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태현과 이명박의 차이를 모르면 ‘나라사랑’을 할 수 없다.
조금 생뚱맞은 제목이긴 하다. “스타 골든벨”이란 프로에서 ‘이성진’이 전화를 걸어서 유명연예인에 정답에 대하여 상의하는 상황에서, 이성진과 어울린 팀원들의 사고가 전혀 달랐음에도 불구하고 ‘차태현’의 말이니 무조건 신뢰한다면서 정답을 바꾸는 장면을 보았다. ‘차태현’은 남자 영화 배우 중에서 소문난 크리스찬 아닌가? 여자 연예인에서 핑클이 독보적인 크리스찬이라면, 남자 연예인에서는 ‘차태현’이 독보적이다. 결국, 정답이었다. 기독교인이기에 방송에서 무조건 거짓말 안할 것이라고 동료 연예인이 자신의 생각을 모두 버리고 배팅하여 확인되는 순간만큼 확실히 그의 이미지가 상승되는 상황도 없다.
기독교인이기에 ‘거짓말 안한다’ ‘진실만을 말한다’는 신뢰는 많이 사라졌다. 오히려, 현실적으로 다가오는 주제는 ‘종교’의 정치 이용이다. 김대중전대통령이 가족마다 종교를 달리했던 것으로 유명했다면, 미국의 좌파대통령 카터대통령의 회고담에는 1979년의 박정희대통령도 자녀들의 종교를 달리하는 것을 선택했다. ‘자녀’를 분신 차원으로 봉사시키게 해서 ‘조직표’를 막강하게 얻으려는 책략이 그것이다. 모르긴 몰라도 1979년은 박정희대통령이 정신적으로 대단히 힘들었을 시기이다. http://www.chosun.com/politics/news/200601/200601150018.html
이 둘이 혼란되면 정치적 효과로 이렇게 드러날 것이다. 자유민주주의를 해치는(동의어는 ‘국민의 이익을 해치는’. 다른 어떤 것도 될 수 없다.) 선택을 마음놓고 하면서도, 무조건 기독교인이니 믿어야 한다는 방식이다. “바다를 건너다”가 고발하는 글쓰기로서 최다 주제는 단연, ‘기독교윤리’와 ‘공산사상’의 기술적 잡탕밥이다. 여기에, 공산사상을 전혀 모르는 구세대 기독교인들이 맹목적인 ‘불신자’보다도 일억배 더 해충같은 담론에 빠져 들어가기에, 신학 박사면 여기에 빠지지 않을까 싶었는데, 나의 착각이었다. ‘박사’가 아니라 ‘박사할애비’라도 탁류같은 세태를 뚫지 못할 수가 있을 것이다. 기독교인들이 기독교사상만 알고 공산사상은 문민정부 김영삼대통령이래에 잘못 소개되었으니 착각하는 정서가 늘어나면, 기독교인들이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을 섬기는 그 자세로 공산사상에 자발적으로 세뇌가 되는 일에 접할 수 있다. 김영삼대통령 지지 기독교인들은 ‘유일신’을 섬겨야 하면서, 김대중대통령과 나약해진 박정희대통령의 정치철학을 ‘다신교’의 좌익신학이라고 비판적으로 내세운다. 그러나, 실은 제대로 아는 이들에겐 눈물나게 어리석은 바보들의 착각이다. 김영삼대통령 지지 기독교인들에 ‘조갑제기자’를 통해서 퍼지는 담론의 상당수에는 ‘공산불온사상’이 잡탕밥으로 장착되어 있었다. <종교국가>를 향한 목적 도달치에는 모든 정치인이 다 미달이며 50보 100보 수준이고, 객관적으로 건강한 정치철학은 박정희대통령의 정치철학 뿐이었다. 몇 년 간 이 주제만 집중적으로 써댔다고 본다.
