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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그의 프로필 사진
몇 달 전에 약간은 우연히 읽게 된 책이 있었어.
<나의 삼촌 브루스 리>.
너무 재미있게 읽었단다.
그리고 그 소설의 지은이 천명관에 홀딱 반하게 되었단다.
그래서 그의 소설을 두어 권 구입했고, 이번에 <고래>라는 책을 읽은 것이란다.
그의 대표작 중에 하나라고 하는데, 2004년에 쓴 책이고, 당시 문학동네 소설상을 받은 상이라고 하는구나.
앞표지를 넘겨 책날개의 프로필에 나와 있는 그의 사진을 보고 깜짝 놀랬단다.
알라딘 서점에 있는 단정한 용모에, 지적으로 보이는 뿔테 안경, 비교적 긴 머리칼이 자연스러운 그의 프로필 사진과는 대조적이었거든.
무뚝뚝한 표정에 머리를 빡빡 밀어서, 머리칼 하나 보이지 않고,
눈썹마저 흐릿한 사진이었거든.
음, 날(生) 것 같은 사진.
10년 정도 흐른 시간인데, 요즘 사진이 더 젊어 보이더구나. ㅎㅎ
그래서 얼마 전에 읽었던 <나의 삼촌 브루스 리>의 사진도 확인해 봤어.
알라딘의 프로필과 유사한 사진이더구나.
곰곰이 생각해보니 아빠의 10년 프로필 사진을 보면,
남들에게 숨기고 싶을 정도로 거칠게 생겼으니,
그의 사진을 보고 뭐라 할 입장이 아니구나
1. 멀고 먼 옛적에 시작한..
소설 <고래>을 아빠가 한 마디로 평가해 보려고, 몇 줄을 썼다가 백스페이스를 쭉 눌러 버렸단다.
좀처럼 짧게 평가할 수 없는 소설이구나.
왜 그런지, 아빠가 그로 그 줄거리를 좀 이야기해줄께.
시작부터 범상치 않은 등장인물이 나온단다.
120kg의 거구의 춘희
양아버지로부터 벽돌을 만드는 걸 배우고, 벽돌공장에서 일하던 벙어리 소녀 춘희.
춘희가 살던 평대라는 동네에 극장에서 큰 화재로 인해 수백 명이 죽은 사건이 일어났는데,
그 화재의 범인으로 몰려 감옥에서 오랫동안 살다가
사면을 받고 다시 평대로 왔는데,
대화재 이후 평대는 모두가 떠난 폐허의 도시가 되어버렸단다.
감옥에서의 오랜 세월은 그를 스물일곱 살로 만들어 놓았어.
자, 그 춘희의 이야기를 해줄께
춘희의 이야기를 하려면 아주 오랜 옛날로 돌아가야 해.
…
멀고 먼 옛날,
국밥 집을 하던 못생긴 노파가 한 명 있었어.
노파는 자신이 버리고 눈을 애꾸로 만들어버린 딸이 하나 있었는데,
그 딸이 어느날 찾아왔어.
그 딸은 젊은 나이인데도 백색머리였고, 꿀벌 한 무리가 그를 따라다녔어.
그 출현이 마치 무협지에서나 나오는 등장인데, 전혀 어색하지 않았어.
그런데 당시 노파는 며칠 전에 빙판길에서 넘어져 꼼짝 못하고 누워 있었어.
딸은 노파에게 모아둔 돈을 달라했지만, 노파는 끝끝내 거절하였고,
딸은 노파를 죽였어. 하지만, 노파에게 찾은 것은 몇 푼 안 되는 돈이었어.
그 돈을 가지고 자취를 숨겼단다.
…
2. 금복
자, 이번에는 또 다른 여인 금복이의 이야기를 들어야 해.
금복은 깊고 깊은 산골짜기에서 술주정뱅이인 홀아버지와 함께 살다가
동네에 온 생선장수의 트럭을 얻어 타고 그곳에서 도망쳤어.
생선장수를 따라 바닷가까지 갔다가 금복은 난생 처음 고래를 보았어.
그리고 그 이후 그는 고래를 마음속에 품고 다녔어.
금복은 돈을 버는 데 수단이 좋았어.
생선장수와 함께 살게 되었는데, 생선장사보다 생선을 말려서 팔아 많은 돈을 벌게 되었어.
그런데 금복은 늙은 생선장수를 버리고 ‘걱정’이라고 부르는 덩치 큰 젊은이와 눈이 맞아 같이 살았단다.
그런데, 그 걱정이 일하다가 크게 다쳐서 금복은 하루 종일 ‘걱정’만 보살폈어.
