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도는 나의 고향인데, 시골 절 주지를 맡아보니 불교의 영향력이 미미한 동네인 줄 알겠다. 초임주지로서 왕성한 의욕을 보이던 나는 한 달이 지나자 곧 “어찌 초하룻날 한 사람도 절에 오지 않을 수 있는가”라는 한탄을 하기에 이르렀다.
시골 사람들은 일 년에 네 번 절에 오면 많이 오는 줄 안다. 1월 정초기도, 5월 부처님오신날, 7월 백중, 12월 동지불공, 이렇게 네 번 오면 이 동네에서는 아주 착실한 불자인 것으로 알고 있는 것이다. 불자라면 최소한 한 달에 한 번은 절에 와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나는, 우리 불자님들의 그런 구태의연함을 바라보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그래서 신도님들에게 틈나는 대로 물어 보았다.
나: 내일 초하루인데 절에 오세요. 신도님 1: 스님, 내일 고추 심어야 해요. 신도님 2: 내일 서울에서 자식들이 온다고 해서 안 돼요. 신도님 3: 요즘 몸이 안 좋아서 병원에 다닙니다. 신도님 4: 그날 결혼식이 두 군데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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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주사 희견보살상. 사진=문화재청 | 결국 나는 “시골에 살아도 신도님들은 매우 바쁘구나!” 라고 인정하고 그분들이 절에 오지 못한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했다. 그런데 일요일 오후 교회 앞을 차를 타고 지나가다가 나는 깜짝 놀랐다. 오후 2시쯤이었는데 교회에서 20명이 넘는 신자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오는 것이 아닌가.
‘우리 절 신도님들은 모두 바쁘다는데 교회 다니는 분들은 바쁘지 않은 건가.’ 같은 동네에 살고, 농사짓는 분들이고 다 같이 연로한 분들인데 어찌 교회는 저리 사람이 많고 절은 한가하다 못해 고요한가.
나중에 들은 이야기로는, 교회에서는 집집마다 찾아가서 차로 실어가고 태워다주며 점심까지 대접한다는 것이다. 교회에 가지 않는 평상시에도 아픈 분들을 병원에 데려다주고 시장을 봐다주는 등 부모님 모시듯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스님들은 절을 비우는 일이 많고 신도가 절에 찾아가더라도 반기는 기색이 없고, 노인들에게 반말을 하여 신도가 점점 줄어들게 되었다고 한다.
우리 절도 10년 전에는 신도가 꽤 많았다고 한다. 마을사람 거의가 절에 다녔고, 방생을 가게 되면 버스 5대를 대절해야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10년 전부터 점점 줄어들더니 요즈음에는 버스 1대도 채우지 못하고 있단다.
내가 “그렇게 절에 다니던 사람들이 지금은 뭐한데유?”라고 물으니, 그 신도님은 “지금은 다 교회에 다녀유. 일부는 죽기도 했고, 일부는 나이가 많아서 거동을 못하구유”라고 대답한다.
1년에 서너 번 절에 오시는 신도님들은 60대가 가장 젊고, 거의가 70대고, 80대도 여럿이다. 그나마 절에 오는 분들과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해보니, 이 분들이 절에 다니는 이유가 할머니 시어머니가 절에 다녔기 때문에 다니는 것이지, 불교가 좋아서 혹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고자 절에 다니는 사람은 없다는 것을 알았다. 부적을 얻고 삼재풀이를 하고 소원성취를 목적으로 절에 다니는 것이다.
이 분들에게 어떤 불교를 가르쳐야 할 것인가? 연로하셔서 기억력도 안 좋고 시력도 좋지 않으시다. 그러니 책 읽는 것도 힘들고 사경도 어렵다. 허리와 무릎이 불편하니 절하는 것도 어렵다.
