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마복음 7장] 1 批(칠 비)判(판가름할 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批判하지 말라 2 너희의 批(칠 비)判(판가름할 판)하는 그 批判으로 너희가 批判을 받을 것이요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3 어찌하여 兄(맏 형)弟(아우 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4 보라 네 눈 속에 들보가 있는데 어찌하여 兄(맏 형)弟(아우 제)에게 말하기를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하겠느냐 5 外(밖 외)飾(꾸밀 식)하는 者(사람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後(뒤 후)에야 밝히 보고 兄(맏 형)弟(아우 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 # 외식하는 마음은 사람 앞의 명예를 추구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 상태입니다. 선택받은 ‘형제들 사이에서’ 를 전제로 하시는 말씀입니다. 형제란 예수님의 증거 하심을 마음으로 받고 성령의 법을 따라가는 자를 말합니다. 이 가르침은 성령의 법안에 있는 가르침이지 성령의 법 밖에 있는 자기의 의로 나름의 신앙을 가지고 있는 이방인에게는 전혀 해당이 안 되는 말씀입니다. 물론 그들은 이 말씀을 인생들의 윤리적 관점으로 듣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가르침 속에는 상황 따라 변하는 비진리인 윤리는 없습니다. 형제들 사이에서 누가 누구를 비판한다는 것은 상대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된 사람에게 있어서 다른 형제를 비판하는 것은 불법입니다. 다만 무리의 리더가 명문화된 법령을 따라 교훈을 하거나 징계를 가할 수는 있습니다. 비판은 ‘경쟁’ 이라는 것을 바탕으로 한 시기나 질투에 의한 것입니다. 우리가 싸워야 하는 대상은 자기 마음 안에 있는 악을 향하는 마음이지 타인의 속에 들어 있는 악이 아닙니다. 악이 없고, 그래서 죄를 안 짓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모두 죄인이기에 서로 조언을 하고, 서로 넘어지면 일으켜 세워 주는 것만이 같은 죄인들끼리 할 수 있는 흠에 대한 처신입니다. [잠언 25장] 17 너는 이웃집에 자주 다니지 말라 그가 너를 싫어하며 미워할까 두려우니라 [잠언 11장] 9 邪(간사할 사)慝(사특<못되고 악함>할 특)한 者(사람 자)는 입으로 그 이웃을 亡(망할 망)하게 하여도 義(옳을 의)人(사람 인)은 그 知(알 지)識(알 식)으로 말미암아 救(건질 구)援(당길 원)을 얻느니라 [잠언 21장] 10 惡(악할 악)人(사람 인)의 마음은 남의 災(재앙 재)殃(재앙 앙)을 願(원할 원)하나니 그 이웃도 그 앞에서 恩(은혜 은)惠(은혜 혜)를 입지 못하느니라 6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眞(참 진)珠(구슬 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 저희가 그것을 발로 밟고 돌이켜 너희를 찢어 傷(상처 상)할까 念(생각 염)慮(생각할 려)하라 # 이렇게 ‘거룩한 것’ 이 무엇인지 아는 자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잠언 11장] 22 아름다운 女(계집 녀, 여)人(사람 인)이 삼가{조심함, 피함}지 아니하는 것은 마치 돼지 코에 金(황금, 쇠 금)고리 같으니라 [잠언 26장] 6 미련한 者(사람 자) 便(편할 편)에 奇(뛰어나다, 기이할 기)別(나눌 별)하는 것은 自(스스로 자)己(자기 기)의 발을 베어 버림이라 害(해칠 해)를 받느니라 [잠언 26장] 17 길로 지나다가 自(스스로 자)己(자기 기)에게 相(서로 상)關(빗장 관)없는 다툼을 干(방패 간)涉(건널 섭)하는 者(사람 자)는 개 귀를 잡는 者와 같으니라 [잠언 27장] 22 미련한 者(사람 자)를 穀(곡식 곡)物(만물 물)과 함께 절구에 넣고 공이로 찧을지라도 그의 미련은 벗어지지 아니하느니라 7 求(구할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門(문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8 求(구할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잠언 8장] 17 나를 사랑하는 者(사람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懇(정성 간)切(갈다 끊을 절)히 찾는 者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 구해야 할 것은 이렇게 거룩함으로 나아가게 하시는 말씀인 성령의 법, ‘지혜’ 입니다. 9 너희 中(가운데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면 돌을 주며 # 떡이란 영이 먹고 사는 하나님의 말씀이며, 돌이란 사람의 말입니다. 10 生(날 생)鮮(고울 선)을 달라 하면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 생선이란 ‘고기’ 로도 표현이 되는 지혜를 뜻합니다. 