그러다가 ‘칼자국’이라는 한쪽 손에 손가락이 2개씩 밖에 없는 남자를 알게 되었어.
그는 예전에 일본에서 깡패로 조직의 넘버원까지 올라간 이력이 있었는데,
자신이 사랑하는 게이샤에게 사랑을 얻기 위해 손가락을 세 개나 자른 무모한 순정파 깡패였어.
그런 ‘칼자국’은 금복에게 접근하여 극장을 데리고 갔어.
금복은 극장에서 영화를 보면서 고래를 처음 봤을 때보다 더 큰 충격과 환희를 느꼈어.
전혀 다른 세상이 있다는 것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어.
그 이후 ‘칼자국’은 가끔 금복을 극장에 데리고 갔어.
한편 ‘걱정’은 계속 누워만 있었고 회복의 기미를 보이지 않았어.
‘칼자국’과 금복이 점점 가까워졌지만, 금복은 ‘걱정’을 버릴 수 없었어.
금복은 ‘칼자국’과 함께 살면서 딴 방에 금복을 데리고 와서 보살펴 주는 선에서 스스로 타협안을 내놓았어.
‘걱정’은 ‘칼자국’에 질투를 하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을 질책을 하고는,
자살을 하기로 결심했어. 그런데 그때 ‘칼자국’이 말리려고 뒤따랐지만 실패했어.
‘걱정’은 비가 억수로 쏟아지는 날 깊은 바다 속에 몸을 던졌어.
‘칼자국’은 안타깝게 ‘걱정’을 잡지 못했어.
그런데 곧바로 작살에 찔리고 말았어.
‘칼자국’이 ‘걱정’을 죽인 줄 알고 눈이 뒤집어진 금복이 작살을 들고 와서 ‘칼자국’을 찌른 거야.
‘칼자국’은 억울하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한마디도 하지 못하고 죽었단다.
그 이후 금복은 바닷가를 떠났어. 그 사이에 나라에서는 전쟁도 일어났어.
정착하지 못하고 여기저기 방황하던 4년 뒤 금복은 어떤 코끼리 헛간에서 아이를 출산했어.
그런데 왜 장소가 낯설고도 낯선 코끼리 헛간이냐고?
그것이 이 소설의 특징이야.
뜬금 없는 인물들이 등장하고, 코끼리 헛간처럼 뜬금 없는 장소로 나온단다.
하지만, 그 이유는 명백하게 있었어.
그 코끼리 헛간은 식당을 하는 쌍둥이 자매의 것이었어.
쌍둥이 자매는 써커스를 했었는데, 그때 같이 지내던 코끼리가 늙어서
서커스로부터 버림을 받았을 때부터 보살펴 주고 있었던 거야.
근데 출산을 앞둔 금복이가 급한 대로 들어간 곳이 바로 그 코끼리 헛간이었던 거지.
금복은 아이를 출산을 했는데, 태어났을 때부터 거구였어.
정처 없이 돌아다니면서 몸을 막 굴렸기 때문에 누가 아빠인지는 몰랐어.
그런데 그 아기가 덩치가 산만하고 얼굴도 큼지막한 것이 4년 전에 죽은 ‘걱정’을 꼭 닮았어.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그랬어.
그 딸 아이의 이름을 춘희라고 지었어.
뒤늦게 금복과 춘희는 쌍둥이 자매에게 발견되었고,
쌍둥이 자매는 금복과 춘희를 잘 보살펴주고 같이 지냈어.
춘희는 점점 자라면서 코끼리와 친하게 지냈어.
말을 하지 못하는 춘희는 더욱 코끼리와 친하게 지냈고, 코끼리와 말도 주고 받았어.
춘희가 좀 자라자 금복은 춘희가 함께 길을 떠났는데,
그래서 정착한 곳이 아빠가 앞서 이야기한 노파가 죽고 비어버린 식당이었단다.
3. 파란만장
처음에는 평범한 식당을 운영했어.
그런데 금복은 예전에 좋아하던 커피가 생각나서 마셨는데,
그 향을 처음 맡아본 평대의 사람들은 밥보다 오히려 커피를 찾았다고 하는구나.
그래서 금복은 식당을 그만두고 그 자리에 다방을 차렸고, 성행했단다.
그런데 운명의 날을 맞이하게 돼.
어느 비가 억수로 쏟아 붓는 날, 건달들의 공격을 받아 벌어놓은 돈을 모두 빼앗겼어.
그런데, 폭우로 젖어버린 천장이 찢어지면서 무너져 내렸는데,
그 안에 수많은 돈과 땅문서들이 쏟아져 내렸단다.
