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8년 6월 25일 백암아트홀에서 있었던 가야금 연주자 이슬기의 콘서트에 다녀왔다. 이슬기라는 이름 주변에는 어머니 (문재숙, 이화여대 교수)가 중요무형문화재 제23호인 '가야금산조 및 병창' 보유자인 탓에 '어린 시절부터 숙명처럼 가야금을 접해왔다는 사실'과 더불어 '미스코리아 이하늬의 친언니'라는 사실이 이슬기를 따라다니는 표현들이다. 가야금이라는 악기 자체가 대중적이지 못한 탓도 있거니와 아직 이슬기라는 가야금 연주자의 연주를 제대로 들어본 적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나 역시 그녀의 가야금 소리를 듣기 이전 까지는 단순히 유명한 어머니와 동생을 둔 가야금 연주자로 생각되었으나 이번 공연을 통해서 오히려 어머니를 능가할 수 있는 뛰어난 가야금 연주자, 그리고 입장이 바뀌어서 뛰어난 가야금 연주자 언니를 둔 미스코리아 이하늬라고 불려야 할 것 같다.

이쯤에서 이슬기의 가야금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 보고 싶다. 그녀는 2006 최초의 크로스오버 가야금 앨범 [In the green cafe] 를 발매해 큰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 전통적인 악기를 통해서 21세기의 대중들과 소통해야 한다는 우아하고 아름다운 고독을 그녀는 수 많은 연습과 시도들로 팽팽하게 12줄을 가다듬어 왔을 것이다. 첫 크로스오버 가야금 앨범을 통해서 연두색 푸른 잎을 피어 올렸다. 싹처럼 돋아나듯 여리고 아름답고 우아한 감성을 전통의 선율에 담아내면서 동시에 서양 악기들을 더욱 싱그럽게 조화시키는 매력까지 갖췄던 것이다. 가야금을 사랑하기 때문에 가야금을 널리 알리고 싶었던 이슬기는 전통의 길과 크로스오버 음악이 전혀 다른 길이라 생각하지 않으며, 본질인 가야금과 국악을 사랑하고 그것을 가장 가치 있게 전하며 새로운 음악을 만들어 낼 수 있다면 가야금의 영역을 넓히는 길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그것은 바로 대중과의 소통 그 자체가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으며 출발했을 것이다. 사실 가야금은 전통악기라는 이미지에 가려져 그 맑고 청아한 음을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을 것이다. 단지 TV 드라마나 혹은 영화에서 언뜻 비춰지는 낡은 이미지들이 진정한 가야금의 매력을 가려놓고 있는지 모른다. 가야금이라는 맑고 투명하고 사람을 정화시키는 듯한 그윽한 울림, 게다가 피아노, 베이스, 드럼, 바이올린과 조화를 이루며 더욱 선명하게 아름다운 음악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사실을 대중은 너무나 모르고 있는 것이다. 가야금은 말로 설명하기 힘들만큼 너무나 아름다운 악기다.

이러한 가야금의 참된 매력을 이슬기는 두 번째 크로스오버 앨범인 [Blossom] 이란 타이틀 아래 더욱더 깊게 담아내었다. 재즈 피아니스트 남경윤,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일본 피아니스트 이사오 사사키가 참여, 한•일간의 공통의 정서를 이끌어 내는 등 다양한 시도와 이슬기만의 뚜렷한 음악적인 주관이 돋보이는 곡들로 채워진 앨범이다. 타이틀곡 [Blossom]이란 '만개 하다', '활짝 피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 이슬기는 공연 도중에 관객들을 향해, 활짝 피어 만개한 꽃이 아름다운 이유를 설명해 주었다. 그것은 바로, 그 꽃의 중심에는 깊고 진한 향기가 있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가벼운 터치로 꽃잎이 피어나는 느낌을 표현하다가 점점 꽃내음이 짙어지면서 후반부에 가서는 전통가락으로 진한 꽃의 향기를 표현한 것이라고 했다. 또한 미소 짓는 노래라는 이름의 'Smiling song' 은 이슬기가 음악에 대한 갈등으로 연주자로서 가장 치열하게 음악적인 고민을 하던 시절에 만든 곡이라고 하면서 즐겁게 연주하는 모습에서 발전을 거듭해 왔던 흔적이 느껴졌다. 이 외에도 너영나영 이라는 민요를 관객들과 함께 부르는 등 노래에도 상당한 소질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고, 여러 가지 아름다운 곡들을 통해서 관객들에게 많은 즐거움과 웃음의 힘을 느끼게 해 주었다. 한국인이 사랑하는 일본의 피아니스트 '이사오 사사키'가 작곡했다는 두 곡은 이슬기의 음악에서 더 아름답게 피어난 것 같다. 계속적인 연주를 하면서도 관객들을 축복하는 마음을 음악으로 표현할 시간이 있었는데, 바로 그것이 'Amazing Grace', 'You are my all in all' 이었다. 아름다운 선율만큼이나 고운 마음이 느껴졌다.

이 날의 게스트로는 틴휘슬, 플룻 연주자인 '송솔나무'씨가 나왔다. 이산 OST에 참여하여 오프닝 곡을 불러 주기도 했는데, 맑고 청명한 느낌의 가야금 연주와 또 다른 매력을 선사해 주었다. '동방박사 세 사람의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이라는 곡을 악기를 테마마다 바꿔가면서 들려주었는데 말할 수 없는 청량감과 애절함 그리고 촉촉한 느낌의 곡이었다. 아기 예수에게 경배하는 동방박사의 이미지가 영상처럼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멋진 연주였다. 이후 마지막 곡인 'Joyful' 에서 협주를 하며 더욱 멋진 연주를 들려주었는데, 가야금은 어떠한 악기와도 조화를 이룰 수 있으며 또한 '따로 또 같이' 할 수 있는 독자적인 매력을 가진 악기임을 다시금 깨닫게 해 주었다.
뜯고, 튕기고 울리는 가야금의 연주 속에서 새삼 많은 것이 달라 보이기 시작한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 때에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는 말처럼, 이슬기의 가야금을 들으면 가야금을 사랑하게 되고 만다. 결국 더 자세히 알고 이해하고 싶어지는 계기가 될 것이라 확신한다. 가야금 연주자로 불리기 좋아하는 이슬기의 앞날이 더욱 활짝 핀 꽃과 같이 매력적인 향기를 가진 최고의 가야금 연주자가 될 거라는 기대감이 든다. 무엇이든 곁에 오래두고 함께 하면 닮아가기 마련이다. 우아한 한마리 학과 같은 단아한 모습이 가야금을 닮아가는 듯 하다. 가야금과 이슬기가 하나가 되는 물아일체의 경지도 멀지 않은 듯 느껴진다. 그녀는 기도 하듯 노력하고 춤을 추듯 흥을 내는 유연하지만 빠르게 발전할 연주자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취재 / 글 : 이구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