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균 申明均 (1889~1940)】
「『한글』을 통해 ‘한글맞춤법통일안’ 제정 사업에 앞장」
1889년 경기도 고양군(高陽郡) 독도면(纛島面) 동독도리(東纛島里)(현 서울특별시 광진구 자양동 부근)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평산(平山)이며, 호(號)는 주산(珠汕)이다. 한성사범학교(漢城師範學校)를 졸업하였다.
1911년 한성사범학교를 졸업할 무렵 주시경(周時經)을 만나 민족의식에 눈을 떴다. 주시경이 운영한 조선어강습원에서 1913년까지 고등과를 수료하였다. 이때 함께 수학하였던 동기생인 최현배(崔鉉培)·권덕규(權悳奎)·이병기(李秉岐) 등과 함께 한글을 연구하였다. 국권회복의 일환으로 한글을 연구하고 보급한 주시경의 가르침에 따라 교육자로 재직하면서 학생들에게 우리글과 역사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시키고 민족의식을 고양하는데 주력하였다. 1914년에서 1922년까지 독도공립보통학교(纛島公立普通學校)(현 서울경동초등학교)에서 교원으로 재직하였다. 1927년에는 보성전문학교(普成專門學校)에서도 강의를 하였으며 1930년 9월에서 1934년 4월까지는 동덕여자고등보통학교(同德女子高等普通學校)(현 동덕여자고등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쳤다.
1921년 12월 3일 서울 휘문의숙(徽文義塾)(현 휘문고등학교)에서 조선어연구회(朝鮮語硏究會)가 조직될 때 참여하였다. 조선어연구회는 국어의 정확한 법리를 연구하고 주시경의 학문과 정신을 이어받아 우리말과 글을 통해 민족의식을 고취하고자 하였다. 1922년 5월 9일 민립대학교 설립을 목적으로 하였던 조선교육협회의 제2차 정기총회에서는 이사로 선임되어 활동하였다. 또한 1923년 3월 24일 각 지역의 청년단체를 연합할 목적으로 개최된 전조선청년당대회(全朝鮮靑年黨大會)에서 대종교(大倧敎) 중앙 측 준비위원으로 활동하였다. 같은 해 5월 10일 조선민립대학기성회 경성부(京城部)가 설치될 때 집행위원으로 선임되기도 하였다.
1924년 6월 조선교육회관에서 개최된 제1회 및 제2회 언론집회압박탄핵회(言論集會壓迫彈劾會)에 위원으로 참여하였다. 이를 통해 일제의 언론집회 탄압에 항거하며 맞서 싸웠다. 이러한 활동으로 인해 그 해 6월 20일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가 이틀 뒤인 6월 22일에 풀려났다.
1927년 2월 한글의 연구와 보급을 위해 한글사를 설립하여 편집 겸 발행인으로서 잡지 『한글』을 출판하였다. 또한 1929년 3월 26일 개최된 조선소년총연맹(朝鮮少年總聯盟) 상무위원회(常務委員會)에 소년잡지 측을 대표하여 참석하기도 하였다. 같은 해 11월에는 조선어사전편찬회에 발기인으로 참여하여 연구부(硏究部) 위원으로 선출되었다. 조선어사전편찬회는 우리말 사전이 하나도 없던 당시 국어사전의 편찬을 위해 조선어학회가 주도하여 결성된 단체이다. 1931년 1월에는 이중건(李中乾)과 함께 이 단체의 간사를 맡아 사전 편찬에 주력하였다. 그러나 일제의 조선어말살정책으로 인해 많은 탄압을 받았다.
1931년 1월 10일 조선어연구회가 조선어학회(朝鮮語學會)로 개칭된 후 1932년 1월 9일에 간사장으로 선출되어, 일제의 탄압으로 출판이 중지되었던 기관지 『한글』을 통해 ‘한글맞춤법통일안’ 제정 사업에 앞장섰다. 1933년 4월에는 조선어학회의 회계로 선출되어 활동하였다. 또한 1933년 『조선어문법(朝鮮語文法)』, 1934년 『조선어철자법(朝鮮語綴字法)』을 출판하여 한글의 우수성을 알리고 철자법 개정과 관련한 조선총독부 학무국의 관제안(官制案)에 대항하여 조선어학회안(朝鮮語學會案)의 과학성을 적극 지지·홍보하였다. 같은 해 6월 이극로(李克魯)와 함께 순 한글 주간신문(週刊新聞)인 『서울시보』를 발간하였다. 이처럼 우리말과 글을 말살하려는 수많은 탄압에 맞서 우리글을 지키고자 노력하였다.
이뿐 아니라 청년상식총서(靑年常識叢書)의 일환으로 『조선역사(朝鮮歷史)』를 출판하는 등 다방면에 걸쳐 국학운동을 펼쳤다. 1930년대 초 동덕여자고등보통학교에서 ‘한국어’를 가르칠 때는 학생들의 반일투쟁인 맹휴(盟休) 투쟁을 적극적으로 지지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서울 안국동(安國洞)에서 중앙인서관(中央印書館)이라는 출판사를 경영하였는데 이곳은 당시 진보적인 청년들의 연락처와 집합소 역할을 하였다고 한다. 청년들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대단하였기에 자신의 출판사에 와서 사회문제를 논의하는 것을 적극 환영하였다. 이 출판사를 통해 청소년 교양 잡지인 『신소년(新少年)』을 비롯하여 『시조전집(時調全集)』, 『주시경집(周時經集)』, 『가사집(歌詞集)』, 『소설집(小說集)』, 『백옥루』 등 조선문학과 관련한 다수의 전집을 편찬했다. 이러한 자료는 당시로서는 가장 집대성된 고전 문학 자료였으며 민족 문화를 보존할 수 있는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1937년 7월 일제가 중일전쟁을 일으키며 전시총동원체제를 확립하고 창씨개명 등 본격적인 민족말살정책을 강화해가자, 이에 격분하여 1940년 11월 20일 자결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7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첫댓글 "우리말은 공기와 같다. 사람이 산소를 들이마시지 못하면 죽는 것과 같이, 제 말을 하지 못하고 산다면 살아도 제대로 살고 있다고 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