노파가 평생 숨겨두었던 돈이 발견된 거야.
그야말로 금복은 돈벼락을 맞은 거지.
금복은 그 돈으로 자신을 보살펴 주었던 쌍둥이 자매와 코끼리를 데리고 왔어.
춘희도 코끼리를 보자 너무 반가워했어.
말 못하는 춘희에게 코끼리를 유일한 친구니까 말이야.
그때쯤 금복은 다방을 즐겨 찾던 文이라는 사람과 친하게 되었는데,
文은 예전에 벽돌 공장을 했었어.
그래서 금복은 벽돌 공장을 짓기로 했어.
그녀가 가지고 있는 것은 돈 뿐이기 때문에 걱정할 것은 없었어.
그런데, 벽돌공장을 짓고, 벽돌을 잔뜩 만들었는데, 사가려는 사람이 없었어.
인부들의 임금도 밀릴 정도로 그 많던 돈도 거의 바닥이 났단다.
그런데 그때 벽돌의 품질을 알아본 이들이 찾아왔어.
그 이후로 벽돌은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고, 다시 갑부가 되었단다.
금복은 여자였지만, 호탕한 사업자 기질이 있었어.
뿐만 아니라 불의를 참지 못했고, 정도 많았어.
그래서 버림받은 창녀 수련도 걷어들였고,
옛날 한때 같이 지냈던 생선장수가 찾아오자 그에게 차를 뽑아주었어.
그리고 운수업을 시작하게 되었는데, 그것도 돈을 벌게 해주었단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자신의 딸에게만은 모질게 대했단다.
…
어느날 생선장수의 차에 코끼리가 치여 죽는 사고가 났는데,
쌍둥이 자매와 춘희가 엄청 슬프게 울었고,
이에 금복은 코끼리를 박제하는 놀라움을 보여주었어.
춘희는 이후 코끼리의 영혼과 이야기하는 아이가 되었단다.
그런데, 코끼리는 자신이 거기에 서서 사람들의 볼거리가 되어 있는 게 싫다면서
불에 태워 달라고 했어. 그래서 춘희는 그렇게 했단다.
코끼리 박제가 불에 타는 작은 소란이 있었지만,
금방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그 사건은 사라져갔단다.
…
어느날은 벌떼를 잔뜩 몰고 온 외눈박이에 여인이 찾아왔어.
그 여인의 주위에는 수천 아니 수만 마리의 벌들이 감싸고 있었어.
누군지 알겠지? 노파의 딸이었어.
몇 안 되는 꿀벌 한 무리를 달고 다니던 옛날과는 차원이 달랐던 것이지.
바람과 함께 나타난 그녀.
그를 대적하는 금복.
그 장면을 머릿속에서 상상을 해보면 바로 영화 속에 한 장면처럼 떠오르더구나.
그런데 이 싸움은 시시하게 끝이 나고 말았단다.
금복이 여왕벌이 들어 있는, 양봉용 벌집을 가지고 온 거야.
그러자 벌떼들이 그 벌집으로 모두 들어가 버렸고, 그때 벌집에 불을 질러 버린 거야.
삼손이 머리카락이 잘리면 힘을 잃는 것처럼, 노파의 딸도 더 이상 아무런 힘이 없었어.
금복은 노파의 딸이 섭섭해 하지 않을 만큼 돈을 주었고,
노파의 딸은 다시 길을 떠나 숲으로 들어가 버렸다고 하는구나.
…
그런데 이상한 일이 일어났어.
금복이 점점 사업을 확장시켜나면서 점점 남자처럼 변하는 거야.
금복의 자신의 일생일대의 꿈이었던 극장 건설을 할 때쯤엔 외모도 완전히 남자처럼 변했어.
그리고 자신이 거둬들였던 창녀 수련을 사랑하게 되었어.
수련의 말에 따르면 금복이 진짜 남자가 되었다고도 했어.
그런데 어느날 수련이 남자, 그것도 금복을 찾아온 옛 고향친구와 함께 야반도주를 했단다.
금복은 수련을 깊이 사랑했었나 봐.
수련이 떠난 이후 금복은 깊은 슬픔에 빠졌어.
그가 세운 극장은 고래 모양을 지었단다.
금복이 첫눈에 반했던 고래와 극장. 그것을 모두 만족하는 것이 고래 모양의 극장이었던 거야.
극장은 일대 성행을 하게 되어 금복에게 또 큰 돈을 벌게 해주었어.
하지만, 금복은 이때부터 슬픔 속에 살았고,
죽은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어.
걱정, 칼자국, 그리고 본 적도 없는 노파까지..
