우선이다. 어느 나라, 어느 정부
든 물가를 잡는 데 실패해 국민이 ‘우리나라는 물가를 잡을 능력이
없다’는 인식을 가지면 그야말로 모든 게 바뀌어버린다.
실례로 초인플레이션(한 달에 50% 이상 상승)을 경험한 몇몇 중남
미 국가 국민은 저축을 하지 않는다. 수년 동안 모은 돈이 하루아침
에 짜장면 한 그릇 가격밖에 안 된다면 누가 돈을 모으겠나.
그렇게 해서 국가의 지속적 성장을 돕는 자금원인 저축률이 떨어지면
저성장 기조가 고착화된다. 지금 중남미 국가들이 빈곤 악순환, 저성
장 악순환 형태를 보이는 이유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연준) 부의장이나 유럽중앙은행 총재가
금리인상과 관련해 ‘미안하지만 지금은 물가를 잡아야 할 때’라는
표현을 쓴 데는 지금은 물가를 잡기 위해 일정 부분 구조조정이나
경기침체를 감내하겠다는 의미가 담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