앞서 말씀하신 지혜의 양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의뢰하는 마음이 중요한 것이라는 가르침과 같은 말씀이 다음의 말씀입니다. [잠언 15장] 17 여간 菜(나물 채)蔬(나물 소)를 먹으며 서로 사랑하는 것이 살진 소를 먹으며 서로 미워하는 것보다 나으니라 [잠언 17장] 1 마른 떡 한 조각만 있고도 和(화할 화)睦(화목할 목)하는 것이 肉(고기 육)饍(반찬 선)이 집에 가득하고 다투는 것보다 나으니라 11 너희가 惡(악할 악)한 者(사람 자)라도 좋은 것으로 子(아들 자)息(숨 쉴 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求(구할 구)하는 者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12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待(기다릴 대)接(사귈 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待接하라 이것이 律(법 율)法(법 법)이요 先(먼저 선)知(알 지)者(사람 자)니라 # 이것이 율법이라고 하십니다. 보신 대로 성령의 법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또한, 이 성령의 법을 전하는 자가 곧 선지자라는 것도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왜 이렇게 하는 것이 율법이며 선지자라고 말씀하시는 것인지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내가 그리스도의 몸의 일부인 것과 같이 형제도 그리스도의 몸의 일부이기 때문입니다. 서로 지혜의 말씀을 가르쳐주고, 넘어지면 일으켜 주며, 비판하기보다는 사랑하는 마음으로 상하지 않도록 하라는 말씀입니다. 물론 치리자가 몸 전체를 상하게 하는 우를 범하려 할 때에나 범했을 때 교훈이나 징계를 주는 이유는 몸 전체를 위해서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의 몸의 일부인 것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같은 몸의 일부인 형제 또한 그리스도의 몸의 일부인 것을 인정해야만 합니다. 내가 형제를 인정하지 못하면 내가 나를 인정하지 않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경주해야하는 선의 경쟁은 비움을 통한 낮아짐으로 하는 것입니다. 그 낮아짐을 향한 경주에서 비판이나 시기나 질투는 발생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잠언 19장] 19 怒(성낼 노)하기를 猛(사나울 맹)烈(세찰 렬)히 하는 者(사람 자)는 罰(죄 벌)을 받을 것이라 네가 그를 건져 주면 다시 건져 주게 되리라 13 좁은 門(문 문)으로 들어가라 滅(멸망할 멸)亡(망할 망)으로 引(끌 인)導(이끌 도)하는 門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者(사람 자)가 많고 14 生(날 생)命(목숨 명)으로 引(끌 인)導(이끌 도)하는 門(문 문)은 좁고 길이 狹(좁을 협)窄(좁을 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 # 이미 당신도 알고 있습니다. 성령의 법이 가르치시는 길을 따라가는 것은 좁고 협착합니다. 하지만 이 길에서만 거룩함에 나아갈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 길은 세상에 속한 사람의 관점에서만 협착한 길입니다. 이 길로 가면 세상에 속해서는 절대로 얻을 수 없는 ‘마음의 쉼’, 곧 안식을 얻을 수 있습니다. 잠시의 괴로움을 참고 영원히 공휴일을 사는 길로 갈 것이냐, 아니면 잠시의 괴로움이 싫어서 고민하는 삶을 끝까지 살다가 흙으로 돌아가고 말 것이냐를 선택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은혜로 나를 선택하셨고 이제 그 길을 갈 것이냐 말 것이냐의 선택은 내가 하는 것입니다. 중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