<“양 金 갈라서기와 노무현대통령의 분노”==>북한과 한민전이 지도했던 1987년 대선의 맥락속에서 해석해야>
“-[구국의 소리]방송은 운동권에 당면 정세 분석과 이에 따른 구체적 투쟁 방향까지 제시하고 이것이 주사파에 의해 수용, 실천되는 경우가 적지 않은 것으로 공안당국은 분석하고 있다. 예컨대 지난 해 2월 5일 [올림픽 공동개최], [민중참여 통일회담 개최]등 1백7개 항의 투쟁구호가 방송됐는데, 이것이 이후 공동올림픽 쟁취투쟁, 통일투쟁 등에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이러한 경향은 87년 말 대통령 선거를 계기로 두드러졌다는 것이 주사파 내외의 공통된계기이다. 당시 주사파의 대부분이 [비판적 지지]를 선거전술로 채택했으나 선거결과 실책으로 판명되고 한민전이 방송을 통해 제시했던 [후보단일화]노선이 옳았다는 결론이 내려짐에 따라 [방송의 권위]를 절대적으로 인정하게 되었다고 한다.”(강영진, <집중연구 주사파>, [신동아], 1989년 8월호)
황우석교수의 연구 실적에 대한 검증이 이뤄진 이후에 한 연구원이 익명으로서, 알고 나선 존경할 수 없다는 고백과 비슷하게 ‘기독교인’신분을 좌파 정치에서 상대의 방어막 붕괴로 이용한 김영삼대통령을 알고서는 더 이상 존경할 수는 없다. 다만, 김대중 지지자와 다수의 좌익들을 속였던 바 만큼의 드러난 “우파 전향도”를 영구하게 고정시키고, 모호한 구석으로 자유민주주의 해치는 자들을 이롭게 하는 구석 부분도 마저 고쳐서, 진짜 새 사람이 되시라고 여러 번 주장할 수 밖엔 없다. 무엇보다 압권은 김영삼대통령의 ‘민주화선언문’일 것이다. 1993년 무렵까지의 전대협*한총련의 모든 행동강령이며 좌파들의 확산 방법이 구체적으로 기록되어 있다. 위의 인용문을 놓고 생각해보면 이러한 결론이 가능하다. 1987년 무렵에 오히려 친북좌파상층부의 명령을 거역한 쪽이 김대중전대통령이라는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김영삼대통령이 삼당합당을 통해서 보수주의로 전향을 하여 김대중전대통령 지지자마저도 속이게 되는 계기는, 노무현대통령을 어떠한 모습을 만들게 했는가는 상상이 어렵지가 않다.
행정도시법을 통한 두 번의 위헌청구소송에서 행정도시법의 기반을 깔아준자가 김영삼대통령의 3차 국토종합계획이었음을 생각한다면, 한나라당에서 김영삼대통령 지지 세력이란 자들마저도 속이는 바탕을 느끼게 된다. 뿐만 아니라, 오늘 날 스타 좌익 지식인으로 이름 날리는 대부분은 김영삼대통령 때 해금되어서 활동 날개를 달았다. 좌익 지식인 해금이 남북통일에 도움된다는 식의 기독교인의 말이라고 믿으라 강요했던 김영삼대통령 지지자의 말로만 믿었지, 오늘날 처럼 좌익 지식인들이 그때 풀린 바에서 약진하여 우파를 잡도록 함을 허락한 바가 아니다.
한나라당은 김영삼대통령과 각을 세웠다가 두 번의 대선을 모두 실패한 이회창총재의 교훈이 있다. 김대중대통령세력들이 ‘국보법’을 해체해야 훗날 자신들의 행위가 면책된다고 여기듯이, 김영삼대통령지지자들도 권력적 지반을 잃지 말아야 죄인으로 몰리지 않는다고 여겼을 것이다.
“북한→한민전→주사파가 최고 강령으로 삼아온 자주*민주*통일은 이제 국내 운동권의 보편적 주제가 되었다”(앞의 글, 388~389쪽)는 주장을 통해보면, ‘자유민주주의’라고 붙여서 줄줄 읽지 않고 사이를 끊어버리고 앞에 말을 이상하게 같다 붙이는 자들은 본질을 의심할 수 있을 것이다.
