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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50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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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이야기 밥이야기
후리맨 추천 0 조회 138 13.02.05 13:22 댓글 20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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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3.02.05 13:32

    첫댓글 후리맨님, 정말로 배가 고픈게 뭔지 잘 아시는 분이네요.
    취사장 보초를 서면서 배가 터지도록 잡수셨다니, 밥은 원도 한도 없겠네요.
    어려웠던 시절은 지나고 나면, 요즘 젊은이들이 모르는 추억이 우리들에게 남나 봅니다.

  • 작성자 13.02.05 15:39

    훈련소 취사장에서 무식하게, 배터지게 먹은 것 생각하니 참 웃습다는 생각이듭니다.
    저희집 애들도 자랄때 그랬었지만 아침밥은 잘 먹지를 않고 등교를 하더군요.
    그런데 결혼후 직장 다니면서도 습관으로 그런지 밥을 먹지않고 출근을 합니다.
    그렇게해서 배고파서 일을 어떻게 할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제 생각으로는
    아침밥을 든든히 먹어야 공부나 일을 잘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 13.02.05 14:02

    요즘 군대야 먹는 것 많이 좋아졌더라구요. 당시로서는 꿈도 못꾼 통닭이나 피자까지 나오고...
    참 배고팠던 시절 자취하셨네요. 저는 가정교사 수입이 짭짤해 하숙으로 4년간 보냈습니다.
    하숙도 학교 앞에서 해 점심도 하숙집에서 챙겨먹고 ~~.
    젊어 못먹고 고생한 분들 노년에 건강 더욱 조심하셔야 합니다.
    늘 유의하시고 좋은 일만 있으시길~~~

  • 작성자 13.02.05 15:24

    얼마전 서울 근교에 부대가 있는 집안 조카내 애들 면회를 갔는데,
    부대 면회소에서 젊은 애들이 좋아하는 치킨, 통닭, 피자를 배달해서
    시켜먹더군요. 그러니 옛날 모양으로 면회올때 떡같은 것 잔뜩해올
    필요가 없다고 합니다. 돈만있어면 배달이 되니까. 하여튼 편리한
    세상이 되었습니다. 야초님도 건강 조심하세요. 감사합니다.

  • 13.02.05 14:34

    그러네요. 군대는 안 가 보아서 잘 모르겠지만. 이야기는 많이 들어서
    마치 제가 가본 것처럼 생각이 납니다. 얼마나 배가 고팟으면
    탈영도 하고, 민가에 가서 밥을 훔쳐 먹기도 했을까요?
    저도 어릴적 오빠네 집을 찾아 갔는데 하루종일 40리 길을 걸어서
    배가 등짝에 달라 붙었는데, 아무도 없고 솥에 밥은 없고
    고구마를 한솥 쪄놓았길래,그걸 꺼내다 먹는데, 광주리로 덜어다놓고
    열무김치는 항아래째 갖다놓고 마루에 걸터 앉아 먹는데
    한도 끝도 없이 먹다보니 나중에 숨도 못 쉴 만큼...
    당시 35키로 밖에 안되는 나의 배에 그리 많은 음식이 들어갔다는게 도무지.. ㅎㅎ ^*^

  • 작성자 13.02.05 15:27

    은숙 방장님도 그런때가 있었습니까 ?
    사람이 배고프면 체면이고 뭐고 없는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 삭제된 댓글 입니다.

  • 작성자 13.02.05 15:36

    60년대 최전방 GOP에서 군복무시 월남 파병되었다 돌아온 장병들이
    월남에서 잘먹었는 이야기를 많이 하더군요. 그당시로는 전방 한국군으로서는
    아득한 꿈같은 이야기를 말입니다. 사람에게는 역시 먹는 일이 중요하지요.

  • 13.02.05 16:43

    고생을 하시면서 그래도 대학을 졸업하신 의지력에
    찬사를보내드립니다 정말 고생 많으셨군요,
    뭐니 뭐니해도 배고픈 설움이 가장 크다는데..
    이젠 모두잊으시고 배부르게 많이 잡수세요,특히 구정날..ㅎㅎ

  • 작성자 13.02.05 18:26

    아이구~~ 과찬이십니다. 아시겠지만 그당시는 워낙 모두가 어려웠지않습니까 ?
    또 제가 전공이 자연과학이라서 더더욱 졸업후 갈만한 직장이 요새와는 달리
    학교쪽이나 대학원 진학외에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20명 졸업생들 중에서 목구멍이
    포도청인 저만 회사쪽으로 빠지고, 나머지 대부분이 학교쪽이나 대학원으로 갔습니다.
    졸필을 잘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건강하시고, 구정 잘 쉬세요.

