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카오에서 유학중이던 김대건 안드레아는 최양업 프란치스코와 함께
중국 지린성(吉林省) 창춘(長春) 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소팔가자(小八家子) 성당
에서 부제품을 받는다.(1844년)
창춘(長春)은 조그만 소도시로 여덟 가구가 모여서 한 마을을 이루었다는 데서
유래가 되었다고 한다.
소팔가자는 일찍이(1796년) 천주교우촌이 형성, 파리 외방전교회 선교사들의
조선 입국 거점으로 중국인 90%가 카톨릭 신자라고 한다.
성당 뒤편에는 성모 동굴이 있고 맞은 편에는 성 김대건 안드레아신부의 동상
을 중심으로 원을 이루고 있다. 김대건기념관도 있다.
이곳에서 김대건 신학생이 부제품을 받게 된 사연을 보면
‘24세 청년 김대건은 페레올 주교의 명에 따라서 소팔가자를 떠나서 한 달 여 동
안 도보로 이곳에 도착(1844년), 두만강을 건너 개시(開市)기간을 이용하여 경원에서
조선교회의 밀사들과 만난다. 그러나 동북국경을 통한 입국이 의주길보다 더
어렵다고 판단한 그는 2개월 동안 왕복 2천리 길을 걸어서 다시 이곳으로 돌아온다.
이곳에 되돌아온 김대건 신학생은 최양업 신학생과 함께 소정의 신학과정을 마치고
부제품을 받는다.(1844년)’
이곳에서 김대건 신학생은 1년만 있었지만 거의 6년 동안이나 머물렀던 최양업 신학
생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었다고 한다. 김대건 신학생의 성품이 매우 소탈했기
때문이라고 한다.