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인의 의무와 건전한 가르침 그리고 아시아 복음화
티토 2,1-8.11-14; 루카 17,7-10 / 성 대 레오 교황 학자 기념일 / 2023.11.10.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하느님께 대한 인간의 의무를 가르치고자, 주인에 대한 종의 의무를 말씀하셨습니다. 들판에서 밭을 갈거나 양을 치는 노동으로 피곤하게 하루를 보낸 종이 집에 돌아왔을 때 주인은 그들이 의무를 충실하게 이행한 데 대한 치사를 하면서 종처럼 띠를 매고 그들을 식탁에 앉게 한 다음 그들 곁으로 가서 시중을 들어줄 수도 있겠으나(루카 12,37), 오히려 주인의 권리를 내세워서 종들에게 주인의 먹을 것을 준비시키고 주인이 먹고 마시는 동안 시중을 들게 하고 나서 나중에 먹고 마시게 할 수도 있습니다(루카 17,7-9). 앞선 사례는 종에 대한 주인의 자세를 말하는 것이고, 나중 사례는 주인에 대한 종의 자세를 말하는 것이 다를 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피조물에 지나지 않는 인간을 섬기시려는 창조주 하느님의 뜻에 따라 공생활 동안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셨으며 그 상징적 결론으로서 최후의 만찬을 앞두고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셨습니다. 그리고는 제자들에게도 서로 발을 씻어주라고 당부하시며 성체성사를 제정하셨습니다. 그래서 성체성사가 거행되는 미사는 섬김의 성사가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이는 제자들에게 스승으로서 본을 보여준 섬김의 자세였고, 하느님께는 아버지에 대한 아들의 도리로써 갈등 속에서도 순종하는 본을 보여주셨습니다. 십자가 수난을 앞두신 예수님께서 공포와 번민 속에서 수난의 운명을 피하고 싶으신 속내를 드러내시며 청하셨지만 하느님께서 그 수난을 받아들이시기를 원하셨으므로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는 아들의 심정으로 받아들이셨습니다.
이처럼 하느님께 순종하면서 사람들을 섬기는 것이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고 따르는 신앙인의 길입니다. 이 길을 걷는 것이 마땅하고 옳은 이유는 그에 앞서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특권을 무상으로 부여받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세상에서 행해지는 ‘귀족의 의무’에 비견되는 ‘신앙인의 의무’(Fideles Obliges)입니다. 또한 사도 바오로가 제자 티토에게 당부하는 ‘건전한 가르침’의 내용이기도 합니다. 신앙인의 의무를 당부하는 이 건전한 가르침은 사도 바오로가 예수님을 계승한 것이면서, 또한 교회의 역사에서 사도들의 후계자들이 거듭 확인해 온 바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확인의 기회는 역대 공의회였고, 고대교회의 4대 공의회는 무려 천5백 년을 건너뛰어 현대의 제2차 바티칸 공의회로 계승되었습니다.
오늘 교회가 기념하는 레오 교황은 칼케돈 공의회(451년)를 주재하였는데, 이로써 니케아 공의회(325년)와 콘스탄티노플 공의회(381년), 에페소 공의회(431년) 등에서 이단과의 치열한 논쟁 끝에 가까스로 윤곽을 정한 신앙 교리가 최종적으로 확정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신앙 교리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참 하느님이시며 참 인간이시라고 선언함으로써 신성과 인성을 모두 인정하였습니다. 서로마 제국의 멸망이라는 대혼란과 격변을 겪으면서 5백 년만에 정돈된 이 교리를 두고, 6세기의 교황 그레고리오 1세는 이 네 공의회가 네 복음서에 버금가는 권위를 지니는 성전(聖傳)이라고 선언했습니다.
하지만 이로부터 천5백 년이 지난 후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 이르러서야 이 네 공의회가 미처 완수하지 못한 두 가지 과제가 공식 의제로 다루어질 수 있었습니다. 첫째 과제는 종에 대한 주인의 자세에서 비롯되는 것으로서, 가난하고 고통받는 이들에 대한 신앙인의 의무를 선언하는 것이었고, 둘째 과제는 주인에 대한 종의 자세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평신도들에 대한 성직자의 의무를 선언하는 것이었습니다.