  • 13.02.06 10:54

    실감납니니다.저도 7사단 8연대(백암산) 191Gp근무를 했습니다.
    그 때는 왜 그렇게 배고프고 추웠는지.그러나 Gp는 특식이 있어 그런대로 괜찮았죠.
    타임머션을 타고 그 때로 회귀하는 것 같아 기분이 묘합니다.
    그러나 그 시절이 그립습니다.

  • 작성자 13.02.05 22:57

    와아~~ 홑샘님! 넘 반갑습니다. 제가 있었던 부대는 3연대입니다.
    1.21사태 일어난 68년 봄부터 가을까지 전방 사단이 모두 철책선 건설에 동원되었는데,
    그때 저희 부대가 백암산쪽 철책선 건설했습니다. 그때 철책선 건설하느라 모두 고생이
    많았습니다. 그놈의 1.21사태 때문에 개인적으로는 복무기간도 연장이 되고 그랬지만
    국가적으로는 향토예비군이 생겼고, 남방한계선에 철책선이 생겼어니 그 이전과 이후는
    안보 상태에 엄청남 차이가 있지요. 감사합니다.

  • 13.02.06 10:53

    선배님이시군요.
    제가 근무할 땐 7사단의 3연대.5연대.8연대 지역을 순회하면서 근무했죠.
    제가 근무하던 철책선안의 191Gp를 가보고 싶습니다.

  • 13.02.05 21:25

    여기도 밥 이야기가 이어지는 군요.
    동일한 상황 속에서 각자 지나치며 살아왔던 모양이네요.
    수고도 많이 하셨을 테고요.

  • 작성자 13.02.05 22:52

    "서부전선 이상없다"라는 유명한 반전 소설에서도 군대 이야기에는 먹는 이야기가 많다고 나와 있습니다.
    군대 급식 상황이 좋아진 요새도 주일에 병들이 종교 행사 참석시 간식 잘 나오는 곳을 찾아간다고 합디다.
    군대란 자유가 없는 매인 곳이라서 그런지 먹는 것에 관심이 많이 가는 모양입니다. 감사합니다.

  • 13.02.05 22:23

    저는 취사병으로 근무했는데,조금 늦게 입대 하셨드라면 원없이 드렸을텐대요.^^

  • 작성자 13.02.07 23:13

    와아~~ 그렇습니까 ? 멋집니다.
    항상 배가 고픈 쫄병들에게는 취사병이 인기가 좋았습니다.
    감사합니다.

  • 13.02.06 16:49

    도무지 실감이 안나네요.그런시절이 잇었다는게
    울 남자는 닭이며 넘쳐나는게 음식이었기에 군에서 잔뜩 살이 올라
    고향 어머니가 못 알아 보시더라는데요,,,몰래 훔쳐 먹었나?후훗

  • 작성자 13.02.06 22:26

    휴전후 50~60년대는 그런 시절이었습니다. ㅎㅎㅎ~~~
    군대가 보직에 따라서 사회보다 훨씬 더더욱 격차가 심합니다.
    고생하는데 잘못 걸리면 목숨을 걸어야하고, X뺑이치지요.
    그러나 편한데 잘 걸리면 배부르게 먹고, 그 편하기가 가히 천국이지요.

  • 삭제된 댓글 입니다.

  • 작성자 13.02.06 22:23

    지금의 대한민국은 먹는 것이 풍요롭지만, 휴전후부터 60년대는 정말 어려운 시절이었습니다.
    집안 형편이 좀 괜찮아서 고향에서 향토장학금을 부처오는 학생들은 그런대로 괜찮았습니다
    저는 고향에서 보내오는 향토장학금이 전연 없어니까 매우 힘들었습니다.
    그러나 군대갔다가 복학해서는 좀 괜찮았습니다
    말씀대로 취사장 보초를 서면서 정말 무식하게 먹었습니다.
    위장은 만땅이 되었는데 입으로는 걸신 들린듯이 밥이 계속해서 들어가더군요.
    군대 가기전 학과 동기들과 찍은 그때 사진을 보면 정말 피골이 상접합니다.

  • 삭제된 댓글 입니다.

  • 작성자 13.02.07 22:58

    그때는 정말 산다는 처절했습니다.
    재학중 입대하여 훈련소 거처서는 화천 북방 최전방 휴전선 근처로 배치받아서 갔는데,
    그렇치 않아도 그동안 많이 굶어서 몸이 야위었는데, 쫄병때는 먹는 것도 불실한데 맨날
    하는 일이라고는 내키만한 미군 공병 곡깽이가지고 산 능선상의 교통호 파는 것같은 일을
    하였어니, 죽을 맛이지요. 그래도 탈영하지 않고 억지로 깡으로 견뎠어니 지금 생각해보니
    참 대단했던 것 같습니다. 나중에 병장달고 고참 되어서는 좀 괜찮았습니다. 이제는 모두가
    흘러간 일이지만, 때때로 힘들던 그때가 종종 머리에 떠오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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