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세 노병의 애국가 독창(혹은 선창)
이원우
애국가라면 자다가도 일어난다. 거짓말이 아니다. 그러니 그 애국가를 직접 부르게 될 경우, 진짜 가슴이 벅차오르는 건 당연지사라 한들 어쩌랴. 평생을 애국가와 지낸 세월이라 해도 그 또한 지나치지 않음을 밝힌다.
교직 생활 42년 동안 어찌 된 셈인지 애국 조회 때 지휘 겸 선창을 일찍부터 맡게 되었다. 정년 퇴임식을 겸한 수필집 출판기념회 때도 그 두 가지를 직접 한꺼번에 했으니, 더 강조해 무엇하랴! 그런 무지막지한 전횡(?)은 그러니 호평으로 귀결되지는 않았을밖에. 부끄럽다는 고백이 입안에 맴돈다.
21년 동안 무료 노인 학교를 운영했었다. 매주 토요일 오후 어김없이 말이다. 수업 시작 전에 애국가를 4절까지 제창했다. 나 대신 지휘봉을 잡는 제자(노인)가 생기는 데까지는, 그리 오랜 세월이 소요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가사를 잘 기억하지 못하니, 강산이 두 번이나 바뀌는 동안 거의 내가 1인 2역을 해냈었다. 노인 학생들을 인솔해 동남아 단체 여행을 세 번 갔는데, 교민학교나 한국인 학교 학생들과 만났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애국가를 같이 부른 것이다. 내 지휘 겸 선창!
또 있다. 3년에 걸쳐 옛 부대 장병 대상 무료로 마흔 시간 안보 강연을 하면서도 애국가를 그렇게 소화(선창 겸 지휘)했다. 이만하면 행여 기네스북 기록에 오를 수 있지나 않을는지 가끔 혼자 고개를 갸웃거린다.
애국가에 대한 백미白眉는 그러나, 거기 있지 않으니 이걸 낭패라 해야 하나 어쩌나. 하나의 개인사에 지나지 않긴 해도 말이다. 몇 가지만 적어 보자.
7년 전 나는 부산 사직 야구장에서 애국가 선창先唱을 1만 명 관중 앞에서 했다. 그날 해설위원이며 캐스터가 극찬을 아끼지 않았으니 원도 한도 없었다. ‘성악가’란 말로 그들이 치켜세워 주더라.
한번은 제법 규모가 큰 케이블 방송에 출연하여 신청 곡을 ‘애국가’로 했겠다? 사장조에 반주를 맞추어서. 내 목소리가 전파를 타기 직전에 사회자가 하는 말이 이랬으니, 이 또한 하나의 우스개라 할 수 있지 않을까? 대한민국에서 애국가를 가장 정확하게 잘 부르시는 이원우 가수를 소개한다고…. 하나 ‘가장’이라는 부사가 부담스러워도 그걸 ‘정말’로 대체한다면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라고 진단한다.
어쨌든 뭐니 뭐니 해도 내 애국가가 제대로 평가(?)를 받는 또 하나의 장소는 현충원이다. 19만 영령들이 잠들어 있는 거기에서 나는 애국가를 수시로 독창하는 것이다. 그것도 군복을 입은 채니 숙연해질밖에. 특히 사병 묘역에 잠들어 있는 채명신 장군 앞에서 그러노라면 눈물이 쏟아지기도 한다. 그러다가 한번은 쓰러질 뻔했다, 일사병으로 말미암아! 그럴수록 더 자주 가야 하겠다는 결심을 하는 한다. 유튜브가 아니라 군악대(국방부) 반주에 맞춰서 애국가를 내 목청에 싣는 거다. 국악대는 현충원 구역 내에 있다. 스스로 전망하건대 가능하다고 본다. 현충원장과 군악대장을 만나는 게 우선이다.
83세 노병이 마지막 설 무대는 거기가 아니라는 게 옷깃을 여미게 한다. 전우 중에 나라를 위해 두 다리를 잃은 예비역 장교가 있다. 그도 오래전에 한국시리즈에서 시구始球한 적이 있는지라 둘이 의기투합하여 나는 애국가를 부르고(선창), 그는 마운드에서 공을 던지는 (시구) 등의 역할 분담을 하고 싶은 거다. 그럼으로써 국민에게 하나의 시사점을 던지고 싶은 것이다. 10개 구단주球團主 및 단장 혹은 감독에게 비슷한 내용의 편지를 써 놓고 부치려는 중이다.
가까운 시일 내에 프로 시범 경기가 시작된다. 이어 정식으로 시즌이 개막되면 내가 다시 그 전우와 함께 애국심 어깨를 겯고 야구장으로 들어설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83세 노병은 애타게 그날을 기다린다. 혼자가 아니니 덜 외롭다고 하자.
이원우
•76년 『새교실 지우문예』 3회 천료, 79년 『수필문학』 초회추천(김승우 발행), 81년 수필집 『밀려나는 새벽』 출간 등단, 83년 『한국수필』 2회 천료, 97년 『한글문학』 소설 신인상
•87년 수필부산문학회 입회
•국제PEN한국본부 이사(가입심의위원), 한국소설가협회 이사, 한국수필가협회 이사, 한국가톨릭문인회 이사, 대한가수협회 회원 등
•화쟁포럼문화대상(소설), 경기PEN문학대상, 경기문학인대상 등
•소설집 『연적의 딸은 살아 있다』 외 5권, 수필집 『열아홉 과부의 스물아홉 딸』 외 14권, · 기타 3권, 총 24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