<우파에 붙어서 좌파를 감싸고 우파를 경멸하는 바이러스의 원조의 방패막이로서의 기독교>
어느 덧 ‘문민정부’에 기득권을 잡았던 기독교 세력들은 김영삼대통령세력들의 복권을 기대하게 되었다.
김영삼정부 때는 대한민국 국민의 자유를 해치는 자들에 대한 ‘인도적 주장’이 많이 나왔다. 김대중 정부 때는 딱 김영삼 정부 만치 하겠다는 주문을 국민은 할 수 밖에 없는데, 같은 스타일로 더 많이 좌경으로 나아갔고, 노무현대통령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러한 상황에서 좌파 경력을 부정하지 않거나 평생을 동문회장으로 봉사함을 떠벌이고 다니는 단순한 교회 경력 많은 자로서 이명박시장에 대하여 상당 기간의 지지를 보였다.
조선닷컴 100자평에 김영삼이 픽업했으니 이재오씨가 정치를 잘 배웠을 것이란 말이 나와서 비판했더니, ‘극우’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한겨레신문]이 ‘원조 전교조’ 원내대표 탄생을 환영한다는 기사가 연속 쏟아지자 침묵이다.
한나라당이 정권을 쟁취하려면 우파에 줄을 서서 우파를 씹고 좌익을 높이는 ‘김영삼 바이러스’를 퇴치해야만 승리한다.
그것은 ‘이명박’신뢰가 아니라 ‘차태현’신뢰로 돌아가는 것을 말한다. 대통령 수준에서 ‘기독교 종교 국가’를 포기하고서, 자유민주주의 가치로 주된 종교를 연합하여 질서를 세우려 했던 박정희대통령이, 기독교 안에 공산주의 이념을 끼워 맞추려는 김영삼대통령보다는 일억배 건강한 정치 철학인 것이다.
좌익의 틀거리를 조금만 벗어나면, 우파정당에 우파적 부름을 받고자 좌파들에 인연을 싹 끊어버리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이전의 죄를 속죄하는 것과 동일시되는 것이다. 그것이 없이 좌파 코드를 끌고 다니며 ‘기독교’신분을 정치에 이용하는 자는, 술담배 즐기며 주일을 많이 팽개치는 수준과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민법 104조에서 현저하게 특정 분야에 배움이 적은 사람의 약점을 이용하는 것은 불공정 법률행위로서 무효라고 법전에 기록되어 있다. 기독교 분야에서 뿐만 아니라 종교와 관련없는 퀴즈 프로에서조차도, 동료 연예인에게 “쟤는 기독교인이기에 거짓말 안해”하는 신뢰를 줄 수 있도록, 김영삼 지지 파벌은 이제는 성숙된 “바다를 건너다”가 제시하는 이념 기준을 통과하라. 그래야, 차태현 수준의 신뢰성 회복이다. 노인들에게 잡상인들이 어찌 솔직담백으로 안 보이겠는가? 계속 적는 글의 대부분의 주제는, 우파노인들의 지식 적음을 이용하여 문민정부 때에 탄생된 한나라당 해당질 바이러스이며, 그 대부분은 ‘다신론’ 비판의 이름으로 기독교 뇌관에 ‘공산사상’과 잡탕밥 하는 것이다.
‘차태현’은 믿을 수 있다. 정말, 교회를 어려서 오랫동안 다닌 사람 같다. 이명박시장은 교회 다닌 사람보다는 운동권 동문회장이 1순위요 건설회사사장이 2순위로 보인다. 나름대로 능력자로 한나라당에서 인재이긴 하되 절체절명의 순간에 이명박시장을 믿으라는 순간이 안 오길--경선 낙방 절대기원-- 바랄 뿐이다.
첫댓글 이명박시장 경선 절대 기원은 저도 동감입니다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