첫 과제는 사목헌장의 첫 머리에서, 가난하고 고통받는 이들의 기쁨과 희망, 슬픔과 번뇌는 모든 신앙인들이 자신의 기쁨과 희망, 슬픔과 번뇌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선언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과제는 평신도 역시 그리스도의 사도로서 인정되어야 하며 이 평신도 사도직을 활성화시키는 데에 교회의 사활이 달려있다는 선언으로 나타났습니다.
하지만 이 두 가지 과제는 선언되기만 했지 교회의 공식 사목정책으로 부상되지는 못했습니다. 공의회가 끝난 지 반세기가 다 되어 가지만 아직도 현재진행중인 사안이라는 뜻입니다. 베네딕도 16세와 프란치스코, 이 두 교황 사이의 인수인계 과정을 그린 영화 ‘두 교황’에서 암시하는 바가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베네딕도 교황은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이 임무를 질서 있게 넘겨주면서 진행 중인 두 사안의 중요성도 인정했습니다. 언제나 시대별로 문제들은 끊이지 않고 생겨나지만 변함없이 교회가 최우선으로 관심을 두어야 할 사안은 가난하고 고통받는 이들에게 복음을 선포하는 일이라는 것과, 아무리 교계제도의 권위가 존중되어야 하고 성찬례를 거행하는 사제의 품위가 훼손될 수 없는 것이라 해도 하느님 백성 전체가 예수님을 계승해야 한다는 공동 책임보다 더 존중될 수는 없으며 사제 역시 이 공동 책임을 의식하고 이에 충실한 하느님 백성 가운데에서 부르심을 받는 것이라는 엄연한 사실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는 것, 이 두 사안의 중요성을 인정한 것입니다. 그런 맥락에서 현 교황이 추진하면서 발표한 두 문서가, <신앙감각>과 <공동합의성>에 관한 문서들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사안과 문제의식은 하느님 백성 전체가 부활 신앙에로 각성되어야 한다는 데로 초점이 모아집니다.
예루살렘에서 일리리쿰(지금의 알바니아)까지 넓은 지역에 그리스도의 복음을 선포한 사도 바오로는 기성 사도들이 복음을 선포한 지역들을 피해서 아직 그리스도의 복음이 알려지지 않은 지역에 선교하는 개척자를 자임하였는데(로마 15,19ㄴ-20), 직제자가 아닌 비주류 출신인데다가 늦깎이로 선교에 나선 그의 겸손어린 명예의식 덕분에 결과적으로는 복음이 서방 세계에 퍼지고 그리스도교와 그 교회가 서방화되는 단초가 되었습니다.
이는 당시 지중해 문화권을 정치적으로 지배하던 그리스-로마 문화권을 복음화시키는 어마어마한 선교적 성취로 이어졌고, 더군다나 사도 바오로가 로마에서 치명당한 이후 250여 년 간 로마제국이 총력을 다한 박해를 이겨내고 그리스도 신앙 승인과(밀라노 칙령, 313년)과 그리스도교 국교화(도미티아누스 황제, 395년)를 얻어 낸 성과라서 그 역사적이고 문화적이며 종교적인 의미가 자뭇 큽니다.
하지만 그리스-로마 문화권을 복음화시킨 이러한 선교적 흐름은 서로마 제국이 멸망한 후에도(476년) 로마 제국에 이어 서유럽 지역을 차지하게 된 게르만족을 복음화시킴으로써(클로비스의 개종, 496년), 동유럽과 튀르키예 지역을 지배하던 동로마 제국(395년~1453년)의 강역을 복음화시킨 동방 정교회와 함께 서방세계를 그리스도교화시켜서, 그리스도교가 서방의 종교로 자리잡게 하였습니다.
