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비가 미쳤다
박덕균
오랜만에 나들잇길에 나섰다.
나들잇길이라야 마지못해 나선 상갓집 행이지만 지난가을 서울 사당동에서 있었던 대한사이버문학 출판기념회 및 정기모임에 참석한 이후로 처음 여주를 벗어나는 길이다.
그동안 특별한 일도 없었거니와 직장을 핑계로 건강상태를 핑계로 되도록 먼 길 나서는 것을 피해왔기에 오늘처럼 피치 못할 사정이 있지 않은 한 길을 나서지 않고 있었다.
그렇게 지낸 것이 근 8개월 만의 나들이를 몰고 왔는지도 모르지만.
직장 모임이나 학교모임 등 몇 가지 모임이 있는데 그중 한 모임의 총무를 맞고 있으며 직장동료이기도 한 친구의 장모님이 타계하시어 모임에서 조문 갈 회원들과의 연락을 내가 맞게 된 것이 나들이의 원인이 되어 버렸다.
물론 상갓집에 가서 조문하고 상주들과 슬픔을 같이 나누는 것은 우리의 전통풍습이기도 하거니와 아름답고 따뜻한 일이다. 하지만 나는 지금까지 근 십 년 가까이 상갓집을 회피해 왔다.
왜냐하면, 언제부턴가 상갓집에만 다녀오면 상문이라는 것이 들어서 그것을 풀기 전까지는 몸이 아프기 때문이다.
상문 푸는 것이 간단한 일이라면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겠지만, 그것이 여간 만만치가 않다. 하여 집사람도 내가 상갓집을 간다고 하면 쉽게 보내주는 일이 없다.
결국, 고집을 부려서 가긴 가지만 다녀온 뒤 후회하는 일이 한두 번이 아니기 때문이다.
더구나 지금은 치질이 도져서 일주일 넘게 고생하고 있는 터라 마음속으로 다른 회원이 많이 가면 나는 빠지리라 나름 궁리를 하고 있던 차였다.
인천 가는 길은 예전에 몇 번 다녀왔지만, 교통체증이 심한 곳이어서 가기를 꺼리는 곳이다. 더구나 그 길에는 휴게소가 없어 화장실도 못 들리고 쉬지도 못해서 내가 특히 꺼리는 길이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좀 편하게 다녀오기 위해 전화기가 불이 나도록 이리저리 연락한 결과는 말 그대로 어처구니였다. 일이 있어 못가는 회원들이 많아 겨우 세 명이 가기로 했는데 운전을 내가 해야만 하는 사태가 벌어지고 말았다.
세 명의 차를 비교해 보니 그나마 내 차가 연식이 제일 적은 차라 내가 낙점된 것이다. 치질이 어쩌고저쩌고는 이놈들에게 통하지 않는 변명에 불과하니 울며 겨자 먹기로 운전을 맡아야 했다.
어쨌든 우여곡절 끝에 세 명이 출발하기로 했는데 그나마 야간 운전을 피하고자 두 친구를 내가 원하는 시간에 가도록 으름장을 놓아 모이도록 했다. 다녀오는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떠나기 전 서둘러 내비게이션을 업데이트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내비게이션(이하 내비로 표기함)에 목적지를 찍으니 소요 예상시간이 1시간 45분으로 나왔다. 이 정도면 양호하다고 생각하며 출발을 했는데 고속도로에 진입하니 평상시 알던 길과는 다르게 내비가 제2영동고속도로를 가리킨다.
갈림길에서 주춤거리며 “왜 이쪽으로 가라는 거냐?” 하니 한 친구가 “어쩌면 이쪽이 빠를 수도 있어.” 하는 것이다. 그럴 수도 있겠지 하며 한참을 가다 보니 차가 엉뚱한 곳으로 가고 있다.
북수원을 지나 부곡, 안산 방향으로 가거나 판교를 지나 안양 방향으로 가야 하는데 서울 한복판에 있는 올림픽대로를 달리고 있지 않은가.
아니나 다를까 정체, 정체 또 정체다. 마음은 급한데 도로는 주차장을 방불케 하고 가다 서기를 반복하고 있다.