고민 끝에 내린 답은 이 분들이 해오던 ‘관세음보살’ 염불을 지속하도록 격려하자는 것이다. 거기다가 가끔 부처님과 제자들의 이야기를 쉽고 재미나게 들려주고, 맛있는 공양을 준비해 드리도록 하자. 앞으로 더 좋은 방법이 떠오를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이것이 최선일 것이다. [계속]
승인 2013.07.15 00:10:21 |
정덕스님_시골절 주지 |
우리 절에는 300여 장의 축원카드가 있으나 실제로 절에 나오는 사람은 100명쯤 된다. 1년에 네 번 오는 사람을 추리면 50명도 안될 것이다. 그 50명도 거의 칠순이 넘다보니 사중에서 일어나는 자잘한 일들에 대해서 의견을 나누고 조언을 구하기도 힘들다. 올해 여든네 살이 되시는 보살님은 “스님이 알아서 하세요. 저희가 뭐 알간유”하며 나의 의견을 가볍게 물리치신다.
주지를 맡고 처음에 가장 답답했던 것은 의논하고 고민을 같이 할 사람이 없는 것이었다. 현실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문제들은 설사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다 하더라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정리가 되고 위안이 되고 묘안이 찾아지는 그런 일들이 발생하기도 하는 것인데 여기 시골엔 이야기를 나눌 사람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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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유동후 | 그러던 중 기적과도 같이 50대 신도회장님을 새롭게 모시게 되었다. 오늘은 그 이야기를 할까한다.
신도가 없는 와중에도 보살님 한 분이 아이들과 절에 가끔 나타났다. 나중에 알고보니, 이 분은 큰 행사 때마다 부처님께 꽃 공양을 도맡아 하는 보리행 보살님이시다. 보리행 보살님은 사과농사를 짓는 남편과 아들만 넷을 두고 있다.
한번은 이 보살님이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았다. 남편이 절에 가는 걸 싫어하여 절에 오고 싶어도 절에 올 수 없는 상황이며, 남편이 낚시 가는 틈을 타서 몰래 절에 온다는 것이었다. 마침 나는 그때 40~50대 신도회장님을 구하고 있었다. 기존의 신도회장은 신도회장만 26년을 하고 있는 노보살님이다. 연세가 칠순이 넘으셨고 허리 디스크가 와서 건강이 안 좋은 상태였다. 신도회장님을 위해서나 사찰을 위해서는 신도회장을 바꿀 필요가 있었다.
보리행 보살님은 자신이 절에 편히 나오게 하기 위하여 남편을 신도회장으로 추천하는 것이었다. 그날 저녁 나는 보살님댁을 찾아가서 보리행 보살님 남편에게 신도회장을 맡아 달라고 권하였다. 보살은 모른 척 옆에 앉아 있고, 나는 거사님이야말로 신도회장에 적임자라고 여러 가지 이유를 들어가며 말하였다. 처음에 거사님은 “저는 스님들을 별로 안 좋아 합니다” 라며 난색을 표하였다. 나는 스님들을 안 좋아 해도 좋고, 불교를 몰라도 괜찮으니 이름만 걸어 달라고 부탁하였다.
보살님의 부탁이 있어 내가 마음을 내게 되었지만,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그 거사님은 여러 조직에 몸을 담고 있고 정의감이 있는 분이었다. 무엇보다 가끔 전화통화만으로도 절에서 발생하는 여러 가지 문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절에 다니지도 않고 불교도 모르고 시간도 없기에 “저는 못합니다”는 이야기를 아슬아슬하게 반복하다가 드디어 밤 12시쯤에 그 거사님은 1년만이라는 조건으로 신도회장직을 수락했다. 거사님은 회장을 맡는 조건으로 4가지를 요구했는데 그 조건은 이러하다.
1. 저는 스님들에게 인사를 안 합니다. 2. 저는 법당에 들어가 참배하지 못합니다. 3. 저는 돈이 없으니 보시를 하지 못합니다. 4. 저는 시간이 없어서 절에 자주 가지 못합니다.
절로 돌아오는 길에 드디어 젊은 신도회장이 생겼다는 기쁨도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지금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라는 생각도 들었다.
생각해보면 불교는 애초에 종교가 아니었다. 우리의 교주인 부처님은 태어나 살다가 노병사(老病死)라는 문제의식을 느껴서 그것을 해결한 분이다. 비록 절에 나오지는 않더라도 거사님처럼 바르게 살려고 노력하고 이웃을 위해 봉사하시는 분들의 길과 불교의 길이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다. 그런 분에게 나는 단지 부처님과의 인연을 심어준 것이다. | |
첫댓글 나무 무량수불 (___)(___)(_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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