하지만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교회쇄신 여정을 마무리하려는 현 프란치스코 교황이 그 마지막 과제로서 제시한 위 두 문서는, 역설적으로 그 동안 천5백여 년 동안 그리스도교를 주도해 온 서방 세계의 복음화가 선교적으로는 성장 한계에 도달했음을 역설적으로 보여줍니다. 공의회 이후에도 반세기가 넘어가도록 서방 세계는 여전히 침체 일로를 걷고 있기 때문입니다. 베네딕토 16세 교황이 유럽의 재복음화를 위하여(자의교서 ‘언제 어디서나’, 2010년) 야심차게 설치했던 특별 평의회조차도(새복음화촉진평의회, 2011년)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해서 그의 자진 퇴임 후에 슬그머니 해체되었던 것도 그 흔적입니다.
그리하여 대희년을 맞이하여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아시아의 복음화, 즉 지난 천5백여 년 동안 거의 아무런 선교적 성취를 거두지 못했던 동방 세계의 복음화에 대해서 이러한 기대를 표명한 바 있습니다: “전 세계의 교회와 함께, 아시아 교회는 하느님께서 태초부터 지금까지 하신 것에 경탄하면서, 그리고 제1천년기에는 십자가를 유럽 땅에 심었고, 제2천년기에는 아메리카와 아프리카 땅에 심은 것처럼, 제3천년기에는 이처럼 광대하고 생동적인 아시아 대륙에서 신앙의 큰 수확을 얻을 수 있으리라는 것을 확신하면서 그리스도교 제3천년기의 문턱을 넘어가고자 합니다”(아시아 교회, 1항).
이러한 교황의 기대는 프란치스코 하비에르가 동방 세계의 복음화를 시도했던 15세기 이래로 지지부진한 아시아 복음화의 노력을 가일층 가속화시키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의 선교 지향은, 예루살렘에서 일리리쿰에 이르는 넓은 지역보다 훨씬 더 넓은, 넓다 못해 광대한 아시아 대륙을 겨냥한 야심찬 계획이었습니다. 그리고 동양 선교에서 거의 유일한 선교적 성공 사례인 한국교회가 이 아시아 복음화 과업에 선봉이 되어 주기를 기대하는 것도 교황청으로서는 당연한 일이고, 그러한 여망이 세 차례에 걸친 교황 방한(요한 바오로 2세, 1984년과 1989년; 프란치스코, 2014년)으로 나타났던 것입니다. 신자가 불과 1,800여 명밖에 되지 않는 몽골교회를 최근에 프란치스코 교황이 한국 주교단을 대동하고 방문했던 그 충정에도 이러한 여망은 여실히 드러나 있습니다.
교우 여러분,
요한 바오로 2세, 베네딕도 16세, 프란치스코, 이 삼대에 걸친 교황의 재위 기간에 교황청이 품게 된 아시아 복음화에 대한 열망은 오늘 복음의 말씀이 한국교회의 신앙 쇄신과 아시아 복음화 노력에서 과연 여과없이 실천될 수 있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그것은 하느님께 순종하면서 사람들을 섬기는 것, 바로 그것입니다. 하느님 나라에 대한 신앙인의 의무와 건전한 가르침이 한국교회와 더 나아가서는 한민족의 현실 안에 뿌리내리고, 이어서 그 줄기가 한민족의 이웃인 아시아인들의 현실 안에까지 자라나고 꽃도 피우고 열매까지 맺을 수 있을까 하는 선교적 과제의 시금석입니다. 신앙인의 의무와 건전한 가르침은 신자들의 존재이유이며, 선교와 복음화는 교회의 존재이유이기 때문입니다. 되살아나야 할 부활 신앙을 바탕으로, <신앙감각>과 <공동합의성>이 살아있는 교우촌을 세움으로써 이 존재이유는 채워질 수 있을 것입니다.
“세상의 자녀들이 저희끼리 거래하는 데에는 빛의 자녀들보다 영리하다.”(루카 16,8)고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오늘날 한류의 흐름이 유럽과 아메리카는 물론 아시아 전역에서도 거세게 휘몰아치고 있는 시대의 징표를 보면서, 이 한류를 복음화하는 과제가 한국의 천주교인들을 존재이유를 충족시킴은 물론 복음적으로도 영리하게 만들 것이라는 선교적 기대가 메아리칩니다. 아시아의 더 가난한 이들에 대한 복음적 관심과, 교계제도에 속한 성직자들이 평신도들의 선교의식을 섬기는 선교적 관심이 샘솟기를 오늘 복음 말씀으로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