내비가 잘못되었나 하고 다시 세팅해도 다른 길이 없는 듯 그대로다. 친구들은 내비가 망가졌느니 중간에 길을 잘못 들어섰느니 쉴 새 없이 궁시렁대고 요즘은 내비를 안 쓰고 핸드폰을 쓰는 게 대세라고 또 궁시렁 댄다. 애초에 제2영동을 왜 타라고 했냐고 항변을 하니 내가 길을 잘못 들어선 것 같다고 잔소리만 더 심해진다.
휴게소는 없고 치질은 아파오고 끝은 안보이고 정말 모처럼 짜증 제대로 받으며 운전을 했다.
애면글면 목적지에 도착하니 소요시간이 3시간을 훌쩍 넘었다.
과정이 어떻게 됐든 일단 무사히 도착했으니 다행이라 생각하며 친구들과 낄낄거리다 조문을 마치고 잠시 앉아 있으려니 상을 당한 친구가 먼 길이니 빨리 출발하라고 해서 부랴부랴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이번엔 내비 쓰지 말고 핸드폰을 써보라는 친구의 말을 정성껏 받아들여
핸드폰으로 탐색하니 소요시간이 1시간 30분, 이게 맞는 거라고 친구들이 호들갑을 떤다. “그래 이놈들아 다 내 잘못이다.” 하며 출발을 했다. 그런데 한참을 가다 보니 길이 또 이상했다.
안산 방향으로 가다가 수원 방향으로 나가야 하는데 신월 방향으로 가다가 사당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이다. 그나마 잘 가고 있던 방향에서 정체가 심한 길로 유턴하라고 난리도 아니다.
친구들은 또 길을 잘못 들었느니 핸드폰이 이상하다느니 계속 궁시렁 거리고 있어 재빠르게 차에 있는 내비를 켜 비교를 해보니 여반 다를 게 없어 난감이 극에 달했다. 그러나 딱히 변명거리가 없어 속이 부글부글 끓어오른 것을 참고 내비가 미친 것이 아니고 인공위성이 미친 거라고 친구들을 애써 위로해 본다.
사당 방향 길은 사당역 근처에서 대한사이버문학 모임을 몇 번 했었기에 대략 길을 좀 알고 있어 내비를 무시하기로 했다.
친구들의 잔소리를 무시하고 그냥 앞만 보고 한참을 달리다 보니 화성 봉담으로 가는 길이 나온다. “아 이제 살았구나.” 안도하며 조금을 더 가니 북수원IC가 보인다. 그제야 친구들이 웃으면서 이제 됐다고 설레발이다.
여주에 도착하니 오후 9시 30분이다.
돌아오는 소요시간은 2시간 30분, 그래도 갈 때 보다는 성공한 귀향길인 셈이다. 애초 계획했던 총 소요 시간이 4시간이었는데 실제 소요된 시간은 6시간 정도이니 명절이나 연휴 같은 때보다는 그나마 양호하다고 나름 위안을 해 본다.
요즘 시대를 디지털시대라고 한다. 첨단 IT산업이 4차 산업을 주도하는 시대에 사는 우리는 생활 모든 면에서 편리함을 위주로 삶을 영위하고 있고 조금씩 더 편리해지려고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그 편리함이 그렇게 좋은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생활은 편리해 지고 있지만,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는 더 피폐해지고 평균수명은 늘었다지만 건강상으로는 더 나빠진 듯하다.
요즘 한편에서는 아날로그적인 생활을 그리워하고 문화를 복고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고 한다. 물질문명의 각박한 세상에서 빛의 속도로 발전하는 디지털만이 능사는 아니라는 것이다. 문명은 발전하지만, 인문은 잠깐잠깐 쉬어가자는 것 같다.
좀 늦으면 어떠랴. 좀 어리숙하면 어떠랴. 스펙 좀 모자라면 어떠랴.
책도 읽고 영화도 보고 여행도 다니면서 잠도 좀 푹 자고
이웃 간에 정도 좀 나누고 그냥 그렇게 웃으면서 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먹고 살기 바쁜데 맘 편한 소리 한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아날로그 시대가 그리워지는 건 어쩔 수 없는 현실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