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at's why I'm pleased today.
나는 오늘 무엇이 기쁜가? 무엇보다도 먼저 살아 있는 사람인 것이 기쁘다. 우선 물을 마실 수 있는 사람인 것이 기쁘고, 음식을 먹을 수 있어서 기쁘다. 외국에 나가 태극기를 만나면 반가워지듯이 문득 대한민국 사람인 것이 기쁘고 한국말로 시를 쓰는 사람인 것이 새삼스럽게 기쁘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볼 수 있고, 새소리에 귀를 기울일 수 있고,
생각이 내키면 새로 산 자전거를 타고 우체국 사서함으로 우편물을 찾으러 갈 수 있어서 기쁘다. 가끔은 사진관으로 사진을 뽑으러 가고, 음반 가게에 들러 새로 나온 음반 한 장을 사 올 수 있어서 기쁘다.
끼니때가 되어 잔치국수 집을 찾아 잔치국수 한 그릇을 사 먹는다든가, 오는 길에 은행이나 문구점에 들르기도 하고, 빵집에 들러 좋아하는 소보로빵이나 슈크림빵, 몽둥이빵을 사 올 수 있어서 기쁘다.
아, 우리집, 우리집이 있어서 얼마나 다행이랴. 내 집에 식탁이 있다는 사실, 내가 앉아서 글을 쓰거나 책을 읽는 앉은뱅이 책상이나 컴퓨터가 있다는 사실, 오디오와 책들이 있다는 사실이 그럴 수 없이 기쁘고 고맙다.
더하여 연둣빛 녹차를 만들어 마실 수 있는 다기 세트가 있어서 좋다. 지인들이 사준 아직 개봉하지 않은 몇 통의 녹차는 나를 얼마나 부자의 마음을 갖게 하는가! 아파트 거실에 앉아 있으면 커다란 유리 창문으로 앞산이 그대로 보이고, 그 위로 열린 하늘이 또 고스란히 내 집 마당처럼 건너다보인다.
비 오는 날, 비 내리는 것이 보기 좋고 바람부는 날은 바람 부는 것이 보기 좋다. 눈이 내리는 풍치는 더 말할 것이 있으랴. 식탁에 앉을 때 나는 바깥쪽을 바라보고 앉고 아내는 유리창을 등지고 앉는다. 음식을 먹으면서도 나는 아내의 얼굴을 마주하며 바깥 풍경에 눈 길을 줄 수도 있다. 아내 등 뒤로 보이는 풍경은 그대로 아름다운 그림이다. 그것도 사계절 언제나 살아서 움직이고 변하는 그림이다.
생각하면 무엇 하나 기쁘지 않은 게 없다. 나무 한 그루, 풀꽃 한 송이 내 앞에 있고 산이나 강과 마주함도 기쁘다. 게다가 나는 얼마나 많은 사람에 에워싸여 살고 있는가. 내가 이름을 외우고 있는 수많은 사람,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이 나에게는 기쁨의 씨앗이다.
그들이 보내주는 전화나 문자메시지, 이메일이 기쁨이고 더러 보내주는 자필 편지는 더욱 큰 기쁨이다. 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나를 사랑해주고 있는가. 그것을 생각하면 주르르 눈물이 흐른다. 맹자 말씀대로 부모님 아직도 생존해 계시고 흩어져 살고 있지만 형제들 무탈함이 어찌 아니 기쁘랴.
오랜 세월 함께 부대끼며 사느라 늙어버린 아내는 나에게 얼마나 든든한 삶의 동지인가. 더하여 우리 아이들, 아들아이와 딸아이가 있다는 건 또 얼마나 커다란 마음의 위안이며 축복이겠는가.
6개월간 죽음의 터널을 지나오면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나를 위해 마음을 졸이고 눈물을 흘리며 기도를 해주었던가. 한두 사람이아니었다. 수많은 사람이 마음을 모아 하느님께 통사정하듯 기도를 해 주었다. 그야말로 기도의 강물이었다. 그래서 다시 살아났다. 하느님도 그 사람들의 기도를 외면하실 수 없어 그 기도에 응답해 주신 것이다.
나에게 잠시 지상에서의 휴가를 주신 것이다. 이 어찌 기쁜 일이 아니겠는가.
세상에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많았구나. 그건 확실한 인생의 중간 결산이었다. 자기가 타인에게 진정 사랑받는 사람이라는 것을 확인할 때보다 더 행복하고 기쁜 시간은 없다. 그것도 아무런 사심이 없고 계산속이 없는 사랑일 때 더욱 그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