그러다가 극장 안에서 금복의 실수로 불이 났는데,
이상하게 극장 문이 밖에서 모두 잠겨 있었던 거야.
그래서 극장안에 갇혀 있던 수백명이 모두 죽고,
불은 다른 건물로 번져 평대의 거의 대부분의 건물을 태우고 말았어.
물론 금복도 그곳에서 죽고 말았단다.
4. 춘희
경찰은 조사 끝에 벙어리인 춘희를 용의자로 체포해갔고,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방생활을 했어.
춘희는 덩치가 무척 커서 감방에서 누가 감히 건들일 수 없었어.
많은 시간이 흘렀어.
십대 후반에 들어온 감방은 이십 대 후반이 되어서야 나올 수 있었단다.
감옥에서 나왔지만, 춘희는 갈 곳이 없었어.
그녀가 갈 곳은 벽돌공장 하나뿐이었어.
대화재 이후 폐허가 된 평대의 텅 빈 벽돌 공장에 그렇게 돌아온 거야.
드디어 다시 소설의 첫 부분으로 돌아왔구나.
소설의 첫부분에 나오는 그 장면은 이렇게 오랜 역사가 담겨 있었던 거야.
그곳은 먹을 것도 변변치 않았고, 춘희는 돈도 없어서
자연 속에서 먹을 것을 찾아야 했어. 완전 야만인이라고 해야 하나.
춘희는 벽돌을 만들기 시작했어.
딱히 누구한테 팔려고 했던 것도 아니야.
춘희가 어렸을 때부터 배운 것이라고는 그것밖에는 없으니까.
그런데, 어느날 누가 찾아왔어.
예전에 트럭 운전사였어.
그는 아주 어렸을 때 아빠를 따라 벽돌공장을 찾아왔다가 어린 춘희를 본 적이 있었어.
그런데 그들이 다시 만난 것이지.
그런데 덩치가 커다란 춘희에게 호감을 갖게 되었어.
그래서 자주 찾아오게 되었고, 그들은 사랑을 하게 되었어.
춘희에게는 찾아오지 않을 것만 같았던 사랑.
그렇게 아이까지 갖게 되었는데, 그 소식을 트럭운전사에게 이야기했더니,
그는 무슨 두려움이 있었는지 새벽에 몰래 도망을 갔어.
그런데, 나중에 다시 자신이 잘못했음을 알고 다시 벽돌 공장에 찾아오다가 그만 교통사고로 죽고 말았단다.
아빠는 내심 해피엔딩이었으면 좋겠다 싶었는데, 지은이는 냉정했단다.
춘희는 혼자 아이를 낳았어.
그리고 그곳에서 춘희는 혼자 아이를 키웠어.
그런데 어느 추운 겨울날 열병이 난 아이를 데리고 병원을 찾아 길을 떠났는데,
하지만, 병원에 도착도 못해보고 길에서 아이는 죽고 말았어.
다시 한번 해피엔딩의 희망을 짓밟힌 기분이었단다.
춘희는 참을 수 없는 자신의 삶에서 가장 고통을 받았단다.
그렇게 춘희의 이야기는 끝이 났어.
…
그리고 세월이 한참 흐른 뒤에 어떤 건축가가 대형 극장을 짓는 일을 하게 되었어.
그가 좋은 벽돌을 찾으려고 몇 날 며칠을 돌아다녔지만, 그런 벽돌을 찾지 못했어.
그랬다가 한참 만에 버려진 벽돌 공장을 찾았고,
그곳에 커다란 공터에 엄청나게 많은 벽돌이 쌓여 있는 걸 발견하게 되었단다.
그 품질은 그가 기다렸던 최고의 품질의 벽돌이었어.
그곳에는 여자 유골이 발견되었어.
그래 춘희의 유골이었어.
자신의 아이를 잃고 춘희는 그곳에서 평생 한과 고통을 벽돌로 빚은 거야.
그 벽돌에는 춘희의 혼과 아이의 혼이 담겨 있지 않았을까?
건축가는 위대한 건축물을 지었고,
그는 이름 모를 위대한 벽돌공에게 모든 공을 돌린다고 이야기했단다.
그렇게 소설은 끝이 났단다.
지은이 천명관은 우리의 일상에서 일부분을 확대해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재주가 있는 것 같구나.
그의 다른 작품들이 기대되더구나.
책제목 : 고래
지은이 : 천명관
펴낸곳 : 문학동네
페이지 : 455 page
펴낸날 : 2004년 12월 24일
책정가 : 13,800원
읽은날 : 2016.10.10~2016.10.14
글쓴날 : 2016.10.24,2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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